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gimon

Dream_(희망), 망상

 

 

 

 

야가미 남매 / 타이히카

written by. 월화비월

 

 

 

***

 

 

 

쏴아아. 잔디가 무성히 자란 드넓은 들판 위, 소녀는 조용히 눈을 감은 채 산들 거리는 바람의 감촉을 느꼈다. 소녀의 두 주먹에 힘이 들어가면서, 가만히 감겨져 있는 두 눈에 길게 붙어있는 가느다란 속눈썹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소녀의 눈가를 촉촉이 적시던 말간 이슬이 잔디에 툭, 하고 떨어진다. 애꿎은 저의 입술을 윗니로 꾹 누르는 소녀의 모습이 처량하다.

 

히카리. 그토록 그리워하던 누군가의 목소리에 소녀가 순간 흠칫하며 몸을 떨었다. 소녀가 천천히 눈을 떠보이자, 바로 보이는 소녀의 두 눈동자가 매우 가라앉아있다. 그 어디에도 시선을 고정하지 않은 초점 없이 멍한 눈에 주위의 공기 역시 가라앉는 듯하다.

 

. 소녀의 귓가에 들려오는 것은 여전히 저를 간지럽히는 바람 소리 뿐이었다. 소녀가 몸을 일으키며 주위를 둘러봤다. 바스락. 소녀가 일어나며 풀잎을 짓밟는 소리가 쓸쓸하다.

 

달싹. 소녀의 입술이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작게 움직였지만, 이내 무언가에 의해 다시 닫혀버리고 만다. 소녀의 두 손이 저의 입을 가로막고 있다. 두 눈에 힘이 풀리며 눈가에 다시금 이슬이 맺힌다. 히카리. 소녀는 저의 속 깊은 곳에서부터 들려오는 고운 여성의 목소리에 결국, . 하고 풀린 다리를 후들거리며 눈물을 쏟아낸다. 엉엉, 구슬프게 울음을 토해내는 소녀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떨렸다.

 

울지 마, 히카리.’

…….”

웃어. 히카리의 그 빛으로 모두를 빛내줘.’

, …….”

나는, 언제나 네 곁에 있을 테니까.’

, 으으. 흐윽.”

 

저의 앞에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이 형체가 허상임을 알았음에도, 소녀는 두 손을 뻗었다. 손을 뻗으면 뻗을수록 점점 저의 곁에서 멀어져가는 형체를 잡기위해 소녀는 발을 떼었다. 탁탁. 갈수록 급하게 움직이는 발걸음이 초조하기만 하다.

 

난 너를 믿어.’

,”

사랑해.’

가지 마.”

 

바람이 세찬 소리를 내며 거세게 불어왔다. 소녀의 몸을 재빠르게 감싸며 지나치는 바람에 소녀가 쓰러지듯 주저앉는다. 꺼이꺼이, 헛구역질을 토해낼 정도로 거칠게 울던 소녀의 입이 달싹거린다.

 

돌아와 줘, 엔젤우몬.”

 

소녀가 풀잎을 꽈악 쥐어보였다.

 

 

 

***

 

 

 

히카리, 무슨 일이야!”

 

급하게 히카리의 방문을 열어젖히고 들어온 타이치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다. 이미 긴 시간 동안을 울어버려 벌겋게 부운 눈가와, 시뻘겋게 충혈 된 두 눈을 발견한 타이치의 속이 타는 듯 했다. 고개를 든 채 저를 바라보는 두 눈이 애처롭다. 타이치는 급하게 히카리에게 다가가 머리를 꽉 껴안았다. 제 옷깃을 잡은 히카리의 손이 떨림이 느껴진다. 저를 의지한 채 덜덜 떠는 몸을 제게 맡긴 히카리가 더 이상 울지 않기를 타이치는 속으로 몇 천 번이고 바랐다.

 

엔젤우몬 꿈을 꿨어, 오빠.”

……….”

보고 싶어. 오빠, 나 엔젤우몬이 보고 싶어.”

히카리.”

어떡해 오빠. 나 어떡해.”

 

울고 있는 히카리에게 저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음을 느낀 타이치가 애꿎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히카리의 어깨를 감싼 두 손에 힘이 들어온다. 자동으로 재생되는 그 날의 일에 타이치는 눈을 꽉 감아버린다. 울지 마, 히카리. 아파하지 마. 오빠는 계속 네 곁에 있을 거니까, 제발. 이런 타이치의 진심어린 음성은 히카리의 서글픈 울음소리에 묻혀만 갔다.

 

제발, 히카리.”

 

울음을 토하는 데에 힘을 다 써버린 히카리의 몸이 힘이 빠지며 타이치에게 기대듯 쓰러진다. 조심스럽게 침대에 바로 눕힌 히카리를 타이치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지그시 바라보았다.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두 눈 가득 담긴 타이치의 진심을 히카리는 아는지 모르는지 새근새근, 자그마한 숨소리를 내며 잠에 빠져든 채였다. 스륵. 히카리의 손에 힘이 풀리며 자연스레 주먹을 쥐고 있던 손이 펴진다. 풀잎 가닥이 후두두, 바닥에 쏟아졌다. 히카리의 손에 끈질기게 붙어있는 풀잎 가닥 하나를 타이치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직접 떼어내었다. 생생해 보이는 풀잎가닥에 타이치는 실소를 작게 터트린다. 힘없이 올라간 한 쪽 입 꼬리가 무겁다.

 

쏴아아. 타이치의 귓가에 산들거리는 바람소리가 들려오는 듯하였다.

 

 

 

Fin.

 

 

 

 

 

 

 

 

 

 

 

 

 

 

 

*모든 글의 저작권은 월화비월(@Moon_m0406)에게 있습니다.

*재업(2015.05.13)

*수정(2015.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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