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티 추첨하여 받은 디지몬 장르 한정 2000자 내외 글 리퀘이며, 커플링은 코시미미 입니다.
*공백포함 3845자, 공백제외 2750자 입니다.
BGM : Ouran High School Host Club_Sakura Kiss for Piano
눈부시다
―코시미미
written by. 월화비월
***
나는 중요한 작업을 할 때엔 어둡고 조용한 곳에서 하는 걸 선호하는 편이었다. 빛이 잘 들어오지 않도록 커튼으로 창을 잘 가린 컴퓨터실은 어느 잡음 하나 없었다. 오로지 내가 타닥타닥, 두드리는 키보드 자판 소리뿐이었기에 내가 작업에 집중하는 것을 도왔다.
그러나 이토록이나 깜깜한 곳에서 밝은 화면을 바라보는 데에는 그만한 대가가 있었다. 아무래도 어두운 곳에서 오랜 시간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는 것은 눈에 무리가 가지 않을 수가 없다.
작업에 집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한 이때쯤이면 누군가가 눈을 콕콕 찌르는 것만 같은 좋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이 통증은 몇 번을 겪어도 통 적응이 되지를 않는다. 나는 작업을 하던 것을 잠시 멈추고 두 손을 눈에 가져다 대었다. 손의 찬 느낌이 눈을 진정을 돕는다.
그렇게 내가 작업을 멈추고 조금의 휴식을 취할 때면, 그래. 언제나 같은 패턴이었다.
“코시로군! 나 왔어―!!”
그녀가 빛이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컴퓨터실 문을 활짝 열고 들어오는 것은. 그러면 그녀는 때마침 지는 석양을 등에 업고서 내 이름을 다시 불렀다. ―코시로군, 하고.
그럴 때면 나는 갑작스레 들어오는 빛에 눈을 찡그렸지만, 그게 또 싫은 건 아니어서 어떻게든 눈을 부릅뜨고 그녀를 바라봤다. 석양 탓인지, 원래 그녀 자체가 빛나는 건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내 눈은 어둠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녀는 언제나 빛을 가지고 들어왔다.
눈이 부시다.
*
있지, 오늘은 말이야―.
자연스럽게 내 옆에 자리를 잡고 앉은 그녀는 오늘 하루 동안에 있었던 일을 얘기하곤 했다. 그건 오늘도 마찬가지여서, 나는 가만히 그녀의 말을 듣고 있었다. …오물오물거리는 입이 귀엽다.
예쁘다. 약간 분홍빛을 담은 저 입술은 갓 핀 벚꽃이 생각이 났다.
“엣. 코시로군 괜찮아? 갑자기 얼굴이―.”
“괜, 괜찮아요. 그러니까 손대지 말아주세요.”
“……아. ……그래……….”
순간적으로 화악 달아오른 얼굴이 창피해 한 손으로 가리곤 그녀의 손길을 거절했다. 왜인지 상처받은 얼굴.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녀를 상처 입게 만들어 버렸어.
내 행동 때문인지 순식간에 풀이 죽어선 말이 사라진 그녀에 정적이 찾아왔다. 내 눈치를 보며 어쩔지를 모르는 그녀가 마치 새끼 강아지 같다고 생각했다. 꼭 주인이 혼내서 풀이 죽어있는 강아지 같아. 이래서 애완견을 키우는 사람들은 개들이 잘못을 해도 혼을 내지 못하는 걸까. 너무 귀여워서. 그들의 마음을 알 것 같다.
물론, 지금 그녀가 잘못한 건 없다. 혼을 낸 것도 아니고. 그저 단순히 순간적으로 든 내 불순한 마음 때문이었으니. 나는 낯선 침묵이 어색해 괜히 귀를 만지작거렸다.
그래. 항상 먼저 다가와 준 건 그녀였으니, 이번엔 내가 말을 걸어보자.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너무해, 코시로군!”
“에?”
“난 코시로군이 아픈 건 아닌지 걱정이 돼서 그런 건데, 왜 이리 냉정해?”
“잠깐만요, 미미상.”
그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내게 소리쳤다. 내게 불만을 토로하던 그녀가 이내 조용히 고개를 숙인다. ―그리고 바닥으로 차갑게 떨어지는 눈물.
쿠웅. 마치 심장이 딱딱한 콘크리트 바닥에 곤두박질치는 기분이었다.
“알아, 코시로군이 나 안 좋아하는 거. 귀찮아하는 것도 알아.”
눈물을 뚝뚝 흘리는 그녀의 목소리는 낮게 잠겨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입에서 내뱉어지는 말들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생전 처음 듣는 소리였다.
난 그녀를 귀찮아한 적이 맹세코 단 한 번도 없다. 좋아하지 않은 적도, 없는데.
그녀의 반짝이는 두 눈과 마주할 때마다 간질이는 심장을 눈치챘을 땐, 이미 난 내게 빛을 가져다준 그녀를 좋아한 지 오래였는데.
“하지만 그래도 어떡해! 난 그런 코시로군도 좋아한단 말이야!”
무심하게 저를 챙겨주는 나한테, 내 겉모습뿐만 아니라 내면을 바라봐 주는 나에게 반해버렸다고.
그녀가 고개를 들고 나를 똑바로 바라본 채 외친 말이었다. 뒤통수를 거세게 얻어맞는 느낌이 들었다. 정신이 확 깨어버리는 기분이다.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벙 쪄버린 나를 한참을 노려보던 그녀는 씩씩 거리는 채로 뒤돌았다.
기다려요, 미미상! 일단은 그녀를 잡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던 것 같다.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쫓았다. 그녀의 가녀린 손목을 잡았다. 그녀의 걸음이 멈춘다.
너무 급해서 꽤 세게 잡고 말았는데, 아픈 건 아니겠지…….
“왜.”
그녀가 퉁명스러운 어투로 말했다. 그러고 보니 무작정 붙잡긴 했는데, 그 뒤에 어떻게 행동할지를 정하지 않았다. 아. 어떡하지.
여전히 나를 돌아보지 않는 그녀가 화가 나 있는 건 아닐까 걱정이 들었다.
“아……. 그게, 그러니까 말이죠.”
“뭐야, 할 말도 없으면서 붙잡은 거야?”
조금은 기대했는데……. 쓸쓸하게 중얼거리는 그녀의 목소리에 다시 한 번 심장이 가라앉음을 느꼈다. 그래서인지 나도 모르게, 단지 정말 충동적으로 그녀의 등을 끌어안았다.
그녀의 손목만큼이나 가녀린 어깨는 내 품 안으로 쏙 들어왔다. 코에 닿는 그녀의 머리카락이 간지러웠다.
당황한 그녀의 몸이 뻣뻣하게 굳는 게 느껴진다. 뭔가 이게 너무 재미있어서, 나는 그녀의 뒷덜미에 고개를 묻었다.
“잠, 잠깐만. 코시로군? 에? 이거, 뭐하는 행동?”
“……….”
“저기, 코시로군? 나 이러면 진짜 기대하게 되는데?”
“기대해도 돼요.”
잔뜩 떨리는 목소리로 저를 끌어안은 내 팔에 손을 가져다 대는 그녀에 머리가 새하얘지는 것 같았다. 그녀의 손길이 닿은 곳이 불타오른다. 이렇게나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에 설레는 나인데.
나는 결국 ‘기대하게 되어버린다.’라는 그녀의 말에 울컥해서는 기대해도 좋다는 말을 뱉어버렸다.
“미미상.”
나지막이 그녀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그녀가 움찔한다.
사실은 많이 놀랐었다. 그녀가 나를 좋아하고 있다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단지 어릴 적 함께 험난한 모험을 했던 동료―. 딱 그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을 줄 알았다. 그래서 보통 혼자 있는 편이 많은 내가 안쓰러워서, 친구로서 신경을 써주고 있는 것뿐이라고.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심지어 매일같이 나보다 훨씬 키도 크고 잘생긴 애들에게 고백을 받는 그녀였기에 나는 조금도 눈에 차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었으니까, 이 마음을 꼭꼭 숨겨놓고 있었는데.
그녀가 날 좋아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으니 이제 더는 숨길 것도, 망설일 것도 없었다.
“좋아해요.”
“……….”
“이미 오래전부터, 난 미미상을 좋아하고 있었습니다.”
내 진심을 담아 고백했다. 그녀가 뒤를 돌아서고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 얼굴은 무지 빨갛게 타올라서, 우스꽝스러울 게 분명하다.
아. 그녀가 제 어깨를 감싸 안고 있던 내 두 팔을 풀고 내게서 떨어졌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느껴졌던 그녀의 체온이 사라지자 공허함이 들었다. 그녀가 천천히 나를 돌아본다.
나와 마주한 그녀는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내가 한 고백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까, 순간적으로 덜컥 겁이 들어 주춤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그녀는 내가 더 이상 뒤로 도망치지 못하도록 내 두 손을 꼭 맞잡아왔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그리고 꽃이 만개하듯 활짝 웃어 보이고 있었다.
비가 개고 난 새벽의 꽃 같다. 밤새 잔뜩 이슬을 머금은 꽃에 새벽의 햇살이 비치며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오로지 나만을 바라보며 행복하게 미소 짓고 있는 그녀는 그 어떤 순간보다 아름다웠다.
눈부시다. 그녀가 다시 한 번 내게 빛을 가지고 왔다.
*모든 글의 저작권은 월화비월(@Moon_m0406)에게 있습니다.
*수정_2017.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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