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Q/[오이히나] 너의 이름은 AU

 

 

BGM : 토토의 즐거운 하루 - 시즈코 모리

 

 

 

[오이히나] 너의 이름은 AU_

 

 

 

EP1. 일어나 보니 생판 처음인 곳.

 

 

 

written by. 월화비월

 

 

 

 

*

 

 

 

 


01. 잠자는 새에 납치를 당해버렸다.

 

 

 

 

 시끄러운 노랫소리가 방안을 꽉 채운다. 이에 방금 전까지만 해도 색색 잠을 자고 있던 남자가 몸을 조금씩 움찔거렸다. 평온했던 얼굴에 짜증이 가득하다.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에 반짝이는 오렌지빛깔의 머리카락을 헝클이며 침대에서 부스스 일어난 남자는 먼저 노랫소리를 끄기 위해 손을 움직였다. 머리맡에 있던 핸드폰을 몇 번 만지작대니 귀가 아플 정도로 컸던 소리가 사라졌다. 마음까지 편안해지는 기분이다. 남자는 이 평온함을 잠시 즐기기로 했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했다. 방바닥이 이렇게 푹신푹신 했었나? 설마 나, 지금 ‘침대’ 위에 있는 거야?

 

 사실을 깨달은 남자의 얼굴이 순식간에 낯빛으로 변해버렸다. 갈 곳을 잃은 눈동자가 방 안 곳곳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곳이었다.

 

 분명 어제 오버워크 하는 걸 이와쨩한테 걸려서 바로 집 가서 잠을 잔 게 맞을 텐데……. 자고 일어나니까 자신의 방이 아니라니. 잠자는 새에 납치라도 당한 걸까?

 

 남자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더니, 후우― 하고 내쉬었다. 심호흡을 하니 조금 진정이 되는 것 같았다.

 

 


 ‘그래, 일단 진정을 하자. 만약 납치라면 먼저 이곳의 구조를 파악해야…….’

 

 『띠링♪』

 

 ‘……핸드폰?’

 

 


 남자는 방금 전 맑은 알림소리가 난 곳을 바라보았다. 핸드폰이었다. 화면이 빛나는 걸 보니 문자가 온 것 같았다.

 

 기종을 봐선 분명 내 핸드폰은 아닌데, 자기를 납치한 사람의 핸드폰인 걸까? 남자는 조심스럽게 핸드폰에 손을 가져다대었고, 시간이 지나 깜깜해진 화면에 저의 얼굴이 비춘 걸 보고 깜짝 놀라 핸드폰을 내던지고 말았다.

 

 


 ‘방금, 뭐였지?’

 

 


 이 방과 같이,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평소 스스로도 자화자찬하던 제 잘생긴 얼굴이 아니라, 그냥 귀여운……. 아,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오이카와상이 귀엽지 않다는 건 아니고.

 

 혹시 꿈인 걸까. 이거, 꿈인 거겠지? 하하. 남자는 허탈한 웃음을 날리며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썼다. 그래, 다시 한 번 봐보는 거야. 마침 저기가 욕실인 것 같으니 가볼까? 거울이 있겠지. 그렇게 남자는 계속 입으로 “아닐 거야, 아니야. 잘못 본 걸 거라고.” 중얼거리며 욕실로 향했으나, 곧 이 행동을 후회했다.

 

 


 “어째서―――?!?!?!?!”

 

 


 대체 이 눈앞에 보이는 귀엽게 생긴 사람은 누구란 말인가. 오이카와가 충격을 먹은 얼굴로 제 눈앞에 보이는 거울 속의 남자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히나타!! 대체 언제까지 잘 거―! 아? 일어나있었네? 문자를 확인 안하 길래 아직도 자고 있는지 알았잖아. 뭐해, 빨리 준비 안하고? 이러다 수업 늦겠어!”

 

 “……에? 엣?”

 

 “5분 안에 안 나오면 나 먼저 간다?”

 

 “잠, 잠깐만. 저기?”

 

 


 갑자기 방으로 들어온 남자가 제 할 말만 하고는 쾅, 문을 닫고 나가버리자 오이카와는 혼란스러움을 뛰어넘어 정말로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이 사람을 알고 있는 사람인가? 친구? 그나저나 히나타라면, 이 사람의 이름?

 

 일단 아는 게 없으니 히나타로 추정되는 이 사람을 아는 것 같은 저 남자를 따라 갈 수밖에. 오이카와는 적당히 주위에 보이는 옷을 주워 입었다. 마지막으로 거울 앞에서 제 상태를 점검한 오이카와가 흐음, 신음한다.

 

 아무래도 히나타라는 이 사람, 꽤 작네. 대충 170 정도일까……. 잘 살펴보니 방에 배구에 관련된 게 많아 보이던데 혹시 수비 전문인가?

 

 


 “히나타! 진짜 나 먼저 가버린다!”

 

 “엑, 지금 가!”

 

 

 

 

 

*

 

 

 

 


02. 날 수 있어.

 

 

 

 

 소년은 일어나자마자 기지개를 폈다. 몸 이곳저곳이 쑤시는 것을 느낀 소년이 기지개를 하다말고 고개를 갸웃했다.

 

 


 ‘으음. 오늘따라 몸이 왠지 찌뿌둥한 게, 마치 고등학교 때가 생각이 나는 걸.’

 

 


 뭔가, 가끔씩 재수 없지만 실력은 인정하는 그 놈과 다이치상에게 혼날 정도로 오버워크를 한 다음날 같다고 해야 할까……. 푸스스. 바람 빠진 웃음소리를 내던 소년이 이내 고개를 떨궜다.

 

 


 “……그립네.”

 

 


 조용히 한 마디를 중얼거린 소년은 얼마 안가 이상함을 느꼈다. 지금 제 눈에 보이는 게 현실이 맞나? 혹시 아직 꿈을 꾸고 있는 걸까. 순간적으로 혼란이 찾아온 소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침대 위가 아니었다. 실수로 친구의 방에서 잠이 든 거라 생각해도 기숙사의 모든 방에는 침대가 배치되어 있을 텐데 이 방 어디에도 침대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특히, 기숙사라기보다는 평범한 가정집의 방 같았다.

 

 

 뭐지, 나 대체 어제 뭘 했던 거지? 소년이 제 짙은 갈색 빛을 띠는 머리칼을 헤집으며 혼란스러워 하는 그때였다.

 

 


 “어이 망할카와!! 평소에 잘만 준비하던 녀석이 오늘따라 왜 이렇게 느려? 두고간다 굼벵이 같은 자식.”

 

 “―에?”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어젖혀지면서 누군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들려오는 짜증서린 애정이 깃들여진 목소리는 왜인지 낯설지가 않다, 고 소년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와이즈미상……?”

 

 


 제 기억 속의 이와이즈미 하지메라는 사람은 머리가 더 길긴 했지만, 이 흑발의 눈매가 날카롭게 올라간 사람은 분명 저가 아는 그 이와이즈미 하지메가 맞았다. 소년의 뺨을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그렇다면, 이와이즈미상이 말하는 저 ‘망할카와’ 는…….

 

 


 ‘나, 설마 지금 대왕님인거야?’

 

 


 사실을 깨달은 소년이 충격을 금치 못하고 입을 떡 벌린 채 멍하니 땅바닥만을 바라봤다. 이에 이와이즈미가 의아해하며 소년의 등을 힘껏 내리쳤다.

 으아악! 소년의 짧은 외마디 비명을 질렀고, 아픈 부위에 손이 잘 닿지 않자 끙끙 거리며 앓는 소리를 내었다.

 

 


 “너 오늘 뭔가 이상하다.”

 

 “에, 에? 뭐가요?!”

 

 “……됐고, 빨리 정신 차려라. 학교 개학 첫날부터 지각할거냐, 네놈은?”

 

 


 이와이즈미가 소년을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며 말했다. 이내 이와이즈미가 방문을 닫고 나갔고, 그저 두 눈만 깜박이며 닫힌 문을 바라보던 소년은 밖에서 진짜 두고 가버릴 거라고 소리치는 그에 의해 한껏 흠칫하며 옷걸이에 걸려있는 교복을 찾았다.

 

 실로 오랜만에 보는 아오바죠사이의 교복이었다. 그가 교복을 입고 있다는 것과, 개강이 아닌 개학이라는 이와이즈미의 말을 한참 생각하며 고민하던 소년은 이내 머릿속에서 하나의 답을 내렸다.

 

 


 ‘그러니까, 대왕님하고 이와이즈미상이 고등학생이라는 소리?’

 

 


 이상하다. 내가 아는 대왕님과 이와이즈미상은 지금 대학교 졸업반에 들어가신 걸로 알고 있는데. 과거로, 심지어 대왕님이 된 ‘나’ 라니……. 이건 필시 꿈일 게 분명했다.

 

 얌전히 교복을 갖춰 입기 시작한 소년은 조금 들뜨는 기분에 심장이 설레었다. 전체적으로 길쭉길쭉한 몸이 마음에 든 듯 바지를 입다가도 허공에 발차기를 하며 우쭐해한다. 이런 행동을 반복하던 소년이 무언가를 깨달은 듯 눈을 크게 떠보였다.

 

 


 “……작지 않아.”

 

 


 조용히 속삭이는 목소리와는 다르게 소년의 눈은 그 무엇보다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소년의 두 눈이 희망으로 가득 차있다. 조금씩 가쁘게 뛰어오는 심장 박동을 느끼며 소년이 방문을 나섰다.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린다.

 

 

 더 이상 조급해하지 않아도 돼. 지금이라면 괜찮아. 선천적인 재능의 차이에 눌리지 않아도 되는 거야. 대왕님의 이 몸이라면, 가능해.

 

―날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