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트위터의 [#우리들의_디지몬_100제_합작] 중 ‘40.휴식’을 주제로 쓴 글 입니다.
*디지몬 100제_ 40.휴식
written by. 월화비월)
§
사람들이 디지털월드에 접근을 할 수 없게 된지 그날로부터 어느새 3년이란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또한, 디지털월드에서 태어나 자란 디지몬들조차 자신들의 고향인 디지털월드에 돌아가지 못했다. ―분명 하루 전까지는 그러했다. 그랬기에 온 세상의 디지몬 테이머들은 하루아침에 디지몬 친구들이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지자 엄청난 혼란을 겪고 있었다. 어두운 방 안에서 홀로 숨죽여 눈물을 흘리고 있는 소년 역시 다를 것 없었다. 소년의 방 밖에서는 한 소녀가 중년으로 추정되는 나이대의 여인에게 안겨 꺼이꺼이 눈물을 토해내고 있었다. 소년과 소녀는 너무나도 달랐다. 여인의 품 안에서 울음을 점점 그치며 안정을 취해가는 소녀와는 달리 소년은 시간이 아무리 가도 여전히 암울한 분위기였다. 소녀와는 다르게 소년은 크게 소리 내어 울지도, 그렇다고 눈물을 많이 뽑아내지도 않았다. 한 두 방울 눈물을 흘린 소년은 허탈한 웃음을 지은 채 두 손에 사진 한 장을 꽉 쥐고 침대에 걸터앉아 있을 뿐이었다.
“…아구몬.”
소년은 작게 저의 디지몬 친구 이름을 중얼거리듯 내뱉었다. 하지만 소년에게 디지몬 친구는 대답해주지 않았다. 항상 그렇듯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소년을 바라 볼 디지몬 친구는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그 디지몬 친구는 사진 속에 다른 이들과, 또 소년과 함께 활짝 미소를 짓고 있었다. 사진 뒤의 하얀 여백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1999.08.01. 그 여름 캠프로부터, 소중한 인연」
“어디로 가버린 거야.”
소년의 어깨가 점점 떨려왔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소년은 소리를 죽이려 저의 아랫입술을 꽉 깨문 채 눈물을 흘렸다. 소년의 볼을 타고 내려오는 눈물 한 줄기가 참 시렸다.
야가미 타이치, 17세. 고등학생 2학년.
―그 소년은 혼자 짊어지려 하고 있었다. 그것이 언제든 상관없이 소년은 항상 그러했다.
§
타이치. 타이치는 가까이에서 아구몬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화들짝 놀란 타이치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아구몬의 형체는 그 어디에도 보이지가 않았다. 역시 환청이었나. 타이치가 작게 중얼거리며 다시 침대에 누웠다. 타이치는 자꾸만 머리가 지끈거려오는 탓에 인상을 찌푸렸다. 오늘이 주말이어서 다행이다, 라고 타이치가 스치듯 생각했다. 혹, 오늘이 평일이어서 당장 학교를 가야만 하는 날이었다면 슬퍼하고 있는 친구들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버팀목이 되어줘야 해.’
‘디지몬들은 갑자기 어디로 사라진 걸까.’
타이치의 머릿속은 이런 생각들로 가득했다. 특히 후자의 생각보다는 선자의 생각이 더욱 강했다. 리더의 자리에 있는 자기가 무너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일까, 타이치는 지금 저의 상태보다 다른 아이들을 걱정하고 있었다. 타이치가 천장을 바라보며 한참동안을 생각에 잠기고 있을 때, 타이치의 핸드폰이 진동을 울리며 맑은 소리를 내었다. 타이치가 천천히 손을 뻗어 핸드폰을 집어 들고는 화면을 열었다. 코시로의 문자였다. 문자를 확인해야할지, 말지에 대해 망설이던 타이치는 결국 「Yes」 버튼을 눌렀다. 문자를 확인한 타이치는 잠시 생각에 빠지더니 아무 말 없이 옷을 챙겨 입기 시작했다. 그리곤 방 밖으로 나가 노크도 없이 히카리의 방문을 활짝 열었다. 히카리는 침대에 엎드리듯 누워 베개에 얼굴을 묻고 있는 상태였다. 이제 울지 않는 구나, 다행이다. 히카리가 울지 않는 걸 확인한 타이치가 안도하며 입을 열었다.
“히카리.”
타이치의 목소리에 히카리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타이치를 바라봤다. 히카리의 용모를 확인한 타이치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항상 생기가 넘치던 히카리의 눈은 이미 빛을 잃은 상태였고, 그 환하게 웃던 미소 역시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타이치는 순간 저의 아랫입술을 깨물며 주먹을 꽉 쥐었다. 무슨 일이야, 오빠? 많이 울었는지 히카리의 목소리는 잔뜩 갈라진 음성을 내고 있었다. 저의 목소리에 자신도 놀랐는지 히카리는 눈을 크게 뜨며 큼큼, 하고 목소리를 다듬기 시작했다. 타이치는 그런 히카리를 보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모두가 기운을 찾을 수 있도록 해야만 해.’ 타이치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며 언제나 그랬듯, 평소와 같이 활기찬 목소리로 히카리에게 말했다.
“가자, 히카리.”
“응? 어디를?”
“코시로 집에. 디지바이스 꼭 챙기고 나와!”
오빠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타이치는 그 말을 끝으로 히카리의 방문을 닫고 거실로 향했다. 타이치의 부모님은 심각한 얼굴로 뉴스를 보고 있었다. 디지몬에 관한 뉴스였다. 대충 아직까진 디지몬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왜 사라진 건지에 대해 밝혀진 것이 하나도 없어 죄송하다는 내용인 걸로 보였다. 어느새 자신들의 옆에 서있는 타이치를 눈치 챈 여성과 남성은 깜짝 놀라며 타이치의 상태를 확인했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타이치의 모습에 의아한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도 다행이라는 듯 미소를 지어보이는 부모님을 보며 타이치 역시 웃음을 짓고선 말했다.
“코시로 집에 다녀올게요! 히카리한테는 1층에서 기다린다고 말 해주세요.”
늦게까지 놀다오면 안 된다! 여인의 목소리를 끝으로 타이치는 현관문을 열고 집을 나섰다.
“에, 오빠 진짜 먼저 나갔어요?”
“응. 나간 지 얼마 되지도 않았어. 아마 지금쯤이면 엘리베이터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데?”
“그럼 저도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히카리! 저녁 늦게 오면 안 돼!”
네에―. 히카리는 옅게 웃으며 현관문을 열었다. 문이 잠기는 것 까지 확인한 히카리는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 까지 빠르게 걸어갔다. 거의 앞까지 도착한 히카리가 창 너머로 보이는 엘리베이터 층수에 아직 안 도착 했구나, 하고 안심하며 모퉁이를 돌려했지만 누군가의 무거워 보이는 두 어깨에 그 자리에서 더 가지 못하고 멈춰 섰다. 그 사람이 누군지 확인하려 벽에 몸을 딱 붙인 채 슬쩍 고개만 내민 히카리는 잽싸게 등을 벽에 붙이고 저의 존재를 숨겼다. 타이치였다. 소리도 없이 고개를 푹 숙인 채 눈물만 서럽게 흘리고 있는 그 사람은, 저의 오빠인 야가미 타이치였다. 히카리는 숨죽이며 엘리베이터가 빨리 도착하기를 바랐다. 결국 타이치가 엘리베이터에 타고 내려가는 것을 확인한 히카리가 그제야 모퉁이를 돌고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히카리! 빨리 내려왔네.”
“…응, 오빠.”
1층에 히카리가 도착해 밖으로 나서자마자 타이치가 웃으며 히카리를 반겼다. 히카리는 그런 타이치에게 아무 것도 묻지 않은 채 코시로의 집으로 향했다. 히카리는 계속 웃음을 잃지 않은 채 저에게 이런 말, 저런 말을 하며 분위기를 계속 띄우려 하는 타이치를 보며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미안해 오빠.’
히카리는 그렇게 몇 번 씩이나 속으로 타이치에게 사죄했다. 저의 버팀목인 오빠가 무너진다면 자신이 버틸 수 없다고 생각한 히카리는 타이치에게 아까 왜 울었느냐고 묻지 않았다. 오빠는 분명 괜찮을 거야. 나 말고 오빠를 위로해줄 사람들은 많은 걸. 히카리는 이렇게 이기적인 생각을 하는 자신이 미웠지만 코시로의 집에 도착 할 때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어이, 코시로. 왜이래? 너무 풀죽어 있잖아, 너. 엑, 다들 너무 우울하다니까! 애들은 지금 잘 있을게 분명해! 모두 잘 알잖아?”
하지만 히카리의 생각은 틀렸다.
“자자, 다들 스마일! 웃자고!”
이 소년을, 저 보다는 다른 이들의 짐만 덜어주려 하는 타이치를 위로해주는 이는 끝내 없었다. 모두 타이치에게 위로를 받으며 조금씩 미소를 되찾아갈 뿐, 타이치에게 휴식을 제공하는 이는 단 한명도 있지 않았다.
§
“타이치, 밥 먹어야지.”
“배 안 고파요―.”
타이치는 말끝을 길게 늘이며 크게 소리쳐 대답하고는 침대에 엎드려 누웠다. 그리고는 아까 전의 일들을 정리했다.
‘디지몬들이 다시 디지털월드로 돌아간 건가 싶어서 코시로의 노트북과 디지바이스로 별 짓을 다 해봤지만 디지털 게이트는 전혀 열리지 않았어.’
‘내일 다시 만나서 해보자고는 했지만 과연 디지몬들이 디지털월드로 돌아간 게 맞을까? 디지털 게이트가 열릴 가능성은?’
타이치는 머리를 싸매며 고민을 했지만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결론이 나지 않자 답답한지 저의 가슴 언저리를 몇 번 내리쳤다. 그러던 와중, “타이치” 하고 코로몬의 목소리가 타이치이 귓가에 들려왔다. 타이치는 깜짝 놀라했지만 고개를 들지 않았다. 분명 이번에도 환청일게 분명해. 하고 단정을 지은 타이치는 베개에 저의 얼굴만 파묻었다. 잠시 후, 무언가 생각난 타이치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요즈음 들어 코로몬이 계속 저에게 하던 말이 어렴풋이 떠올려진 것이었다. 타이치는 집중해 가장 최근 코로몬과 한 대화를 회상했다.
「타이치.」
「왜. 또 배고파?」
「타이치, 누군가 나를 부르고 있어.」
「그래 그래, 배고픔이 너를 부르고 있겠지.」
「그게 아니야 타이치. 나뿐만이 아니야. 모두를 부르고 있어!」
이때 타이치는 코로몬이 틈만 나면 하던 말이었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넘겼었다. 자신이 바보였다. 코로몬의 말을 쉽게 넘겨서는 안 되는 거였는데. 타이치는 그렇게 스스로를 자책했다.
“내가 눈치만 챘더라면.”
―모두가 슬퍼하는 일 따위 생기지 않았겠지. 타이치는 뒷말을 속으로 삼키며 저의 머리를 쥐어 잡았다. 왜, 왜 눈치를 채지 못한 거야. 코로몬은 계속 신호를 보내오고 있었는데. 괴로움이 가득 담긴 타이치의 중얼거림은 그저 타이치의 방 안에서만 자리 잡고 있을 뿐이었다. 깜깜하기만 했던 타이치이 방 안에 달빛이 창 사이로 들어왔고, 그 빛은 타이치를 비추었다. 침대위에 걸터앉아 저의 머리를 쥐어 잡고 있는 타이치의 얼굴이 달빛에 머리카락의 그림자가 져서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림자가 미처 닿지 못한 그의 안면 아랫부분은 확실히 보였다. 그는 또 울고 있었다. 다른 이와 함께 있을 땐 웃음으로 저를 포장했던 그는 혼자가 되었을 땐 이렇게 항상 눈물을 흘렸다. 스스로를 자책하고, 자책하면서 다른 이들을 저가 이끌어 가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보고 싶어, 아구몬. 타이치는 저의 디지몬 친구를 그리워했다. 저의 디지몬 친구만큼은 자신을 격려해주었다. 홀로 이렇게 자책하고 있을 때에 저의 디지몬 친구는 아구몬이었을 때도, 코로몬이었을 때도, 상관없이 “걱정 마. 타이치, 나는 항상 타이치의 곁에서 타이치가 웃을 수 있도록 해 줄 거야.” 라고 말해주었다.
「그런데 타이치. 너는 왜 네가 모든 걸 끌어안고 가려고 하는 거야? 친구들한테 말하면 좋을 텐데.」
어느 날 코로몬이 슬퍼하고 있는 타이치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타이치는 이때 아무 말 없이 코로몬을 냅다 끌어안았다. 당황한 코로몬이 이상한 소리를 내었고, 타이치는 코로몬에게만 들릴 수 있을 만큼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는 리더잖아.」
「어릴 때에 죽음의 공포에서 싸워 온 그 애들은 이제 행복하기만 했으면 좋겠어.」
슬픔과 고통은, 자기 혼자로도 충분하니 그들은 걱정 없이 행복했으면 한다고, 타이치는 그렇게 말을 했었다. 그렇게 조금 침묵이 흘렀었다. 아무런 미동도 없던 코로몬은 갑자기 타이치의 얼굴에 철썩 들러붙었다. 그러자 타이치가 숨 막힌다며 발버둥을 쳤고, 우울했던 분위기는 금세 화기애애해졌었다. 타이치에게 코로몬은 저의 고독을 아는 한 명의 친구였다. 그리고 코로몬이 없는 지금―
“으, 으으….”
―그는 혼자였다. 그에게는 휴식이 필요했다. 계속 절망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계속 빨려 들어가기만 하는 그를 꺼내줄 수 있는 이는 이제 더 이상 그의 주변에 존재하지 않았다.
“아…. 으,”
“……….”
울음소리가 새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타이치의 구슬픈 울먹임을 듣는 이가 있었다. 타이치의 방문에 등을 기댄 채 히카리는 저의 입술을 깨물었다. 히카리는 저의 오빠의 울음 소리를 목이 말라 부엌으로 가는 길에 우연히 듣고야 만 것이었다. 미안했다. 항상 히카리는 저의 오빠에게 미안해했다. 위로만 받고 싶어 하는 이기적인 자신은 저의 오빠에게 위로를 해줄 수 없었다. 히카리는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 히카리가 저의 방으로 들어간 뒤 얼마 후, 타이치는 멍하니 일어나 어딘가로 향했다.
“―띠리릭.”
그저 현관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만이 타이치가 어딘가로 향하기 전 집에 유일하게 남긴 인기척이었다. 아직 잠에 들지 않은 히카리만이 그 소리에 반응을 했지만, 오빠가 생각을 정리하려 산책이라도 하러 나가는 거겠지. 라고만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내일이면 다시 오빠는 활짝 웃을 테니까.’
히카리는 불안감이 저의 몸을 감싸는 기분이 들었지만 애써 무시하며 잠을 청했다.
§
“거기 있어? 아구몬? 음, 코로몬인 상태로 있으려나.”
‘나는 항상 네 옆에 있어, 타이치.’
타이치는 또 아구몬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아구몬이 사라진 뒤부터 계속 이랬다. 계속 자기는 저의 옆에 있다는 걸 알려주듯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는 아구몬의 그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타이치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네가 항상 내 옆에 있다는 걸 알아, 아구몬. 타이치가 중얼거렸다.
“하지만 나는 휴식을 취해볼까 해. 편안히 생각할 수 있는 꽤 긴 시간의 휴식을 취하고 싶어.”
‘그러지 마, 타이치!’
“아구몬, 난 정말 네가 없었다면 이미 아주 예전에 나락의 끝에 닿았을 거야. 그래서 너와 만날 수 있었던 인연에 정말 감사해.”
‘나도 너와 만날 수 있어서 즐거웠고, 행복했다고!’
“네 파트너가 이정도 밖에 되지 못해서 미안해.”
타이치는 마지막 말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타이치는 자리에 주저앉아 처음으로 소리 내어 펑펑 울기 시작했다. 나는 정말 많이 노력했어. 한참을 울음을 토해낸 타이치는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오늘따라 별이 참 반짝거리며 빛났다. 도시의 매연들로 인해 평소엔 잘 보이지도 않던 밤하늘의 별이 유독 오늘 수놓듯 자리 잡고 있었다. 타이치는 소리 없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타이치는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내가 잘 해내어야만 해.’ 하고 자신을 옥죄었던 것을 벗어나 자유로워 질 수 있는 길로 가기위해 타이치는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나갔다.
“조금만 쉬고 올게.”
타이치는 허공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타이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타이치, 안 돼! 타이치!’ 결국 끝까지 저의 귀에 들려오는 환청은 끝내 “잘 쉬고 와.” 라는 말 따위는 해주지 않았다. 타이치는 예상한 듯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조금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아구몬 너라면 날 이해해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타이치는 그렇게 발을 뻗었다.
타이치는 눈을 감았다. 자신의 몸을 스치는 바람의 느낌이 참 좋았다. 어느새 타이치는 후련하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끝에 다다를 때 즈음엔, 타이치는 활짝 미소를 지었다.
“꺄악! 뭐야? 이봐요! 정신 좀 차려보세요!”
타이치는 여자의 목소리에 눈을 살짝 떠보였다. 타이치의 점점 흐릿해져가는 시야에 아구몬이 보이는 듯 했다. 아구몬은 슬프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왜 그래, 웃어 아구몬. 타이치가 힘겹게 입모양으로 말 했다. 무슨 뜻이지 알아듣지 못한 여자만이 “네? 의식 있는 거죠? 그쵸! 아씨, 핸드폰 어디 있는 거야!” 하며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구몬은 타이치를 한참을 바라보다 말했다. 아구몬의 목소리는 오직 타이치에게만 들려왔고, 아구몬의 말을 들은 타이치는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쉬다 오는 거야. 타이치.’
‘잘 쉬고 와, 타이치. 반드시 다시 와야 해.’
아구몬에게 대답할 목소리도, 고개를 끄덕일 기력이 없는 타이치는 그저 눈만 천천히 감았다가 뜨기를 반복했다. 점점 흐려지는 의식에 끝에, 타이치는 마지막 힘을 쥐어 짜 아구몬에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타이치가 정신을 잃을 즈음─
“무슨 또 갑자기 비래? 아 여보세요? 여기 사람이….”
―맑기만 했던 밤하늘에서 갑자기 비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
아이들은 하나같이 다 충격을 먹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의 이름을 계속 불러보았지만 그는 미동도 없이 잠에 푹 빠져 있을 뿐이었다. 아이들은 덜컥 겁이 났다. 아이들의 흔들리는 동공을 보면 딱 알 수 있듯이, 이 상황을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들이었다. 그 중 히카리는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울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고 야마토처럼 분노를 표하지도 않았다. 히카리는 넋이 나간 얼굴로 타이치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의 손을 꼭 잡은 채 고개를 푹 숙였다. 그 현관문의 소리는 타이치가 휴식을 취하러 간답시고 집을 나가기 전 남긴 인기척이자, 도움의 요청이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남긴 부탁이었다. 자신에게 휴식을 공간을 제공해 달라는 타이치의, 뜻이었다.
“오빠.”
“……….”
“…알아차리지 못해서 미안해.”
그러니까 빨리 의식을 찾아줘. 내가 제대로 사과 할 수 있도록. 히카리는 끝내 말을 다 마치지 못한 채 울음을 삼켰다. 자신은 울 자격이 없었다. 다른 아이들도 지금 저들이 울 자격도, 화를 낼 자격도 없다는 걸 알지만 눈물을, 분노를 멈추지 못했다. 지금껏 타이치에게 기대기만 한 자신들이 너무도 원망스러웠다. 타이치는 우리만을 생각했는데, 정작 우리는 타이치를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삐, 삐, 삐…. 타이치가 살아있다는 걸 증명하는 저 심장 박동소리가 이어져 끊기는 것만 피해가기를, 하고 바라는 것만이 지금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
「타이치.」
「왜, 아구몬?」
「나는 타이치한테 어떤 존재야?」
「글쎄. 식충이?」
「뭐? 너무해 타이치!」
「하하. 당연히 농담이지! 그걸 진짜로 받아들이냐, 너는?」
「엑, 나는 진짜 놀랐다고!」
「음. 아구몬 너는 나한테 어떤 존재냐면….」
「……….」
「나의 유일한 휴식처. 응, 이거 같아.」
「뭐야 그게? 휴식처라니?」
「자세히는 몰라도 돼! 하여튼 아구몬! 너는 나한테 꼭 필요한 존재니까!」
「좋은 뜻이야?」
「당연하지, 바보야.」
─그 여름 날, 소중한 인연과의 대화는 이러했다.
.
.
.
Fin.
*모든 글의 저작권은 월화비월(@Moon_m0406)에게 있습니다.
*재업(2015.04.12)
*수정(2015.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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