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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gimon

*알티 추첨하여 받은 디지몬 장르 한정 2000자 내외 글 리퀘이며, 커플링은 코시미미 입니다.

*공백포함 3845자, 공백제외 2750자 입니다.

 

 

 

BGM : Ouran High School Host Club_Sakura Kiss for Piano

 

 

 

 

 

 

 

눈부시다

 

 

 

코시미미

 

  written by. 월화비월

 

 

 

 

 

***

 

 

 

 

 

나는 중요한 작업을 할 때엔 어둡고 조용한 곳에서 하는 걸 선호하는 편이었다. 빛이 잘 들어오지 않도록 커튼으로 창을 잘 가린 컴퓨터실은 어느 잡음 하나 없었다. 오로지 내가 타닥타닥, 두드리는 키보드 자판 소리뿐이었기에 내가 작업에 집중하는 것을 도왔다.

 

그러나 이토록이나 깜깜한 곳에서 밝은 화면을 바라보는 데에는 그만한 대가가 있었다. 아무래도 어두운 곳에서 오랜 시간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는 것은 눈에 무리가 가지 않을 수가 없다.

 

작업에 집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한 이때쯤이면 누군가가 눈을 콕콕 찌르는 것만 같은 좋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이 통증은 몇 번을 겪어도 통 적응이 되지를 않는다. 나는 작업을 하던 것을 잠시 멈추고 두 손을 눈에 가져다 대었다. 손의 찬 느낌이 눈을 진정을 돕는다.

 

그렇게 내가 작업을 멈추고 조금의 휴식을 취할 때면, 그래. 언제나 같은 패턴이었다.

 

 

 

코시로군! 나 왔어!!”

 

 

 

그녀가 빛이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컴퓨터실 문을 활짝 열고 들어오는 것은. 그러면 그녀는 때마침 지는 석양을 등에 업고서 내 이름을 다시 불렀다. 코시로군, 하고.

 

그럴 때면 나는 갑작스레 들어오는 빛에 눈을 찡그렸지만, 그게 또 싫은 건 아니어서 어떻게든 눈을 부릅뜨고 그녀를 바라봤다. 석양 탓인지, 원래 그녀 자체가 빛나는 건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내 눈은 어둠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녀는 언제나 빛을 가지고 들어왔다.

 

 

눈이 부시다.

 

 

 

 

 

*

 

 

 

 

 

있지, 오늘은 말이야.

 

자연스럽게 내 옆에 자리를 잡고 앉은 그녀는 오늘 하루 동안에 있었던 일을 얘기하곤 했다. 그건 오늘도 마찬가지여서, 나는 가만히 그녀의 말을 듣고 있었다. 오물오물거리는 입이 귀엽다.

 

예쁘다. 약간 분홍빛을 담은 저 입술은 갓 핀 벚꽃이 생각이 났다.

 

 

 

. 코시로군 괜찮아? 갑자기 얼굴이.”

 

, 괜찮아요. 그러니까 손대지 말아주세요.”

 

……. ……그래……….”

 

 

 

순간적으로 화악 달아오른 얼굴이 창피해 한 손으로 가리곤 그녀의 손길을 거절했다. 왜인지 상처받은 얼굴.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녀를 상처 입게 만들어 버렸어.

 

내 행동 때문인지 순식간에 풀이 죽어선 말이 사라진 그녀에 정적이 찾아왔다. 내 눈치를 보며 어쩔지를 모르는 그녀가 마치 새끼 강아지 같다고 생각했다. 꼭 주인이 혼내서 풀이 죽어있는 강아지 같아. 이래서 애완견을 키우는 사람들은 개들이 잘못을 해도 혼을 내지 못하는 걸까. 너무 귀여워서. 그들의 마음을 알 것 같다.

 

물론, 지금 그녀가 잘못한 건 없다. 혼을 낸 것도 아니고. 그저 단순히 순간적으로 든 내 불순한 마음 때문이었으니. 나는 낯선 침묵이 어색해 괜히 귀를 만지작거렸다.

 

 

그래. 항상 먼저 다가와 준 건 그녀였으니, 이번엔 내가 말을 걸어보자.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너무해, 코시로군!”

 

?”

 

난 코시로군이 아픈 건 아닌지 걱정이 돼서 그런 건데, 왜 이리 냉정해?”

 

잠깐만요, 미미상.”

 

 

 

그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내게 소리쳤다. 내게 불만을 토로하던 그녀가 이내 조용히 고개를 숙인다. 그리고 바닥으로 차갑게 떨어지는 눈물.

 

쿠웅. 마치 심장이 딱딱한 콘크리트 바닥에 곤두박질치는 기분이었다.

 

 

 

알아, 코시로군이 나 안 좋아하는 거. 귀찮아하는 것도 알아.”

 

 

 

눈물을 뚝뚝 흘리는 그녀의 목소리는 낮게 잠겨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입에서 내뱉어지는 말들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생전 처음 듣는 소리였다.

 

난 그녀를 귀찮아한 적이 맹세코 단 한 번도 없다. 좋아하지 않은 적도, 없는데.

 

그녀의 반짝이는 두 눈과 마주할 때마다 간질이는 심장을 눈치챘을 땐, 이미 난 내게 빛을 가져다준 그녀를 좋아한 지 오래였는데.

 

 

 

하지만 그래도 어떡해! 난 그런 코시로군도 좋아한단 말이야!”

 

 

 

무심하게 저를 챙겨주는 나한테, 내 겉모습뿐만 아니라 내면을 바라봐 주는 나에게 반해버렸다고.

 

그녀가 고개를 들고 나를 똑바로 바라본 채 외친 말이었다. 뒤통수를 거세게 얻어맞는 느낌이 들었다. 정신이 확 깨어버리는 기분이다.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벙 쪄버린 나를 한참을 노려보던 그녀는 씩씩 거리는 채로 뒤돌았다.

 

기다려요, 미미상! 일단은 그녀를 잡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던 것 같다.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쫓았다. 그녀의 가녀린 손목을 잡았다. 그녀의 걸음이 멈춘다.

 

너무 급해서 꽤 세게 잡고 말았는데, 아픈 건 아니겠지…….

 

 

 

.”

 

 

 

그녀가 퉁명스러운 어투로 말했다. 그러고 보니 무작정 붙잡긴 했는데, 그 뒤에 어떻게 행동할지를 정하지 않았다. . 어떡하지.

 

여전히 나를 돌아보지 않는 그녀가 화가 나 있는 건 아닐까 걱정이 들었다.

 

 

 

……. 그게, 그러니까 말이죠.”

 

뭐야, 할 말도 없으면서 붙잡은 거야?”

 

 

 

조금은 기대했는데……. 쓸쓸하게 중얼거리는 그녀의 목소리에 다시 한 번 심장이 가라앉음을 느꼈다. 그래서인지 나도 모르게, 단지 정말 충동적으로 그녀의 등을 끌어안았다.

 

그녀의 손목만큼이나 가녀린 어깨는 내 품 안으로 쏙 들어왔다. 코에 닿는 그녀의 머리카락이 간지러웠다.

 

당황한 그녀의 몸이 뻣뻣하게 굳는 게 느껴진다. 뭔가 이게 너무 재미있어서, 나는 그녀의 뒷덜미에 고개를 묻었다.

 

 

 

, 잠깐만. 코시로군? ? 이거, 뭐하는 행동?”

 

……….”

 

저기, 코시로군? 나 이러면 진짜 기대하게 되는데?”

 

기대해도 돼요.”

 

 

 

잔뜩 떨리는 목소리로 저를 끌어안은 내 팔에 손을 가져다 대는 그녀에 머리가 새하얘지는 것 같았다. 그녀의 손길이 닿은 곳이 불타오른다. 이렇게나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에 설레는 나인데.

 

나는 결국 기대하게 되어버린다.’라는 그녀의 말에 울컥해서는 기대해도 좋다는 말을 뱉어버렸다.

 

 

 

미미상.”

 

 

 

나지막이 그녀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그녀가 움찔한다.

 

사실은 많이 놀랐었다. 그녀가 나를 좋아하고 있다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단지 어릴 적 함께 험난한 모험을 했던 동료. 딱 그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을 줄 알았다. 그래서 보통 혼자 있는 편이 많은 내가 안쓰러워서, 친구로서 신경을 써주고 있는 것뿐이라고.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심지어 매일같이 나보다 훨씬 키도 크고 잘생긴 애들에게 고백을 받는 그녀였기에 나는 조금도 눈에 차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었으니까, 이 마음을 꼭꼭 숨겨놓고 있었는데.

 

그녀가 날 좋아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으니 이제 더는 숨길 것도, 망설일 것도 없었다.

 

 

 

좋아해요.”

 

……….”

 

이미 오래전부터, 난 미미상을 좋아하고 있었습니다.”

 

 

 

내 진심을 담아 고백했다. 그녀가 뒤를 돌아서고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 얼굴은 무지 빨갛게 타올라서, 우스꽝스러울 게 분명하다.

 

. 그녀가 제 어깨를 감싸 안고 있던 내 두 팔을 풀고 내게서 떨어졌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느껴졌던 그녀의 체온이 사라지자 공허함이 들었다. 그녀가 천천히 나를 돌아본다.

 

나와 마주한 그녀는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내가 한 고백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까, 순간적으로 덜컥 겁이 들어 주춤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그녀는 내가 더 이상 뒤로 도망치지 못하도록 내 두 손을 꼭 맞잡아왔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그리고 꽃이 만개하듯 활짝 웃어 보이고 있었다.

 

비가 개고 난 새벽의 꽃 같다. 밤새 잔뜩 이슬을 머금은 꽃에 새벽의 햇살이 비치며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오로지 나만을 바라보며 행복하게 미소 짓고 있는 그녀는 그 어떤 순간보다 아름다웠다.

 

 

눈부시다. 그녀가 다시 한 번 내게 빛을 가지고 왔다.

 

 

 

 

 

 

*모든 글의 저작권은 월화비월(@Moon_m0406)에게 있습니다.

*수정_2017.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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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gimon

어린왕자 <타케히카>

w.월화비월

 

소녀가 무언가를 망설이는 듯 애꿎은 손만 꼼지락거렸다. 소녀의 할 말이 있다는 부름에 한참 전부터 나와 있었던 소년은 지루하다는 듯 기지개를 편다. 하암, 찍 뱉어지는 하품에 소년의 눈에 살짝 눈물이 고였다.

저기, 히카리짱?”

소년이 소녀의 이름을 불렀지만 소녀에게서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곤란하다는 듯 뒷머리를 긁적이던 소년은 다시 입을 떼었다.

할 말 없으면 나 이만 먼저 가 봐도 될까. 오늘 오랜만에 형이랑 만나기로 했는데.”

……?”

그럼.”

당황함이 역력한 소녀가 깜짝 놀라며 소년을 바라봤다. 이에 소년이 소녀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다. 그렇게 소년이 뒤를 돌아 몇 걸음 걷고 있을 때였다.

잠깐만!”

급히 뛰어온 소녀가 소년의 허리춤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당겨지는 느낌에 소년이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봤다. 소년이 소녀 쪽을 향해 몸을 다 돌리기도 전에 소녀를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외친다.

좋아해, 타케루군!”

?”

예전부터 좋아했어. 진심이야.”

부끄러웠는지 소년의 옷자락을 꽉 잡은 손에 힘이 더 들어갔다. 갑작스러운 소녀의 고백에 소년은 그저 눈만 커다랗게 뜬 채로 소녀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기도 잠시, 소년은 제 옷자락을 놓지를 못하고 있는 소녀의 손을 감쌌다. , 소녀가 몸을 움찔하며 소년을 올려다본다. 그제야 제대로 보이는 소녀의 얼굴에 소년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얼굴이 새빨간 것이, 마치 사과 같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외모가 예쁜 것도 한몫했지만.

소년이 소녀와 시선을 마주하는 것을, 소녀는 피하지 않았다. 눈을 마주하고 있을수록 툭 건드리면 펑 하고 터질 것 같이 점점 더 얼굴이 빨갛게 익음에도 불구하고. 소녀는 결코 먼저 눈을 떼지 않았다.

타케루군?”

결국 먼저 고개를 돌린 건 소년이었다. 소녀의 진심 어린 눈을 계속 바라보고 있으니 왠지 모르게 얼굴이 후끈거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저에게 멀찍이 떨어져 코와 입을 가리는 소년에 소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이내 소년의 목덜미가 벌겋다는 것을 눈치를 챈 소녀는 수줍게 미소 지어 보였다.

뭐야, 타케루군. 고백한 건 난데 왜 타케루군이 부끄러워하는 거야?”

……그야, 나도 히카리짱을 좋아하니까.”

소년의 대답에 소녀의 얼굴이 화르르 타올랐다. 덥다는 듯 손부채질을 하는 소녀의 귀여운 행동에 소년이 얼굴을 가리고 있던 제 손을 천천히 뻗었다. 소녀의 손목을 잡음과 동시에 부채질이 멈췄다. 불에 덴 듯 뜨거운 손목에 소녀는 시선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를 못 했다.

소년이 잡고 있던 소녀의 손목을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이에 소녀의 몸까지 같이 끌려오면서 소년의 품에 안착한다. 제 품에 쏙 들어온 소녀가 만족스럽다는 듯 웃던 소년은 소녀의 손목을 잡지 않은 다른 손으로 소녀의 허리를 꼭 끌어안았다. 소녀의 얼굴은 폭발 직전이었다.

기억해? 히카리짱? 우리의 문장.”

……, 타케루군이 희망이고, 난 빛이잖아. 그걸 어떻게 잊어.”

그래. 그래서 좋아한다고, 히카리짱.”

간질거리는 느낌이 좋았다. 소녀는 눈을 감고 소년의 품을 느꼈다. 소년 역시, 마찬가지였다.

 

 

 

 

 

 

 

 

*모든 글의 저작권은 월화비월(@Moon_m0406)에게 있습니다.

*재업(2016.02.20)

*수정(2016.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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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 - <코시미미>

w.월화비월

 

코시로군!”

예고 없이 그녀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들려왔다. . 지끈 하는 갑작스러운 두통에 절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코시로는 머리에 손을 얹은 채로 천천히 눈을 떠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계는 정확히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꽤나 늦게 일어났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잠시, 코시로는 달력을 바라봤다. 오늘부로 벌써 한 달인가, 그녀가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인해 미국으로 떠난 지.

코시로는 무심코 핸드폰을 들여다봤다. 그러나 전화는커녕 문자 한 통도 오지 않았다는 걸 알아챈 코시로는 신경질적으로 제 머리칼을 헝클였다. 그녀가 떠난 뒤로 제 핸드폰은 아주 가끔을 제외하고 그저 시계 역할만 한다는 것을 망각한 저의 어리석음에 대한 짜증이었다.

항상 뭐하고 있냐고 연락이 왔었는데…….”

코시로가 조용히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어느새 그의 입가엔 씁쓸한 미소가 걸쳐져 있었다. 단 내가 나는 텁텁한 입에 코시로는 곧장 욕실로 향한다.

치카치카, 표정 없이 양치질을 하던 코시로는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며 바삐 움직이던 손을 천천히 멈췄다. 칫솔을 입에 문 채로 한 달 전과는 다르게 많이 초췌해진 제 얼굴을 어루만진다. 나쁘지 않던 피부가 거칠어져 있었다. 심지어 다크서클까지.

, 하고 뱉은 거품을 초점 없이 바라보던 코시로는 한숨을 크게 내셨다.

대충 세수와 양치질을 마친 코시로가 터덜터덜 거실로 걸어 나왔다. 코시로의 인기척을 느낀 여성이 뒤를 돌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일어났니? 코시로?”

. 안녕히 주무셨어요?”

코시로의 인사에 환한 웃음으로 대신 대답하던 여성은 이내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다. , 잠시 신음하던 여성이 코시로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의 얼굴을 제 손으로 감쌌다.

피부가 많이 상했네. 요새 늦게 일어나는 것도 그렇고…….”

……….”

혹시 무슨 일 있는 거니?”

여성의 질문에 코시로는 입을 꾹 다물었다. 무슨 일,이라. 코시로는 다시 한 번 떠오르는 그녀의 해맑은 모습에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양옆으로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에요. 무슨 일은요.”

코시로.”

전 괜찮아요, 엄마.”

코시로가 분명 무언가 숨기고 있다는 게 뻔히 보였지만 말하기 싫어하는 것 같은 모습에 결국 여성은 한숨을 푹 쉬었다. 그래, 아무 일 없으면 됐어. 따스한 목소리에 코시로의 쓸쓸했던 마음이 포근해지는 듯했다.

여성은 여전히 방으로 들어가는 코시로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 했다. 불안한 모습이 여간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저 애, 정말 괜찮을 걸까.

방으로 들어온 코시로는 제가 어젯밤 켜놓고 잠든 노트북 화면 아래쪽에 있는 아이콘이 빛나고 있다는 걸 보았다. 뭔가 싶어 가까이 다가간 코시로가 그것을 확인했다. 이메일 아이콘이었다. 달칵. 코시로가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주저 없이 클릭했다. 곧바로 뜨는 창에 코시로는 눈을 크게 떴다. 내용을 확인한 코시로의 얼굴에 활짝 웃음꽃이 핀다. 자연히 올라간 입꼬리는 씰룩씰룩, 내려올지를 몰랐다.

코시로군, 잘 지내? 나는 잘 못 지내고 있어. 코시로군이 없어서 그런가 봐. 보고 싶어, 코시로군. -미미

저도 보고 싶어요. 미미상.”

 

 

 

 

 

 

 

*모든 글의 저작권은 월화비월(@Moon_m0406)에게 있습니다.

*재업(2016.02.20)

*수정(2016.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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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 좀 채라 - <타이야마>

w.월화비월

야마토, 미안하다니까!”

너는 어떻게 항상 그런 식이냐?”

그러니까 미안하다고…….”

, 사실 지금 네가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잖아.”

. 정곡이 찔린 듯 타이치가 어쩔지를 몰라 했다. 야마토의 말이 맞았다. 타이치는 현재 제가 무얼 잘못한 건지 도통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힌트라도 주면 좋을 텐데, 무작정 저를 쏘아붙이는 야마토에 타이치는 속이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타이치의 얼굴에 당황함이 역력하다.

으음. 타이치는 눈을 감고 제가 뭘 잘못했는지 생각했다. 정확히는 고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잘못한 일은 없는 것 같기 때문이었다.

복잡한 머리에 타이치가 조금은 짜증스럽게 머리를 긁적였다.

혹시 내가 아까 나만 다코야키 사 먹어서 그런 거야?”

……. 너 그 말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타이치의 악의 하나 없는 순수한 질문에 야마토가 어이없다는 듯 실소를 터트렸다.

너 그 눈치로 어떻게 살아왔냐?”

야마토가 경악한 얼굴을 하며 타이치에게 물었다. 이에 타이치가 미간을 찌푸렸다. 내 눈치가 뭐 어때서? 타이치가 발끈하며 언성을 높였다.

어이, 야마토. 솔직히 말해서 내가 뭘 잘못했냐?”

?”

나 지금 네 집에서 놀러 오고서부터 네가 시키는 일 군소리 없이 다 했잖아!”

그건.”

물 떠와라, 휴지 가져와라, 뭐 해라! 내가 노예도 아니고!”

야마토가 변명하려고 타이치의 말을 가로채려 했으나 타이치는 야마토에게 그럴 여지를 주지 않았다. 조금 당황한 모습을 보이는 야마토에 타이치는 이때다 싶어 제가 섭섭했던 것을 줄줄이 터놓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상황 역전. 타이치는 속으로 나이스!’를 외쳤다.

심지어 네가 스킨십 하지 말래서 그것도 꾹 참고 있는데. 진짜 억울한 거 아냐?”

……….”

……야마토?”

갑자기 고개를 돌리는 야마토에 타이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무리 시선을 마주치려 해도 어떻게든 저와 눈을 마주치기 않으려 하는 야마토의 행동에 타이치는 이상함을 느꼈다. 자세히 보니 야마토의 귀가 불에 덴 듯 발갛다. 호오, 타이치가 팔짱을 끼며 씩 입꼬리를 올렸다.

설마, 야마토.”

…….”

오늘은 널 건드리지 않아서 그런 거냐? 귀엽기는.”

타이치의 능글맞은 말에 야마토가 몸을 움찔했다. 야마토를 사랑스럽다는 듯 바라보던 타이치는 이내 야마토에게 가까이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더 새빨갛게 익는 야마토의 얼굴에 타이치는 조용히 웃음을 터트렸다.

서로의 숨결이 닿을 정도의 가까운 거리에서 타이치가 야마토와 시선을 마주했다. 순간 흡, 숨을 멈추는 야마토에 타이치는 제 손으로 야마토의 두 눈을 가렸다. . 갑자기 찾아온 깜깜한 시야에 야마토가 신음을 뱉었다.

눈을 감아야지. 키스할 건데.”

곧이어 제 입술에 닿는 물컹거리는 감촉에 야마토가 살짝 몸을 떨었다. 따스한 온기를 계속 유지하고 싶었는지 야마토의 팔이 자연스럽게 타이치의 목을 감싼다. 집 안은 언제 냉기가 돌았냐는 듯 후끈거렸다.

 

 

 

 

 

 

 

 

 

*모든 글의 저작권은 월화비월(@Moon_m0406)에게 있습니다.

*재업(2016.02.20)

*수정(2016.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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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마요 - <켄미야>

w.월화비월

 

그만해, 스팅몬. 드릴 소리만이 채우고 있던 방 안에 한 남자의 굵직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 이에 사람 형상을 띄고 있으나 곤충처럼 더듬이와 날개가 달려있는 무엇인가가 제 행동을 멈추고 가만히 남자를 바라봤다. , . 스팅몬의 날카로운 손톱 끝에서 붉은색의 묽은 액체가 약간의 살점과 같이 떨어지고 있었다.

남자는 입가에 미소를 띤 채 스팅몬의 옆에 쓰러져 있는 여자를 향해 다가갔다. 여자의 몸 중앙에는 작지 않은 크기의 구멍이 원형으로 뚫려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던 남자의 발이 피로 흥건한 곳을 거닐자 철벅하는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길게 늘어트려진 머리카락을 밟을 정도의 위치까지 온 남자는 아무것도 깃들지 않은 눈으로 차마 눈을 감지도 못하고 생을 마감한 여자를 바라봤다.

. 조소를 뱉은 남자는 제 발로 주저 없이 여자의 머리통을 차버린다. 힘없이 돌아간 죽은 여자의 머리에 오히려 남자의 옆에 있던 스팅몬이 질끈 눈을 감으며 고개를 돌렸다.

켄군!”

한 여성의 맑은 음성이 세상 그 어디와도 고립되었을지 알았던 방의 문 밖 멀리에서 들려왔다. 남자가 흠칫 몸을 떨며 문 쪽에 시선을 가져갔다. 무엇인가 급히 고민하는 듯 남자의 눈알이 양옆으로 몇 번 구른다.

타다닥, 급한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면서 벽과 부딪쳤다. 보랏빛의 머리칼을 지닌 여성이 문 손잡이에 제 몸을 기대며 벅찬 숨을 돌렸다. 흔들리던 남자의 눈동자가 멈춘다.

이러고 있을지 알았어.”

맑기만 할 줄 알았던 여성의 목소리는 현재 떨리고 있었다. 남자의 옆에 기괴망측한 시체가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것을 본 듯했다. 남자는 눈을 천천히 감았다 뜨며 입을 열었다.

왜 몸을 떨어요, 미야코상. 설마 내가 무서워요?”

켄이 얼굴에 상냥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러나 미야코는 그런 켄이 소름 돋는다는 듯 표정을 싸악 굳혔다.

이런 짓은 이제 그만두라고 했잖아.”

……….”

대체 왜 아무 잘못 없는 사람을 저렇게 만드는 거야?”

약속을 먼저 안 지킨 게 누군데 그래요?”

? 자기는 잘못한 게 아무것도 없다는 듯 켄의 너무도 당당한 모습에 미야코의 입에서 반사적으로 물음이 터져 나왔다. 미야코는 어이가 없다는 듯 실소를 터트렸다. 켄이 이렇게 뻔뻔하게 나올지는 예상을 못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켄은 여전히 당당했다. 단숨에 그녀 가까이 다가간 켄은 그녀의 두 어깨를 붙잡고 무서운 얼굴로 그녀를 노려봤다. 그의 시선에 겁을 먹은 미야코가 제 몸을 살짝 떨었다.

말했잖아요. 나 말고 다른 남자는 만나지 말라고.”

켄군, 그건!”

내가 없을 땐 아무리 다이스케군이어도 만나지 말라고 했잖아!”

켄의 분노에 찬 외침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너무 꽉 잡힌 어깨가 아파 미야코가 몸을 움찔하며 얼굴을 찡그렸다. . 아픈 신음이 절로 나왔다.

어느새 미야코의 두 볼을 잡은 켄은 망설임 없이 그녀의 입술로 돌진했다. 작게 벌어진 틈새 사이로 비집고 들어간 켄의 혀가 그녀의 입안을 우롱하듯 헤집는다. 켄에게서는 미야코를 배려하는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억지로 행해지는 키스에 미야코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거칠게 제 입을 떼어낸 켄은 서럽게 울고 있는 미야코를 그저 지그시 바라봤다. 이내 켄은 미야코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제 손으로 닦아내었다.

울지 마요. 더 울리고 싶잖아.”

그 말을 마지막으로 켄은 미야코의 흰 목덜미에 입을 부드럽게 맞췄다. 미야코가 저도 모르게 깨문 입술에서 피가 방울지게 맺힌다. 어느새 웜몬으로 돌아간 켄의 디지몬은 여자의 시체 가까이 다가가 눈을 감겨주었다.

 

 

 

 

 

 

 

 

 

 

*모든 글의 저작권은 월화비월(@Moon_m0406)에게 있습니다.

*재업(2016.02.20)

*수정(2016.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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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gimon

Peter Pan

 

 

야가미 타이치 X 타케노우치 소라

written by. 월화비월

 

 

 

*

 

 

 

안녕이라고 말하지 마. 안녕은 떠난다는 뜻이고,”

……….”

떠난다는 것은 잊혀져버린다는 뜻이니까.”

 

금의 안타까움 속에서도 나는 그의 말에 순응하지 못했다. 진득함을 뽐내던 아카시아 향은 어느새 중후한 공기 속, 가라앉아 있었다. 그의 애절한 시선을 한 몸에 듬뿍 받으면서도 나는, 그랬다. 고개를 들지 못한 채, 무거운 죄를 진 듯 고개를 숙이고서. 잘 움직여지지를 않는 입을 억지로 떼어냈다.

 

안녕.”

 

내가 그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의 끝, 나는 결국 그 말을 내뱉고야 말았다. 끝까지 너의 간절한 시선을 외면하고서, 나는 뒤돌아섰다.

 

 

 

*

 

 

 

01_할 수 없는 인연의 끝, 우리는 마주했다.

 

느 때와 다를 것 없던 학교 등굣길이었다. 하품을 찍찍 내뱉으며 나는 평소와 같이 길을 걸었다. 지루한 아침, 주위는 학생들이 서로 친구들과 떠들며 가느라 시끌벅적했다. 정말, 항상 같은 아침의 일상이었지만 왠지 오늘따라 내 신경은 몇 배로 예민해져 있었다. 누군가 내 어깨를 잡았을 때,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재빠르게 떨어졌다. 놀란 숨을 내뱉으며 나는 내 어깨를 잡은 이를 확인했다. 야마토.

 

, 미안. 많이 놀랐어? 평소와는 다른 내 반응에 오히려 그가 더 당혹스러운 듯 보였다.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이며 사과를 건네는 야마토에 나는 말을 얼버무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냥, 오늘따라 신경이 예민하네. 한동안 우리 둘의 어색한 공기가 지속되는 듯싶었지만, 이내 야마토가 정적을 깨고 말했다. 오늘, 새 학기 시작이네. 벌써 우리가 고등학교 2학년이라니, 믿어져? 야마토의 물음에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점점 늙는 기분이야. 이제 갈수록 파릇파릇함은 사라지고 쭈글쭈글 주름이 잡혀 늙을 것을 생각하니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입술을 툭 내밀고서 불만을 토로하니 야마토가 웃음을 참으며 내 머리를 꾹 눌렀다. 늙는 게 뭐 어때서 그러냐.

 

그럼 넌 늙어가는 게 좋아?”

, 글쎄. 너랑 같이 늙는 거라면 괜찮을 것도 같은데?”

참나. 너 요새 왜 이렇게 능글맞아 졌어?”

 

의미 없는 대화가 오가고 있을 무렵, 야마토는 피식, 공기 빠진 웃음을 토하며 내게 물었다. 그럼 넌 왜 늙는 게 싫은데?

 

. 늙는 건 당연히 싫지. 나이 먹는 게 왜 싫으냐고 물어라, 멍청이.”

그래그래. 나이 먹는 게 왜 싫어?”

그야.”

 

어른이 되는 거잖아, 곧 있으면. 나는 어른이 되는 게 두려워. 이기심에 취해서는 다른 사람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그런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는 거니까. 하지만 내가 어른이 되는 것이 싫다고 한들, 내가 지금 말하고 있는 이 순간에도 시간은 변함없이 흐르고 있고, 나는 점점 나이를 먹으면서 어른이 되어가고 있잖아. 내가 기운 없는 목소리로 조용히 대답하자, 야마토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에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야마토는 흐음, 하는 탄식과 함께 자신의 생각을 내게 말해왔다.

 

하지만, 소라.”

.”

그건 네가 변하지 않으면 되는 거잖아?”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말해오는 목소리에, 나는 아무런 말도 내뱉을 수 없었다. 맞는 말이었지만, 그것은 내가 과연 이 험난한 세상을 살면서 변하지 않을 수 있을지에 대한 물음이었다. 나는 그 물음에 답할 수 없었다. 당당하게 , 변하지 않을 수 있어.” 라는 대답 따위는 목구멍에 틀어 막혀 나오지 않았다.

 

야마토의 물음에 한 동안 고개를 푹 숙인 채 많은 것을 생각했다. 내 현재와 미래, 그리고 앞으로도 쭉 이어갈 나의 소중한 인연들, 나의 꿈, 사랑. 어떤 것 하나도 나는 답을 내리지 못했다. 깊은 고뇌에 빠져 앞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걸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게 화근이었다. 나는 결국 천천히 걸어가던 앞사람의 등에 얼굴을 파묻었다. 꽤나 세게 부딪힌 탓에, 얼굴이 얼얼할 정도였지만, 이것은 아픔뿐만이 아닌 창피함의 붉어짐이었다. 급하게 죄송하다 사과하며 얼굴을 들었다. 타이밍 좋게도, 벚꽃은 그와 내 사이를 지나 내 손등에 툭, 떨어졌다.

 

드디어 만났네.”

 

현란하게 주위에 내리 오는 아름다운 벚꽃 잎들을 맞으며 우리는 마주했다. 나를 알고 있다는 듯이 말하는 소년이 낯설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낯익고, 그리운 냄새가 소년에게서 흘려오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콩닥콩닥, 뛰는 심장에 나는 그 자리에서 가만히 있었더랬다. 한동안, 소년의 시선을 함께 마주보며. 그저 새로운 인연이 생겨나는 순간일 것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할 뿐이었다.

 

 

 

*

 

 

 

02_어내지 못한 그 미련 속에, 끝내 너의 손을 붙잡지 못하였다.

 

야가미 타이치. 잘 부탁해. 그 의미모를 소년을 다시 마주한 건 교실이었다. 고등학생 2학년, 새로운 교실. 그리고 소년. 이것이 새로운 인연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일까. 나는 내게 말간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네 오는 소년을 그저 멀뚱히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저의 손을 쭉 뻗으며 악수를 청하는 소년에게, 나는 악수를 받아주지도, 그렇다고 소년을 무시하지도 않은 채로 그저 멍하니, 소년을 바라봤다. 오묘한 느낌이었다, 소년은. 나를 홀릴 것만 같은 소년의 깊은 눈동자는 무언가 많이 슬퍼보였다.

 

악수, 안 받아 줄 거야? 내밀고 있는 손이 민망한지 소년이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나는 화들짝 놀라며 소년의 손을 두 손으로 꼭 잡았다. , 이런. 지금 내 얼굴은 창피함보다 더한 쪽팔림에 붉게 물들여져 있을 것이 분명했다. 등신같이, 한 손으로 악수하면 될 것을 왜 당황해서는 두 손으로 잡은 거야.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지 못하고 푹 숙였다. 잘 부탁해. 작은 목소리로 웅얼거리며 말하는 것을 용케도 알아들었는지 소년은 두 눈이 휘어지도록 환히 웃으며 나를 맞이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소년의 미소가 행복해보이지만은 않는 다는 건 오늘따라 예민한 나의 착각이었을까? 아니면.

 

정말 보고 싶었어, 소라.”

 

나를 바라보는 소년의 눈빛이 애절해 보였기 때문일까. 모르겠다. 정말, 하나도.

 

 

년하고 친해지는 데에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아쉽게도 야마토와는 다른 반이 되어 떨어져 버렸지만, 신기하게도 소년과 나, 야마토는 어디를 가든지 셋이서 붙어 다녔다. 우리와 함께 떠들며 웃고 있는 소년이었지만, 소년에게는 왠지 모를 동 떨어진 느낌이 들었다. 함께 웃음을 짓고 있는 게 분명했지만, 소년은 가끔씩 슬픈 미소를 보였다. 왜 그런 건지 나는 알지 못했다. 야마토에게 이것에 대한 고민을 털어 놓기도 했지만, 야마토는 별 거 아니라는 듯 대답 할 뿐이었다.

 

신경 쓰지 마, 네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잖아?”

 

항상 같은 대답에, 나는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맞는 말인데, 왜 그 말에 내 가슴에 비수가 되어 꽂히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지. 욱신욱신 거리는 마음에 나는 가슴 언저리에 두 손을 꼭 갖다 대었다. 타이치, 그 아이가 계속 눈앞에 아른거렸다. 괜히 드는 미안한 감정에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느새 매미가 시끄럽게 울어대는 계절이 다가오고 있었다. 내일이면 있을 여름 방학식에, 나는 들뜨는 마음을 감추지 못하였다. 방학이라는 사실에 기분이 좋아 실실 웃자, 소년이 내 머리를 툭 건들며 말했다. 웃지 마, 정들어. 소년의 말에 옆에 있던 야마토는 비웃음을 내며 나를 놀리기에 동참했다. 못생겨서 정들지. 그들의 말에 나는 볼을 부풀리며 길을 앞서 걸어갈 뿐이었다. 따라오지 마! 기분 좋았던 하굣길이 한 순간에 망쳐지는 순간이었다. 아아, 정말. 저것들은 날 놀리는 데에만 도가 탔지.

 

타이치 오빠!”

 

앳된 소녀의 목소리였다. 나는 소녀의 부름에물론 나를 부르는 것은 아니었지만절로 걸음이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뒤를 도니, 소년이 소녀에게 꾸중을 받고 있는 모양이었다. 누군데 그러지? 나는 호기심을 찾지 못하고 소년에게 물었다. 타이치, 이 여자애는 누구야? 내 물음에 소년이 움찔거리며 말문이 막힌 듯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소년의 뺨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 괜찮아? 땀을 닦아주려 소년에게 손을 뻗는데, 당황한 소년이 내 손을 내치었다. 어색한 공기가 더운 여름 공기와 함께 우리를 덮었다.

 

미안. 세게 쳐서 그런지, 내 손등은 빨갛게 부어올라 있었다. 그것에 엄청 큰 죄를 진 듯 고개를 푹 숙인 채 쩔쩔 매며 사과를 하는 소년이었다. , 괜찮은데. 어색한 미소를 입에 걸치며 사과하는 내게 소녀는 무언가 불만이 있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저기, 나한테 무슨 할 말 있니? 내 상냥한 물음에도 돌아오는 대답은 차갑고, 날카로웠다. 난 언니가 싫어요. 밑도 끝도 없이 나를 싫다고 말해오는 소녀에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나는 이 아이를 처음 보는 것이 분명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 이 애에게 싫은 짓을 해 버린 것일까? 당혹스러움에 나는 두 눈만 깜박이고 있을 뿐이었다.

 

오빠. 이번이 마지막인 거 알지?”

알았다니까. 집에서 얘기 해, 히카리.”

이제 81일까지 일주일 남았어. 그 뒤로는 없어.”

알았대도!”

내가 언제까지 오빠가 이 짓거리 하는 걸 구경만 하고 있어야 하는데!”

 

이미 다른 사람들은 오빠를, 그리고 나를 잊고 잘 살고 있는데 오빠는 대체 왜 거기서 벗어나지를 않은 거냐고! 소녀의 울분 가득한 외침이었다. 알 수 없는 남매의 대화에 나는 끼어들지 못했다. 그저 방관자가 되어 소년과 소녀를 지켜보았다. 야마토 역시 그랬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웃음을 머금고 있는 야마토의 얼굴에 나는 몸이 경직된 채로 서 있어야만 했다. 미안, 먼저 갈게. 소년이 소녀를 억지로 이끌고 가는 순간에도 나는 잘 가.” 라는 짧은 인사조차 건네지 못했다. 이런 내 모습에 야마토는 한 쪽 입 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왜 그래, 소라?”

야마토.”

그렇게 멍한 표정 짓지 마. , 저 둘의 대화가 신경 쓰여?”

……….”

소라, 어른이 되는 게 싫다 했지? 그 방법 내가 알려줄까?”

. 지금 이상해. 제정신 아닌 것 같아 보여.”

죽어.”

?”

죽으면 넌 평생 그 나이로 있을 수 있어. 어른이 되지 않는다고. 그리고 미안하지만, 난 지금 충분히 제정신이야.”

 

타이치, 쟤도 포기를 모른다니까. 이런 짓만 지금 몇 번째야? 어느새 웃음기를 싹 지우고서 말하는 야마토에 나는 몸을 덜덜 떨었다. 온 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걱정 마, 소라. 답답해서 한 소리니까. 진심으로 말 한 건 아니야.”

……….”

내가 나쁜 새끼인건 맞지만, 너도 참 나쁜 것 같아서.”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난 하나도 모르겠어.”

몇 백, 몇 천년동안 같은 시간대에 다들 환생을 했고, 인연을 이어갔는데 말이야. 내 이기심에 나는 항상 방해했어.”

 

물론, 나는 지금도 방해를 할 거야. 지금 준 힌트는, 그래도 여태껏 노력한 타이치에 대한 보상일 뿐이야.

 

 

로부터 며칠이 지나고, 어느새 소녀가 말했던 81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좋지 않은 불쾌함이 나를 감돌았다.

 

방학 잘 보내. 방학식 날, 나는 너의 인사를 받지 않았다. 소년을 외면한 채 나는 집을 향해 걸었다. 그 날의 이질감에 나는 소년이 불편했다. 야마토도, 소년도, 그리고 그 소녀도. 하나같이 내 머리를 헤집어서는 지끈지끈한 두통이 오게 할 뿐이었다. 나를 뒤 따라 와서 내 어깨를 붙잡고 거친 숨을 쉬어내는 소년을 바라보지 않았다. 내게 손을 내미는 소년은 바라보지 않았다. 그저, 소년이 내 눈 앞에 손을 내밀었기에 그 손만 내 눈에 담았다. 나는 끝내 소년의 손을 붙잡지 않았다.

 

 

 

*

 

 

 

03_던트 속에 함께 미소를 짓고 있는 우리의 모습에, 나는 너에게.

 

81일이 찾아왔다. 방학의 무료함에 나는 죽은 듯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 핸드폰이 맑은 소리를 내며 울렸다. 나는 찌뿌둥한 몸을 간신히 일으키며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문자가 도착했습니다.

 

한 동안 가만히 그 문구를 바라보았다. 나는 확인 버튼을 누르는 걸 망설여하고 있었다. 애꿎은 입술을 깨문 채로 나는 용기를 내어 확인 버튼을 눌렀다.

 

…….”

 

문자의 내용을 확인하자,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탄식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나는 곧장 욕실로 들어가 씻을 준비를 했다.

 

빛의 언덕에서 만나. 장소는 어디든 상관없어. 느낌대로 가면, 그 곳에 내가 기다리고 있을 거야.

 

문자 내용 역시, 도통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복잡해. 너도, 소녀도, 야마토도. 이 복잡한 관계를 왠지 내 손으로 직접 끝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의 언덕 역입니다. 여자의 음성에 나는 자리를 떴다. 이곳은 내가 자주 오던 곳이 아닌데, 이상하게도 뭔가 익숙했다. 발걸음은 어느새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이거였나, 타이치가 말 한 것이. 그냥, 느낌대로 발걸음은 익숙한 듯 걸음을 떼고 있었다.

 

타이치.”

 

내 발걸음이 멈춰 선 곳엔 이미 타이치가 자리하고 있었다. 커다란 나무를 저의 등받이로 사용한 채 드리운 그늘 속에서 소년은 시원한 바람을 느꼈다. 오늘은 날이 평소보다 더 맑았기 때문에,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서 내리 오는 햇볕은 매우 따가웠다. 그래서 그런지 습기가 없어 그늘에 있으면 충분히 시원한 정도의 날씨였다. 물론, 원래 이런 맑은 날씨에 갑자기 소나기가 내릴 가능성은 있었기에, 혹시나 싶어 우산은 챙겨왔다.

 

소년의 얼굴은 매우 평온해 보였다. 좀처럼 뜨지 않는 두 눈에 기다랗게 나와 있는 속눈썹은 바람에 맞춰 조금씩 떨리며 움직였다. 나는 새근새근, 죽은 듯 잠을 자는 소년을 가만히 바라보다 따가운 햇볕에 나 역시 나무 그늘 안으로 들어갔다. 소년의 얼굴을 더 자세히 바라보기 위해 쪼그려 앉아 구경했다. 아무리 봐도 몇 달 본 얼굴로는 보이지 않았다. 아주 오래 전에, 이 모습보다 더 앳된 얼굴로 많이 마주했던 것 같은 느낌.

 

왔어? 소년이 천천히 눈을 뜨며 잠겨서 살짝 갈라진 음성을 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소년이 취한 포즈를 따라했다. 큰 나무를 등받이 삼아 기댔다. , 꽤 편하네. 나는 만족감에 살포시 웃음을 지어보이다가도 옆에 있는 소년을 의식하며 금방 정색을 해보였다. 무슨 일인데 보자고 한 거야? 내 물음에 소년은 얼굴에 잔뜩 씁쓸함을 드러냈다. . 소년의 얼굴을 보자 심장이 철렁하고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아픈 표정 짓지 마. 소년의 얼굴에 내 심장이 더 저릿해왔다. 소년은 내 쪽으로 손을 뻗었다. 내 볼에 닿은 소년의 따스한 손 감촉이 좋아 눈을 천천히 감았다 떠 보였다. 한동안 내 볼을 가만히 어루만지던 소년은 힘없이 손을 떼어냈다.

 

이거, 주려고 왔어.”

 

소년이 내게 건넨 것은 자그마한 팬던트였다. 이걸 왜? 내 물음에 소년은 팬던트를 열어보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달칵. 팬던트를 열어보니, 그 속에는 사진 하나가 예쁘게 끼워져 있었다. 모두가 함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주 행복하다는 미소를. 나는 팬던트를 눈 앞에 가까이 대어 사진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웬 괴상하게 생긴 동물들이 사람들의 옆에 같이 붙어있었고, 그 속에는 소년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나 또한, 사진 속에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야마토도, 소년의 동생이라던 그 소녀도. 선배인 죠, 후배인 코시로, 미미, 야마토의 동생인 타케루. 나는 이 상황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나는 이런 장소에 가 본 적이 한 번도 없었으며, 이 괴상한 생명체의 정체도 알지 못했다. 혼란스러움이 한 번에 내게 찾아왔다. 어질해오는 머리를 간신히 손으로 짚으며 소년을 바라보았다. 이게, 이게, 뭔데?

 

오늘이 마지막이래, 소라.”

타이치, 지금 이게 무슨.”

디지털 월드에서 피요몬은 아주 잘 있어. 다른 애들도 잘 있고.”

……….”

널 아주 많이 보고 싶어 해. 네 행복을 항상 바라고 있어.”

 

피요몬이란 이름에 갑자기 왈칵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운 이름이었다. 하지만 나는 모르겠어. 전혀, 전혀 모르겠어. 답답한 가슴을 나는 몇 번이고 두드렸다. 꺼이꺼이 뱉어지는 울음을 쏟아내어도 내게 되돌아오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이 기억을 모두가 잊는다는 게 난 너무 두려웠어.”

타이치.”

히카리가 계속 그만 하래. 이제 그만 나도 행복해지래. 다른 삶으로, 같이 가재. 자기는 내 동생이니까 계속 함께 있을 거라면서.”

 

그래서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약속했어. 몇 번이고 환생한 너희를 찾아가도 너희는 끝내 기억하지 못했어. 하지만 나는, 그 행복했던 기억을 잃기가 두려워. 소라, 항상 나는 너를.

 

사랑했어.”

 

소년은 울고 있었다. 어깨를 들썩이며 나보다도 더 애처롭고, 슬프게. 내 어깨를 붙잡고 말해오는 소년에 나는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었다. 그저 울지 마, 타이치.” 하고 짧은 말을 건네는 것 뿐. 천천히 손을 뻗어 소년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러자 소년이 고개를 들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안녕.”

 

그 날의 기억이 지금과 겹쳐, 형상이 돼서 내 기억 속에 스며들어왔다. 계속해서 자극해오는 눈물샘을 나는 막지 못하였다. 나는 너를 버렸다. 그 날, 너를 냉정하게 내쳤다. 디지털 월드에 이상이 생겼고, 온전하지 않은 세상에서 너는 그대로 자리했다. 떠나는 우리들을 붙잡지 않은 채, 세상이 온전해질 때까지, 너 혼자서 지금까지. 아니. 히카리도 함께.

 

미안해.”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사과뿐이었다. 너를 믿지 못했어. 네가 노력하는 동안 우리는 새로운 삶은 살면서, 몇 번이고 이렇게. 소녀가 나를 미워할 만도 했다. 나뿐만 아니라, 아마 소녀에게 우리들은 전부 증오스러운 인간이겠지. 아무에게도 의지하지 못한 채, 세계를 위해 오로지 둘이서 서로 의지하며 지금까지 버티고, 버텼을 소년과 소녀에게 나는 죄인이었다.

 

나는 이제 가, 소라.”

……….”

하지만.”

 

안녕이라고는 하지 말아 줘. 이제 나를 떠나지 마, 잊히는 건 싫어. 소년의 말에 나는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그 말은 하지 않을게. 내 대답에 만족스러운지, 발갛게 부운 두 눈을 휘어 접으며 소년은 말간 미소를 지었다. 나 역시 소년을 따라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또 보자, 타이치.”

 

내 말에 소년은 놀란 표정을 지어보였다. 두 눈을 휘둥그레 떠서는 나를 바라보던 소년은 내게 가까이 다가오더니 나를 제 품에 쏙 넣었다. 갑자기 일어난 상황에 내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자, 소년은 더욱 나를 꽉 껴안았다. 내 목덜미에 저의 얼굴을 파묻던 소년은 작게 말했다.

 

넌 나에게 이 세상 어떤 것보다도 의미 있어.”

 

그래서 내가 몇 번이고 너의 환생을 기다리고, 기다릴 수 있었던 거야. 나를 제 품에서 떼어낸 소년은 다시 한 번 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소년의 웃음이 처음으로 슬퍼 보이지 않고, 진정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환한 미소였기에 나는 잠시 넋을 놓았다. 태양. 소년의 웃음은 마치, 태양과도 같았다.

 

내 손에 다시 한 번 저의 팬던트를 꼭 쥐어주던 소년은 내가 눈을 감았다 뜬 사이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시원한 여름 바람과 함께, 소년은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져있었다. 반 년 동안 꿈이라도 꾼 건가 싶었지만, 내 손에 꼭 쥐어져 있는 팬던트는 소년이 이곳, 여기에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단 하나의 흔적이었다. 하나도 남기지 않은 줄 알았더니, 이거 하나 남기고 갔네. 비는 그 뒤로도, 단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았다.

 

 

늘 밤의 별은 유독 밝았다. 달칵. 아름답게 밤하늘을 비추는 별을 바라보며 나는 팬던트를 열어보았다.

 

팬던트 속에 함께 미소를 짓고 있는 우리에 모습에, 나는 너에게. 너를 생각하며 그 말을 읊조렸다.

 

넌 나에게 이 세상 어떤 것보다도 의미 있어.

 

 

 

*

 

 

 

나에게 이 세상 어떤 것보다도 의미 있어!”

“You mean more to me than anything in this word!”

 

 

 

Fin_피터팬, 어느새 나는 너를 사랑하고 있었다.

*Subtitle : Behind story_피터팬웬디, 팅커벨, 후크의 관계에 대하여.*

 

 

 

 

 

 

 

- 합작 주소 : http://t.co/OehRwI92in

- 소제목을 다 합치면 피털(터)팬.

- 피터팬=타이치 웬디=소라 팅커벨=히카리 후크=야마토

 

 

 

 

 

*모든 글의 저작권은 월화비월(@Moon_m0406)에게 있습니다.

*재업(2015.08.08)

*수정(2015.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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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gimon

라일락

 

written by. 월화비월

 

 

 

어두운 시각, 낮의 분주했던 병원은 언제 그랬냐는 듯 한산하다. 어두운 복도를 비추는 것은 오직 비상구를 알리는 유도등에서 나오는 초록 빛깔뿐이었다. 또한 서늘한 바람에 힘없이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간간이 들어오는 달의 구슬픈 시선만이 심심한 병원 복도 바닥에 닿으며 그림자를 형성했다. 타다닥. 누군가의 급한 뜀박질 소리가 복도에 가득 울려 퍼졌다. 바닥에 나뭇잎이 아닌 또 하나의 그림자가 졌다가, 몇 초도 채 지나지 않고 사라진다. 친구가 생겨 좋아했던 나뭇잎의 그림자는 다시 홀로 남고야 말았다. 쓸쓸한 바람이 조그마한 창틈 사이로 불어 들어와 그림자를 흔들었다.

 

!”

큰 소리와 함께 어느 병실 문이 활짝 열렸다. 급하게 열어젖힌 탓인지, 문이 벽에 부딪혀 반동되어 튕겨져 나왔다. 그런 문을 붉은 빛깔의 짧은 머리를 한 소년이 저의 덜덜 떨리는 손으로 붙잡는다. 자신의 몸을 지탱하듯 손잡이를 꼭 잡은 채 소년은 앞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정신이 아찔하다. 바라보고 있자 하니, 막막해져만 갔다. 저를 공허함의 가득 찬 시선으로 바라보는 그에게 무슨 말을 해주어야 할까. . 소년이 손잡이를 잡은 손에 점점 더 힘을 쥐어 보였다.

 

오랜만이야, 코시로. 한동안의 정적 탓에 무거웠던 진공 속에서 그의 목소리가 울렸다. 한 쪽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를 짓는 그는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소년은 그런 그를 바라보며 지끈 거리는 머리에 손을 얹히고서는,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오랜만입니다, 타이치상.”

 

어디선가 나는 진한 꽃내음에, 소년이 눈을 살짝 가늘게 떠 보이며 그의 손으로 시선을 옮겼다. 연보랏빛의 겹겹으로 쌓여져 조그마한 꽃의 형상을 이루고 있는 저 꽃은, 라일락임이 분명했다. 후각으로 전해지는 달콤하면서도 은은한 이 향기 역시, 라일락이라는 것을 증명하기에 확신을 더했다.

뚜벅뚜벅. 그는 소년을 가만히 바라보더니, 이내 걸음을 옮겨 침구 옆의 수납공간에 놓인 조그마한 화분 가까이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화분에 저가 사온 것으로 추정되는 라일락을 예쁘게 꽂았다. 만족한 듯 병실을 둘러보던 그가 침대에 죽은 듯 뉘어있는 앳되어 보이는 소녀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는다. 소녀를 바라보는 그의 표정은 애처롭기 그지없다. 보는 사람의 심금을 울릴 만큼 그의 눈빛은 애틋했다. 소녀의 손을 꼭 잡는 그의 손동작, 표정………. 그가 소녀에게 취하는 행동 하나하나는 어떠한 감정을 절제하고 있었다.

소년은 그런 그가 안타까웠다. 또한, 그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고, 지켜보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자신이 참으로 비참하다 생각했다.

 

미안해. 오빠가 미안해, 히카리.”

 

분명 그가 소녀에게 잘못한 일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 옆에 있어주지 못한 것에 대해 그는 소녀에게 큰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내가 있었더라면, 이런 끔찍한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텐데. 그는 이러한 이유로 계속 자신을 탓했다. 그가 소녀에게 사과를 하는 동안, 소년은 고개를 푹 숙이고만 있을 뿐이었다. 여전히 망설이는 자신이 밉다. 소년은 그저 손만 꼼지락거렸다.

 

조금만 더 기다려줘, 히카리. 다시는 이런 일이 생겨서 네가 위험해지는 일은 없을 거야. 거의 다 왔어. 조금만, 조금만 더 하면.”

 

앞으로, 결코 그 어떤 것들도 감히 너를 건드리지는 못 할 거야. 금세 눈빛이 바뀌어서는 말을 하는 그를 보고, 소년은 침을 꿀꺽 삼키며 움찔거렸다. 갑자기 몰아치는 세찬 바람소리와 함께 꽤나 크게 자리 잡고 있던 병실 창문이 힘을 못 이기고 활짝 열려 젖힌다. 창이 열림과 동시에 들어오는 먼지를 삼킨 바람에 눈이 아파 짧은 신음을 내며 소년이 눈을 질끈 감았다. 다시 소년이 눈을 떠 보였을 땐, 그는 어두운 밤에 어울리는 형체에 자신의 몸을 맡기고 있었다. 그것을 본 소년의 눈이 잠시 흔들리며 저도 모르게 작게 중얼거렸다.

 

블랙 워 그레이몬.”

 

이내 다시 제 자리를 찾은 소년의 동공은 그를 똑바로 마주 보았다. 아까와 비슷하지만, 다른 상황이었다. 그가 금방이라도 떠나버릴 것 같은 초조함에 소년이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입술 깨물지 마, 흉 져.”

……….”

하여간 말 안 듣는 건 여전하다니까, 코시로.”

 

예전과 다를 것 없이 저를 대하는 모습에 소년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점점 시큰해져오는 콧잔등이 먹먹해져왔다.

 

그만하면, 안 되는 건가요?”

……….”

멈출 수는 없어요?”

 

다른 방법은 없는 거냐고요, 타이치상. 소년이 떨리는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그의 질문에 깜짝 놀란 듯 동요하던 그였지만, 이내 눈을 질끈 감고는 천천히 떠 보였다. 다시 침착한 상태로 돌아간 그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

 

다른 방법은 많잖아요. 이건 분명 히카리상도 원치 않을 일이란 것도, 다 알잖아.”

코시로, 나는.”

대체 , . 우리가 지금까지 목숨을 걸고 소중하게 지켜왔던 곳을 파괴하고 있어요.”

……….”

왜 그러면서, 타이치상이 더 아파할 길을 가고 있냐고요.”

 

뚜벅, 뚜벅. 그가 저가 있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도, 점점 가까워지는 발걸음 소리로 소년은 알 수 있었다. 이내 저의 밑에 짙은 그림자가 깔렸고, 그 그림자는 저에게 손을 뻗었다. . 저의 머리를 몇 번 쓰다듬는 손길에 소년은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져 나올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울적함에 소년이 코를 훌쩍였다.

 

미안해, 코시로.”

……….”

하지만 나는 이제 겁쟁이일 뿐이라서, 어쩔 수가 없어.”

타이치상이 겁쟁이라니, 무슨!”

 

힘없는 목소리로 말해오는 그의 말을 조용히 듣고 있던 소년이 그가 한 말에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지 대들며 언성을 높였지만, 그의 쓸쓸한 얼굴에 차마 더 이상 언성을 높이지 못 하고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자 그가 말을 이어했다.

 

아구몬이 말이야. 왜 워 그레이몬이 아니라, 블랙 워 그레이몬으로 진화했을 것 같아, 코시로? 그리고, 에너지는 분명 바닥을 치고도 남을 시간인데 왜 그 뒤로 다시 안 돌아가는지. 알고 있어?”

왜 그럴까 생각은 해 본 적은 있지만, 타이치상을 그 뒤로 본 적도 거의 없고, 확실한 이유는 모르죠.”

내가 용기를 잃어버렸거든. 이게 이유야. 그리고 돌아가지 않는 건 아마, 겁쟁이가 되어 버린 나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닐까하고.”

타이치상은 그 누구보다 용감했어요. 특히 모두를 생각하고 앞을 바라볼 줄 아는 그 용기가, 우리에게 많은 힘이 되어줬다고요.”

 

아아, 그랬나. 고마워, 코시로. 그가 싱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소년은 그의 미소에 미간을 찌푸렸다. 그의 미소가 진실 된 것이 아님을 그와 오랫동안 함께 해 온 소년은 한 번에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찌 됐던, 나는 앞으로 멈출 생각이 없어.”

타이치상!”

네 말이 모두 맞아, 코시로. 나는 내가 하는 일이 결코 좋지만은 않아. 스스로 상처를 받기도 하지.”

그럼 왜.”

불공평하잖아.”

 

그 새끼들은 은혜도 모르고 그런 짓을 저질렀는데, 내가 언제까지고 은혜를 베풀기만 하는 건 너무 불공평하잖아. 코시로. 그의 눈이 깊게 가라앉는다. 왠지 모를 소름에 소년이 몸이 굳어서는 그를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 잠깐만요. 타이치상!”

 

어느새 다시 블랙 워 그레이몬의 어깨에 앉은 그는 소년의 애원 소리에 잠시 소년에게 눈길을 두었다. 하지만 이내 소녀에게 눈길을 돌려버리더니, 이제는 아예 고개를 돌리고는 그렇게 달을 향해 올라갔다.

소년이 급하게 창 쪽으로 달려가 고개를 빼고는 그들을 바라보았다. 소년의 볼을 스치는 이 쓸쓸한 바람처럼, 그들의 뒷모습이 달빛을 받아 더욱 쓸쓸해 보임에 소년이 안타까움의 탄식을 자아냈다.

 

결국, 자신은 그를 설득하지 못 했다. 이의 애통함을 참지 못하고 소년은 눈물을 흘려보냈다. 긴장이 풀린 다리까지 더해져, 바닥에 주저앉고는 소년은 조용히 흐느꼈다. 소중한 소녀가, 저의 울음소리를 듣는 것은 원하지 않았기에.

 

 

 

*

 

 

 

큰 파괴 음에 타이치가 무표정으로 귀를 막았다. 마을을 하나 파괴할 때마다 들리는 소리는 매우 시끄러웠다. 이젠 지겨워. 그의 눈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는 가만히 앉아서 파괴되어 가는 마을을 바라보았다. 죽을 때 찍 소리도 못하고 죽어가는 생명들에 타이치는 공기 빠진 웃음을 터트렸다.

저렇게 죽어도, 다시 알에서 태어나는 놈들이니 참으로 끈질긴 생명력이군. 하하. 미친 사람처럼, 혼자 실소를 터트려대는 타이치에게 블랙 워 그레이몬이 조용히 다가섰다.

 

타이치, 발견했다.”

 

블랙 워 그레이몬의 말에 그의 몸이 굳어진 듯 멈추었다. 그러다 이내 입가에 한가득 웃음을 담아 보이며 타이치가 말해왔다.

 

어디 있어, 그 자식?”

 

아무런 말없이 앞장을 서 보이는 블랙 워 그레이몬의 뒤를 졸졸졸 따라가면서 타이치는 하늘을 바라봤다. 빛나는 것들이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며, 그는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어느새 도착한 곳은, 어떻게 봐도 깊숙한 것이, 숨기에는 아주 적합하다고 할 수 있을 장소였다. 어이가 없어 타이치가 짧은 실소를 터트렸다. 주위를 둘러보던 그의 눈이 가장 안쪽에 몸을 숨기고 있는 디지몬에게 멈추었다. 시린 눈빛이 저에게 닿자 디지몬은 몸을 벌벌 떨었다. 아 그래, 너 거기 있었구나.

 

널 찾았어.”

죄송해요. 죄송해요. 살려주세요. 죄송해요.”

 

저에게 깍듯이 사과를 해오는 디지몬에 타이치는 더욱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 이 정도는 이해해 줄 거잖아. 그렇지? 너희, 선택받은 아이들이니까. 우리도 화를 풀 상대가 필요했던 것뿐이란 거, 아니까.”

 

지끈. 타이치는 두통이 오는 머리에 손을 얹으며 눈을 질끈 감았다. 끔찍한 그 날의 잔상이 괴롭다. 그런 타이치를 바라보며 블랙 워 그레이몬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똑같은 행동을 취하려 하고 있었다. 타이치, 할게. 블랙 워 그레이몬의 날카로운 손톱이 들어 올려졌다.

 

잠깐만.”

 

웬일로, 그런 블랙 워 그레이몬을 제지시키는 타이치였다.

 

 

*

 

 

 

긴 밤이 끝나고, 아침이 다시 찾아왔다. 소라는 어느 때처럼 히카리의 병실로 들어가려 문을 열었다. 얼굴에 미소를 한가득 짓고 병실 안으로 발을 내딛는데, 눈 밑에 다크서클이 짙게 져서는 눈이 퉁퉁 부어있는 코시로를 발견하고는 화들짝 놀란다.

 

코시로군, 무슨 일이야?”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어보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저 고개를 저으며 힘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코시로에게 정신이 팔려 미처 눈치채지 못 했던 소라가 어디선가 나는 향긋한 내음에 눈을 번쩍 떴다. 재빨리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그곳엔 연보랏빛 라일락이 아직은 생생한 기운을 보이며 달콤한 향기를 뽐내고 있었다.

 

타이치, 다녀갔던 거야?”

 

지금까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던 코시로가 이번에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소라상. 잔뜩 갈라진 음성으로 힘겹게 말을 내뱉은 코시로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꽃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손으로 꽃을 조심스럽게 쓸며 입을 열었다.

 

라일락. 꽃말이 뭔지 밤 새 생각해 봤는데요. 꽤 많더라고요, 꽃말이.”

뭔데, 그게?”

첫사랑, 젊은 날의 추억, 친구의 사랑, 우애요.”

바보답네.”

 

 

저는 이제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혼란스러워하는 코시로를 가만히 바라보던 소라는 애써 입가에 미소를 지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히카리가 탈 없이 깨어나기를 바라야지.”

……….”

히카리가 조금이라도 잘 못 되는 날에는, 그 바보 녀석, 우리까지 죽이려 할지도.”

 

소라가 농담으로 한 소리인 것을 암에도 코시로는 조금의 미소조차 지을 수 없었다. 그저, 소라가 말했듯이 간절한 마음으로 그것을 바라며, 코시로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히카리에게 시선을 옮겼다. 라일락과 묘하게 닮은 모습을 코시로는 천천히 저의 눈에 담았다.

 

저는 그냥, 타이치상이 상처를 안 받았으면 좋겠어요.”

 

라일락의 은은함이 더욱더 퍼져갔다.

 

 

 

*

 

 

 

Epilogue_, 그리고……….

 

 

 

웬일로 블랙 워 그레이몬은 잔뜩 뿔이 나 있었다. 워 그레이몬도 아니고, 블랙 워 그레이몬의 모습으로 삐져서는 뾰로통한 모습은 타이치에게는 꽤나 낯설었다. 그래서 관심을 가지고 왜 그러냐고 물어보았지만, 녀석은 한참을 말이 없었다. 자기의 말에 대답 안 하기는 블랙 워 그레이몬의 평소 모습과 똑같다는 생각에 그냥 자신이 착각한 건가 싶어 타이치가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제야 블랙 워 그레이몬이 입을 열었다.

 

왜 그 녀석을 살려둔 거야, 타이치?”

글쎄. 심경의 변화라던가, 그런 건 아니고 그냥.”

 

타이치는 오래간만에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혼자 남겨져 있는 편이, 더 괴로울 것 같아서. 내가 언제 죽이러 다시 자기에게 올지 모르는 그 불안한 상황 속에 가족도, 친구도 없이 홀로 고립돼 있는 편이 복수라기엔 더 적합하잖아.”

 

 

 

*

 

 

 

타이치, 있잖아.’

?”

그럼 이제 다시 돌아가는 거야?’

……….”

모두들 널 기다리고 있어. 이제 복수는 끝났어, 타이치.’

……….”

돌아가는 거지?’

아니.”

어째서?’

혼자 남겨져 있는 편이 훨씬 괴로우니까.”

타이치.’

너에게, 그리고 죄 없는 친구들에게 나는 충분히 죄인이잖아.”

아니야, 타이치. 그렇지 않아.’

고마워, 아구몬.

 

타이치, 이제 어디로 갈 거야?”

글쎄. 어디든 상관없어. 가자, 블랙 워 그레이몬.”

 

 

 

Fin.

 

 

 

 

 

*모든 글의 저작권은 월화비월(@Moon_m0406)에게 있습니다.

*재업(2016.01.15)

*수정(2016.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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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트위터의 [#우리들의_디지몬_100제_합작] 중 ‘40.휴식’을 주제로 쓴 글 입니다.

 

 


*디지몬 100제_ 40.휴식

 

 

written by. 월화비월)

 

 

 


§

 

 

 


사람들이 디지털월드에 접근을 할 수 없게 된지 그날로부터 어느새 3년이란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또한, 디지털월드에서 태어나 자란 디지몬들조차 자신들의 고향인 디지털월드에 돌아가지 못했다. ―분명 하루 전까지는 그러했다. 그랬기에 온 세상의 디지몬 테이머들은 하루아침에 디지몬 친구들이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지자 엄청난 혼란을 겪고 있었다. 어두운 방 안에서 홀로 숨죽여 눈물을 흘리고 있는 소년 역시 다를 것 없었다. 소년의 방 밖에서는 한 소녀가 중년으로 추정되는 나이대의 여인에게 안겨 꺼이꺼이 눈물을 토해내고 있었다. 소년과 소녀는 너무나도 달랐다. 여인의 품 안에서 울음을 점점 그치며 안정을 취해가는 소녀와는 달리 소년은 시간이 아무리 가도 여전히 암울한 분위기였다. 소녀와는 다르게 소년은 크게 소리 내어 울지도, 그렇다고 눈물을 많이 뽑아내지도 않았다. 한 두 방울 눈물을 흘린 소년은 허탈한 웃음을 지은 채 두 손에 사진 한 장을 꽉 쥐고 침대에 걸터앉아 있을 뿐이었다.

 


“…아구몬.”

 


소년은 작게 저의 디지몬 친구 이름을 중얼거리듯 내뱉었다. 하지만 소년에게 디지몬 친구는 대답해주지 않았다. 항상 그렇듯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소년을 바라 볼 디지몬 친구는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그 디지몬 친구는 사진 속에 다른 이들과, 또 소년과 함께 활짝 미소를 짓고 있었다. 사진 뒤의 하얀 여백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1999.08.01. 그 여름 캠프로부터, 소중한 인연」

 


“어디로 가버린 거야.”

 


소년의 어깨가 점점 떨려왔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소년은 소리를 죽이려 저의 아랫입술을 꽉 깨문 채 눈물을 흘렸다. 소년의 볼을 타고 내려오는 눈물 한 줄기가 참 시렸다.


야가미 타이치, 17세. 고등학생 2학년.
―그 소년은 혼자 짊어지려 하고 있었다. 그것이 언제든 상관없이 소년은 항상 그러했다.

 

 

 

 


§

 

 

 

 


타이치. 타이치는 가까이에서 아구몬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화들짝 놀란 타이치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아구몬의 형체는 그 어디에도 보이지가 않았다. 역시 환청이었나. 타이치가 작게 중얼거리며 다시 침대에 누웠다. 타이치는 자꾸만 머리가 지끈거려오는 탓에 인상을 찌푸렸다. 오늘이 주말이어서 다행이다, 라고 타이치가 스치듯 생각했다. 혹, 오늘이 평일이어서 당장 학교를 가야만 하는 날이었다면 슬퍼하고 있는 친구들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버팀목이 되어줘야 해.’
‘디지몬들은 갑자기 어디로 사라진 걸까.’

 


타이치의 머릿속은 이런 생각들로 가득했다. 특히 후자의 생각보다는 선자의 생각이 더욱 강했다. 리더의 자리에 있는 자기가 무너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일까, 타이치는 지금 저의 상태보다 다른 아이들을 걱정하고 있었다. 타이치가 천장을 바라보며 한참동안을 생각에 잠기고 있을 때, 타이치의 핸드폰이 진동을 울리며 맑은 소리를 내었다. 타이치가 천천히 손을 뻗어 핸드폰을 집어 들고는 화면을 열었다. 코시로의 문자였다. 문자를 확인해야할지, 말지에 대해 망설이던 타이치는 결국 「Yes」 버튼을 눌렀다. 문자를 확인한 타이치는 잠시 생각에 빠지더니 아무 말 없이 옷을 챙겨 입기 시작했다. 그리곤 방 밖으로 나가 노크도 없이 히카리의 방문을 활짝 열었다. 히카리는 침대에 엎드리듯 누워 베개에 얼굴을 묻고 있는 상태였다. 이제 울지 않는 구나, 다행이다. 히카리가 울지 않는 걸 확인한 타이치가 안도하며 입을 열었다.

 


“히카리.”

 


타이치의 목소리에 히카리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타이치를 바라봤다. 히카리의 용모를 확인한 타이치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항상 생기가 넘치던 히카리의 눈은 이미 빛을 잃은 상태였고, 그 환하게 웃던 미소 역시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타이치는 순간 저의 아랫입술을 깨물며 주먹을 꽉 쥐었다. 무슨 일이야, 오빠? 많이 울었는지 히카리의 목소리는 잔뜩 갈라진 음성을 내고 있었다. 저의 목소리에 자신도 놀랐는지 히카리는 눈을 크게 뜨며 큼큼, 하고 목소리를 다듬기 시작했다. 타이치는 그런 히카리를 보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모두가 기운을 찾을 수 있도록 해야만 해.’ 타이치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며 언제나 그랬듯, 평소와 같이 활기찬 목소리로 히카리에게 말했다.

 


“가자, 히카리.”

“응? 어디를?”

“코시로 집에. 디지바이스 꼭 챙기고 나와!”

 


오빠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타이치는 그 말을 끝으로 히카리의 방문을 닫고 거실로 향했다. 타이치의 부모님은 심각한 얼굴로 뉴스를 보고 있었다. 디지몬에 관한 뉴스였다. 대충 아직까진 디지몬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왜 사라진 건지에 대해 밝혀진 것이 하나도 없어 죄송하다는 내용인 걸로 보였다. 어느새 자신들의 옆에 서있는 타이치를 눈치 챈 여성과 남성은 깜짝 놀라며 타이치의 상태를 확인했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타이치의 모습에 의아한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도 다행이라는 듯 미소를 지어보이는 부모님을 보며 타이치 역시 웃음을 짓고선 말했다.

 


“코시로 집에 다녀올게요! 히카리한테는 1층에서 기다린다고 말 해주세요.”

 


늦게까지 놀다오면 안 된다! 여인의 목소리를 끝으로 타이치는 현관문을 열고 집을 나섰다.

 


“에, 오빠 진짜 먼저 나갔어요?”

“응. 나간 지 얼마 되지도 않았어. 아마 지금쯤이면 엘리베이터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데?”

“그럼 저도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히카리! 저녁 늦게 오면 안 돼!”

 


네에―. 히카리는 옅게 웃으며 현관문을 열었다. 문이 잠기는 것 까지 확인한 히카리는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 까지 빠르게 걸어갔다. 거의 앞까지 도착한 히카리가 창 너머로 보이는 엘리베이터 층수에 아직 안 도착 했구나, 하고 안심하며 모퉁이를 돌려했지만 누군가의 무거워 보이는 두 어깨에 그 자리에서 더 가지 못하고 멈춰 섰다. 그 사람이 누군지 확인하려 벽에 몸을 딱 붙인 채 슬쩍 고개만 내민 히카리는 잽싸게 등을 벽에 붙이고 저의 존재를 숨겼다. 타이치였다. 소리도 없이 고개를 푹 숙인 채 눈물만 서럽게 흘리고 있는 그 사람은, 저의 오빠인 야가미 타이치였다. 히카리는 숨죽이며 엘리베이터가 빨리 도착하기를 바랐다. 결국 타이치가 엘리베이터에 타고 내려가는 것을 확인한 히카리가 그제야 모퉁이를 돌고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히카리! 빨리 내려왔네.”

“…응, 오빠.”

 


1층에 히카리가 도착해 밖으로 나서자마자 타이치가 웃으며 히카리를 반겼다. 히카리는 그런 타이치에게 아무 것도 묻지 않은 채 코시로의 집으로 향했다. 히카리는 계속 웃음을 잃지 않은 채 저에게 이런 말, 저런 말을 하며 분위기를 계속 띄우려 하는 타이치를 보며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미안해 오빠.’

 


히카리는 그렇게 몇 번 씩이나 속으로 타이치에게 사죄했다. 저의 버팀목인 오빠가 무너진다면 자신이 버틸 수 없다고 생각한 히카리는 타이치에게 아까 왜 울었느냐고 묻지 않았다. 오빠는 분명 괜찮을 거야. 나 말고 오빠를 위로해줄 사람들은 많은 걸. 히카리는 이렇게 이기적인 생각을 하는 자신이 미웠지만 코시로의 집에 도착 할 때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어이, 코시로. 왜이래? 너무 풀죽어 있잖아, 너. 엑, 다들 너무 우울하다니까! 애들은 지금 잘 있을게 분명해! 모두 잘 알잖아?”

 


하지만 히카리의 생각은 틀렸다.

 


“자자, 다들 스마일! 웃자고!”

 


이 소년을, 저 보다는 다른 이들의 짐만 덜어주려 하는 타이치를 위로해주는 이는 끝내 없었다. 모두 타이치에게 위로를 받으며 조금씩 미소를 되찾아갈 뿐, 타이치에게 휴식을 제공하는 이는 단 한명도 있지 않았다.

 

 

 

 


§

 

 

 

 


“타이치, 밥 먹어야지.”

“배 안 고파요―.”

 


타이치는 말끝을 길게 늘이며 크게 소리쳐 대답하고는 침대에 엎드려 누웠다. 그리고는 아까 전의 일들을 정리했다.

 


‘디지몬들이 다시 디지털월드로 돌아간 건가 싶어서 코시로의 노트북과 디지바이스로 별 짓을 다 해봤지만 디지털 게이트는 전혀 열리지 않았어.’
‘내일 다시 만나서 해보자고는 했지만 과연 디지몬들이 디지털월드로 돌아간 게 맞을까? 디지털 게이트가 열릴 가능성은?’

 


타이치는 머리를 싸매며 고민을 했지만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결론이 나지 않자 답답한지 저의 가슴 언저리를 몇 번 내리쳤다. 그러던 와중, “타이치” 하고 코로몬의 목소리가 타이치이 귓가에 들려왔다. 타이치는 깜짝 놀라했지만 고개를 들지 않았다. 분명 이번에도 환청일게 분명해. 하고 단정을 지은 타이치는 베개에 저의 얼굴만 파묻었다. 잠시 후, 무언가 생각난 타이치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요즈음 들어 코로몬이 계속 저에게 하던 말이 어렴풋이 떠올려진 것이었다. 타이치는 집중해 가장 최근 코로몬과 한 대화를 회상했다.

 


「타이치.」

「왜. 또 배고파?」

「타이치, 누군가 나를 부르고 있어.」

「그래 그래, 배고픔이 너를 부르고 있겠지.」

「그게 아니야 타이치. 나뿐만이 아니야. 모두를 부르고 있어!」

 


이때 타이치는 코로몬이 틈만 나면 하던 말이었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넘겼었다. 자신이 바보였다. 코로몬의 말을 쉽게 넘겨서는 안 되는 거였는데. 타이치는 그렇게 스스로를 자책했다.

 


“내가 눈치만 챘더라면.”

 


―모두가 슬퍼하는 일 따위 생기지 않았겠지. 타이치는 뒷말을 속으로 삼키며 저의 머리를 쥐어 잡았다. 왜, 왜 눈치를 채지 못한 거야. 코로몬은 계속 신호를 보내오고 있었는데. 괴로움이 가득 담긴 타이치의 중얼거림은 그저 타이치의 방 안에서만 자리 잡고 있을 뿐이었다. 깜깜하기만 했던 타이치이 방 안에 달빛이 창 사이로 들어왔고, 그 빛은 타이치를 비추었다. 침대위에 걸터앉아 저의 머리를 쥐어 잡고 있는 타이치의 얼굴이 달빛에 머리카락의 그림자가 져서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림자가 미처 닿지 못한 그의 안면 아랫부분은 확실히 보였다. 그는 또 울고 있었다. 다른 이와 함께 있을 땐 웃음으로 저를 포장했던 그는 혼자가 되었을 땐 이렇게 항상 눈물을 흘렸다. 스스로를 자책하고, 자책하면서 다른 이들을 저가 이끌어 가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보고 싶어, 아구몬. 타이치는 저의 디지몬 친구를 그리워했다. 저의 디지몬 친구만큼은 자신을 격려해주었다. 홀로 이렇게 자책하고 있을 때에 저의 디지몬 친구는 아구몬이었을 때도, 코로몬이었을 때도, 상관없이 “걱정 마. 타이치, 나는 항상 타이치의 곁에서 타이치가 웃을 수 있도록 해 줄 거야.” 라고 말해주었다.

 


「그런데 타이치. 너는 왜 네가 모든 걸 끌어안고 가려고 하는 거야? 친구들한테 말하면 좋을 텐데.」

 


어느 날 코로몬이 슬퍼하고 있는 타이치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타이치는 이때 아무 말 없이 코로몬을 냅다 끌어안았다. 당황한 코로몬이 이상한 소리를 내었고, 타이치는 코로몬에게만 들릴 수 있을 만큼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는 리더잖아.」
「어릴 때에 죽음의 공포에서 싸워 온 그 애들은 이제 행복하기만 했으면 좋겠어.」

 


슬픔과 고통은, 자기 혼자로도 충분하니 그들은 걱정 없이 행복했으면 한다고, 타이치는 그렇게 말을 했었다. 그렇게 조금 침묵이 흘렀었다. 아무런 미동도 없던 코로몬은 갑자기 타이치의 얼굴에 철썩 들러붙었다. 그러자 타이치가 숨 막힌다며 발버둥을 쳤고, 우울했던 분위기는 금세 화기애애해졌었다. 타이치에게 코로몬은 저의 고독을 아는 한 명의 친구였다. 그리고 코로몬이 없는 지금―

 


“으, 으으….”

 


―그는 혼자였다. 그에게는 휴식이 필요했다. 계속 절망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계속 빨려 들어가기만 하는 그를 꺼내줄 수 있는 이는 이제 더 이상 그의 주변에 존재하지 않았다.

 


“아…. 으,”

“……….”

 


울음소리가 새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타이치의 구슬픈 울먹임을 듣는 이가 있었다. 타이치의 방문에 등을 기댄 채 히카리는 저의 입술을 깨물었다. 히카리는 저의 오빠의 울음 소리를 목이 말라 부엌으로 가는 길에 우연히 듣고야 만 것이었다. 미안했다. 항상 히카리는 저의 오빠에게 미안해했다. 위로만 받고 싶어 하는 이기적인 자신은 저의 오빠에게 위로를 해줄 수 없었다. 히카리는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 히카리가 저의 방으로 들어간 뒤 얼마 후, 타이치는 멍하니 일어나 어딘가로 향했다.

 


“―띠리릭.”

 


그저 현관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만이 타이치가 어딘가로 향하기 전 집에 유일하게 남긴 인기척이었다. 아직 잠에 들지 않은 히카리만이 그 소리에 반응을 했지만, 오빠가 생각을 정리하려 산책이라도 하러 나가는 거겠지. 라고만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내일이면 다시 오빠는 활짝 웃을 테니까.’

 


히카리는 불안감이 저의 몸을 감싸는 기분이 들었지만 애써 무시하며 잠을 청했다.

 

 

 

 


§

 

 

 

 


“거기 있어? 아구몬? 음, 코로몬인 상태로 있으려나.”

‘나는 항상 네 옆에 있어, 타이치.’

 


타이치는 또 아구몬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아구몬이 사라진 뒤부터 계속 이랬다. 계속 자기는 저의 옆에 있다는 걸 알려주듯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는 아구몬의 그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타이치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네가 항상 내 옆에 있다는 걸 알아, 아구몬. 타이치가 중얼거렸다.

 


“하지만 나는 휴식을 취해볼까 해. 편안히 생각할 수 있는 꽤 긴 시간의 휴식을 취하고 싶어.”

‘그러지 마, 타이치!’

“아구몬, 난 정말 네가 없었다면 이미 아주 예전에 나락의 끝에 닿았을 거야. 그래서 너와 만날 수 있었던 인연에 정말 감사해.”

‘나도 너와 만날 수 있어서 즐거웠고, 행복했다고!’

“네 파트너가 이정도 밖에 되지 못해서 미안해.”

 


타이치는 마지막 말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타이치는 자리에 주저앉아 처음으로 소리 내어 펑펑 울기 시작했다. 나는 정말 많이 노력했어. 한참을 울음을 토해낸 타이치는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오늘따라 별이 참 반짝거리며 빛났다. 도시의 매연들로 인해 평소엔 잘 보이지도 않던 밤하늘의 별이 유독 오늘 수놓듯 자리 잡고 있었다. 타이치는 소리 없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타이치는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내가 잘 해내어야만 해.’ 하고 자신을 옥죄었던 것을 벗어나 자유로워 질 수 있는 길로 가기위해 타이치는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나갔다.

 


“조금만 쉬고 올게.”

 


타이치는 허공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타이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타이치, 안 돼! 타이치!’ 결국 끝까지 저의 귀에 들려오는 환청은 끝내 “잘 쉬고 와.” 라는 말 따위는 해주지 않았다. 타이치는 예상한 듯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조금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아구몬 너라면 날 이해해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타이치는 그렇게 발을 뻗었다.

타이치는 눈을 감았다. 자신의 몸을 스치는 바람의 느낌이 참 좋았다. 어느새 타이치는 후련하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끝에 다다를 때 즈음엔, 타이치는 활짝 미소를 지었다.

 


“꺄악! 뭐야? 이봐요! 정신 좀 차려보세요!”

 


타이치는 여자의 목소리에 눈을 살짝 떠보였다. 타이치의 점점 흐릿해져가는 시야에 아구몬이 보이는 듯 했다. 아구몬은 슬프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왜 그래, 웃어 아구몬. 타이치가 힘겹게 입모양으로 말 했다. 무슨 뜻이지 알아듣지 못한 여자만이 “네? 의식 있는 거죠? 그쵸! 아씨, 핸드폰 어디 있는 거야!” 하며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구몬은 타이치를 한참을 바라보다 말했다. 아구몬의 목소리는 오직 타이치에게만 들려왔고, 아구몬의 말을 들은 타이치는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쉬다 오는 거야. 타이치.’
‘잘 쉬고 와, 타이치. 반드시 다시 와야 해.’

 


아구몬에게 대답할 목소리도, 고개를 끄덕일 기력이 없는 타이치는 그저 눈만 천천히 감았다가 뜨기를 반복했다. 점점 흐려지는 의식에 끝에, 타이치는 마지막 힘을 쥐어 짜 아구몬에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타이치가 정신을 잃을 즈음─

 


“무슨 또 갑자기 비래? 아 여보세요? 여기 사람이….”

 


―맑기만 했던 밤하늘에서 갑자기 비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

 

 

 

 

아이들은 하나같이 다 충격을 먹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의 이름을 계속 불러보았지만 그는 미동도 없이 잠에 푹 빠져 있을 뿐이었다. 아이들은 덜컥 겁이 났다. 아이들의 흔들리는 동공을 보면 딱 알 수 있듯이, 이 상황을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들이었다. 그 중 히카리는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울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고 야마토처럼 분노를 표하지도 않았다. 히카리는 넋이 나간 얼굴로 타이치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의 손을 꼭 잡은 채 고개를 푹 숙였다. 그 현관문의 소리는 타이치가 휴식을 취하러 간답시고 집을 나가기 전 남긴 인기척이자, 도움의 요청이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남긴 부탁이었다. 자신에게 휴식을 공간을 제공해 달라는 타이치의, 뜻이었다.

 


“오빠.”

“……….”

“…알아차리지 못해서 미안해.”

 


그러니까 빨리 의식을 찾아줘. 내가 제대로 사과 할 수 있도록. 히카리는 끝내 말을 다 마치지 못한 채 울음을 삼켰다. 자신은 울 자격이 없었다. 다른 아이들도 지금 저들이 울 자격도, 화를 낼 자격도 없다는 걸 알지만 눈물을, 분노를 멈추지 못했다. 지금껏 타이치에게 기대기만 한 자신들이 너무도 원망스러웠다. 타이치는 우리만을 생각했는데, 정작 우리는 타이치를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삐, 삐, 삐…. 타이치가 살아있다는 걸 증명하는 저 심장 박동소리가 이어져 끊기는 것만 피해가기를, 하고 바라는 것만이 지금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

 

 

 

 


「타이치.」

「왜, 아구몬?」

「나는 타이치한테 어떤 존재야?」

「글쎄. 식충이?」

「뭐? 너무해 타이치!」

「하하. 당연히 농담이지! 그걸 진짜로 받아들이냐, 너는?」

「엑, 나는 진짜 놀랐다고!」

「음. 아구몬 너는 나한테 어떤 존재냐면….」

「……….」

「나의 유일한 휴식처. 응, 이거 같아.」

「뭐야 그게? 휴식처라니?」

「자세히는 몰라도 돼! 하여튼 아구몬! 너는 나한테 꼭 필요한 존재니까!」

「좋은 뜻이야?」

「당연하지, 바보야.」

 


─그 여름 날, 소중한 인연과의 대화는 이러했다.

 

 

.

 

 


.

 

 


.

 

 


Fin.

 

 

 

 

 

 

 

 

 

 

 

*모든 글의 저작권은 월화비월(@Moon_m0406)에게 있습니다.

*재업(2015.04.12)

*수정(2015.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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