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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ruto

*트위터에서 푼 썰을 기반으로 쓴 글입니다.

 

*수위가 다소 많이 포함되어 있으니 가능한 만 18세 이하인 분들은 글을 보는 것을 지양하시길 부탁드립니다.

 

 

 

 

 

 

 

 

 

 

 

 

카카나루

 

 

 

writter by. 월화비월

 

 

 

*

 

 

 

선생님? 여긴, 콜록, 어쩐, 일이냐니깐요?

 

 

무더위가 한창인 날이었다. 몸을 가만히 내버려 둬도 더워 땀이 주르륵 나는데,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방금 샤워를 한 것 마냥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됐다. 이것이 복면을 쓴 은발의 사내를 맞이하는 금발의 소년이 개도 안 걸린다는 그 여름 감기에 걸린 원인이었다.

 

 

소년은 최근 밤마다 선풍기를 가장 세게 틀고 잠에 들었다. 이 무더위에 소년이 한 행동은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소년이 얇은 이불이라도 덮고 자긴 커녕, 스스로 이불을 발로 뻥 차 던져버리고는 시원하게 배를 깐 채 잠을 잤다는 거였다.

 

바보는 감기도 안 걸린 다더니.’ 저번 여름 때 감기에 걸렸던 제 친우를 실컷 놀린 소년이 들은 말이었다. 소년은 그 당시 불같이 화를 내며 바보라서가 아니라 건강해서라니깐! 사스케, 네가 몸이 약한 거라구!’ 하고 덤벼들었던 자신이 후회스러웠다. 지금, 그 여름감기를 저가 걸리고 말았으니……. 견디기 힘든 더위에 방심한 결과였다.

 

그놈 생각을 하니 안 그래도 열 때문에 지끈거리는 머리가 더 아파지는 것 같았다. 아마도 그놈은 감기 걸린 저를 보고 입가에 비웃음을 머금고서 한심하다는 듯 그 짜증 나는 표정을 지을 것이다. 순간 그것을 상상한 소년이 끔찍하다는 듯 발버둥을 쳤다.

 

……그나저나, 덥다. 분명 더워 죽겠는데, 또 몸이 달달 떨리면서 추위가 느껴진다. 이게 무슨 경우인가. 다시는 경험하기 싫은 이중성에 소년이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그렇게 소년은 오늘 갔어야 할 임무를 취소하고 이불을 뒤집어쓴 채 모처럼의 휴일을 보내고 있었다. 그래. 이렇게 나름 감기에 걸린 것도 괜찮다 생각하며 평화를 즐기던 중에, 그가 온 거였다.

 

 

몸은 좀 괜찮니, 나루토?

 

 

덥지도 않은지 복면으로 얼굴의 반을 가린 그 사내가. 생각지도 못한 사내의 방문에 소년의 얼굴엔 당혹함이 서렸다. 심지어는 말까지 살짝 더듬은 채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깜박깜박, 감았다 뜨기를 반복했다.

 

 

, 선생님은 지금 호카게 집무실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니깐요?!!

 

그게……. 아무래도 걱정이 돼서 말이야. 잠깐 들렸지.

 

 

소년의 말에 사내가 곤란하다는 듯 뜸을 들이더니, 이내 한 손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아무리 잠깐 들렸다 하더라도, 호카게의 일을 하다가 때려치우고 왔다는 뜻이었다. 마을을 대표하는 사람이 이래도 되나, 순간적으로 어이가 없었지만 저가 걱정이 됐다는 말에 소년의 얼굴이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발갛게 물들었다.

 

 

 

잠깐, 나루토. 너 갑자기 열이 더 오른 것 같은데...

 

, 우아아악―――!!!!! , 괜찮, 괜찮다니깐요! 어서 들어와서 컵라면이라도 먹고 가라니깐!

 

 

 

사내가 순식간에 얼굴 전체가 발갛게 된 소년의 상태에 놀라며 이마에 제 손을 갖다 대었다. 그러지 않아도 쿵쾅대는 심장에 힘든데 사내의 손이 닿자 소년은 화들짝 놀라며 세상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뒷걸음질 쳤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비명은 덤이었다.

 

흐음. 사내가 뭔가 짐작 간다는 듯 신음했다. , 역시 귀엽네. 사내가 남 몰래 살짝 웃음을 터트리고는, 이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소년을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끼이익, 방문이 닫히는 순간에 마지막으로 보인 사내의 뒷모습이 어째선지 들떠 보인다.

 

 

 

 

 

 

 

 

덥다. 덥다. 덥다. 덥다. 덥다. 덥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뜨거웠다. 저를 바라보는 사내의 저 눈빛이. 소년은 쉬지 않고 전력질주를 하는 제 심장을 진정시키려 애썼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계속해서 저에게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는 사내와의 거리에 소년은 그저 손가락과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눈치를 봤다.

 

이제는 아예 제 옆에 철썩 달라붙은 사내였다. 소년은 괴로웠다. 너무 행복한데, 그만큼 심장이 고통 받고 있었으며 머리가 어질어질해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런 소년을 뜨거운 눈빛과 함께 걱정스럽다는 듯 애틋한 눈길로 바라보며 사내가 손을 뻗어 소년의 볼을 쓰다듬었다.

 

사내가 다른 손으로 복면을 내리며 저에게 다가온다. 자칫 조금만 움직여도 입술이 닿을 것만 같은 거리에 시간이 정지된 것처럼 소년의 움직임이 멈췄다. 숨도 함부로 쉴 수 없었다. 사내의 눈을 마주하던 소년은 견딜 수 없다는 듯 눈을 질끈 감으며 침을 꿀꺽 삼켰다.

 

둘은 서로의 향기에 취하고 있었다. 이 무더운 날씨보다 더한 뜨거움을 두 사람은 느꼈다.

 

소년의 이마에서부터 땀 한줄기가 주르륵 흐르더니 곧 소년의 뺨을 만지던 사내의 손에 닿는다. 촉촉한 느낌에 그곳에 잠시 시선을 둔 사내가 다시 소년만을 제 눈에 담았다. 사내는 조심스럽게 소년의 뒷덜미에 손을 가져다 놓더니, 순식간에 소년의 입술을 덮쳤다.

 

깜짝 놀란 소년이 사내의 가슴팍을 두드리며 몸을 뒤로 빼내려 했다. 허나 사내가 소년의 뒷덜미를 감싸 잡은 건 이렇게 소년이 빠져나가려 할 것을 대비한 행동이었기에, 소년은 조금도 사내의 품에서 빠져나가지 못했다. 오히려 발버둥을 칠수록 제 뒷덜미를 감싸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가 사내의 품 속에 더 깊숙이 파고들어져 갈 뿐이었다.

 

사내는 소년의 뒷덜미를 받치지 않은 다른 팔을 이용해 소년을 제 품에 꽉 껴안고서 키스를 이어갔다. 먼저 소년의 치열과 잇몸을 곧게 핥은 사내는 잠시 쉬지도 않고 혀를 빨아들였다. 한참을 그러다 숨을 쉬기 위해 살짝 입술을 떼어내다가도 다시 소년의 입술을 먹은 사내는 입맞춤을 한동안 멈추지 않았다. 꼭 소년이 지금 쥐고 있는 이성의 끈을 끊어버리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곧, 사내는 그것을 이루어냈다. 소년이 저의 목을 감싸 안는다.

 

사내가 만족했다는 듯 씩 웃으며 소년에게서 입술을 떼어냈다. 긴 시간 동안 입을 맞춰왔음을 알려주듯 투명한 실이 곡선을 그리며 두 사람의 입과 입을 연결하다 툭, 떨어진다.

 

하아, ……. 소년이 꽤나 거칠게 호흡하며 사내를 지그시 쳐다본다. 자세히 보니 이미 땀으로 범벅이 된 소년에 사내가 아차, 하며 한숨을 쉬었다. 이대로 땀이 식으면 소년의 감기는 더 심해질 터였다. 하지만 이대로 소년을 씻기도 잠에 들게 하기엔 저의 욕망은 이젠 멈출 수 없는 지경에 다다랐다. 잠시 고민하던 사내는 곧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능글맞게 웃으며 소년의 두 볼을 어루만졌다.

 

 

 

덥지, 나루토.

 

콜록, 하아.

 

물속에 들어가지 않을래?

 

 

 

………물론, 같이. 사내의 낮은 음성이 소년을 유혹하듯 귓가를 간지럽혔다. 이미 정신이 몽롱해져 사태를 파악하기 힘든 소년은 고개를 쉽게 끄덕였다. 소년의 응답에 사내가 다시 입을 깊숙이 맞춰가며 가볍게 소년을 안아들었다.

 

 

 

 

 

 

 

 

 

하읏.

 

 

 

첨벙거리는 물소리와 함께 소년의 가느다란 신음이 터져 나왔다. 미적지근한 물이 담긴 욕조에 실 오가리 하나 걸치지 않고 서로 딱 붙어 앉아있는 것은 두 사람에게 더 큰 욕망을 불러일으킬 자극이 되기에 충분했다.

 

소년을 제게 완전히 기대게 하여 앉힌 사내는 한치의 틈도 주지 않고 계속해서 소년의 몸 이곳저곳을 탐했다. 가장 가까이 닿아있는 소년의 목덜미를 살짝 깨문 채, 한 손으로는 소년의 허벅지를, 다른 한 손으로는 소년의 가슴을 어루만졌다.

 

 

 

, 생님, , 잠깐………!

 

 

 

급기야 사내의 손이 소년의 사타구니 근처로 향하자, 소년이 다급하게 사내의 팔을 잡으며 소리쳤다. 그러나 사내는 소년의 두 팔을 한 손으로 쉽게 제압하고는 소년의 성기 주위를 자극하며 애를 태웠다. 부끄럽지만 차라리 그것을 잡고 흔들어주기를 원한다고, 소년이 얼굴을 잔뜩 붉히며 생각했다.

 

 

 

선생님, 제발, 흐윽, 카카시 선생, ……. .

 

 

 

소년이 애원하며 신음했으나, 사내는 원하는 대로 해 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저 계속 소년을 애태웠다. 잠시 그것을 툭, 건드리다가도 소년의 사타구니를 원 그리듯이 쓰다듬었으며, 소년이 버티지 못하는 것 같아 보일 때쯤이면 키스를 해 다시 정신을 못 차리도록 유도했다.

 

이제는 아예 소년이 눈물을 글썽이며 사내의 몸에 기댄 채 몸을 축 늘어트렸다. 물의 차가움 사이로 뜨거운 무엇인가가 움찔, 움찔, 하고 제 허리에 닿고 있었다. 잠시 입맛을 다신 사내가 입을 열었다.

 

 

 

나루토.

 

선생님, , 기분이 이상하다니깐요……. , 어서, 아흑, 미치겠다구요…….

 

네가, 원한 거야.

 

 

 

내가 원한 게 아니라, 네가. 사내의 말 뜻을 이해하지 못한 소년이 고개를 갸웃할 즈음, 갑작스러운 사내의 행동에 소년은 헉 소리도 내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사내가 소년의 그것을 움켜쥐고는 거세게 위아래로 흔들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연이어 한 손으로 간단히 소년의 허리를 살짝 들어버리고는, 소년의 아래에 나있는 작고 연약한 구멍에 자신의 크게 부푼 그것을 맞췄다.

 

사내는 천천히 소년의 그곳에 제 것을 끼워 맞춰 넣고 있는 와중에도 소년의 그것을 쓰다듬는 것을 잊지 않았다. 역시, 사내가 생각한 대로 소년은 몰아치는 황홀감에 제 아래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눈치채지 못했다. 이내 사내의 것이 소년과 완전히 합쳐진 순간 사내의 손놀림은 빨라졌고, 소년은 크게 신음하며 앞으로 추욱 쓰러졌다.

 

소년이 제 아래에서 느껴지는 이물감을 알아챈 건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참고 참던 제 것이 자유로움을 되찾은 시원함을 느낀 후였다. 곧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소년이 사내의 허벅지를 꽉 움켜지며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사내가 소년의 허리를 딱 붙잡고 있는 탓에 소년이 다시 철퍼덕 주저앉았다. 곧바로 철퍽 하는 물소리와 동시에 제 그곳으로 들어오는 찬물의 느낌에 소년은 저의 정신이 떠나려는 걸 간신히 붙잡았다. 사내의 허벅지를 잡고 있던 소년의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간다.

 

 

 

………? 잠깐, 잠깐만요, 선생님 지금 뭐하는 거라니깐, ! , ……!

 

 

 

기어코 사내가 제 허리를 움직였다. 사내의 허리 운동이 빨라지면 빨라질수록 소년의 신음은 점점 더 커져갈 뿐이었다. 여전히 소년이 제 허벅지를 꽉 움켜쥐고 있는 탓에, 살짝 상처가 난 듯 그곳이 쓰라렸지만 이런 자잘한 것은 사내의 허리를 멈추게 할 수 없었다. 오히려 자극이 돼 욕실 가득 소년의 신음이 울려 퍼지게 됐다.

 

소년의 허리가 활처럼 휜다. 제 몸 안으로 뜨거운 것과 차가운 것이 동시에 느껴져 정신을 제대로 차리기 힘들었다. 어느새 사내와 마주 본 자세로 사내의 목에 제 두 팔을 걸고 사내에게 제 몸을 완전히 맡기는 게, 현재로서 소년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정말로 자신이 이상해지고 있음을 느꼈다. 조금씩 아팠던 게, 이제는 고통이 무엇이었는지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계속 느껴지던 이물감이 더, , . 더 큰 자극으로 다가오기를 소년은 바라고 있었다.

 

사내의 허리가 점점 더 빨라졌고, 소년이 두 눈을 꼭 감은 채 사내의 목덜미에 제 고개를 파묻었다.

 

 

 

, ! 흐윽, . 카카시, , , 하아, 선생님, 흐으!

 

 

 

사내의 허리 움직임과 비례하는 소년의 고조되는 신음은 사내의 커질 대로 커진 욕망을 더욱 자극했고, 사내는 소년의 입에 제 입을 맞추며 마지막 가속도를 가했다. 소년과 사내에게서 무어라 표현하기 힘든 큰 욕망이 알 수 없는 속도로 차올랐고, 그 끝을 달리고 있었다.

 

 

 

―――――.

 

 

 

가장 야릇한 소년의 신음이 욕조뿐만 아니라 집안 전체를 크게 울렸다. 촤아악, 하고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욕조 안 담겨있던 물들 역시 출렁이며 밖으로 쏟아졌고, 두 사람은 크게 숨을 고르며 그대로 서로 껴안은 채 욕조에 몸을 기대 눕혔다.

 

방금까지 욕정에 시달렸던 탓에 얼굴이 발그레하긴 했지만, 그래도 시원한 물속에 한동안 있었었기 때문인지 소년의 체온이 살짝 낮아졌음을 사내가 느끼고는 만족한 듯 씩 웃더니 소년의 볼에 살짝 입을 맞춘다. 이에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던 소년이 정신을 차리고는 방금 전까지의 생생한 기억들에 부끄러워하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정말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사내가 소년을 안아들고는 그대로 욕실을 나선다. 제 머리에서부터 뚝, , 떨어지는 물기를 사내가 닦아주고 있는 와중에도 얼굴을 가리고 있는 소년에, 얼굴이 보고 싶었던 사내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소년의 귓가에 속삭였다.

 

 

나중에 또, 같이 물속에 들어갈까?

 

………선생님!

 

이제야 얼굴 보여주네. 토마토 같은 게 귀엽다니까.

 

진짜, 진짜……! 변태냐니깐요……….

 

 

사내의 말에 소년이 크게 반응하며 소리쳤고, 아파서 발갛게 된 것과는 확연히 다른 시뻘건 얼굴로 저를 쳐다보는 소년에 사내가 미소 지었다. 그대로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자, 소년이 고개를 푹 숙인다. 귀까지 붉어진 모습이 사랑스러웠음에, 사내는 물기를 닦아주다 말고 제 품에 소년을 꽉 껴안았다. 다시 한 번 소년의 귓가에 제 할 말을 간지럽히는 걸 잊지 않고서.

 

 

 

그럼, 지금 다시 같이 들어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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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Q/조각조각

 

 

 

 다를 게 하나 없는 날이었다. 그저 언제나처럼, 놈을 똑같이 대하고 있었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그 날 역시 멍청이 같은 짓을 하는 녀석의 목에 팔을 두른 채 힘을 주었다. 문득, 선선한 봄날임에도 불구하고 ‘덥다.’ 고 생각했다.

 

 속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더위가 온몸을 감싸며 피부를 발갛게 물들인다. 점점 빨라지는 심장 박동 소리가 내 귓전을 둥둥 울렸다. 생소한 느낌이 낯설어 적응하지 못한 몸에 거부반응이 나타났다. 살갗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같지 않다. 이미 평소하고는 무언가 크게 달라져 있었다.

 

 

 아아. 정신이 혼미하다. 녀석이 내게서 빠져나오겠다고 발버둥을 치며 고갯짓을 할 때마다 놈의 머리카락이 내 목을 간질였다. 오이카와와 꽤나 어울리는 청량한 샴푸 향이 코를 자극했다. 동시에 온몸이 탁, 하고 힘이 풀렸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녀석이 내게서 빠져나왔다.

 

 놈이 나를 바라보며 브이자를 그리고 웃고 있다.

 


 벚꽃을 닮은 웃음이었다.
 크게 바람이 불었다. 그것을 견디지 못한 벚꽃잎들이 떨어져 내린다. 한창 벚꽃비가 흩날리던 그때, 내 뺨에 벚꽃이 스쳐 지나가며 연분홍으로 물들어갔다.

 

 내 생에 첫 봄을 스스로 자각한 순간이었다.

 

 

 

 

 

*

 

 

*@89st_design 님 커미션입니다.

 

隻愛_척애

 


Oikawa Tooru X Iwaizumi Hajime

 

written by. 월화비월

 

 

 

*

 

 

 

 

 

 언제나 자기 자신 보다 배구를 우선순위로 생각하는 녀석이었다. 게다가, 목표를 잡은 건 어떻게든 해내려고 하는 그런 독한 끈기를 가지고 있었기 태문에 오버워크를 할 때가 종종 있어서 이런저런 골치가 아니었다. 다치는 건 기본에, 가끔씩은 정말 위험했을지도 모르는 별의 별 일이 일어났다. 당연히 아주 오래전부터 녀석은 내게 ‘망할 바보’ 라고 굳혀질 수밖에.
 
 그래, 망할 바보. 쓸데없는 바보지만 때때로는 믿음직스러운 놈이라고.
 오이카와 토오루는 내게 딱 그 정도의 존재였다. 또한,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져온 인연의 끈을 나누고 있는 녀석이기에. 더욱 녀석을 아무렇지 않게 대하려고 노력했다.

 

 

 오이카와를 보면 저도 모르게 떨리는 가슴을 다독이며 평소처럼 대하기 위해 애를 썼다. 그 노력이 조금은 통한 걸까, 나날이 갈수록 속에서 타오르던 불길은 재가 되어 흩어져갔다. 그러나 남은 잔해들은 가슴을 꽉 막히게 했다. 숨이 막혀와 괴롭다. 괴롭지만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해야만 했다. 아마, 그 잔해들은 친구를 좋아한 내게 내리는 벌 같은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와쨩―.”

 

 

 

 녀석에게 나는 ‘친구’ 그 이상은 될 수 없을 테니까, 어서 포기하라고 하늘이 내게 주의를 주는 벌. 이 인연을 깨어서는 안 된다고 콱 막힌 가슴에서 통증을 내며 속삭여왔다.

 

 

 

 

 

*

 

 

 

 

 

 학교 측 사정으로 오늘은 부 활동을 하지 말고 빨리 집으로 가라는 공지가 내려졌다. 안 그래도 조금 피곤했는데 잘 됐다 싶어 내심 속으로 안도하며 짐을 챙겼다.

 

 지이익. 가방 지퍼를 끝까지 채우고 어깨에 매는 순간이었다. 드르륵. 교실문이 열린다.

 


 온몸이 문을 열고 들어온 이를 반갑게 맞이했다. 저릿하고 느껴지는 전율에 너라는 걸 알았다. 어느새 네게 몸이 먼저 반응하게 되었구나, 라는 사실에 놀랍기도 잠시 불안한 기운이 스멀스멀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처음 맡는 낯선 향수 냄새였다.

 

 네가 나를 발견하고는 활짝 미소를 짓는다. 이와쨩! 내 이름을 부르는 네 목소리에 가슴이 떨렸다.

 

 오이카와는 밝은 미소를 유지한 채 반갑다는 듯이 손을 흔들며 내가 있는 쪽으로 걸어왔다. 문득 오늘 하루종일 같이 있었는데도 날 저리 반겨주는 네가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악. 얼굴이 달아오른다. 숨겨야했다. 재빠르게 녀석이 있는 곳에서 반대쪽으로 고개를 휙 돌리고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너였냐.”

 

 

 

 후. 녀석 몰래 작게 숨을 내쉬며 심장을 진정시켰다. 역시 놈을 안보는 게 정답이었다. 화끈거리다 못해 새빨갛게 색칠됐던 얼굴이 다시 제 색으로 되돌아갔다.

 

 오이카와는 그런 나를 의아하다는 듯 바라보며 제 턱을 쓸어 만지다 까먹을 뻔 했다는 듯 “아.” 하는 작은 탄식과 함께 제 눈을 크게 떴다. 이내 제 두 눈을 반달처럼 곱게 접은 오이카와가 매혹적인 눈웃음을 띠고는 내 두 손에 제 손을 마주잡고 깍지를 껴왔다.

 

 

 한 순간 사고를 내려야하는 뇌가 작동을 정지했다. 온 몸이 굳는다. 주뼛주뼛 놈의 시선을 어떻게든 피하려 고개를 돌렸다.

 

 아, 녀석이 잡은 두 손에 땀이 꽉 차 금방이라도 뚝, 뚝 흘러내릴 것만 같다.

 

 

 

 “이와쨩, 혹시 어디 아파?”

 

 

 

 흐음. 녀석이 작게 신음하며 내게 얼굴을 가까이 들이댔다. 뭐지 이 새끼, 내 인내심을 시험하는 건가.

 

 금방이라도 얼굴이 펑하고 터져버릴 것 같다. 정신이 혼미하다. 녀석의 냄새에 잠식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이성을 유지하고 있는 건 간간히 맡아지는 낯선 향수냄새 때문이겠지.

 

 나는 잡혀있던 손을 빼내어 오이카와의 머리를 쭉 밀어 내게서 떨어지게 했다.
 이제, 환상에서 깰 시간이었다.

 

 

 

 “안 그래도 몸 상태 별로라서 집에서 쉬려고 했는데 네놈이 지금 방해하고 있잖아. 대체 용건이 뭔데, 망할카와.”

 

 “아, 맞다. 순간 또 잊어 버렸네. 들어와!”

 

 

 

 ……누구를 부르는 걸까. 심장이 불안함에 흔들렸다. 드륵, 하고 열리는 문소리가 왜이리 날카롭게만 느껴지는지. 소리가 바늘이 되어 가슴을 콕콕 쑤셨다.

 

 한 조그마한 여자아이가 우물쭈물 거리며 오이카와의 옆에 철썩 달라붙어 섰다. 그녀에게서는 아까 오이카와에게서 느껴지던 낯선 향수냄새가 더 진하게 풍겨오고 있었다.

 

 너구나, 향수의 주인이. 내 시선이 차게 식어갔다.

 


 너의 옆에 다른 이가 서있다. 아니, 너의 옆에 ‘내’가 아닌 ‘다른 이’가 서있다.


 그녀를 사랑스럽다는 듯 바라보는 너를 보니 순간 머리가 어지러워 가까운 책상을 짚어 간신히 몸을 지탱했다. 향수냄새에 구역질이 나올 것만 같았다.

 

 하. 헛웃음이 터져 나온다. 이럴 줄 알았다면 그냥 너를 무시하고 집에 가는 거였는데. 나는 대체 어떤 희망을 품고서 방금 전까지 녀석의 행동 하나하나에 설레어했는가.

 

 여러 가지가 섞인 감정들이 한꺼번에 몰아쳐와 정신을 똑바로 차리기가 힘들었다.

 


 지금 오이카와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들리지가 않아.

 

 놈의 입모양에 집중하고 있으니 서서히 정신이 돌아오는 듯 했다.

 

 

 

 “―그래서, 이와쨩한테 가장 먼저 소개시켜주고 싶었어!”

 

 

 

 이와쨩? 아무 반응이 없자, 무언가 내 상태가 이상함을 감지한 놈이 고개를 갸웃하며 내게 한발자국 앞으로 다가왔다. 이에 나는 한발자국 뒤로 물러나다 그만, 책상다리에 걸리고 말았다.

 

 결국 쿵 소리를 내며 주저앉듯 넘어진 나는 저릿하게 올라오는 고통에 작게 신음했다.

 

 

 갑작스런 상황에 잠시 행동을 멈춘 오이카와가 얼굴색이 급격하게 변하더니 내 이름을 크게 외치며 다가왔다. 나를 일으키려고 놈이 내 쪽으로 손을 뻗는다. 곧이어 가차 없이 놈의 손을 쳐낸 나는 바닥과 책상을 번갈아 짚었고, 일어섰다.

 


 내게 거절당한 게 충격이 큰 듯 오이카와가 글썽이며 바로 뒤에 있던 여자에게 폭삭 안긴다. 아아, 정말로 실소가 터져 나왔다. 속이 뒤틀려서 울렁거리는 게, 정말이지 금방이라도 토가 쏟아져 나올 것 같았다.

 

그렇지만, 참아야지. 숨겨야지. 그래야겠지. 애써 망가져버린 마음을 달래며 억지로라도 웃음을 지어보려 할 때였다.

 

 

 

 “아, 안녕. 그……, 이와이즈미군……. 미안, 토오루가 오늘 꼭 나를 너에게 소개시켜주고 싶다고 해서.”

 

 

 

 계속 내 눈치를 보던 여자가 여전히 안겨있는 놈을 토닥이며 어색하게 눈웃음을 짓고는 말을 건넸다. 그러고 보니 나, 방금…… 처음 보는 애 앞에서 그렇게 모양 빠지게 넘어졌던 건가……. 조금 창피함이 몰려왔다.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아니야.

 

 

 

 “망할카와가 문제였던거지 네가 왜 사과를 하냐.”

 

 “그렇다면 다행이고! 난 토오루의 여자친구 ――라고 해.”

 

 “……그래, 망할카와―, 아니, 오이카와한테 들어서 알고 있겠지만 난 이와이즈미 하지메라고 한다.”

 

 

 

 ………‘여자친구’라. 확인사살을 당하듯 명확하게 들려오는 저 말이 왜 이리 아픈지. 꼭 저 여자애가 자기 애인한테 딴 마음 품지 말라고 경고를 주는 것만 같이 날카롭게 들려왔다.

 

 

아.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어서, 빠져나가지 않으면―.

 

 

 

 “그래! 내 여자친구는 누구보다 가장 친한 이와쨩한테 먼저 소개해주고 싶었단 말이야! 그런 이 오이카와상의 마음도 모르고, 이와쨩은 정말 멍청이라니까.”

 

 

 

 ―버틸 수 없을 것 같아.

 

 

 순간적으로 울컥하는 마음에 입술을 꾹 깨물고 눈물이 나오려는 걸 참았다. 내가 왜 좋아해도 저 녀석을 좋아해서는. 살짝 억울해져서 괜히 오이카와 놈을 째려봤다. 놈과 눈이 마주친다.

 

 나와 눈을 마주친 녀석의 얼굴이 당혹함으로 가득 찼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거의 얼굴이 잿빛이 된 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라, 왜 그러지. ……지금 얼굴 쪽이 축축한 것이, 나 울고 있는 건가.

 

 

 

 “이와쨩. 왜 그래, 진짜 어디 아파?”

 

 “이와이즈미군, 괜찮아?”

 

 

 

 고개를 돌려 팔로 눈을 벅벅 닦았다. 이와쨩, 여기 봐봐. 어느새 내 코앞까지 다가온 오이카와가 계속 내 이름을 부르는 게 들렸지만, 난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괜찮았다. 정말 갑자기, 그냥 순간적으로 여러 감정이 뒤섞여서 조절하지 못한 것뿐이었으니까. 금방 괜찮아질 거였다. 괜찮아지려고 했다. 오이카와가 내 두 팔을 붙잡고서, 억지로 저와 얼굴을 마주하도록 하게하기 전까지는. 아마, 내 얼굴은 엉망진창이었을 게 분명했다. ……이와이즈미 하지메! 놈의 입에서 오랜만에 내 풀네임이 나온 걸 보면.

 

 

 그 후로는 무슨 정신이었는지 모르겠다. 가방 끈을 붙잡고 횡설수설하며 급하게 교실을 빠져나왔다. 계속 깊숙한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역겨움에 몇 번 헛구역질을 하면서.

 

 


 간신히 밖으로 빠져나오니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다. 불그스름하게 물든 하늘을 멍하니 바라봤다. 지고 있는 와중에도 쨍쨍한 해에 온 몸에서 조금씩 땀이 흘러 내렸다. 나는 흘러내리는 땀을 닦기 위해, 주머니에 휴지가 있나 뒤지던 나는 그만 포기하고 손으로 눈을 닦았다. 땀이었다. 한 여름을 알려주는 매미 소리가 내 울음을 덮어씌운다.

 


 봄이 오지 않았으면 했다. 나는 여전히 한 여름이었기 때문에, 너에게 봄이 오지 않았으면 했다. 이제 전부 다 끝났다. 놈을 좋아하는 건 오늘이 마지막이다. 내 계절은 이제 가을이 되고, 차디 찬 겨울이 되겠지.

 

 

 

 “이와쨩!”

 

 

 

 내 이름을 크게 외치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살짝 고개를 돌려 그곳을 쳐다봤다. 오이카와였다. 쏜살같이 도망치듯 빠져나온 나를 쫓기 위해 힘차게 달렸던 건지, 너는 거칠게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무엇을 물으러 온 걸까. 대체 뭣 하러? 나는 네게 대답해줄 수 있는 게 없는데.

 

 시원하게 울고 나니 울렁이던 감정들이 진정돼있었다. 나는 아예 몸을 돌려 녀석을 똑바로 바라봤다. 녀석 역시, 숨을 제대로 고르고는 나를 똑바로 바라본다.

 

 여전히 녀석의 시선에 떨리는 가슴이 원망스럽다. 아, 정말로 나는. 후회하고 있었다. 후회한다.

 


 애초에 녀석에게 봄이 오기 전에, 내게 봄이 오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럼 내 계절은 뜨거운 여름이 되지 않았을 터였다. 이렇게나 뜨겁다가도, 차가운 비가 내리는 여름이 되지 않았을 거였다.

 


 ―봄이 오지 않았다면. 봄이 오지 않기를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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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Q/[오이히나] 너의 이름은 AU

 

 

BGM : 토토의 즐거운 하루 - 시즈코 모리

 

 

 

[오이히나] 너의 이름은 AU_

 

 

 

EP1. 일어나 보니 생판 처음인 곳.

 

 

 

written by. 월화비월

 

 

 

 

*

 

 

 

 


01. 잠자는 새에 납치를 당해버렸다.

 

 

 

 

 시끄러운 노랫소리가 방안을 꽉 채운다. 이에 방금 전까지만 해도 색색 잠을 자고 있던 남자가 몸을 조금씩 움찔거렸다. 평온했던 얼굴에 짜증이 가득하다.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에 반짝이는 오렌지빛깔의 머리카락을 헝클이며 침대에서 부스스 일어난 남자는 먼저 노랫소리를 끄기 위해 손을 움직였다. 머리맡에 있던 핸드폰을 몇 번 만지작대니 귀가 아플 정도로 컸던 소리가 사라졌다. 마음까지 편안해지는 기분이다. 남자는 이 평온함을 잠시 즐기기로 했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했다. 방바닥이 이렇게 푹신푹신 했었나? 설마 나, 지금 ‘침대’ 위에 있는 거야?

 

 사실을 깨달은 남자의 얼굴이 순식간에 낯빛으로 변해버렸다. 갈 곳을 잃은 눈동자가 방 안 곳곳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곳이었다.

 

 분명 어제 오버워크 하는 걸 이와쨩한테 걸려서 바로 집 가서 잠을 잔 게 맞을 텐데……. 자고 일어나니까 자신의 방이 아니라니. 잠자는 새에 납치라도 당한 걸까?

 

 남자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더니, 후우― 하고 내쉬었다. 심호흡을 하니 조금 진정이 되는 것 같았다.

 

 


 ‘그래, 일단 진정을 하자. 만약 납치라면 먼저 이곳의 구조를 파악해야…….’

 

 『띠링♪』

 

 ‘……핸드폰?’

 

 


 남자는 방금 전 맑은 알림소리가 난 곳을 바라보았다. 핸드폰이었다. 화면이 빛나는 걸 보니 문자가 온 것 같았다.

 

 기종을 봐선 분명 내 핸드폰은 아닌데, 자기를 납치한 사람의 핸드폰인 걸까? 남자는 조심스럽게 핸드폰에 손을 가져다대었고, 시간이 지나 깜깜해진 화면에 저의 얼굴이 비춘 걸 보고 깜짝 놀라 핸드폰을 내던지고 말았다.

 

 


 ‘방금, 뭐였지?’

 

 


 이 방과 같이,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평소 스스로도 자화자찬하던 제 잘생긴 얼굴이 아니라, 그냥 귀여운……. 아,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오이카와상이 귀엽지 않다는 건 아니고.

 

 혹시 꿈인 걸까. 이거, 꿈인 거겠지? 하하. 남자는 허탈한 웃음을 날리며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썼다. 그래, 다시 한 번 봐보는 거야. 마침 저기가 욕실인 것 같으니 가볼까? 거울이 있겠지. 그렇게 남자는 계속 입으로 “아닐 거야, 아니야. 잘못 본 걸 거라고.” 중얼거리며 욕실로 향했으나, 곧 이 행동을 후회했다.

 

 


 “어째서―――?!?!?!?!”

 

 


 대체 이 눈앞에 보이는 귀엽게 생긴 사람은 누구란 말인가. 오이카와가 충격을 먹은 얼굴로 제 눈앞에 보이는 거울 속의 남자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히나타!! 대체 언제까지 잘 거―! 아? 일어나있었네? 문자를 확인 안하 길래 아직도 자고 있는지 알았잖아. 뭐해, 빨리 준비 안하고? 이러다 수업 늦겠어!”

 

 “……에? 엣?”

 

 “5분 안에 안 나오면 나 먼저 간다?”

 

 “잠, 잠깐만. 저기?”

 

 


 갑자기 방으로 들어온 남자가 제 할 말만 하고는 쾅, 문을 닫고 나가버리자 오이카와는 혼란스러움을 뛰어넘어 정말로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이 사람을 알고 있는 사람인가? 친구? 그나저나 히나타라면, 이 사람의 이름?

 

 일단 아는 게 없으니 히나타로 추정되는 이 사람을 아는 것 같은 저 남자를 따라 갈 수밖에. 오이카와는 적당히 주위에 보이는 옷을 주워 입었다. 마지막으로 거울 앞에서 제 상태를 점검한 오이카와가 흐음, 신음한다.

 

 아무래도 히나타라는 이 사람, 꽤 작네. 대충 170 정도일까……. 잘 살펴보니 방에 배구에 관련된 게 많아 보이던데 혹시 수비 전문인가?

 

 


 “히나타! 진짜 나 먼저 가버린다!”

 

 “엑, 지금 가!”

 

 

 

 

 

*

 

 

 

 


02. 날 수 있어.

 

 

 

 

 소년은 일어나자마자 기지개를 폈다. 몸 이곳저곳이 쑤시는 것을 느낀 소년이 기지개를 하다말고 고개를 갸웃했다.

 

 


 ‘으음. 오늘따라 몸이 왠지 찌뿌둥한 게, 마치 고등학교 때가 생각이 나는 걸.’

 

 


 뭔가, 가끔씩 재수 없지만 실력은 인정하는 그 놈과 다이치상에게 혼날 정도로 오버워크를 한 다음날 같다고 해야 할까……. 푸스스. 바람 빠진 웃음소리를 내던 소년이 이내 고개를 떨궜다.

 

 


 “……그립네.”

 

 


 조용히 한 마디를 중얼거린 소년은 얼마 안가 이상함을 느꼈다. 지금 제 눈에 보이는 게 현실이 맞나? 혹시 아직 꿈을 꾸고 있는 걸까. 순간적으로 혼란이 찾아온 소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침대 위가 아니었다. 실수로 친구의 방에서 잠이 든 거라 생각해도 기숙사의 모든 방에는 침대가 배치되어 있을 텐데 이 방 어디에도 침대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특히, 기숙사라기보다는 평범한 가정집의 방 같았다.

 

 

 뭐지, 나 대체 어제 뭘 했던 거지? 소년이 제 짙은 갈색 빛을 띠는 머리칼을 헤집으며 혼란스러워 하는 그때였다.

 

 


 “어이 망할카와!! 평소에 잘만 준비하던 녀석이 오늘따라 왜 이렇게 느려? 두고간다 굼벵이 같은 자식.”

 

 “―에?”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어젖혀지면서 누군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들려오는 짜증서린 애정이 깃들여진 목소리는 왜인지 낯설지가 않다, 고 소년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와이즈미상……?”

 

 


 제 기억 속의 이와이즈미 하지메라는 사람은 머리가 더 길긴 했지만, 이 흑발의 눈매가 날카롭게 올라간 사람은 분명 저가 아는 그 이와이즈미 하지메가 맞았다. 소년의 뺨을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그렇다면, 이와이즈미상이 말하는 저 ‘망할카와’ 는…….

 

 


 ‘나, 설마 지금 대왕님인거야?’

 

 


 사실을 깨달은 소년이 충격을 금치 못하고 입을 떡 벌린 채 멍하니 땅바닥만을 바라봤다. 이에 이와이즈미가 의아해하며 소년의 등을 힘껏 내리쳤다.

 으아악! 소년의 짧은 외마디 비명을 질렀고, 아픈 부위에 손이 잘 닿지 않자 끙끙 거리며 앓는 소리를 내었다.

 

 


 “너 오늘 뭔가 이상하다.”

 

 “에, 에? 뭐가요?!”

 

 “……됐고, 빨리 정신 차려라. 학교 개학 첫날부터 지각할거냐, 네놈은?”

 

 


 이와이즈미가 소년을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며 말했다. 이내 이와이즈미가 방문을 닫고 나갔고, 그저 두 눈만 깜박이며 닫힌 문을 바라보던 소년은 밖에서 진짜 두고 가버릴 거라고 소리치는 그에 의해 한껏 흠칫하며 옷걸이에 걸려있는 교복을 찾았다.

 

 실로 오랜만에 보는 아오바죠사이의 교복이었다. 그가 교복을 입고 있다는 것과, 개강이 아닌 개학이라는 이와이즈미의 말을 한참 생각하며 고민하던 소년은 이내 머릿속에서 하나의 답을 내렸다.

 

 


 ‘그러니까, 대왕님하고 이와이즈미상이 고등학생이라는 소리?’

 

 


 이상하다. 내가 아는 대왕님과 이와이즈미상은 지금 대학교 졸업반에 들어가신 걸로 알고 있는데. 과거로, 심지어 대왕님이 된 ‘나’ 라니……. 이건 필시 꿈일 게 분명했다.

 

 얌전히 교복을 갖춰 입기 시작한 소년은 조금 들뜨는 기분에 심장이 설레었다. 전체적으로 길쭉길쭉한 몸이 마음에 든 듯 바지를 입다가도 허공에 발차기를 하며 우쭐해한다. 이런 행동을 반복하던 소년이 무언가를 깨달은 듯 눈을 크게 떠보였다.

 

 


 “……작지 않아.”

 

 


 조용히 속삭이는 목소리와는 다르게 소년의 눈은 그 무엇보다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소년의 두 눈이 희망으로 가득 차있다. 조금씩 가쁘게 뛰어오는 심장 박동을 느끼며 소년이 방문을 나섰다.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린다.

 

 

 더 이상 조급해하지 않아도 돼. 지금이라면 괜찮아. 선천적인 재능의 차이에 눌리지 않아도 되는 거야. 대왕님의 이 몸이라면, 가능해.

 

―날 수 있어!

HQ/조각조각

 

 

BGM : 우드캔들(Woodcandle) - Lucerne In The Spring

 

 

 

[카게히나] 봄이었어.

 

 

 

written by. 월화비월

 

 

 

 

*

 

 

 

 

봄이었어.

 

 

어릴 적부터 내가 원하던 이곳에 드디어 왔어. 그날, 아무 이유 없이 자전거를 타고 가다 무심코 멈춘 곳에서는 작은 거인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하늘로 날아오르고 있었지. 그리고 연이어 들려오는 사람들의 환호성. 처음 느껴보는 짜릿한 감정이었어. 그 장면을 가슴속 깊이 새긴 나는, 배구를 하고 싶다는 꿈을 조금씩 키워나갔고, 드디어 여기에 오게 된 거야.

 

여기까지 오는 데만 해도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 심지어 중간에는 재수 없는 녀석까지 만나고. 나중에 적으로 만난다면, 꼭 이겨주겠노라 다짐했어. 동시에 그 녀석은 내 목표가 되기도 했지. 그런데.

 

―――그 녀석이 왜 이곳에 있는 건지. 정말 재수 없는 일이지 않아?

 

 

낯선 체육관의 공기와 그녀석의 눈빛은 나를 얼어붙게 만들었어. 몸은 떨리는데 신기하게도 내 심장은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두근두근 뛰어대기 시작하는 거야.

 

참 이상한 일이지. 나중에 시합이 끝나고 그 녀석이 수고했다는 듯 짓는 웃음에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어.

 

 

이젠 같은 코트 위에 서있는 녀석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해. 녀석의 검은 머리가 부드러운 바람에 살랑, 흔들렸어.

 

 

 

……그건 바로 봄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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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Q/조각조각

*이 글은 총 공백 포함 3298자, 공백 미포함 2243자 입니다.

 

 

 

 

BGM : Haikyuu!! OST - Accustomed Strength

 

 

 

 

 

그의 말에 소년은 무너져 내렸다.

 

 

 

written by. 월화비월

 

 

 

 

*

 

 

 

 

 소년은 스스로를 자책했다. 그와 함께할 수 있는 마지막 경기였다. 그런 소중한 기회를, 평소와 다르게 다급하게 행동했던 제 실수로 잃고야 말았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토스를 높이 보냈다면 그는 언제나 그랬듯이 좋은 코스로 점수를 얻었을 텐데. 다시 한 번 더 이 코트에 설 수 있었을 거라고, 소년은 그리 생각하며 애꿎은 배구공을 금방이라도 터트릴 듯 세게 쥐었다.

 

 배구할 때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빛나는 그였다. 소년은 그런 그를 사실은 동경하고 있었다. 그가 저의 토스가 가장 좋다는 듯 눈을 반짝이며 힘 있게 배구공을 칠 때면, 승리는 우리의 것이었다. 모든 일에 무감각하던 소년이 그 순간만은 두 주먹을 꽉 쥐고 그와, 동료들과 함께 환호했다.

 

 그가 소년을 믿는 만큼 소년 역시 그를 믿었다. 그리고 동경했다. 승리를 가져다주는 그 강함을, 안정을 느끼게 해주는 환한 그 웃음을, 우리들을 향한 신뢰를 보여주는 듯 절대 뒤를 돌아보지 않던 그 등을.

 

 아무리 참아보려 애를 써도 저도 모르게 나오는 눈물이 자꾸 시야를 가렸다. 눈물로 얼룩져버린 흐린 눈앞에 보이는 것은 그의 널찍한 등. 어느 때와 같은 믿음직스러운 등이었지만, 뭔가 달랐다. 그의 두 어깨는 축 처져있었다. 미세하게 들썩거리는 움직임 또한, 그도 저처럼 울고 있을 게 분명하다고 소년이 생각하며 입술을 꾹 물었다. 이로 짓눌러진 입술에서 방울방울 피가 새나온다. 비릿한 피 맛을 느끼며 소년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다 제 잘못입니다, 죄송합니다 보쿠토상. 울음으로 꽉 막힌 소년이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코트 반대편에서는 승리의 기쁨으로 환호성을 내뱉고 있었다. 그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듯했다. 아마, 제 사과는 들리지 않았을 테지.

 

 스르륵 풀린 손에서 배구공이 처참히 바닥으로 떨어졌다. , 통 몇 번 뛰어오르던 배구공은 데구루루 굴러가다 어느 지점에서 멈춰 선다. 소년은 허망한 눈으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손을 쳐다봤다.

 

 패배의 앞엔, 정말 아무것도 없구나. 쓸쓸한 미소가 걸쳐지던 그때였다.

 

 

 아카아시. 그가 동료들의 울음소리로 가득한 이곳에서 나지막이 소년의 이름을 불렀고, 소년은 반사적으로 떨구고 있던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봤다.

 

 분명히 저보다 큰 눈물을 쏟아내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그는 기분 좋은 스파이크를 때렸을 때처럼 개구진 웃음을 짓고 있었다. 아니, 조금은 더 산뜻한 미소에 소년의 엉망이었던 마음이 한층 누그러트려지는 것 같았달까.

 

 그가 숨을 한껏 들이마셨다. 그리고 이 크고 넓은 경기장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만큼의 목소리로 그가 외쳤다.

 

 

 헤이헤이헤이! 아카아시―――! 그리고 모두들! 지금까지 고마웠다!!!!

 

 

 기지개를 펴듯 주먹을 쥔 채 두 팔을 하늘 높이 쭉 들어 올리는 그의 모습에 경기장이 한순간 조용해졌다. 그러나 그런 침묵도 잠시, 경기를 관람했던 누군가가 자리에 벌떡 일어나서 손뼉을 치기 시작함으로써 순식간에 경기장의 분위기가 바뀌어버렸다.

 

 후쿠로다니, 너희의 싸움은 정말로 대단했다고. 절대로 잊지 못할 경기였다고. 우리를 끝까지 기억할 거라는 응원의 환호성이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심지어 반대편 코트에 있던, 우리의 승리를 앗아간 녀석들 마저 진지한 태도로 우리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어이, 아카아시! 네 마지막 토스 최고였다고!

  

 

 거짓말.

 

 

 이것 참, 나도 모르게 흥분해서 좋은 코스를 노리지 못했다니까.

 

 

 이것도 거짓말.

 

 

 미안하다, 모두들. 그래도 즐거웠지? 자자, 다들 피곤할 테니 어서 들어가 쉬자고!

 

 

 전부 다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이었다. 누구보다 소년을 믿었던 만큼 그는 소년을 원망하고 있어야 했다.

 

마지막 토스가 좋았긴 개뿔, 이미 스스로 잘 느끼고 있던 최악의 실수였는데.

 

 화가 났다. 분노가 치밀어 올라와 이성을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소년의 머릿속에서 차마 생각이 다 정리되기도 전에 몸이 먼저 움직였다.

 

 기어코 소년이 이를 아드득, 갈며 바보 같은 웃음을 유지한 채 박수를 보내는 관중들에게 손 인사를 하고 있던 그의 멱살을 붙잡았다. 경기장이 술렁인다.

 

 

 아카아시! 모두가 놀란 얼굴로 소년을 쳐다봤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감히 그들 쪽으로 함부로 다가가지 못했다.

 

 

 왜, 왜 화를 안 내는 겁니까! 누가 봐도 그건 내 실수였는데!

 

 …….

 

 차라리 화를 내세요. 평소처럼, 울란 말입니다!

 

 

 저를 똑바로 바라보는 소년의 눈을 그는 피하지 않았다. 소년의 눈동자가 애처롭게 떨리고 있었다.

 

 

 저는, 보쿠토상과 함께 하는 마지막 무대를 망쳐버렸다고요.... 구슬픈 음성을 흘리며 소년이 조금씩 흐느꼈다. 이런 모습은 정말이지 처음이었다. 그가 흐음, 신음하며 제 뒷머리를 긁적이다가 소년의 머리 위로 저의 큰손을 가져다 놓았다.

 

 

 그동안 내 기분 맞춰주느라 수고 많았다, 아카아시.

 

 

 그의 진심 어린 말에 소년의 몸이 굳는 게 느껴졌다. 부들부들 떨리는 소년의 몸은 금방이라도 분노를 표출할 것만 같았다. 그가 그것을 눈치채고는 이크, 식은땀을 흘리다가도 씨익 말간 미소를 지으며 이어 말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수고해라!

 

 …?

 

 기다리고 있을게. 아카아시, 너와 함께 하는 배구는 이게 끝이 아닐 테니까!

 

 

 아아, 그런 거였나. 소년이 그의 말을 깨달았다는 듯 픽, 웃어 보이고는 고개를 아래로 떨군 채 중얼거렸다. 이런 건 너무하다고요, 보쿠토상.

 

 그의 기다리고 있겠다.’라는 말의 뜻을 이해한 소년은 처참히 무너져 내렸다. 간신히 감정을 억누르고 있던 행동은 소용없었다는 것 마냥 울음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내렸다.

 

 그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엉엉 우는소리까지 내는 소년을 그는 그저 가만히 그의 두 어깨를 감싸 안을 뿐이었다.

 

 그와 함께 코트에 서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 아니었다. 소년은 다시 한 번 그를 가슴에 담았다. 앞으로도 쭉, 그는 저가 가장 동경하는 사람일 것이랴.

 

 

 그의 다정한 온기로 뭉친 강함은, 소년을 무너트렸다.

 

 

 

 

 

*이 글은 트위터 '솔(@__noah97)' 님의 아카아시 그림의 "...다 제 잘못입니다, 죄송합니다 보쿠토상." 대사를 보고 쓰여졌습니다.

*모든 글의 저작권은 월화비월(@Moon_m0406)에게 있습니다.

*수정_2017.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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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gimon

*알티 추첨하여 받은 디지몬 장르 한정 2000자 내외 글 리퀘이며, 커플링은 코시미미 입니다.

*공백포함 3845자, 공백제외 2750자 입니다.

 

 

 

BGM : Ouran High School Host Club_Sakura Kiss for Piano

 

 

 

 

 

 

 

눈부시다

 

 

 

코시미미

 

  written by. 월화비월

 

 

 

 

 

***

 

 

 

 

 

나는 중요한 작업을 할 때엔 어둡고 조용한 곳에서 하는 걸 선호하는 편이었다. 빛이 잘 들어오지 않도록 커튼으로 창을 잘 가린 컴퓨터실은 어느 잡음 하나 없었다. 오로지 내가 타닥타닥, 두드리는 키보드 자판 소리뿐이었기에 내가 작업에 집중하는 것을 도왔다.

 

그러나 이토록이나 깜깜한 곳에서 밝은 화면을 바라보는 데에는 그만한 대가가 있었다. 아무래도 어두운 곳에서 오랜 시간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는 것은 눈에 무리가 가지 않을 수가 없다.

 

작업에 집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한 이때쯤이면 누군가가 눈을 콕콕 찌르는 것만 같은 좋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이 통증은 몇 번을 겪어도 통 적응이 되지를 않는다. 나는 작업을 하던 것을 잠시 멈추고 두 손을 눈에 가져다 대었다. 손의 찬 느낌이 눈을 진정을 돕는다.

 

그렇게 내가 작업을 멈추고 조금의 휴식을 취할 때면, 그래. 언제나 같은 패턴이었다.

 

 

 

코시로군! 나 왔어!!”

 

 

 

그녀가 빛이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컴퓨터실 문을 활짝 열고 들어오는 것은. 그러면 그녀는 때마침 지는 석양을 등에 업고서 내 이름을 다시 불렀다. 코시로군, 하고.

 

그럴 때면 나는 갑작스레 들어오는 빛에 눈을 찡그렸지만, 그게 또 싫은 건 아니어서 어떻게든 눈을 부릅뜨고 그녀를 바라봤다. 석양 탓인지, 원래 그녀 자체가 빛나는 건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내 눈은 어둠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녀는 언제나 빛을 가지고 들어왔다.

 

 

눈이 부시다.

 

 

 

 

 

*

 

 

 

 

 

있지, 오늘은 말이야.

 

자연스럽게 내 옆에 자리를 잡고 앉은 그녀는 오늘 하루 동안에 있었던 일을 얘기하곤 했다. 그건 오늘도 마찬가지여서, 나는 가만히 그녀의 말을 듣고 있었다. 오물오물거리는 입이 귀엽다.

 

예쁘다. 약간 분홍빛을 담은 저 입술은 갓 핀 벚꽃이 생각이 났다.

 

 

 

. 코시로군 괜찮아? 갑자기 얼굴이.”

 

, 괜찮아요. 그러니까 손대지 말아주세요.”

 

……. ……그래……….”

 

 

 

순간적으로 화악 달아오른 얼굴이 창피해 한 손으로 가리곤 그녀의 손길을 거절했다. 왜인지 상처받은 얼굴.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녀를 상처 입게 만들어 버렸어.

 

내 행동 때문인지 순식간에 풀이 죽어선 말이 사라진 그녀에 정적이 찾아왔다. 내 눈치를 보며 어쩔지를 모르는 그녀가 마치 새끼 강아지 같다고 생각했다. 꼭 주인이 혼내서 풀이 죽어있는 강아지 같아. 이래서 애완견을 키우는 사람들은 개들이 잘못을 해도 혼을 내지 못하는 걸까. 너무 귀여워서. 그들의 마음을 알 것 같다.

 

물론, 지금 그녀가 잘못한 건 없다. 혼을 낸 것도 아니고. 그저 단순히 순간적으로 든 내 불순한 마음 때문이었으니. 나는 낯선 침묵이 어색해 괜히 귀를 만지작거렸다.

 

 

그래. 항상 먼저 다가와 준 건 그녀였으니, 이번엔 내가 말을 걸어보자.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너무해, 코시로군!”

 

?”

 

난 코시로군이 아픈 건 아닌지 걱정이 돼서 그런 건데, 왜 이리 냉정해?”

 

잠깐만요, 미미상.”

 

 

 

그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내게 소리쳤다. 내게 불만을 토로하던 그녀가 이내 조용히 고개를 숙인다. 그리고 바닥으로 차갑게 떨어지는 눈물.

 

쿠웅. 마치 심장이 딱딱한 콘크리트 바닥에 곤두박질치는 기분이었다.

 

 

 

알아, 코시로군이 나 안 좋아하는 거. 귀찮아하는 것도 알아.”

 

 

 

눈물을 뚝뚝 흘리는 그녀의 목소리는 낮게 잠겨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입에서 내뱉어지는 말들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생전 처음 듣는 소리였다.

 

난 그녀를 귀찮아한 적이 맹세코 단 한 번도 없다. 좋아하지 않은 적도, 없는데.

 

그녀의 반짝이는 두 눈과 마주할 때마다 간질이는 심장을 눈치챘을 땐, 이미 난 내게 빛을 가져다준 그녀를 좋아한 지 오래였는데.

 

 

 

하지만 그래도 어떡해! 난 그런 코시로군도 좋아한단 말이야!”

 

 

 

무심하게 저를 챙겨주는 나한테, 내 겉모습뿐만 아니라 내면을 바라봐 주는 나에게 반해버렸다고.

 

그녀가 고개를 들고 나를 똑바로 바라본 채 외친 말이었다. 뒤통수를 거세게 얻어맞는 느낌이 들었다. 정신이 확 깨어버리는 기분이다.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벙 쪄버린 나를 한참을 노려보던 그녀는 씩씩 거리는 채로 뒤돌았다.

 

기다려요, 미미상! 일단은 그녀를 잡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던 것 같다.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쫓았다. 그녀의 가녀린 손목을 잡았다. 그녀의 걸음이 멈춘다.

 

너무 급해서 꽤 세게 잡고 말았는데, 아픈 건 아니겠지…….

 

 

 

.”

 

 

 

그녀가 퉁명스러운 어투로 말했다. 그러고 보니 무작정 붙잡긴 했는데, 그 뒤에 어떻게 행동할지를 정하지 않았다. . 어떡하지.

 

여전히 나를 돌아보지 않는 그녀가 화가 나 있는 건 아닐까 걱정이 들었다.

 

 

 

……. 그게, 그러니까 말이죠.”

 

뭐야, 할 말도 없으면서 붙잡은 거야?”

 

 

 

조금은 기대했는데……. 쓸쓸하게 중얼거리는 그녀의 목소리에 다시 한 번 심장이 가라앉음을 느꼈다. 그래서인지 나도 모르게, 단지 정말 충동적으로 그녀의 등을 끌어안았다.

 

그녀의 손목만큼이나 가녀린 어깨는 내 품 안으로 쏙 들어왔다. 코에 닿는 그녀의 머리카락이 간지러웠다.

 

당황한 그녀의 몸이 뻣뻣하게 굳는 게 느껴진다. 뭔가 이게 너무 재미있어서, 나는 그녀의 뒷덜미에 고개를 묻었다.

 

 

 

, 잠깐만. 코시로군? ? 이거, 뭐하는 행동?”

 

……….”

 

저기, 코시로군? 나 이러면 진짜 기대하게 되는데?”

 

기대해도 돼요.”

 

 

 

잔뜩 떨리는 목소리로 저를 끌어안은 내 팔에 손을 가져다 대는 그녀에 머리가 새하얘지는 것 같았다. 그녀의 손길이 닿은 곳이 불타오른다. 이렇게나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에 설레는 나인데.

 

나는 결국 기대하게 되어버린다.’라는 그녀의 말에 울컥해서는 기대해도 좋다는 말을 뱉어버렸다.

 

 

 

미미상.”

 

 

 

나지막이 그녀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그녀가 움찔한다.

 

사실은 많이 놀랐었다. 그녀가 나를 좋아하고 있다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단지 어릴 적 함께 험난한 모험을 했던 동료. 딱 그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을 줄 알았다. 그래서 보통 혼자 있는 편이 많은 내가 안쓰러워서, 친구로서 신경을 써주고 있는 것뿐이라고.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심지어 매일같이 나보다 훨씬 키도 크고 잘생긴 애들에게 고백을 받는 그녀였기에 나는 조금도 눈에 차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었으니까, 이 마음을 꼭꼭 숨겨놓고 있었는데.

 

그녀가 날 좋아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으니 이제 더는 숨길 것도, 망설일 것도 없었다.

 

 

 

좋아해요.”

 

……….”

 

이미 오래전부터, 난 미미상을 좋아하고 있었습니다.”

 

 

 

내 진심을 담아 고백했다. 그녀가 뒤를 돌아서고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 얼굴은 무지 빨갛게 타올라서, 우스꽝스러울 게 분명하다.

 

. 그녀가 제 어깨를 감싸 안고 있던 내 두 팔을 풀고 내게서 떨어졌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느껴졌던 그녀의 체온이 사라지자 공허함이 들었다. 그녀가 천천히 나를 돌아본다.

 

나와 마주한 그녀는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내가 한 고백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까, 순간적으로 덜컥 겁이 들어 주춤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그녀는 내가 더 이상 뒤로 도망치지 못하도록 내 두 손을 꼭 맞잡아왔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그리고 꽃이 만개하듯 활짝 웃어 보이고 있었다.

 

비가 개고 난 새벽의 꽃 같다. 밤새 잔뜩 이슬을 머금은 꽃에 새벽의 햇살이 비치며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오로지 나만을 바라보며 행복하게 미소 짓고 있는 그녀는 그 어떤 순간보다 아름다웠다.

 

 

눈부시다. 그녀가 다시 한 번 내게 빛을 가지고 왔다.

 

 

 

 

 

 

*모든 글의 저작권은 월화비월(@Moon_m0406)에게 있습니다.

*수정_2017.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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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piece

 

[사보x로우]

 

 

written by. 월화비월

 

 

 

*

 

 

 

1.

 

그는 닮아있었다.’

_The story of Trafalgar Law

Bgm. 너의 기억은 눈부시다 - 143am

 

 

그와의 첫 만남은 뜻밖의 장소였다.

 

 

식량을 조달하기 위해 한 섬에 들렸던 때였다. 이 섬의 날씨는 겨울이었는지, 추위도 추위이지만 깜깜한 먹구름이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조금은 으스스 한 분위기였다. 그런데 하필이면, 해군 높으신 분이 묵고 있던 섬이었다니. 어쩐지 나를 포함한 모두가 이 마을에 도착하고 나서도 경계를 풀지 않더라.

 

이판사판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단 한 가지뿐. 나는 선원들에게 그곳에 먼저 가있으라 한 뒤 미끼 역할을 대신해 마을에서 날뛰었다. 그러자 우리 중 하나라도 사고를 치는 걸 기다린 듯이 해군은 곧바로 날 쫓아오기 시작했다. 좋았다. 괜찮았다. 여기까지는 계획 대로였으니까. 나는 걸음을 서둘렀다.

 

해군의 시야에서 간신히 벗어난 나는 몸을 숨기고 길을 헤맸다. 몸 여기저기에 난 상처들이 찬 공기와 닿을 때마다 쓰라리다. 목숨을 유지하느라 급급했던 만큼 이미 몸이 지친지 오래였다. 휴식이 절실했다. 때마침 인기척 없는 골목이 나를 유혹했다.

 

어두운 그늘을 방패로 삼았다. 스르르 감기려 하는 눈을 몇 번이고 뜨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더 이상은 이성이 피곤을 버티기 힘들었다. 여기서 잠들면 꽁꽁 언 시체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그만 의식을 잃고야 말았다.

 

………이잖아!”

? 설마. 그런 거물급이 왜 여기에서 기절해 있겠어.”

이 수배지를 잘 보라고! 하트 해적단 선장의 트라팔가 로우가 맞다니까?”

 

고요함을 깨트리는 누군가의 수군거리는 소리에 멀리 있던 의식이 천천히 돌아왔다. 정신을 차린 나는 재빨리 귀를 기울였다. 젠장. 해적 사냥꾼 놈들인가? 골머리가 아파졌다. 놈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조심스럽게 실눈을 떴다.

 

먼저 놈들의 위치와 인원을 파악했다. 왼편으로 두 명이었다.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옷을 보니 지긋지긋한 해군 놈들은 아니었다. 그러나 보통 일반인이라면 들고 다니지는 않을 총기를 손에 쥐고 있었다. 아무래도 아예 무시하고 지나칠 놈들은 아닌 것 같았다. 잠시도 쉴 틈을 주지 않는 이 엿 같은 상황에 저절로 터져 나오는 비속어를 속으로 삼켰다.

 

아무런 관련 없는 마을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그 두 명과 나만 쏙 들어갈 만한 정도의 룸을 펼칠 준비했다. 그러고서 나는 조용히 속삭였다. .

 

흙바닥에서 조그마한 소용돌이가 치더니, 순식간에 투명한 방벽 같은 것이 우리 셋을 둘러쌌다. 내 목소리와, 이질감이 느껴지는 환경에 놀란 놈들이 금세 경계태세를 갖추고 날 노려봤다.

 

역시 트라팔가 로우가 맞았어! 너 이 자식, 지금 뭘 한 거냐!”

아아……. 머리 울리니까 소리치지 말라고. 그리고 움직이지도 마라. 네 녀석들의 심장이 내 손에서 두근두근 뛰고 있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내 말에 놈들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심지어 한 명은 총기를 든 손을 덜덜 떨었다. 금방 지레 겁을 먹고 안색이 파래진 것을 보면 아무래도 엄청난 실력자는 아닌 듯해 보였다. 지금이라도 나를 못 본척하고 가라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지도. 잠시 고민에 빠져있던 그때였다.

 

, 미안. 그건 좀 곤란해.”

 

이 녀석들, 내 부하거든. 싱긋 미소를 짓고 내 공간에 상관없다는 듯 거리낌 없이 들어오는 금발 사내의 등장에, 나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여기 있는 두 놈하고는 느껴지는 분위기 자체가 차원이 달랐다. 젠장, 몸이 얼어붙어서 제대로 움직이기도 힘든데! 범상치 않은 놈의 등장이라니. 최악의 상황이었다. 애써 침착하게 얼어붙은 입술을 힘겹게 떼어냈다.

 

누구냐, 네놈은?”

그래서 말인데, 이 녀석들 그냥 보내 주면 안 될까? 우리가 좀 급한 일이 있어서.”

넌 누구냐고!”

 

내 큰 목소리에 놀랐는지 금발 사내가 움찔한다. 하지만 그러기도 잠시, 금발 사내는 다시 웃음을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나는 사보야.

 

혁명군에 속해있어. 드레스로자에서 스쳐가듯이 봐서 나를 알줄 알았는데기억 안 나려나?”

 

금발의 사내가 모자를 살짝 들어 보이며 말했다. 검은 그림자에 가려져 있던 얼굴이 훤히 드러났다. 분명, 어디서 본 적 있는 얼굴.

 

, 루피의 친구지?”

……아아. 밀짚모자야의 형인가.”

응 맞아. 있지, 많이 다친 것 같은데 우리와 같이 가지 않을래?”

 

! 대장!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믿을 수 없는 위험인물을 본부에 데리고 가자라니요!”

맞아요, 대장. 혹시 이 녀석이 어디에 말해서 저희 본부 위치가 발각이라도 나면!”

 

녀석의 말에 옆에 있던 놈들이 까무러쳐서는 그를 설득하려 애썼다. 하지만 녀석은 진심이었는지 부하들에게 단호했다.

 

안 돼. 결정했어. 무엇보다, 루피의 친구를 가만히 보고 있을 수는 없지.”

 

아아. 밀짚모자야의 덕을 보는 날도 있는 건가. 방금 전까지만 해도 춥기만 했던 이곳에 온기가 가득 차는 기분이었다. 알 수 없는 온화함에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 차가운 무언가가 코에 닿더니 물이 되어 흘러 내려간다. 눈이었다. 금방이라도 무언가 쏟아질 듯 껌껌한 먹구름으로 채워져 있던 하늘에서 새하얀 눈이 흩날렸다.

 

어이 로우, 사랑한다!”

 

왜인지 모르게 그는 내가 아는 누군가와 닮아있었다. 분명히 위치는 다른데도, 그의 왼쪽 눈에 적나라하게 보이는 화상의 흉터에 나는 눈을 떼지 못했다.

 

이봐.”

 

차가운 눈이 고개를 숙인 내 얼굴 위로 떨어졌다. 내 체온에 닿아 금방 물이 된 눈은 볼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어이, 정신 차려!”

……….”

어이!”

 

그래. ……눈이. 알 수 없는 그리움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

 

 

 

2.

 

그 역시 닮아있었다.’

_The story of Sabo

Bgm. 너의 기억은 눈부시다 - 143am

 

 

트라팔가 로우가 혁명군 본부에 온 지 벌써 몇 달이 지났다. 곳곳에 난 상처로 인한 출혈과 답지 않은 탈수 증세로 기절한 놈을 몰래 본부까지 옮겨 오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 , 지금은 상처도 말끔히 다 나았고, 건강해졌지만. 안타깝게도 근처까지 와 눈에 불을 켜고 우리 본부를 찾으려고 하는 해군 놈들 때문에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 탓일까, 가끔 멍 때리며 바다를 바라보는 그를 보고 있으면 안쓰럽게만 느껴졌다. 자기 선원들을 그리워하고 있는 거겠지.

 

오늘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분명 내가 노크를 하고 방에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멍하니 창문 쪽에만 시선을 두고 있는 채였다.

 

그와 꽤나 오랜 시간 붙어 지냈던지라, 나는 한껏 편해진 호칭으로 그를 불렀다. 로우. 그제야 그가 내게 고개를 돌린다.

 

무슨 생각해?”

……아아. 아무것도 아니다.”

 

또다. 나와 시선을 마주 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곧바로 눈을 피해버린다.

 

……그래. 네가 아니라면 아닌 거겠지.”

 

이렇게 찾아오는 정적. 항상 같은 패턴이었다. 사실 이런 정적은 어릴 때부터 익숙했다. 에이스와 루피가 싸우고 나면 둘 다 삐져서는 말 한마디를 하지 않았으니까. 갑자기 든 옛 생각에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어디 그럼, 해볼까.

 

톡톡. 그에게 가까이 다가간 나는 녀석의 어깨를 건드렸다. 그러자 놈이 고개를 돌렸고, 이내 내가 뻗고 있던 검지는 녀석의 뺨을 찌른다.

 

황당함이 가득한 그의 얼굴에 나는 두 팔로 배를 감싸 안고 쿠쿠쿡 웃음을 빵 터트렸다. , 진짜 웃기네.

 

하아? 혁명군 No.2라는 놈이 아직도 이런 장난을 치는 거냐.”

크크큭. 야 로우, 다시 한 번 보여줘라. 네 얼굴 진짜 웃겼다고. 푸하하핫.”

그만 웃어라, 사보야.”

 

살벌하게 날 쏘아보는 통에 나는 큼큼, 헛기침을 하며 웃음을 진정시켰다. 가끔 보면, 쟤도 귀엽단 말이야. 꼭 어릴 때 에이스를 보는 것 같아. 겉으로 강한 척이란 척은 다하고 속은 루피 걱정만 하던. 항상 내가 이런 장난을 칠 때마다 꼭 저런 얼굴을 하고는 했는데.

 

알겠어, 알겠어. , 나 지금 웃음 멈췄다?”

……….”

그러게 누가 거짓말 치래? 아무것도 아니긴. 선원들 생각하고 있었지?”

네 맘대로 생각해라.”

 

까칠하기는. ……진짜 닮았네, 에이스랑.

 

이때부터였나. 아니, 사실은 좀 더 오래전부터였는지도 모른다. 속에 감춰져 있던 내 죄책감이, 그리움이 어느새 크게 성장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를 통해 다른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던 건. 그가 아직 살아있었다면, 그랬다면. 이런 시원찮은 장난을 하면서 웃고 화내고, 그렇게 떠들지 않았을까.

 

로우.”

 

조용히 그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로우. 로우. 로우……. 처음엔 무시하던 그가 조금은 애절한 내 목소리에 뒷머리를 긁적이며 나를 돌아보았다. 또 뭐냐, 사보야.

 

나랑 같이 몰래 나가지 않을래?”

 

갑자기 든 충동적인 생각에서 나온 말이었다. 내 말에 적잖이 놀란 그는 뭐라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듯해 보였다.

 

그냥, 그와 둘이서 항해를 하고 싶었다. 조금만 더 그에게서 그를 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싫어?”

 

트라팔가 로우. 그를 그 자체로 보지 않고, 그를 통해 다른 이를 본다는 게 좀 너무하다고는 스스로도 인식하고 있는 사실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에게 못할 짓이란 걸 안다. 하지만 난 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지는 않았다.

 

……좋다.”

 

그도 나를 통해 다른 사람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아니까. 나와 눈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는 것도, 나를 통해 그가 그리워하는 사람을 보고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아니까.

 

아까 전 내가 장난을 쳤을 때 웃던 나를 바라보던 그 눈빛도 나를 보고 있는 게 아니었다. 나와 비슷한 행동을 했던 누군가를 그리워하던 눈. 그가 그리워하는 사람과 나는 닮아있다. 그리고 그 역시 닮아있었다. 내가 그리워하는 이와.

 

 

이건, 쌍방 잘못이야. 똑같은걸.

 

 

 

*

 

 

 

3.

 

붉은 꽃은 내 죄책감을 형성한 걸까.’

 

 

Bgm. 새벽 1시 43분 니생각에 잠못드는 - 143am

 

 

이른 새벽 벌레들 울음이 아름답게 퍼져나갔다. 사박사박, 흙을 지르밟는 소리가 어우러진다. 눈꼬리처럼 곱게 희어진 달이 모래밭을 걷는 그들을 비췄다. 먼저 앞장서 걷던 금발머리 사내의 발걸음이 멈춘 건 절벽 뒤에 숨겨져 있는 한 커다란 배의 앞이었다. 그는 가볍게 점프해 배에 탑승했고, 이내 그물처럼 된 밧줄을 내렸다. 그의 뒤를 따라온 남자는 그 밧줄을 이용해 저 역시 배에 올라탔다. 흥흥―♪. 남자는 콧노래를 부르며 돛을 올리는 사내의 뒷모습을 그저 뚫어져라 바라만 볼 뿐이었다.

 

……정말 괜찮은 거냐? 이렇게 멋대로 나가버려도. 남자의 목소리엔 걱정이 담겨있었다. 사내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던 것을 잠시 멈추고 그를 돌아보았다. 다시 또 찾아오는 정적. ―――시선이 맞닿는다.

 

아무튼, 사보야. 나는 너만 믿고 가는 거니까 알아서 잘 데려다 달라고.”

 

그리고 곧바로 고개를 돌려버리는 그에, 사내는 멋쩍은 듯 쓰고 있던 모자를 더 푹 눌러써보였다.

 

……그래, 로우.”

……….”

걱정 말라고, 선원들이 있는 곳까지 잘 모셔다 드릴 테니.”

 

 

―――아아. 오랜만의 풍경이구나. 푸르른 초원 위에 누워있는 우리 셋. 개구진 웃음을 한가득 얼굴에 머금은 우리는 정말로 행복해 보였다. 그중에서도 제일 신나서는 이를 훤히 드러내고 에이스와 저의 손을 꼭 붙잡은 작은 아이. 나의 동생, 그리고 그의 동생 루피. 루피. 루피……. 못난 형 때문에 혼자 에이스를 지키려 애쓰다 많이 고생했을 나의 소중한 동생. . 힘없이 놓이는 나의 손. 그들과 나는 점점 멀어져 갔다.

 

거리가 멀어질수록 그들은 나이를 먹고 있었다. 두 손을 꼭 붙잡은 형제는 어느새 다 자라서 서로의 손을 놓아버린다. 나중의 만남을 기약하고 먼저 바다로 떠나는 형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팔이 빠지라 흔들어대며 배웅하는 동생. 그리고 이내 찾아온 어둠. 그 어둠 속에서는 다시 작아져버린 아이가 홀로 울고 있었다.

 

계속 그 아이를 보고 있으면, 그 작은 아이의 모습과 다 성장한 아이의 모습이 겹쳐져 보였다. 여전히 조금씩 멀어지는 거리에 가까이 가서 위로도 못하는 스스로가 원통하다. 깜깜하기만 하던 세상에 붉은 꽃이 피어났다. 루피의 몸을 지지대로 삼은 듯 칭칭 감아 성장하던 그 꽃은 날카로운 가시로 소년의 몸에 상처를 입혔다. 가시가 찔러지는 곳곳마다 빨간 피가 방울 맺히고 튀어나오면 그 꽃은 그걸 영양분으로 삼아 흡수시켰다. 그 과정이 여러 번 반복되던 어느 시점에, 꽃 자체에 빨간 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점점 붉은빛으로 빛나던 꽃은 펑 하고 공기 중으로 날아갔고, 흩날리던 꽃잎들 사이로 루피의 품에 안겨있는 에이스가 보였다.

 

결국 사보는 울음을 터트렸다. , . 입을 꼭 틀어막은 손에서 울음소리가 새어나갔다.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루피. 미안해, 에이스. 너희를 잊어버려서. 도우러 가지 못해서 미안해.

 

루피의 품에 안겨있던 에이스가 천천히 일어섰다. 영원히 감겨있을 것만 같던 그의 눈이 천천히 떠진다. 그와 눈이 마주친 그 순간, 사보는 몸이 경직됨을 느꼈다. 점점 멀어져만 갔던 거리도 어느새 훅, 그들과 가까워져 있었다.

 

에이스의 몸통 정중앙이 크게 그을려서는 뻥 뚫려 있었다. 내가, 그 장소에 있었더라면 무언가가 바뀌었을까. 사보는 더 이상 괴로움을 버틸 수 없어 눈을 질끈 감았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온다. 결국 휘청거리던 사보는 다시금 눈을 떴다. . 이내 탄식한 사보의 눈동자는 크게 일렁였다. 제 어깨를 꼭 붙잡고 무슨 말을 건네려는 에이스의 모습에 사보는 눈물을 멈추려 애썼다. 들어야 해. 들어야만 한다.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아아아아악!!!!!!”

 

번쩍. 하지만 그 결심이 무심하게도, 저를 필요로 하는 그의 비명에 꿈에서 깨버렸다. 분명 중요한 말을 들은 것 같은데 도저히 생각이 나질 않는다. . 속을 우겨오는 답답함에 사보는 제 머리카락을 짜증스럽게 헤집었다. 현실에서도 울었는지,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소매로 슥 닦고서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어서 가야지. 내 도움이 필요할 그가 있는 곳으로. 빛바랜 사보의 눈동자가 그가 이미 많이 지쳐있음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

 

 

 

4.

 

꿈을 꿨다. 네가 그 사람처럼 죽어버린 꿈.’

 

 

Bgm. 새벽 1시 43분 니생각에 잠못드는 - 143am

 

 

시야가 흐리다. 안개가 온 세상을 뒤덮은 듯했다. 그는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새하얀 곳. 차가운 바람이 그의 뺨을 스친다. 하늘에선 쉬지 않고 눈이 내리고 있었다.

 

저벅저벅. 그가 걸을 때마다 기분 좋은 소리가 귓가를 자극했다. 그가 가는 길 앞엔 누군가의 것인지 모를 발자국이 찍혀있었다. 그는 그 발자국에 제 발을 갖다 대어 보았다. 저의 발보다 한참 작은 걸 보니 아무래도 어린아이인 것 같았다. 평소에는 당연히 안 따라갔을 그 길을, 그는 충동적인 호기심에 그 발자국을 따라 걸었다.

 

, ! ――. 방금 전까지만 해도 고요하던 이 세상에 총성이 울려 퍼졌다. 꽤나 가까운 곳에서 들리고 있었다. 그는 쿵, . 무겁게 뛰어대는 가슴에 손을 가져다 놓고는, 침을 꼴깍 삼켜냈다. 이 발자국의 끝에, 무언가 있음이 분명했다. 그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발자국이, 끊겼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보았다. 이미 저가 도착했을 땐 상황이 모두 끝난 뒤인 것 같았다. 아무도, 없는 건가. 그가 그렇게 고개를 갸웃거릴 때였다. 새하얀 곳이었다. 땅도, 하늘도, 하얀 곳이었다. 그런데 빨갛다. 유독 저 부분만 붉게 물들어져 있었다. 붉은색은 주위를 물들이듯 조금씩 퍼져나갔다. 점점 심장의 속도가 빨라짐을 느끼며, 그는 급히 걸음을 옮겼다. ……저를 여기까지 안내해주던 그 발자국의 주인은, 과거의 자신이었다.

 

그는 조심스레 눈을 살살 치워보았다. 조금씩 드러나는 그리운 모습에 점점 차오르는 눈물을 억제하기가 힘들다. 다시는 떠지지 않을 두 눈이 굳게 감겨있는 걸 봤을 때, 그는 온몸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 몸이 얼음장처럼, 아니 얼음장보다 더 차갑다. 약간 곱슬거리던 금발 머리카락은 빳빳하게 굳어져, 잘못 건드리기라도 하면 부스러질 것만 같아 만지기 조심스러웠다. 웃고 있었다. 뭐가 그리 행복하다고, 이 사내는 웃음을 잃지 않은 채 눈을 감고 있었다. 흔들리는 시야에 그가 머리를 짚었다. 갑자기 미친 듯이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역겨움이 빠른 속도로 올라오고 있었다. 아직, . 더 이 사내의 얼굴을 봐야 하는데.

 

사내의 왼쪽 눈 밑엔 짙은 남색의 문양이 날카롭게 그려져 있었다. 자신이 그와 이 사내가 닮았다고 생각했던 이유였다. 웃음과, 이 문양. 그의 오른쪽 눈에 있는 화상의 흉터가 꼭 이 사내의 문양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 오른쪽 흉터?

 

우욱. 두 손으로 땅을 짚었다. 극심한 헛구역질을 몇 번이고 했다.

 

―――오른쪽? 오른쪽 흉터가 맞아¿ 맞는 거냐? 왼쪽이, 아니었나¿ 왼쪽, 왼쪽? 오른쪽¿ 왼쪽? 문양은, 오른쪽이라고? 왼쪽이 아냐¿ 오른쪽? 그럼, 지금, 이 녀석은? 뭔데? 이 녀석, 누구야? 누구지¿ 누구? 누구냐고¿!

 

, 아아! 아아아―――――――!!!! 원인을 알 수 없는 흐느낌이 퍼져 나갔다. 덜덜, 몸이 떨리고 있었다. 시선 역시 같았다. 주체할 수 없이 흔들리는 동공에 그는 사내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볼 수 없었다.

 

, 세게 문 아랫입술이 터져 핏방울이 새어 나왔다. 오른쪽에 새겨져 있던 문양이 아니었다. 왼쪽이다. 코라손이 아니었다. 지금 이 차갑게 식어있는 몸은, 그와 닮았다 생각했던 ……사보였다.

 

 

……. 로우! 괜찮은 거야? 식은땀 좀 봐. 저를 흔드는 손길에 잠에서 깬 로우가 번쩍 눈을 떠 몸을 일으켰다. 숨을 급히 들이마신 로우는 불안한 눈동자를 굴리며 주위를 둘러봤다. 새하얗지 않다. 꿈에서, 악몽에서 깬 거다. 여전히 덜덜 떨리는 몸에 로우가 떨림을 멈추려 제 몸을 감싸 안았다.

 

너 진짜 괜찮은 거야?”

……….”

왜 그래, 무슨 일이야.”

 

걱정스러운 말투로 제 두 볼을 잡고 시선을 마주하게 하는 사보에 로우가 그저 멍하니 허공만을 응시했다. 금방이라도 코가 닿을 것만 같은 가까운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시선이 다른 데로 가있는 로우에 사보가 크게 한숨을 내셨다.

 

로우!”

 

결국 제 이름을 크게 부르는 사보의 외침에 정신을 붙잡은 로우가 그때야 사보와 저의 얼굴이 가까이 있었다는 걸 깨닫고 움찔, 뒤로 몸을 뺐다. 하지만 사보가 그걸 놓칠 리 없었다. 차가운 벽에 등이 맞닿아진 터라 더 이상 뒤로 도망칠 곳도 없었다. 사보는 로우의 이마에 제 이마를 맞댄 채 말을 이어갔다.

 

말해줘. 어떤 꿈을 꿨는지.”

……….”

널 슬프게 하는 게 뭔지.”

 

그의 진지한 눈빛에 로우가 입술을 꾹 물었다. 꿈속에서 본, 상상하기도 싫은 그의 모습을 떠올린 로우는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악몽을 꿨다.”

……….”

네가 그 사람처럼 죽어버린 꿈.”

 

 

 

*

 

 

 

5.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거야.’

 

 

Bgm. 그날의 너, 눈부시던 햇살 - 143am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죽다니?”

 

사보의 의아한 물음에 로우가 자조를 지었다. 눈물을 머금고 씰룩거리는 입꼬리가 안쓰럽기만 하다.

 

사보야. 너는 그 사람과 닮았다.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너를 통해 그 사람을 보고 있었지.”

……로우.”

그런데, 오랜만에 꿈속에서 그를 봤어. 눈 속에 파묻혀서는, 차갑게 식은 몸으로 말이지.”

 

로우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런데. 그가 아니었다. 바로, 너였다.”

 

―――꽤나 충격적인 말에 사보는 순간적으로 몸을 달싹였다. 그랬구나. ……많이 괴로웠겠구나. 그런 생각이 든 사보는 곧장 로우를 제 품에 넣었다. 저가 등을 천천히 토닥이자 진정이 되는 듯 사시나무처럼 떨리던 로우의 몸이 안정을 되찾아갔다.

 

로우. 귓가 아주 가까이에서 들리는 낮은 중저음의 목소리에 그가 움찔하며 더욱 사보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 어느새 사보의 등을 꼭 끌어안은 로우가 조그맣게 대답했다. 그러자 사보가 푸스스, 바람 빠진 웃음소리를 냈다. 어디까지나 로우의 반응이 귀여워 절로 나온 웃음이었다. 마치 어미 잃은 새끼 고양이가 털을 바짝 세우고 길가를 헤매다 그리워하던 어미를 찾고 앞으로는 절대로 떨어지지 않겠다는 것 마냥 제게 꼭 붙어있는 그가 안쓰러우면서도 귀여웠다.

 

……잠깐, 사보야?”

 

사보가 로우의 어깨를 잡고 억지로 그를 제 품에서 떼어내 얼굴을 가까이 들이대자 로우가 당황한 듯 반사적으로 사보의 이름을 불렀다. 이에 사보는 그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얼굴보다 먼저 반응해 화악 달아오르는 그의 귓바퀴가 사랑스럽다. 그래. 로우는 이미 소중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에이스와 닮아서가 아닌, 그저 그 자체만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사보는 살며시 로우의 귀에 입을 맞췄다. 화들짝 놀라 몸을 부르르 떨며 덜컥 제 귀에 손을 가져다 대는 그. 사보는 함소한 채 그를 지그시 바라봤다.

 

 

나는 그가 아니야.”

………물론, 그도 내가 아니고. 네가 가장 잘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해.”

그러니까, 사보. 스스로를 죄책감이란 틀에 가두지 말았으면 좋겠다.”

 

문득 머릿속을 울리며 연달아 들려오는 그리운 이의 목소리에 사보의 눈에 눈물이 아른거렸다.

 

……사보야? 로우가 코앞에서 보이는 사보의 눈물에 깜짝 놀라 당황해서는 그의 이름을 불렀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사보의 눈동자 속에 비쳐야 할 저가 보이지 않았다. 불안한 기운이 로우를 덮쳐오기 시작했다. 갑자기 말이 없어진 사보는 아무래도 어색하다. 그렇게 한동안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로우가 사보의 눈치를 보고 있던 그때, 결국 사보의 눈에서 투명한 구슬 같은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처음 보는 그의 모습에 어찌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운데 심지어는 이내 푸흐, 하는 웃음소리마저 들려온다. 지금 상황에 이런 생각을 해도 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만큼이나 가까이에서 본 사보의 미소는 정말로 ……예뻤다.

 

추위와 불안에 꽁꽁 얼어붙었던 무언가가 화아악, 하고 스르르 녹아내리면서 따스한 온기가 몸 중앙부터 천천히 퍼져나가는 것만 같았다. 심지어 그것은 그의 미소를 바라보고 있으면 있을수록 점점 뜨거워졌다. 심장 고동소리가 최고조로 뜀박질한다. 사보가, 다시, 로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새 둘의 거리는 더 가까워져 있었다. 서로의 뜨거운 숨결이 다 느껴질 정도에, 무슨 말을 하고 싶어도 입술을 조금만 움직이면 바로 닿아버릴 것 같아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사보는 천천히 두 눈을 깜박였다. 눈을 뜨면 그가 보였고, 눈을 감아도 그가 보였다. 더 이상 죄책감의 잔해는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그가 다였다.

 

그래. 이미 좋아진 거면서. ‘그리워하는 이와 닮아있는 사람하고는 멀어진지 오래면서. 트라팔가 로우. 이미 그 자체로 보고 있는 거면서. 나는 왜, 지금까지 그걸 부정해왔나. 사보는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여 곧장 그의 입술에 저의 입을 맞췄다.

 

제 입술로부터 느껴지는 말캉한 것에 잠시 당황하던 로우는 이내 자신도 눈을 감았다. 뒷머리에 닿아있는 차가운 벽이 저의 뜨거운 온기를 식혀주고 있었으나, 그건 결국에 소용없었다. 곧바로 제 두 볼을 잡고 더욱 깊숙이 입맞춤을 이어오는 그의 행동 때문이었다. 뜨겁다. 입술도, 그가 잡고 있는 볼도, 조금씩 스치는 팔, 몸통 할 것 없이 모두 다. 전부 그로 인해 달궈지는 거였다. 코라손이 아니다. 가슴 깊숙한 곳부터 응어리져있던 게 풀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답답함이 모두 해소되는 시원한 느낌……. 눈이 스르륵 떠진다. 그가 내게서 멀어졌다.

 

한동안 서로를 바라보던 우리는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웃음을 터트렸다. 신기하게도 둘 다 눈물을 조금씩 머금고 있는 상태였다. 먼저 침묵을 깬 건 사보였다.

 

난 그가 아니야. 내가 그 사람처럼 죽을 일은 없을 거야, 두려워하지 마.”

그래.”

사실 나도 너를 누군가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어. 이렇게 보니 우리 정말 똑같지.”

……그래.”

그러니까 우리,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거야.”

 

로우가 사보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눈만 깜박였다. 그러자 사보가 훤히 이를 드러내며 웃어 보였다. , 로우의 이마에 약하게 딱밤을 때리며 그가 말했다.

 

비슷한 슬픔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 위로해주자고, 바보야.”

……난 바보가 아니다, 사보야. 그런 소린 너한테 처음 듣는다.”

 

로우가 불만이라는 듯 이마를 한 손으로 문지르며 볼멘소리를 냈다. , 아무렴 어때. 사보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로우의 머리를 헝클였다. 어이, 잠깐만! 로우가 참고 있다가 점점 심해지는 손놀림에 발끈할 참이었다.

 

사랑해, 로우.”

……지금 뭐.”

 

싱글벙글. 당황스러워 버벅거리는 저의 말에도 그저 방긋방긋 웃고 있는 그가 얄밉기만 하다. 웃는 얼굴엔 침도 못 뱉는다더니, 이게 딱 그 상황이었다.

 

사랑한다니까?”

…….”

? 안 들려. 뭐라고?”

나도. ……사랑한다고, 했다.”

 

사보의 눈을 피하며 조그맣게 중얼거리듯이 대답하는 로우에 사보가 결국 웃음을 빵 터트렸다. 푸하하, 진짜 웃겨. 사보가 고통스럽다는 듯 배를 감싸 안고는 말했다.

 

 

어느새 깊은 밤의 어둠은 걷히고, 아침의 밝은 해가 떠오른 후였다. 푸르른 바다 위에 떠 있는 커다란 배. 그 배에서는 두 사람의 행복하다는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고 들려왔다.

 

햇살이 눈부시게 빛난다.

 

 

 

 

 

 

*모든 글의 저작권은 월화비월(@Moon_m0406)에게 있습니다.

*수정(2017.01.26)



 

Bleach

* .

 

 

 

Written by. 월화비월

 

 

 

 

 

***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볼에 맞닿은 눈은 내 체온 탓인지 금방 물이 되어 흘러내려갔다. 나는 어서 팔을 들어 옷소매로 볼을 훔쳤다. 누가 보면 꼭 우는 거라고 오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 내뱉은 숨이 뿌연 안개처럼 잠시 공기 중에 머물다 그만, 이내 모습을 감췄다. 계절적으로 한겨울인 이곳은 지금. 뼈가 시릴 정도로, 추웠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마치 화산재로 뒤덮인 것처럼, 잿빛으로 까마득한 하늘에 나는 무심코 그만, 지금이 대낮이라는 사실을 망각할 뻔했다. 어제저녁부터 구름이 몰리더니, 눈이 올 징조였나 싶다.

 

 

 

쿠로사키 넌, 현세에서의 미련을 버리고 이 소울소사이어티에 있을 수 있는 건가.’

 

 

 

어느새 눈을 감고 가만히 수 없이 떨어지는 눈을 맞고 있던 나는 머릿속을 찌르듯이 들려오는 목소리에 몸을 움찔거렸다. 꽤나 오랜만에 듣는 그의 목소리였다. 아무래도 멈출지를 모르고 끝없이 내리는 이 새하얀 눈 탓에 그가 떠오른 듯했다. ……, 딱히 눈 때문에 그가 떠오른 건 아니겠지만. 날이 날이니.

 

이번에는 팔을 쭉 뻗어 손바닥을 펼쳐보았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손바닥 위로 우수수 떨어지는 눈들에 나는 그것들이 닿을 때마다 손가락을 조금씩 움찔거려야만 했다. 그저 순전히 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아까보다 눈이 더 차갑게 느껴졌다.

 

손바닥에 닿는 눈은 금세 얼마 되지도 않아서 녹았다. 녹은 눈은 손가락 사이사이로, 흘러내려가 바닥으로 추락했다. 가만히 그것을 바라보고 있자 하니, 그때가 회상되기 시작했다. 가능한 떠올리기 싫은, 그 참혹했던 날. 나는 그날 아무것도 하지 못 했다.

 

 

 

 

 

*은 눈이 내.

 

 

 

 

 

은발인지 백발인지 모를 딱 초등학생 정도의 체구의 소년은 많은 양의 피를 흘리고 있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를 보완하기 위해 손에 꼭 잡은 참백도를 땅에 꽂은 소년의 모습은 흔히들 말하는 그런 안타까운 모습이 아니었다. 끝까지 저의 긍지를 지키는 소년을 안타깝게 여기는 이가 누가 있을까.

 

소년의 목과 팔을 뒤덮은 얼음은 이미 갈라질 대로 갈라져 붉은 피와 함께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은 지 오래였다. 유리가 깨지는 맑은 소리와는 어울리지 않게 투명한 얼음을 발갛게 물들이는 끈적끈적한 붉은 액체들……. 그와 함께 찾아오는 코를 찌르는 것 같은 쇳내는 내게 잊지 못할 기억으로 자리 잡아 있다.

 

너무도 당황스러운 상황에 아무런 조치도 하지 못 하고 텅 빈 눈으로 그저 소년을 바라보고 있던 나. 고개를 힘겹게 든 소년의 눈과 마주친 순간, 덜덜 떨리던 몸이 석고상마냥 굳어버려선 식은땀이 줄줄 뺨을 타고 흘러내려 갔다.

 

 

괜찮은 거냐고, 지금 대체 무슨 상황이냐고, 말을 해보려 입을 벌려 보았건만 정작 뻥끗 거리는 입모양과는 다르게 나오지는 않던 목소리와, 뻣뻣하게 굳어버린 두 다리는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텅 비어버린 눈. 빛이 바랜 두 눈동자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뜨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그렇게 한동안 그 행동을 반복하던 소년은 차마 힘겨워 고개를 움직이지는 못하고 그저 눈으로만 제 주위를 둘러다보았다.

 

저와 마찬가지로 수많은 피를 흘린 채 주위에 쓰러져 있는 수많은 이들. 소년이 지키지 못한, 검은 사패장을 입고 있는 그들은 나와 소년이 입고 있는 것과 똑같았다.

 

 

 

……늦어도 너무 늦었다, 쿠로사키.”

 

 

 

푹 쉬어버린 음성은 소년이 얼마나 고생했는지를 간접적으로나마 알려주고 있었다. 그제 서야 그동안 개미만한 소리도 나오지 않던 입에서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토시로, 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글쎄, 토시로가 아니라 히츠가야 대장님이라니까. 쿨럭. , 말하는 것도 이젠 한곈가.”

 

 

 

소년의 다 간 목소리 안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소년의 입가를 흐르는 피에 나는 다시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저 몸으로 지금까지 서있던 게 신기할 정도였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소년은 그때서야 몸의 긴장을 푼 건지 자리에 주저앉았다. 저가 만든 얼음 덩어리에 기대어 힘겹게 숨을 몰아쉬는 소년의 모습에 가슴이 아렸다.

 

 

 

이게 무슨 일인데.”

 

무슨 일이긴. 소울소사이어티에서, 그것도 호정 13번대 대장 중 하나인 내가 지금 이 꼴이라는 건 적이 처 들어왔다는 소리 밖에 더 있겠냐.”

 

어째서……. 그 적은 대체 어디에 있는데!”

 

 

 

내 말에 소년은 그저 픽 웃음을 흘릴 뿐이었다. 얼마 가지 않아 눈에 힘을 주고 나를 노려보듯 쳐다보는 소년의 눈빛에 나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눈을 깜박였다. 그러자 힘을 준 눈을 풀더니 후, 깊은 한숨을 내뱉으며 입을 여는 소년이었다.

 

 

 

지금 내가 내뿜는 영압도 못 느낄 정도니, 이 소울소사이어티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눈치 채지 못하는 거야, 뻔하겠군.”

 

?”

 

걱정 마라, 쿠로사키. 날 이렇게 만든 적은 해치웠으니. 다만, 다른 대장들도 지금 나처럼 힘들게 싸우고 있다는 것뿐이다.”

 

 

 

소년의 말을 다 듣고서야 그의 말이 무엇을 뜻하고 있던 건지 깨달았던 나는 당황함을 진정시켰다. 그제야 소울소사이어티 전역에서 느껴지는 강한 영압들이 서로 부딪치고 있는 사실들에 나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주먹을 꽉 쥔 나를 쳐다보던 소년은 잠시 고개를 숙여 땅을 바라보았다. 계속해서 제 몸에서 떨어져 나가 부서지고 있는 얼음들. 조각난 얼음 잔해가 공중에 머무를 때면,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마치 별빛처럼.

 

 

 

쿠로사키. 내가 저번에 네게 했던 말 기억하고 있나.”

 

……갑자기 무슨 소리야.”

 

현세에서의 미련을 버리고 이 소울소사이어티에 머무를 수 있겠느냐고 했던 말이다.”

 

 

 

사뭇 진지해진 소년의 목소리에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 했다. 갑자기 이 상황에서 그 얘길 꺼내는 소년이 이해가 되지 않는 한편, 꽤나 위태위태해 보이는 소년이 괜한 소리를 하는 것 같지는 않아서 가만히 경청해 들었다.

 

 

 

네 힘은 이미 우리 대장들의 영압 조차도 뛰어 넘었어. 더 이상 현세에 있다가는 그들에게 영향을 줄 뿐이다.”

 

그런 건, 이미 알고 있어.”

 

 

 

그래.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내가 더 이상 현세에 있으면 안 된다고. 이 힘을 얻었을 때부터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굳이 소년이 내게 말을 해주기 전에도.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하지만 아직 나는 현실에 남은 미련이 많았다. 많았고……, 그리고……….

 

 

 

역시, 너와 난 닮은 점이 많군. 쿠로사키.”

 

……그 미련이랑 이 미련이랑 뭐가 비슷하냐.”

 

적과 싸우면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곳을 지키기만 한다면 다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왠지 미련 때문인지 놓지를 못하고 있었다.”

 

무슨 소리야. 내가 지금 당장…….”

 

누구를 부르든 소용없어. 내 몸 상태는 내가 잘 알아. 너도 보이잖아. 부서지는 것도 모자라 녹고 있는 이 얼음들이.”

 

 

 

부탁이 있다. 소년의 두 눈이 그렇게 말해오고 있었다. 나는 누군가를 불러오는 것을 포기한 채 소년의 앞에 앉아 소년과 눈을 마주했다. 여전히 기력이 느껴지질 않는 소년의 눈은, 내게 참 낯설었다.

 

 

 

 

 

*.

 

 

 

 

 

예전 일을 떠올리며 하염없이 길을 걷다보니 어느새 내가 가려던 도착지에 도착해 있었다. 한 허름한 상점을 가리키는 간판엔 우라하라 상점이라고 적혀있었다.

 

 

 

, 이치고님. 기다리고 있었어요.”

 

우라하라상, 내가 올 거 알고 있었어?”

 

이미 준비도 다 해 놓은 상태랍니다.”

 

 

 

. 이거 완전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이네. 괜히 뒷목을 긁적이며 그가 안내하는 곳으로 따라 들어갔다. 그러자 떡하니 놓여있는 소울소사이어티로 가는 문에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아마도 이제, 이곳을 들어가면 인간의 몸으로 현세에 오는 일을 불가능에 가깝겠지. 나는 고개를 숙였다.

 

 

 

현세에서의 미련을 버리고.’

 

 

 

번뜩. 소년이 떠올랐다. 역시 나는 망설여서는 안됐다. 발을 내딛었다. 천천히, 그곳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정말, 가시는 겁니까, 이치고님.”

 

 

 

평소엔 볼 수 없는 우라하라상의 사뭇 진지한 목소리에 나는 발걸음을 멈췄다. 딱 소울소사이어티로 향하는 문 바로 앞이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우라하라상을 바라보며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 내가 가는 수밖에 없잖아.”

 

……당신이 가도 해결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계속 여기에 있어봤자, 안 좋은 영향이나 끼치기만 하고……. 소울소사이어티가 위험하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피하기만 하는 건 나답지 않으니까.”

 

 

 

심지어 당신도 그렇게나 다쳐서 왔잖아. 내 말에 모자위에 손을 얹은 우라하라상은 고개를 숙였다.

 

 

 

항상, 감사하고 있습니다.”

 

 

 

푹 눌러 쓴 모자 탓에 그림자에 그늘진 우라하라상의 얼굴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의 진심은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렇게 힘차게 발을 뻗었다. 소울소사이어티를 가기 위해. 소중한 인연이 되어버린 그들을 지키기 위해서. 또한, 소년을 보러가기 위해.

 

 

오늘은, 소년이 눈이 된지 딱 1년 되는 날이었다. 다시 그 막강한 힘을 가진 적이 처 들어온 지, 1년 된 날.

 

그날과는 다르게, 내 발걸음에선 이제 망설임은 느껴지지 않았다. 미련 또한.

 

현세에서 마지막으로 본 눈은, 소년의 눈과 같이 푸르른 눈이었다.

 

 

 

 

 

*가는 을 바.

 

 

 

 

 

부탁이 있다.”

 

뭔데.”

 

미련 없는 길을 가라. 쿠로사키.”

 

 

 

앞으로 네가 할 선택에 후회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소년은 내게 그렇게 말했다. 선택에 후회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소년의 영압이 갈수록 재빠르게 희미해져 가는 것이 온 몸으로 느껴졌다. 그래서였나, 소년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은 이유는.

 

그저 이제 그만 말하라고. 그렇게 소년을 닦달할 뿐이었다.

 

 

 

우리는 이미 네게 많이 고마워하고 있어. 평범할 수 있었던 네 삶이 더 이상 평범할 수 없게 되어버린 건 많이 미안해하고 있고.”

 

이제 그만 말하라니까! 이제 토시로, 네 영압 희미하다고!”

 

내가 죽을까봐 걱정 되는 건가.”

 

 

 

당연하지. 내 말에 소년은 자기가 말을 잘 못 한 것 같다며 웃음을 흘렸다.

 

 

 

아까 말했던 미련은, 이 몸으로 하지 못 한 일이 있기 때문이야. 난 죽지 않는다.”

 

하지만 너, 영압이.”

 

내 영혼은 소울소사이어티의 일부가 된다. 죽는 게 아니야.”

 

 

 

그러니까 쿠로사키, 쓸 데 없는 걱정 말고 어서 다른 사람들이나 도우러 가라. 소년의 등 떠밀음에 어쩔 수 없이 걸음을 돌려야 했던 그때. 나는 얼마 가지 않아 소년의 영압이 완전히 사라졌단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시 급히 소년이 있던 곳으로 되돌아갔을 땐, 오로지 수많은 검은 사패장들 가운데에 튀는 하얀 하오리만이 남겨져 있을 뿐이었다.

 

눈이 하늘 높이 올라가고 있었다. 보통 알고 있는 새하얀 눈은 아니었다. 푸르게 빛나는 눈. 나는 이내 바닥에 녹고 있던 얼음들 역시 반짝반짝 빛나는 빛이 돼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늘로 올라가는 눈을 바라보며, 나는 조금이라도 새어나오려 하는 눈물을 꾹 참았다. 소년, 토시로에게 마지막으로 해줄 수 있는 일은 이것뿐이었으니까. 만약 눈물을 흘렸다면, 내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는 놈이었냐며 실망할지도 모른다.

 

그때였다. 소울소사이어티의 전역에서 수많은 영압들이 부딪치던 것이 하나둘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마치, 이번에는 물러난다는 듯이.

 

 

아마, 토시로가 내게 충분히 고민할 시간을 주었던 건 아닐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들었다.

 

 

 

 

 

―「Fin.

 

 

 

*모든 글의 저작권은 월화비월(@Moon_m0406)에게 있습니다.

*재업(2016.06.19)

*수정(2016.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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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each

포장 끝! 쿠로사키군이 좋아하겠지?”

 

환한 달빛만큼 빛나던 그녀의 표정과 활기찬 목소리를 끝으로, 왠지 모를 불안감에 지금까지 지붕 위에서 몰래 듣고 보던 그는 다음날을 예상하며 고개를 떨궜다. , 나는 이제 죽었구나.

 

214, 행복하지만 지옥 같았던 그날이 다시 다가오고 있었다.

 

 

 

*

 

 

valentine day_제가 많이 좋아하는 완두님을 위하여.

 

Point of view : Kurosaki Ichigo

 

 

Written by. 월화비월

 

 

쿠로사키군, 어서 먹어 봐!”

하하, ……그래.”

 

사랑스러운 하트 모양의 상자에 담긴 아기자기한 모양새의 맛있어 보이는 자태를 풍기고 있는 초콜릿들. 그리고 애교 섞인 목소리로 저에게 상자를 들이밀며 권하는 그녀. 하지만 나는 그저 어색한 웃음을 보일 뿐이었다. 지금까지 그녀의 음식을 맛본 적이 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어제저녁 그녀가 초콜릿을 만드는 모습을 지켜본 점이 가장 큰 이유였다.

 

자신을 위해 정성스럽게 초콜릿을 만들어 주는 그녀에게는 정말로 고마웠지만, 초콜릿을 만들 때 들어가서는 안 될 재료를 넣던 것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이 소름이 돋았다. 대충 예시를 들자면 곤약, 마요네즈, 양파…… 등등. 그것들을 보고도 어찌 지금 자연스럽게 초콜릿을 목구멍으로 넘길 수 있겠는가. 오히려 멀쩡함을 뛰어넘어 먹음직스럽게 보이는 초콜릿의 모습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안 먹을 거야?”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큼지막한 눈은 여전히 강하게 빛나고 있었다. 계속 먹겠다는 말만 반복하면서 시선을 피하는 내 행동에 섭섭했는지 나를 올려다보는 그녀의 강아지 같은 눈망울에 나는 결국 속으로 한숨을 푹 쉬었다.

 

무거웠던 팔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저절로 꿀꺽, 침이 삼켜진다. 어느새 집은 초콜릿에 시선을 두다가도 잠시, 그녀의 기뻐하는 모습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녀의 해맑은 웃음에 나까지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나는 흐뭇하게 웃으며 초콜릿을 입 가까이로 옮겼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한입, 깨물었다. ……, 이번엔 꽤 괜찮은.

 

어때? 맛있어?”

, 이노우에. 맛있, !”

 

입안에 있는 것을 씹으면 씹을수록 그녀를 바라보면서 차마 어떤 말을 못하고 그저 바람 빠진 웃음소리만 흘리기도 잠시, 나는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 구역질을 참는 데에 정신이 팔린 탓에, 어느새 내 손에서 나가떨어진 잇자국이 선명하게 난 초콜릿 조각은 쓸쓸히 찬 바닥에 자리했다.

 

쿠로사키군!”

 

금세 얼굴이 잿빛으로 변해서는 눈을 질끈 감고 있는 내게 바짝 다가와 걱정스럽게 내 어깨를 조심스럽게 감싸는 그녀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왜 나는 그녀의 특이한 식성을 공감하지 못하는 걸까. 그녀의 음식을 맛있게 먹던 란기쿠씨가 부럽다.

 

……나는 이것보다는.”

……!”

이쪽이 더 맛있을 것 같은데.”

 

일순간에 붙었다가 떨어지는 따스한 입술의 감촉에 그녀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며 얼굴을 붉힌다. 나는 이 기세를 몰아 씩, 입꼬리를 올리며 그녀의 목덜미를 감싸 끌어당겨 천천히 입을 맞췄다. 그리고 상자를 저 멀리 밀어 보냈다. 초콜릿보다 더 달콤한 그녀의 입술을 음미하며.

 

 

*Fin.

 

 

 

 

완두님 요청대로 블온 후 곧 있을 발렌타인데이를 생각하며! 완두님이치히메개인지 정말 축하드려요! 꼭 완판하시길 바라요! 제가 완두님 많이 좋아해요 월화비월(@Moon_m0406)드림.

 

 

 

 

*모든 글의 저작권은 월화비월(@Moon_m0406)에게 있습니다.

*재업(2016.01.20)

*수정(2016.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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