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 마요 - <켄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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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해, 스팅몬. 드릴 소리만이 채우고 있던 방 안에 한 남자의 굵직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 이에 사람 형상을 띄고 있으나 곤충처럼 더듬이와 날개가 달려있는 무엇인가가 제 행동을 멈추고 가만히 남자를 바라봤다. 뚝, 뚝. 스팅몬의 날카로운 손톱 끝에서 붉은색의 묽은 액체가 약간의 살점과 같이 떨어지고 있었다.
남자는 입가에 미소를 띤 채 스팅몬의 옆에 쓰러져 있는 여자를 향해 다가갔다. 여자의 몸 중앙에는 작지 않은 크기의 구멍이 원형으로 뚫려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던 남자의 발이 피로 흥건한 곳을 거닐자 철벅하는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길게 늘어트려진 머리카락을 밟을 정도의 위치까지 온 남자는 아무것도 깃들지 않은 눈으로 차마 눈을 감지도 못하고 생을 마감한 여자를 바라봤다.
킥. 조소를 뱉은 남자는 제 발로 주저 없이 여자의 머리통을 차버린다. 힘없이 돌아간 죽은 여자의 머리에 오히려 남자의 옆에 있던 스팅몬이 질끈 눈을 감으며 고개를 돌렸다.
“켄군!”
한 여성의 맑은 음성이 세상 그 어디와도 고립되었을지 알았던 방의 문 밖 멀리에서 들려왔다. 남자가 흠칫 몸을 떨며 문 쪽에 시선을 가져갔다. 무엇인가 급히 고민하는 듯 남자의 눈알이 양옆으로 몇 번 구른다.
타다닥, 급한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면서 벽과 부딪쳤다. 보랏빛의 머리칼을 지닌 여성이 문 손잡이에 제 몸을 기대며 벅찬 숨을 돌렸다. 흔들리던 남자의 눈동자가 멈춘다.
“…이러고 있을지 알았어.”
맑기만 할 줄 알았던 여성의 목소리는 현재 떨리고 있었다. 남자의 옆에 기괴망측한 시체가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것을 본 듯했다. 남자는 눈을 천천히 감았다 뜨며 입을 열었다.
“왜 몸을 떨어요, 미야코상. 설마 내가 무서워요?”
켄이 얼굴에 상냥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러나 미야코는 그런 켄이 소름 돋는다는 듯 표정을 싸악 굳혔다.
“이런 짓은 이제 그만두라고 했잖아.”
“……….”
“대체 왜 아무 잘못 없는 사람을 저렇게 만드는 거야?”
“약속을 먼저 안 지킨 게 누군데 그래요?”
뭐? 자기는 잘못한 게 아무것도 없다는 듯 켄의 너무도 당당한 모습에 미야코의 입에서 반사적으로 물음이 터져 나왔다. 미야코는 어이가 없다는 듯 실소를 터트렸다. 켄이 이렇게 뻔뻔하게 나올지는 예상을 못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켄은 여전히 당당했다. 단숨에 그녀 가까이 다가간 켄은 그녀의 두 어깨를 붙잡고 무서운 얼굴로 그녀를 노려봤다. 그의 시선에 겁을 먹은 미야코가 제 몸을 살짝 떨었다.
“말했잖아요. 나 말고 다른 남자는 만나지 말라고.”
“켄군, 그건!”
“내가 없을 땐 아무리 다이스케군이어도 만나지 말라고 했잖아!”
켄의 분노에 찬 외침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너무 꽉 잡힌 어깨가 아파 미야코가 몸을 움찔하며 얼굴을 찡그렸다. 아. 아픈 신음이 절로 나왔다.
어느새 미야코의 두 볼을 잡은 켄은 망설임 없이 그녀의 입술로 돌진했다. 작게 벌어진 틈새 사이로 비집고 들어간 켄의 혀가 그녀의 입안을 우롱하듯 헤집는다. 켄에게서는 미야코를 배려하는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억지로 행해지는 키스에 미야코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거칠게 제 입을 떼어낸 켄은 서럽게 울고 있는 미야코를 그저 지그시 바라봤다. 이내 켄은 미야코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제 손으로 닦아내었다.
“울지 마요. 더 울리고 싶잖아.”
그 말을 마지막으로 켄은 미야코의 흰 목덜미에 입을 부드럽게 맞췄다. 미야코가 저도 모르게 깨문 입술에서 피가 방울지게 맺힌다. 어느새 웜몬으로 돌아간 켄의 디지몬은 여자의 시체 가까이 다가가 눈을 감겨주었다.
*모든 글의 저작권은 월화비월(@Moon_m0406)에게 있습니다.
*재업(2016.02.20)
*수정(2016.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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