거울
written by. 월화비월
붉은 달이 덩그러니 뜬 새벽이었다. 차마 커튼을 치지 못한 창을 통해 불그스름한 빛이 드리웠다. 이미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왜인지 잠이 통 오지를 않았다. 그저 눈만 깜박깜박, 뜬눈으로 붉게 물들어진 천장만 바라보았다.
……샤워나 하고 올까. 그 생각에 미친 나는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핸드폰을 켜 시간을 확인하니 벌써 오전 3시 33분이었다. 333. 타이밍 좋게도 가끔씩 숫자가 반복되는 시간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고는 했다. 그렇게 살짝 미소 지으며 화면의 시계를 바라보고 있는데, 맨 뒷자리가 4로 바뀜과 동시에 화면이 꺼져버린다. 아. 깜깜한 바탕에 내 얼굴이 비쳤다. 나는 화면을 들여다보는 것을 관두고 곧장 욕실로 향했다.
터벅터벅. 모두가 잠들어버린 깊은 밤은 너무도 조용해 마치 내가 어딘가 다른 차원에 있는 것만 같은 이질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내가 욕실로 향하는 발소리만이 귀에 울릴 뿐, 그 외의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기로 했다. 그냥 갑작스런 호기심이었다. ――지이잉, 이명만이 귀를 지배한다. 아아. 이토록이나 이 새벽은 고요했구나. 거실의 시곗바늘 소리조차도 들려오지 않았다.
거실에 있는 베란다를 통해 하늘을 바라보았다. 붉게 물들어진 밤하늘은 신비로웠고, 아름다웠다. 또 어떻게 보면 마치 지옥의 하늘같기도 했다. 하늘을 붉게 물들였을 원인일 달을 보고 싶었는데, 안타깝게도 달은 구름에 가려져 보이질 않았다.
쏴아아. 시원한 물줄기 소리가 욕실 가득 울리던 것도 잠시, 샤워를 다 마친 나는 물을 끄고 수건을 꺼내 먼저 대충 머리를 털었다. 그 다음엔 몸통, 팔, 다리 순으로 물기를 제거했다. 마지막으로는 다시 머리에 수건을 돌돌돌 싸매는 것으로 끝. 새 잠옷을 장착한 나는 방으로 돌아가려 했다. 다만, 방문 앞까지 다다랐을 때 핸드폰을 욕실에 두고 온 것이 떠올랐다. 슬쩍 거실을 바라보니 구름이 지나가고 붉은 달이 완전히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마치 날 홀리는 것만 같아.
핸드폰은 욕실 수건 수납칸 위에 올려져있었다. 아, 역시 여기있었구나. 핸드폰을 손에 쥔 나는 시간을 확인하려 화면을 켰다. 4시 44분……. 444는 아무래도 좀 싫은데. 그나저나 1시간 동안이나 샤워를 했구나. 아직 꺼지지 않은 핸드폰 불빛 덕에 깜깜하기만 했던 욕실에서 거울로 내 뒷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직 빗질을 못해 이리저리 엉켜있는 머리카락에 한숨이 쉬어졌다. 빨리 돌아가서 빗질이나 해야지. 그렇게 뒤돌아 욕실 문을 나설 때였다.
―――그러고 보니, 욕실에 거울이 2개였나? 어떻게 내 뒷모습이 비친 거지¿
등줄기에 소름이 오소소 돋는다. 샤워를 하고 나온 게 소용없을 정도로 식은땀이 온몸을 흠뻑 적셨다. 침을 꿀꺽 삼킨 나는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아. 다행이다. 역시 내가 잘못 본 듯 했다. 거울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내 앞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무언가 안심이 되어 안도의 한숨을 내셨다. 그런데 왜. 왜 거울속의 나는 나를 보고 웃고 있는 거야¿ 어째서? 지금 나는 웃고 있지 않은데¿
“줄곧 기다렸어, 오늘만을.”
“……….”
“어서와, 또 다른 ‘나’.”
어째선지 온몸의 신경이 마비된 듯 입 하나 벙긋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나를 향해 거울 속에서 뻗어오는 기다란 팔은, 누가 봐도 이 세상의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결국엔 그 팔이 내 몸을 완전히 감싸 거울 속으로 끌고 갈 때 까지도 나는 일련의 비명 조차도 지르지 못했다.
툭. 힘이 빠져나간 손에서 핸드폰이 떨어져 나간다. 어둠속으로 끌려가는 도중, 나는 여전히 밝게 빛나고 있는 핸드폰 화면을 간신히 눈동자를 돌려 확인할 수 있었다. 절망스러울 만큼 떠 있는 숫자, 444. 여전히 시간은 4시 44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히, 히히히. 히힉¿ 힉? 히히. 히히히히히히히. 히¿ 히히히? 너도, 이제, 거기? 히힉. 힉. 어둠 속에 갇혀. 힉. 이젠, 내가¿ 너. 내 차례. 히히, 히. 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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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7.0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