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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Q/조각조각

 

 

 

 다를 게 하나 없는 날이었다. 그저 언제나처럼, 놈을 똑같이 대하고 있었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그 날 역시 멍청이 같은 짓을 하는 녀석의 목에 팔을 두른 채 힘을 주었다. 문득, 선선한 봄날임에도 불구하고 ‘덥다.’ 고 생각했다.

 

 속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더위가 온몸을 감싸며 피부를 발갛게 물들인다. 점점 빨라지는 심장 박동 소리가 내 귓전을 둥둥 울렸다. 생소한 느낌이 낯설어 적응하지 못한 몸에 거부반응이 나타났다. 살갗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같지 않다. 이미 평소하고는 무언가 크게 달라져 있었다.

 

 

 아아. 정신이 혼미하다. 녀석이 내게서 빠져나오겠다고 발버둥을 치며 고갯짓을 할 때마다 놈의 머리카락이 내 목을 간질였다. 오이카와와 꽤나 어울리는 청량한 샴푸 향이 코를 자극했다. 동시에 온몸이 탁, 하고 힘이 풀렸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녀석이 내게서 빠져나왔다.

 

 놈이 나를 바라보며 브이자를 그리고 웃고 있다.

 


 벚꽃을 닮은 웃음이었다.
 크게 바람이 불었다. 그것을 견디지 못한 벚꽃잎들이 떨어져 내린다. 한창 벚꽃비가 흩날리던 그때, 내 뺨에 벚꽃이 스쳐 지나가며 연분홍으로 물들어갔다.

 

 내 생에 첫 봄을 스스로 자각한 순간이었다.

 

 

 

 

 

*

 

 

*@89st_design 님 커미션입니다.

 

隻愛_척애

 


Oikawa Tooru X Iwaizumi Hajime

 

written by. 월화비월

 

 

 

*

 

 

 

 

 

 언제나 자기 자신 보다 배구를 우선순위로 생각하는 녀석이었다. 게다가, 목표를 잡은 건 어떻게든 해내려고 하는 그런 독한 끈기를 가지고 있었기 태문에 오버워크를 할 때가 종종 있어서 이런저런 골치가 아니었다. 다치는 건 기본에, 가끔씩은 정말 위험했을지도 모르는 별의 별 일이 일어났다. 당연히 아주 오래전부터 녀석은 내게 ‘망할 바보’ 라고 굳혀질 수밖에.
 
 그래, 망할 바보. 쓸데없는 바보지만 때때로는 믿음직스러운 놈이라고.
 오이카와 토오루는 내게 딱 그 정도의 존재였다. 또한,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져온 인연의 끈을 나누고 있는 녀석이기에. 더욱 녀석을 아무렇지 않게 대하려고 노력했다.

 

 

 오이카와를 보면 저도 모르게 떨리는 가슴을 다독이며 평소처럼 대하기 위해 애를 썼다. 그 노력이 조금은 통한 걸까, 나날이 갈수록 속에서 타오르던 불길은 재가 되어 흩어져갔다. 그러나 남은 잔해들은 가슴을 꽉 막히게 했다. 숨이 막혀와 괴롭다. 괴롭지만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해야만 했다. 아마, 그 잔해들은 친구를 좋아한 내게 내리는 벌 같은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와쨩―.”

 

 

 

 녀석에게 나는 ‘친구’ 그 이상은 될 수 없을 테니까, 어서 포기하라고 하늘이 내게 주의를 주는 벌. 이 인연을 깨어서는 안 된다고 콱 막힌 가슴에서 통증을 내며 속삭여왔다.

 

 

 

 

 

*

 

 

 

 

 

 학교 측 사정으로 오늘은 부 활동을 하지 말고 빨리 집으로 가라는 공지가 내려졌다. 안 그래도 조금 피곤했는데 잘 됐다 싶어 내심 속으로 안도하며 짐을 챙겼다.

 

 지이익. 가방 지퍼를 끝까지 채우고 어깨에 매는 순간이었다. 드르륵. 교실문이 열린다.

 


 온몸이 문을 열고 들어온 이를 반갑게 맞이했다. 저릿하고 느껴지는 전율에 너라는 걸 알았다. 어느새 네게 몸이 먼저 반응하게 되었구나, 라는 사실에 놀랍기도 잠시 불안한 기운이 스멀스멀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처음 맡는 낯선 향수 냄새였다.

 

 네가 나를 발견하고는 활짝 미소를 짓는다. 이와쨩! 내 이름을 부르는 네 목소리에 가슴이 떨렸다.

 

 오이카와는 밝은 미소를 유지한 채 반갑다는 듯이 손을 흔들며 내가 있는 쪽으로 걸어왔다. 문득 오늘 하루종일 같이 있었는데도 날 저리 반겨주는 네가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악. 얼굴이 달아오른다. 숨겨야했다. 재빠르게 녀석이 있는 곳에서 반대쪽으로 고개를 휙 돌리고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너였냐.”

 

 

 

 후. 녀석 몰래 작게 숨을 내쉬며 심장을 진정시켰다. 역시 놈을 안보는 게 정답이었다. 화끈거리다 못해 새빨갛게 색칠됐던 얼굴이 다시 제 색으로 되돌아갔다.

 

 오이카와는 그런 나를 의아하다는 듯 바라보며 제 턱을 쓸어 만지다 까먹을 뻔 했다는 듯 “아.” 하는 작은 탄식과 함께 제 눈을 크게 떴다. 이내 제 두 눈을 반달처럼 곱게 접은 오이카와가 매혹적인 눈웃음을 띠고는 내 두 손에 제 손을 마주잡고 깍지를 껴왔다.

 

 

 한 순간 사고를 내려야하는 뇌가 작동을 정지했다. 온 몸이 굳는다. 주뼛주뼛 놈의 시선을 어떻게든 피하려 고개를 돌렸다.

 

 아, 녀석이 잡은 두 손에 땀이 꽉 차 금방이라도 뚝, 뚝 흘러내릴 것만 같다.

 

 

 

 “이와쨩, 혹시 어디 아파?”

 

 

 

 흐음. 녀석이 작게 신음하며 내게 얼굴을 가까이 들이댔다. 뭐지 이 새끼, 내 인내심을 시험하는 건가.

 

 금방이라도 얼굴이 펑하고 터져버릴 것 같다. 정신이 혼미하다. 녀석의 냄새에 잠식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이성을 유지하고 있는 건 간간히 맡아지는 낯선 향수냄새 때문이겠지.

 

 나는 잡혀있던 손을 빼내어 오이카와의 머리를 쭉 밀어 내게서 떨어지게 했다.
 이제, 환상에서 깰 시간이었다.

 

 

 

 “안 그래도 몸 상태 별로라서 집에서 쉬려고 했는데 네놈이 지금 방해하고 있잖아. 대체 용건이 뭔데, 망할카와.”

 

 “아, 맞다. 순간 또 잊어 버렸네. 들어와!”

 

 

 

 ……누구를 부르는 걸까. 심장이 불안함에 흔들렸다. 드륵, 하고 열리는 문소리가 왜이리 날카롭게만 느껴지는지. 소리가 바늘이 되어 가슴을 콕콕 쑤셨다.

 

 한 조그마한 여자아이가 우물쭈물 거리며 오이카와의 옆에 철썩 달라붙어 섰다. 그녀에게서는 아까 오이카와에게서 느껴지던 낯선 향수냄새가 더 진하게 풍겨오고 있었다.

 

 너구나, 향수의 주인이. 내 시선이 차게 식어갔다.

 


 너의 옆에 다른 이가 서있다. 아니, 너의 옆에 ‘내’가 아닌 ‘다른 이’가 서있다.


 그녀를 사랑스럽다는 듯 바라보는 너를 보니 순간 머리가 어지러워 가까운 책상을 짚어 간신히 몸을 지탱했다. 향수냄새에 구역질이 나올 것만 같았다.

 

 하. 헛웃음이 터져 나온다. 이럴 줄 알았다면 그냥 너를 무시하고 집에 가는 거였는데. 나는 대체 어떤 희망을 품고서 방금 전까지 녀석의 행동 하나하나에 설레어했는가.

 

 여러 가지가 섞인 감정들이 한꺼번에 몰아쳐와 정신을 똑바로 차리기가 힘들었다.

 


 지금 오이카와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들리지가 않아.

 

 놈의 입모양에 집중하고 있으니 서서히 정신이 돌아오는 듯 했다.

 

 

 

 “―그래서, 이와쨩한테 가장 먼저 소개시켜주고 싶었어!”

 

 

 

 이와쨩? 아무 반응이 없자, 무언가 내 상태가 이상함을 감지한 놈이 고개를 갸웃하며 내게 한발자국 앞으로 다가왔다. 이에 나는 한발자국 뒤로 물러나다 그만, 책상다리에 걸리고 말았다.

 

 결국 쿵 소리를 내며 주저앉듯 넘어진 나는 저릿하게 올라오는 고통에 작게 신음했다.

 

 

 갑작스런 상황에 잠시 행동을 멈춘 오이카와가 얼굴색이 급격하게 변하더니 내 이름을 크게 외치며 다가왔다. 나를 일으키려고 놈이 내 쪽으로 손을 뻗는다. 곧이어 가차 없이 놈의 손을 쳐낸 나는 바닥과 책상을 번갈아 짚었고, 일어섰다.

 


 내게 거절당한 게 충격이 큰 듯 오이카와가 글썽이며 바로 뒤에 있던 여자에게 폭삭 안긴다. 아아, 정말로 실소가 터져 나왔다. 속이 뒤틀려서 울렁거리는 게, 정말이지 금방이라도 토가 쏟아져 나올 것 같았다.

 

그렇지만, 참아야지. 숨겨야지. 그래야겠지. 애써 망가져버린 마음을 달래며 억지로라도 웃음을 지어보려 할 때였다.

 

 

 

 “아, 안녕. 그……, 이와이즈미군……. 미안, 토오루가 오늘 꼭 나를 너에게 소개시켜주고 싶다고 해서.”

 

 

 

 계속 내 눈치를 보던 여자가 여전히 안겨있는 놈을 토닥이며 어색하게 눈웃음을 짓고는 말을 건넸다. 그러고 보니 나, 방금…… 처음 보는 애 앞에서 그렇게 모양 빠지게 넘어졌던 건가……. 조금 창피함이 몰려왔다.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아니야.

 

 

 

 “망할카와가 문제였던거지 네가 왜 사과를 하냐.”

 

 “그렇다면 다행이고! 난 토오루의 여자친구 ――라고 해.”

 

 “……그래, 망할카와―, 아니, 오이카와한테 들어서 알고 있겠지만 난 이와이즈미 하지메라고 한다.”

 

 

 

 ………‘여자친구’라. 확인사살을 당하듯 명확하게 들려오는 저 말이 왜 이리 아픈지. 꼭 저 여자애가 자기 애인한테 딴 마음 품지 말라고 경고를 주는 것만 같이 날카롭게 들려왔다.

 

 

아.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어서, 빠져나가지 않으면―.

 

 

 

 “그래! 내 여자친구는 누구보다 가장 친한 이와쨩한테 먼저 소개해주고 싶었단 말이야! 그런 이 오이카와상의 마음도 모르고, 이와쨩은 정말 멍청이라니까.”

 

 

 

 ―버틸 수 없을 것 같아.

 

 

 순간적으로 울컥하는 마음에 입술을 꾹 깨물고 눈물이 나오려는 걸 참았다. 내가 왜 좋아해도 저 녀석을 좋아해서는. 살짝 억울해져서 괜히 오이카와 놈을 째려봤다. 놈과 눈이 마주친다.

 

 나와 눈을 마주친 녀석의 얼굴이 당혹함으로 가득 찼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거의 얼굴이 잿빛이 된 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라, 왜 그러지. ……지금 얼굴 쪽이 축축한 것이, 나 울고 있는 건가.

 

 

 

 “이와쨩. 왜 그래, 진짜 어디 아파?”

 

 “이와이즈미군, 괜찮아?”

 

 

 

 고개를 돌려 팔로 눈을 벅벅 닦았다. 이와쨩, 여기 봐봐. 어느새 내 코앞까지 다가온 오이카와가 계속 내 이름을 부르는 게 들렸지만, 난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괜찮았다. 정말 갑자기, 그냥 순간적으로 여러 감정이 뒤섞여서 조절하지 못한 것뿐이었으니까. 금방 괜찮아질 거였다. 괜찮아지려고 했다. 오이카와가 내 두 팔을 붙잡고서, 억지로 저와 얼굴을 마주하도록 하게하기 전까지는. 아마, 내 얼굴은 엉망진창이었을 게 분명했다. ……이와이즈미 하지메! 놈의 입에서 오랜만에 내 풀네임이 나온 걸 보면.

 

 

 그 후로는 무슨 정신이었는지 모르겠다. 가방 끈을 붙잡고 횡설수설하며 급하게 교실을 빠져나왔다. 계속 깊숙한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역겨움에 몇 번 헛구역질을 하면서.

 

 


 간신히 밖으로 빠져나오니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다. 불그스름하게 물든 하늘을 멍하니 바라봤다. 지고 있는 와중에도 쨍쨍한 해에 온 몸에서 조금씩 땀이 흘러 내렸다. 나는 흘러내리는 땀을 닦기 위해, 주머니에 휴지가 있나 뒤지던 나는 그만 포기하고 손으로 눈을 닦았다. 땀이었다. 한 여름을 알려주는 매미 소리가 내 울음을 덮어씌운다.

 


 봄이 오지 않았으면 했다. 나는 여전히 한 여름이었기 때문에, 너에게 봄이 오지 않았으면 했다. 이제 전부 다 끝났다. 놈을 좋아하는 건 오늘이 마지막이다. 내 계절은 이제 가을이 되고, 차디 찬 겨울이 되겠지.

 

 

 

 “이와쨩!”

 

 

 

 내 이름을 크게 외치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살짝 고개를 돌려 그곳을 쳐다봤다. 오이카와였다. 쏜살같이 도망치듯 빠져나온 나를 쫓기 위해 힘차게 달렸던 건지, 너는 거칠게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무엇을 물으러 온 걸까. 대체 뭣 하러? 나는 네게 대답해줄 수 있는 게 없는데.

 

 시원하게 울고 나니 울렁이던 감정들이 진정돼있었다. 나는 아예 몸을 돌려 녀석을 똑바로 바라봤다. 녀석 역시, 숨을 제대로 고르고는 나를 똑바로 바라본다.

 

 여전히 녀석의 시선에 떨리는 가슴이 원망스럽다. 아, 정말로 나는. 후회하고 있었다. 후회한다.

 


 애초에 녀석에게 봄이 오기 전에, 내게 봄이 오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럼 내 계절은 뜨거운 여름이 되지 않았을 터였다. 이렇게나 뜨겁다가도, 차가운 비가 내리는 여름이 되지 않았을 거였다.

 


 ―봄이 오지 않았다면. 봄이 오지 않기를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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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Q/조각조각

 

 

BGM : 우드캔들(Woodcandle) - Lucerne In The Spring

 

 

 

[카게히나] 봄이었어.

 

 

 

written by. 월화비월

 

 

 

 

*

 

 

 

 

봄이었어.

 

 

어릴 적부터 내가 원하던 이곳에 드디어 왔어. 그날, 아무 이유 없이 자전거를 타고 가다 무심코 멈춘 곳에서는 작은 거인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하늘로 날아오르고 있었지. 그리고 연이어 들려오는 사람들의 환호성. 처음 느껴보는 짜릿한 감정이었어. 그 장면을 가슴속 깊이 새긴 나는, 배구를 하고 싶다는 꿈을 조금씩 키워나갔고, 드디어 여기에 오게 된 거야.

 

여기까지 오는 데만 해도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 심지어 중간에는 재수 없는 녀석까지 만나고. 나중에 적으로 만난다면, 꼭 이겨주겠노라 다짐했어. 동시에 그 녀석은 내 목표가 되기도 했지. 그런데.

 

―――그 녀석이 왜 이곳에 있는 건지. 정말 재수 없는 일이지 않아?

 

 

낯선 체육관의 공기와 그녀석의 눈빛은 나를 얼어붙게 만들었어. 몸은 떨리는데 신기하게도 내 심장은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두근두근 뛰어대기 시작하는 거야.

 

참 이상한 일이지. 나중에 시합이 끝나고 그 녀석이 수고했다는 듯 짓는 웃음에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어.

 

 

이젠 같은 코트 위에 서있는 녀석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해. 녀석의 검은 머리가 부드러운 바람에 살랑, 흔들렸어.

 

 

 

……그건 바로 봄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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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Q/조각조각

*이 글은 총 공백 포함 3298자, 공백 미포함 2243자 입니다.

 

 

 

 

BGM : Haikyuu!! OST - Accustomed Strength

 

 

 

 

 

그의 말에 소년은 무너져 내렸다.

 

 

 

written by. 월화비월

 

 

 

 

*

 

 

 

 

 소년은 스스로를 자책했다. 그와 함께할 수 있는 마지막 경기였다. 그런 소중한 기회를, 평소와 다르게 다급하게 행동했던 제 실수로 잃고야 말았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토스를 높이 보냈다면 그는 언제나 그랬듯이 좋은 코스로 점수를 얻었을 텐데. 다시 한 번 더 이 코트에 설 수 있었을 거라고, 소년은 그리 생각하며 애꿎은 배구공을 금방이라도 터트릴 듯 세게 쥐었다.

 

 배구할 때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빛나는 그였다. 소년은 그런 그를 사실은 동경하고 있었다. 그가 저의 토스가 가장 좋다는 듯 눈을 반짝이며 힘 있게 배구공을 칠 때면, 승리는 우리의 것이었다. 모든 일에 무감각하던 소년이 그 순간만은 두 주먹을 꽉 쥐고 그와, 동료들과 함께 환호했다.

 

 그가 소년을 믿는 만큼 소년 역시 그를 믿었다. 그리고 동경했다. 승리를 가져다주는 그 강함을, 안정을 느끼게 해주는 환한 그 웃음을, 우리들을 향한 신뢰를 보여주는 듯 절대 뒤를 돌아보지 않던 그 등을.

 

 아무리 참아보려 애를 써도 저도 모르게 나오는 눈물이 자꾸 시야를 가렸다. 눈물로 얼룩져버린 흐린 눈앞에 보이는 것은 그의 널찍한 등. 어느 때와 같은 믿음직스러운 등이었지만, 뭔가 달랐다. 그의 두 어깨는 축 처져있었다. 미세하게 들썩거리는 움직임 또한, 그도 저처럼 울고 있을 게 분명하다고 소년이 생각하며 입술을 꾹 물었다. 이로 짓눌러진 입술에서 방울방울 피가 새나온다. 비릿한 피 맛을 느끼며 소년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다 제 잘못입니다, 죄송합니다 보쿠토상. 울음으로 꽉 막힌 소년이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코트 반대편에서는 승리의 기쁨으로 환호성을 내뱉고 있었다. 그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듯했다. 아마, 제 사과는 들리지 않았을 테지.

 

 스르륵 풀린 손에서 배구공이 처참히 바닥으로 떨어졌다. , 통 몇 번 뛰어오르던 배구공은 데구루루 굴러가다 어느 지점에서 멈춰 선다. 소년은 허망한 눈으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손을 쳐다봤다.

 

 패배의 앞엔, 정말 아무것도 없구나. 쓸쓸한 미소가 걸쳐지던 그때였다.

 

 

 아카아시. 그가 동료들의 울음소리로 가득한 이곳에서 나지막이 소년의 이름을 불렀고, 소년은 반사적으로 떨구고 있던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봤다.

 

 분명히 저보다 큰 눈물을 쏟아내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그는 기분 좋은 스파이크를 때렸을 때처럼 개구진 웃음을 짓고 있었다. 아니, 조금은 더 산뜻한 미소에 소년의 엉망이었던 마음이 한층 누그러트려지는 것 같았달까.

 

 그가 숨을 한껏 들이마셨다. 그리고 이 크고 넓은 경기장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만큼의 목소리로 그가 외쳤다.

 

 

 헤이헤이헤이! 아카아시―――! 그리고 모두들! 지금까지 고마웠다!!!!

 

 

 기지개를 펴듯 주먹을 쥔 채 두 팔을 하늘 높이 쭉 들어 올리는 그의 모습에 경기장이 한순간 조용해졌다. 그러나 그런 침묵도 잠시, 경기를 관람했던 누군가가 자리에 벌떡 일어나서 손뼉을 치기 시작함으로써 순식간에 경기장의 분위기가 바뀌어버렸다.

 

 후쿠로다니, 너희의 싸움은 정말로 대단했다고. 절대로 잊지 못할 경기였다고. 우리를 끝까지 기억할 거라는 응원의 환호성이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심지어 반대편 코트에 있던, 우리의 승리를 앗아간 녀석들 마저 진지한 태도로 우리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어이, 아카아시! 네 마지막 토스 최고였다고!

  

 

 거짓말.

 

 

 이것 참, 나도 모르게 흥분해서 좋은 코스를 노리지 못했다니까.

 

 

 이것도 거짓말.

 

 

 미안하다, 모두들. 그래도 즐거웠지? 자자, 다들 피곤할 테니 어서 들어가 쉬자고!

 

 

 전부 다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이었다. 누구보다 소년을 믿었던 만큼 그는 소년을 원망하고 있어야 했다.

 

마지막 토스가 좋았긴 개뿔, 이미 스스로 잘 느끼고 있던 최악의 실수였는데.

 

 화가 났다. 분노가 치밀어 올라와 이성을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소년의 머릿속에서 차마 생각이 다 정리되기도 전에 몸이 먼저 움직였다.

 

 기어코 소년이 이를 아드득, 갈며 바보 같은 웃음을 유지한 채 박수를 보내는 관중들에게 손 인사를 하고 있던 그의 멱살을 붙잡았다. 경기장이 술렁인다.

 

 

 아카아시! 모두가 놀란 얼굴로 소년을 쳐다봤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감히 그들 쪽으로 함부로 다가가지 못했다.

 

 

 왜, 왜 화를 안 내는 겁니까! 누가 봐도 그건 내 실수였는데!

 

 …….

 

 차라리 화를 내세요. 평소처럼, 울란 말입니다!

 

 

 저를 똑바로 바라보는 소년의 눈을 그는 피하지 않았다. 소년의 눈동자가 애처롭게 떨리고 있었다.

 

 

 저는, 보쿠토상과 함께 하는 마지막 무대를 망쳐버렸다고요.... 구슬픈 음성을 흘리며 소년이 조금씩 흐느꼈다. 이런 모습은 정말이지 처음이었다. 그가 흐음, 신음하며 제 뒷머리를 긁적이다가 소년의 머리 위로 저의 큰손을 가져다 놓았다.

 

 

 그동안 내 기분 맞춰주느라 수고 많았다, 아카아시.

 

 

 그의 진심 어린 말에 소년의 몸이 굳는 게 느껴졌다. 부들부들 떨리는 소년의 몸은 금방이라도 분노를 표출할 것만 같았다. 그가 그것을 눈치채고는 이크, 식은땀을 흘리다가도 씨익 말간 미소를 지으며 이어 말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수고해라!

 

 …?

 

 기다리고 있을게. 아카아시, 너와 함께 하는 배구는 이게 끝이 아닐 테니까!

 

 

 아아, 그런 거였나. 소년이 그의 말을 깨달았다는 듯 픽, 웃어 보이고는 고개를 아래로 떨군 채 중얼거렸다. 이런 건 너무하다고요, 보쿠토상.

 

 그의 기다리고 있겠다.’라는 말의 뜻을 이해한 소년은 처참히 무너져 내렸다. 간신히 감정을 억누르고 있던 행동은 소용없었다는 것 마냥 울음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내렸다.

 

 그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엉엉 우는소리까지 내는 소년을 그는 그저 가만히 그의 두 어깨를 감싸 안을 뿐이었다.

 

 그와 함께 코트에 서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 아니었다. 소년은 다시 한 번 그를 가슴에 담았다. 앞으로도 쭉, 그는 저가 가장 동경하는 사람일 것이랴.

 

 

 그의 다정한 온기로 뭉친 강함은, 소년을 무너트렸다.

 

 

 

 

 

*이 글은 트위터 '솔(@__noah97)' 님의 아카아시 그림의 "...다 제 잘못입니다, 죄송합니다 보쿠토상." 대사를 보고 쓰여졌습니다.

*모든 글의 저작권은 월화비월(@Moon_m0406)에게 있습니다.

*수정_2017.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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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Q/조각조각

히나타 생일 기념 글

 

 

written by. 월화비월

 

 

 

 

1. 내 생에 최고의 날

 

 

매우 가벼워 보이는 발걸음이었다. 솔직히 가볍다라는 단어로는 부족할 만큼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것만 같은 통통 튀는 걸음걸이는 소년의 기분이 최정상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특히나 넋이 빠진 듯 행복에 겨워 죽겠다는 소년의 얼굴은 무엇인가 기대감에 사로잡혀 있는 듯했다.

 

소년이 코트 안에 들어서기 전 그 두근대는 마음을 반짝이는 눈으로 보일 때와는 확연히 다른 얼굴이었다. 자칫 잘못 보면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헤실 거리고 있었으니. 길을 가다 마주치는 사람마다 소년을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본 걸 보면, 할 말 다 했다.

 

 

오늘은내 생에 최―――!”

 

 

어릴 적 심해의 가장 밑바닥에 있다는 비키니 시티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꾸준히 본 사람이라면 익숙할만한 노래가 소년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621, 바로 오늘. 오렌지 빛깔의 머리칼을 흩날리며 달리고 있는 소년의 생일이었다.

 

쨍한 태양 아래, 소년이 제 이를 훤히 드러내며 웃어 보였다.

 

 

 

2. 방과 후 생각에 두근두근.

 

 

안녕, 얘들아!!”

 

 

소년이 교실 문을 활짝 열어젖힌 뒤 내뱉은 첫마디였다. 이미 학생들로 가득한 북적북적한 교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소년의 존재는 꽤나 위대한 듯했다. 서로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있던 학생들이 잠시 제 행동을 멈추고 소년을 향해 하나둘 인사를 날리는 모습을 보면.

 

어느새 소년은 자연스레 무리에 껴서 떠들고 있었다. 배구부의 활동에 중점을 뒀기 때문에 반 친구들과 대인관계가 그다지 형성되지 않았을 거라고 지레 짐작했던 것은 큰 오산이었다.

 

히나타, 너 웬일로 자전거 두고 왔냐?”

 

그러고 보니 쇼요 뭔가 땀을 많이 흘린 것 같네.”

 

, 역시 그러려나? 사실 너무 기대가 돼서 도무지 밤에 잠이 안 오더라고! 그래서 자는 거 포기하고 그냥 새벽에 일어나서 걸어왔지.”

 

 

소년의 대답에 남자애들은 일동 지레 질색하는 얼굴을 지었다. 너희 집, 엄청 멀지 않냐? 하여튼 정상은 아니라니까.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던 한 가운데, 소년의 말에 호기심을 보인 한 남자애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근데, 무슨 기대?”

 

, 사실 나 오늘 생일이거든!”

 

……….”

 

방과 후에 배구부 활동 하는 게, 너무 기대가 되는 거야. , 있잖아? 팀이니까. 모두에게 축하 받지 않을까, 뭐 그런 거.”

 

 

 

히나타가 쑥스럽다는 듯 뒷목을 긁적이며 말했다. 반 아이들은 죄다 입을 떡하니 벌리고서 두 눈만 깜박이고 있을 뿐이었다.

 

 

……, 다들 왜 그래?”

 

그걸 왜 이제 말하는 거냐고!! 아무리 배구가 좋다지만, 우리는 친구도 아니냐!!!”

 

 

히나타의 천진난만한 모습에 답답했던 이들의 목소리가 교실뿐만 아니라 학교 건물 자체가 떨어져 나갈 듯이 울려 퍼졌다. 하하. 어색한 모습으로 이 상황을 무마하려는 히나타의 심장은 조용히 두근두근, 뛰고 있었다.

 

팀에게 처음으로 받아보는, 생일 축하는 어떤 걸까?…….

 

 

 

3. 오늘이 무슨 날인지 정말 몰라?

 

 

, 오늘의 주인공 히나타 쇼요, 도착했습니다?”

 

 

, 끼긱. . 평소와 같은, 아니 어쩌면 평소보다 더 열심히 연습에 임하고 있는 선배들과 동기들을 바라보며 히나타는 말을 잃었다. 방금 전만 해도 힘차게 체육관 문을 열었던 소년은 온데 간데도 보이지를 않았다.

 

열심히 연습하는 건 좋지, 좋은데. 아무래도 저가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명도 아는 척을 하지 않으니, 소년은 체육관 안으로 들어가길 망설였다.

 

그렇게 한참을 발을 못 떼고 멍하니 이리 저리 왔다갔다 거리는 배구공만 쳐다보고 있던 소년의 뒤에 누군가 다가왔다. 꽤나 기다란 체형의 흑발머리의 남자가 소년의 옆에 서자, 척 봐도 소년과 차이가 많이 나는 체형에 소년에게 내리쬐던 태양빛이 가려졌다. 갑자기 드리워진 그림자에 소년이 고개를 들어 옆을 올려다봤다.

 

 

뭐하냐?”

 

. 카게야마.”

 

히나타 멍청이. 빨리 들어가. 연습 안 할 거냐?”

 

 

, 들어가야지. 어느새 소년의 어깨는 축 쳐져 있었다. 몇 발자국 걸을 때마다 꾸준히 한숨을 푹푹 내쉬는 것이, 참 안타까워 보였다고 해야 하려나. 소년이 뒤를 돌아봤다.

 

 

저기, 카게야마. 오늘이 무슨 날인지 몰라?”

 

연습 시합하기 전날?”

 

정말 몰라?”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멍청아. 계속 헛소리 지껄이면 토스 안 준다?”

 

 

. 카게야마의 말에 바로 꼬리를 내린 소년이 다시 뒤를 돌아 코트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소년이 터덜터덜한 발걸음으로 코트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을 때 즈음이었다. 소년의 처량한 뒷모습을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바라보던 카게야마의 옆에 언제 온 건지 카라스노 멤버 전원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휴식 시간인가?’

 

 

카게야마가 볼을 긁적이며 생각했다.

 

 

 

4. 사실은 알고 있었어.

 

 

 

, 이제, , 이상, 못 참겠! 푸훕.”

 

나도, 나도, 푸후후훕!”

 

뭐하는 거야, 이것들아! 조용히 안 할래!”

 

 

벽과 바닥에 주먹을 날리며 간신히 웃음을 참고 있는 타나카와 니시노야가 너무 소란스러워지자 소곤소곤 소리치는 스가와라였다. 카게야마는 그 모습에 버릇처럼 입을 삐죽이며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 히나타도. 우리가 진짜 모르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으려나?”

 

 

다이치가 자연스럽게 카게야마의 어깨에 제 팔을 두르며 말했다. 그러나 다이치가 행한 어깨동무는 그다지 오래가지 못했다. 어느새 저의 뒤꿈치가 들려지고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젠장. 다이치는 속으로 비속어를 담았다.

 

 

, 히나타 같은 바보라면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하죠.”

 

! 선물은 뭐 준비했어?”

 

저딴 바보한테 내 사비를 쓸 리가.”

 

그렇구나, 츳키! 나는 그냥 간단하게 간식거리를 샀어!!”

 

 

카게야마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휴식시간이, 휴식시간인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데. 저 혼자만 이 상황을 모르는 것 같아서 더욱 머리가 복잡했다. 안 그래도 배구 말고는 쓰지 않는 머리인데, 끄응. 그런 카게야마 옆에 야치가 다가와 부드러운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이따 히나타 놀라는 모습 생각하니까, 두근두근 거리지 않아?

 

 

뭐를?”

 

? 뭐가?”

 

우리 오늘 연습 안 해?”

 

 

 

5. 진짜 몰랐다.

 

 

오늘 히나타 생일인 거 몰랐어? 시미즈가 어디서 가지고 온 건지 모를 생크림 케이크를 든 채 조심스럽게 체육관 안으로 들어왔다.

 

 

어이 어이 어이, 진짜 몰랐던 거냐고?”

 

 

타나카가 재빠른 손짓을 보이며 물었다. 그러자 온 몸이 경직돼서는 고개만 끄덕이는 카게야마에 결국 한숨을 쉬는 스가와라였다. 어쩐지, 연기라고 생각했는데 연기가 아니었던 거네.

 

 

자 자, 저쪽에서 나리타랑 키노시타, 엔노시타가 우리가 준비하는 걸 안 들키도록 히나타가 연습하는 걸 도와주고 있으니까 다들 큰 소리는 내지 말자고.”

 

이 바보나, 저 바보나 별반 다를 게 없군.”

 

 

다이치랑 츠키시마가 제 옆에서 무슨 소리를 하든 카게야마는 그런 건 이미 제 관심사 밖이었다. 그러고 보니, 일주일 전 부터였었나, 저 멍청이가 자기 생일이 언제라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던 것 같은데.

 

 

……진짜 몰랐다.”

 

괜찮아, 괜찮아! 이 선배님이 준비한 선물을 보면 히나타가 다른 건 보려고 하지도 않을 걸! 아사히상! 어때요, 멋지죠!”

 

, . ……그런데 히나타가 좋아할까?”

 

무슨 소리에요, 아사히상! 당연히 좋아하죠! 이 선배님이 손수 사온 정열이 가득 담긴 옷인데!”

 

 

시끌벅적. 이 분위기 속에서 눈치를 못 채는 히나타가 오히려 더 대단했다. 아니, 어떻게든 히나타의 시선을 끌려고 노력하는 세 명이 대단한 걸지도 모르겠다.

 

 

그만 좀 떠들어라, !’

 

 

그 세 명은 공통적으로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6. 생일 축하해, 히나타.

 

 

, 데구루루. 정전일까, 방금 전까지만 해도 훤하던 체육관에 어둠이 찾아왔다. 갑작스런 깜깜해짐에 배구공은 공중에서 힘없이 떨어져 어디론가 데구루루, 굴러갔다.

 

안 그래도 기분 꿀꿀한데, 정전까지. 히나타는 한숨을 내셨다. 그때였다. 이 까마득한 공간 어디에선가 불그스름한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촛불?”

 

빨리 와, 히나타!”

 

 

이게 어찌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스가와라의 부름에 그쪽을 향해 달려가는 히나타였다. 가까이 다가가니 제대로 보이는 물체에 깜짝 놀란 히나타가 어안이 벙벙한지 케이크를 앞에 두고 멀뚱히 서있을 뿐이었다. , 그니까, 이게…….

 

 

빨리 불고 소원 빌어, 히나타.”

 

, !”

 

 

, 이게 뭔지 알겠다. 시미즈의 부드러운 음성에 홀리듯 촛불을 한 번에 불어 끈 히나타가 다시 찾아온 어둠 속에서 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폭죽을 터트리는 소리와 함께 체육관에 불이 들어온다. 히나타는 제 어깨, 머리에서 느껴지는 폭죽의 잔해들에 더욱 행복해했다.

 

두근두근. 어느새 상기된 소년의 얼굴이 그 들뜸을 말해주고 있었다.

 

 

생일 축하한다, 히나타!”

 

 

 

 

 

*모든 글의 저작권은 월화비월(@Moon_m0406)에게 있습니다.

*재업(2016.06.21)

*수정(2016.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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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Q/조각조각

경기장

 

 

카게히나

written by.월화비월

 

 

 

*

 

 

 

와아아! 사람들의 환호소리가 경기장 안을 가득 채웠다. 산만하기 그지없는 이곳에서, 나는 오늘도 어느 때와 다를 것 없이 아랫배부터 살살 아려오는 진통을 느꼈다.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나아지기는커녕, 콕콕강도가 세지며 아파오는 배에 나는 두 팔로 배를 꼭 감싸 안은 채 몸을 배배 꼬아야만 했다. 정말로, 계속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영혼이 몸에서 탈출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며 화장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히나타! 간신히 반쯤 왔을 때였을까, 누가 봐도 안쓰러운 자세로 걷고 있을 나를 붙잡는 목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속으로 참을 인을 생각하며 살짝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카게야마였다. 녀석은 뭐가 그리 불만인지평소에도 화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나를 두 눈을 양 옆으로 쭉 째서는,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또 녀석한테 얼마나 많은 욕을 얻어먹을까 생각하며 그저 멋쩍게 웃으며 자리에 멈춰 서 있으니, 녀석이 나한테 재빠른 속도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순간 당황스러워 뒷걸음질을 몇 번 쳤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어느새 내 등엔 딱딱하고도 서늘한 물체가 닿아 있었다. 더 이상 내가 뒤로 도망칠 수 없도록, 그렇게 벽은 날 가로막았다.

 

아아. 난 지금 여기서 무얼 하고 있는 것인가. 지금의 상황을 단 한마디의 말로 설명하자면, 흐음. 뭐라고 표현하는 게 가장 좋고, 적합할까. , . 아 그래. ‘최악이라는 단어가 알맞을 것이다. 그래, 지금 이 상황은 내게 있어서 매우 최악이다.

 

……………. 서로의 호흡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 카게야마는 벽에 저의 이마를 댄 채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왠지 모를 긴장감에 나는 침을 꿀꺽 소리가 나도록 삼켰다.

 

, 무슨 일인데?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치면서, 거기다 말까지 더듬음으로써 지금 나 긴장하고 있어요.’를 아주 제대로 광고하는 나였다. 이런 내 행동이 웃겼는지, 잠시 두 눈을 깜박이면서 나를 가만히 바라보던 카게야마는, 이내 한 쪽 입 꼬리를 씩 올려보였다. 평소와는 너무도 다를 이상야릇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화를 내기는커녕, 웃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카게야마가? 나도 모르게 얼빠져서는 절로 입을 벌리고 있었는지, 카게야마가 손수 내 입을 닫아주었다. 그리고는 내 두 어깨를 잡으며 나와 이마를 맞대는 행동을 취했다. 더욱 가까워진 거리에 나도 모르게 그만, 숨을 확 멈추었다.

 

드디어 이 자리까지 왔는데도 넌 어떻게 항상 배가 아프냐? 멍청이. 너도 참 한결같다.”

내가 뭐, 배 아프고 싶어서 아픈가.”

뭐 그건 내 알 바 아니고.”

 

알 바 아니면 손을 치우든가, 머리를 떼든가 둘 중 하나라도 하라고. 내 뾰로통한 얼굴에 쓰여 있을 속뜻을 읽은 건지, 카게야마가 팔을 쭉 뻗어 나와 일정거리를 유지하였다. 내 두 어깨를 쥐고 있는 녀석의 손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다. 카게야마는 나를 지그시 바라보며, 사뭇 진지한 어조로 말하기 시작했다.

 

“3학년 선배들과 같이 코트 안에서의 즐거움을 공유할 수 있는 기회의 끝에 다다랐어.”

.”

, 이번 봄 대회 동안 우리에게 있어서는 모든 경기가 기회의 끝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어쨌거나 우리는 강한 팀들을 이기고, 이겨서 올라왔고. 그랬기에 계속 코트 위에 서 있을 수 있었어. 그리고 지금도 서 있잖아?”

그렇지.”

이제, 전국 대회야 히나타.”

 

그러네. 드디어 전국 대회네. 이곳이 전국 대회의 장소란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으니, 잠시 사라졌던 배의 고통이 찾아오는 느낌이 들었다. 아찔한 함성소리가 정신을 울리는 듯 하다.

 

긴장하지 마.”

안 하려고 노력하고 있거든!”

노력 할 필요 없이, 그냥 즐기자 우리.”

?”

내가 예전에 했던 말 기억해?”

 

내가 있으면 넌 최강이야.

 

내가 있으면 넌 최강이야.”

 

잊었을 리가 없다. 그 말을. 이 말로 하여금 너와 나의 사이가 더 가까워진 것이라고, 내가 당당하게 말 할 수 있는, 그런 말이었으니까. 카게야마는 내게 그 말을 남기고선 내 어깨를 두어 번 두드린 후에, 뒤돌아 코트 안으로 들어갔다. 뭔가. 배의 고통이 사라진 듯 했다. 나 역시 녀석을 따라 코트 안으로 들어섰다. 잠시 후 경기가 시작된다는 안내 음이 들려왔다. 그러자 사람들의 환호 소리는 더욱 커졌고, 우리들은 미소를 지었다. 서로 둥글게 모여, 가운데에 서로의 손을 올리고, 파이팅을 외쳤다.

 

삐이익. 경기가, 시작되었다.

 

 

*

 

 

말 했잖아.”

……….”

내가 있으면, 넌 최강이라고.”

 

마지막 순간에 녀석의 토스를 치는 것을 망설여 했다. 그 날의 아찔한 기억과 겹쳤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녀석은 이런 나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토스를 내게 줌과 동시에 외쳤다. 자신이 있으면, 나는 최강이라고. 내게 그렇게 말 해주었다. 이 말이 내 정신을 똑바로 차리게 해주었는지, 나는 그날의 기억을 이기고 스파이크에 성공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들리는 경기 종료를 알리는 소리에 나는 손바닥의 짜릿함이 온 몸으로 퍼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녀석은, 경기가 끝나고 한껏 전율을 느끼고 있는 내게 다가와 말했다. 녀석의 말에 나는 말간 웃음을 지어보였다.

 

나만 최강이 되는 게 아냐.”

……….”

너도 내가 있으면, 더욱 최고가 된다고. 카게야마.”

 

마주보는 웃음 속, 우리는 서로의 감정을 공유했다. 즐기자. 앞으로도, 이렇게 쭉.

 

 

 

 

 

*모든 글의 저작권은 월화비월(@Moon_m0406)에게 있습니다.

*재업(2015.08.07)

*수정(2015.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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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Q/조각조각

너희와

 

 

 

written by. 월화비월

 

 

 

 

그럼 스가, 내일 봐.

 

평소와 같았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 모두와 함께 코트 위에 더 서있을 수 있도록, 그만큼 몸이 탈진해도 좋을 정도의 연습이 끝나면 이미 해는 지고, 미처 다 숨지 못해 수줍은 붉게 물든 노을이 살짝 삐져나와 보이는 정도였다. 다이치에게, 그리고 모두에게 문은 내가 잠그고 가겠다며 먼저가라고 겉에 미소를 지어보이면 그 아이들은 내게 환한 미소를 보여주며 손은 흔들었다. 서로에게 장난을 쳐대며 걸어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에 나는 조용히 몸을 떨었다. 인사를 하려 들었던 손은 이미 떨어진지 오래였다. 나도 모르게, . 손바닥에 상처가 날 정도로 주먹을 꽉 쥐었다.

 

그렇게 아이들의 뒷모습에 길게 늘여진 그림자가 흔적을 감추었을 때가 돼서야, 나는 가면을 벗을 수 있었다. 언제 웃었냐는 듯 미소를 짓던 얼굴에는 쓸쓸한 잔해만이 남아 감돌았다. 체육관 문을 닫고, 나는 다시 땀 내 진동하는 체육관 안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연습을 해서, 내 실력을 길러야 했다. 모두와 함께, 같이 있기만 해도 즐거워지는 그 아이들과 함께 코트 위에 서기 위해서. 내가, 코트 위에 설 수 있도록.

 

정정당당하게, 세터로서.’

 

너의 천재성을 이기고 함께 코트에 서기엔,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연습뿐이었다.

 

 

 

 

***

 

 

 

 

끼긱, . 운동화에 쉴 새 없이 맞닿는 체육관 바닥이 찢기듯 날카로운 소리를 내었다. 왠지 모를, 규칙적이지 않은 소리가 영 마음에 들지만은 않는다. 점점 무거워지는 무릎은 내 불안감을 형성시키기엔 딱 이었다. 그러나 나는 연습을 멈출 수는 없었다. 아무리 몸이 지치고, 힘들어도 연습을 멈춰서는 안 될 일이었다. 그랬기에 나는 연습을 멈추고 잠시 쉬기는커녕, 더 열심히 연습에 임했다. 이미 체력은 바닥난 상태였다. 오로지 정신력으로, 나는 버텼다. 반드시 코트 위에 서야만 했으니까. 한 번의 성공을 위해, 나는 있는 힘껏 달렸다. 날아올랐다. 마치 그 아이처럼.

 

!”

 

. 결국 사고가 나 버렸다. 너무 무리한 탓일까, 도약을 할 때 발을 헛딛었는지, 공중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그만, 그대로 바닥에 떨어지고야 말았다. 무릎이 욱신욱신 거린다. 젠장. 오늘 제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싶어 혼자 작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떨어진 것이 얼마만큼의 높이겠냐 하겠지만 체중을 실은 채로 바닥에 정면으로 무릎을 부딪쳤기 때문에 그 고통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아프다. 나는 넘어진 그 자리에 그대로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내 눈을 자극하는 형광등의 빛에, 이내 알 수 없는 눈물이 땀과 함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 애꿎은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주먹을 쥔 손이 부들부들 떨려온다.

 

체육관 안은 조용했다. 그저, 내 숨소리와 더불어 나와 함께 추락한 공만이 데굴데굴, 굴러가는 소리가 무거운 침묵 속에 존재할 뿐이었다. 숨통을 조이는 것 같은 답답함에 나는 주먹을 쥔 손을 올렸다가 내리며 바닥을 한 번 내리쳤다. , 둔탁한 것이 체육관 안 전체에 울려 퍼진다.

 

. 저릿해오는 손을 느끼고 있자하니, 방금 내가 무슨 짓을 한 걸까 싶어 옅게 조소를 흘렸다. 명색에 세터라는 자리에 있는 놈이 손까지 막 쓰려 하다니. 아무래도 오늘은 여러모로 풀리는 일이 하나도 없구나 싶다.

 

천재. 그랬다. 그는 천재였다. 일개 콘크리트 바닥 세터로 활동하던 내가 이미 정상에 우뚝 서 있을 천재 급에 맞서려고 한 것부터가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나는 아마, 코트에 설 수 없을 거야.’

 

이미 예전부터 깨닫고 있던 사실이었건만, 막상 스스로 인정하니 내 신세가 너무 가엾고 처량하다. 나는 발악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무리 발악을 하고, 난리를 쳐대도 넘어설 수 없는 벽을 앞에 두고.

 

자리에서 몸을 반쯤 일으켜 통증이 있던 무릎을 바라보았다. 붉게 데인 듯, 무릎은 금방이라도 퍼런 멍이 들 것만 같았다. 이러면 내일 연습 때 애들이 걱정할 텐데. 다시 동복 체육복을 입어야 하나. 멍을 보고 걱정할 아이들의 반응을 상상하자, 나도 모르게 피식 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땀을 삐질 흘리면서 두 눈에 커다란 물방울을 단 채 으엑! 선배 무릎 왜 그래요!’ 하고 저가 더 아프단 듯 인상을 찡그릴 그 아이를 생각하니 더욱 더 웃음이 나온다.

 

보고 싶어.”

 

왜 일까, 갑자기 그 아이가 미치도록 보고 싶다. 그 아이가 해맑게 미소를 짓는 걸 보고 있으면 지금의 꿀꿀한 감정이 말끔히 사라지고, 나도 함께 미소를 지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히나타 쇼요, 나와 달리 티 없이 맑은 미소를 짓는 네가 보고 싶다. 그 아이의 진심 어린 미소가 나를 감싸주기를, 지금 나는 간절히 바랐다.

 

?!”

? 우음. 안녕, 형아!”

 

내 머릿속에 든 생각은 딱 하나였다.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나. 갑자기 밝은 빛이 한 데 모여지더니 그 곳에서 작은 몸체의 어린아이가 뿅, 하고 튀어나올 확률이 이 세상에 확률이 과연 몇이나 될까. 방금 내 눈앞에서 일어난 일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니, 상식적으로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이야?

 

형아! 그 곳에서 나온 아이가 나를 보고 꺼낸 말이었다. 나를 언제 봤다고 저리 친근하게 부르는 지 도통 감이 잡히지는 않았지만, 요 녀석의 순진하고도 동글동글한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니 방금 전까지만 해도 싱숭생숭했던 마음에 안정이 찾아오는 것 같았다. 어지럽다. 꼬마에게서 나는 묘한 향기가 내 후각을 자극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이 애의 체취는 마치 내가 잘 아는 그 애와도 같아 나를 혼란스럽게만 했다.

 

형아? 무슨 생각 해?”

 

그저 멀뚱히 꼬마아이를 바라봤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머릿속은 여전히 복잡했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계속해서 내게 말을 걸어왔다. 대답을 계속 재촉하는 아이가 꼭 그 애 같다. 자세히 보니, 외관도 그 애와 비슷했다. 상큼한 오렌지 빛깔의 곱슬머리하며, 둥글면서도 꽤나 위로 올라간 눈매에. 그리고 이건 내 생각이지만, 지금 내가 그 토록이나 바랐던 웃을 때의 분위기까지 닮아있었다. 형아? 내게 불쑥 얼굴을 들이미는 꼬마에 내가 깜짝 놀라 몸을 뒤로 빼니, 아이는 베시시 웃는다. 화악. 순간적으로 얼굴이 달아올랐다. 나는 빨개졌을 얼굴을 숨기기 위해 잽싸게 다리를 모아 무릎에 고개를 묻었다. 언제부터 이런 취향이었냐, . 한참 어린 아이에게 설렌 내가 한심해 속으로 스스로를 타박했다.

 

까르륵. 아이의 자지러지는 웃음소리가 내 귓가를 울린다. 아직 더러운 거라고는 묻지 않은 순수함, 그 자체였다. 세상을 두려울 것 없이 밝게만 바라보는 이 아이도, 언젠가 나처럼 절망의 쓴 맛을 맛보게 될까. 저 아이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짝 고개를 들어 여전히 웃음소리를 내고 있는 아이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어떻게 눈치 챈 건지, 아이는 얼마 되지 않아 나를 바라보며 눈웃음을 지었다. 마주치는 시선에 가슴이 간질거린다.

 

창밖을 보니, 조금이나마 노을 서렸던 하늘은 깜깜해져 있었고, 어둠 그 자체였다. 이제 완전히 밤이 찾아온 시간대와, 밖에서 들리는 수위아저씨의 우렁찬 목소리에 나는 연습을 끝내고 집에 돌아가야 했다. 이 아이를 어쩌지. 집에 데려갈 수도 없을뿐더러, 혼자 두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꼬마야. 아이의 웃음소리 가득했던 공간에 내 목소리가 섞인다.

 

아이는 대답이 없었다. 뭔가 잔뜩 불만은 가진 얼굴을 하고서는 쀼루퉁하게 두 볼을 부풀린다. . 내가 당황한 채로 저를 바라보자, 꼬마는 그 짧은 다리로 총총걸음을 하며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끔벅끔벅. 내 코앞까지 다가온 아이를 그저 바라보는데, 아이가 내게 손을 뻗는다.

 

형아, 웃어!”

 

저의 검지를 내 입가에 갖다 대고 억지로 호선을 그리며 올리는 행동을 취하는 아이의 모습이 여간 웃긴 게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살포시 풋, 하는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아마 꼬마의 불만은 내 기운 빠진 목소리였나 보다. 나보고 웃으라는 꼬마가 기특해 머리를 두어 번 쓰다듬었다. 내가 쓰다듬는 게 좋았던 건지, 이때부터 아이의 재롱이 시작되었다. 나를 어떻게든 웃게 하려고 열심히 하는 모습에 그저 흐뭇하게 아이를 바라봤다. 방금 전까지 절망의 늪에 빠져들기만 했던 몸이 점점 빠져나오는 기분이 들었다.

 

거기, 체육관! 빨리 문단속하고 집 가라니까!”

 

에크.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아이의 재롱을 보고 있으니 어느새 시간이 많이 흘렀나 보다. 수위아저씨의 성난 목소리가 이 체육관 안까지 크게 울렸다. . 이제 이 아이와 헤어져야 한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아쉬움의 탄식을 내었다. 그런 나를 본 아이가 고사리 같은 저의 손으로 내 손을 덥석 잡으며 말하기 시작했다.

 

형아.”

?”

형아는 열심히, 최선을 다했으니까 결과도 좋을 거예요.”

……….”

괜찮아요. 그러니까 울지 말아요. 형은 웃는 게 더 잘생겼어요!”

 

아이가 말을 마치자마자 아까의 환한 빛이 아이의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아이의 말에 힘이 나는 반면,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점점 갈수록 문드러지기만 하는 내 속을 위로해주는 사람은 없었는데, 이렇게 아이에게서 갑작스레 위로를 받으니 속이 한순간에 탁,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 그렇구나. 어느새 떨궈진 고개에 나는 속으로 눈물을 삼켰다. 그리고 미소를 지었다. 아까 꼬마가 직접 그은 호선처럼, 내 입가에 호선을 그린 채 환한 얼굴로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이 역시 나를 따라 환하게 웃어보였다. 아이의 몸이 빛으로 다 감싸지기 전, 나는 말했다.

 

고마워.”

 

고마워, 라고. 진심을 다해 말하자 아이가 더 해맑게, 베시시 웃음을 짓는다. 그렇게 아이는 웃음을 짓다가도 그 커다란 눈을 더 크게 떠 보이며 깜짝 놀라했다. 당황한 듯 아이는 나를 보며 재빨리 입을 열었다.

 

형아!”

……….”

내 이름은!”

 

 

 

 

***

 

 

 

 

, 스가와라 선배! 오늘은 저희랑 같이 가시네요!”

. 오늘은 너희랑 있는 게 좋을 것 같아서.”

 

흐음, 그렇구나. 히나타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나와 이렇게 말하다가도 카게야마가 조금의 틈이라도 보이면 잽싸게 그걸 물고 늘어지는 히나타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눈이 몇 개라도 더 있는 것만 같아. 이젠 말리기도 지친다는 듯 신경조차 쓰지 않고 아사히와 간간히 말하며 길을 걷는 다이치와, 죽이 척척 맞는 타나카와 노야, 조용히 걷고 있는 츠키시마와 그 옆에서 말을 건네는 야마구치까지. 도저히 하나로 모여지는 것 같지는 않은, 이 뒤죽박죽한 곳이 난 좋다.

 

스가와라 선배, 빨리 와요! 카게야마가 아이스크림 쏜대요.”

? 내가 언제! 히나타, 이 멍청이가!”

 

카게야마의 손을 피하며 환히 웃는 히나타의 얼굴이 꼬마의 해맑게 웃는 모습과 겹친다. 노을빛과 어울리는 따스한 웃음에 나도 따라 미소를 지어보이며 소리쳤다.

 

같이 가!”

 

 

내 이름은!’

히나타 쇼요 예요!’

 

그것이 코트에서든, 여기에서든지 상관없이,

나는 여전히, 그리고 언제까지나. 너희와 함께 웃을 수 있기를 바라.

 

 

 

 

 

하이큐 어린이날 합작 : dbal0325.wix.com/hq-free 

 

 

*모든 글의 저작권은 월화비월(@Moon_m0406)에게 있습니다.

*재업(2015.06.02)

*수정(2015.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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