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Q/조각조각

너희와

 

 

 

written by. 월화비월

 

 

 

 

그럼 스가, 내일 봐.

 

평소와 같았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 모두와 함께 코트 위에 더 서있을 수 있도록, 그만큼 몸이 탈진해도 좋을 정도의 연습이 끝나면 이미 해는 지고, 미처 다 숨지 못해 수줍은 붉게 물든 노을이 살짝 삐져나와 보이는 정도였다. 다이치에게, 그리고 모두에게 문은 내가 잠그고 가겠다며 먼저가라고 겉에 미소를 지어보이면 그 아이들은 내게 환한 미소를 보여주며 손은 흔들었다. 서로에게 장난을 쳐대며 걸어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에 나는 조용히 몸을 떨었다. 인사를 하려 들었던 손은 이미 떨어진지 오래였다. 나도 모르게, . 손바닥에 상처가 날 정도로 주먹을 꽉 쥐었다.

 

그렇게 아이들의 뒷모습에 길게 늘여진 그림자가 흔적을 감추었을 때가 돼서야, 나는 가면을 벗을 수 있었다. 언제 웃었냐는 듯 미소를 짓던 얼굴에는 쓸쓸한 잔해만이 남아 감돌았다. 체육관 문을 닫고, 나는 다시 땀 내 진동하는 체육관 안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연습을 해서, 내 실력을 길러야 했다. 모두와 함께, 같이 있기만 해도 즐거워지는 그 아이들과 함께 코트 위에 서기 위해서. 내가, 코트 위에 설 수 있도록.

 

정정당당하게, 세터로서.’

 

너의 천재성을 이기고 함께 코트에 서기엔,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연습뿐이었다.

 

 

 

 

***

 

 

 

 

끼긱, . 운동화에 쉴 새 없이 맞닿는 체육관 바닥이 찢기듯 날카로운 소리를 내었다. 왠지 모를, 규칙적이지 않은 소리가 영 마음에 들지만은 않는다. 점점 무거워지는 무릎은 내 불안감을 형성시키기엔 딱 이었다. 그러나 나는 연습을 멈출 수는 없었다. 아무리 몸이 지치고, 힘들어도 연습을 멈춰서는 안 될 일이었다. 그랬기에 나는 연습을 멈추고 잠시 쉬기는커녕, 더 열심히 연습에 임했다. 이미 체력은 바닥난 상태였다. 오로지 정신력으로, 나는 버텼다. 반드시 코트 위에 서야만 했으니까. 한 번의 성공을 위해, 나는 있는 힘껏 달렸다. 날아올랐다. 마치 그 아이처럼.

 

!”

 

. 결국 사고가 나 버렸다. 너무 무리한 탓일까, 도약을 할 때 발을 헛딛었는지, 공중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그만, 그대로 바닥에 떨어지고야 말았다. 무릎이 욱신욱신 거린다. 젠장. 오늘 제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싶어 혼자 작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떨어진 것이 얼마만큼의 높이겠냐 하겠지만 체중을 실은 채로 바닥에 정면으로 무릎을 부딪쳤기 때문에 그 고통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아프다. 나는 넘어진 그 자리에 그대로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내 눈을 자극하는 형광등의 빛에, 이내 알 수 없는 눈물이 땀과 함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 애꿎은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주먹을 쥔 손이 부들부들 떨려온다.

 

체육관 안은 조용했다. 그저, 내 숨소리와 더불어 나와 함께 추락한 공만이 데굴데굴, 굴러가는 소리가 무거운 침묵 속에 존재할 뿐이었다. 숨통을 조이는 것 같은 답답함에 나는 주먹을 쥔 손을 올렸다가 내리며 바닥을 한 번 내리쳤다. , 둔탁한 것이 체육관 안 전체에 울려 퍼진다.

 

. 저릿해오는 손을 느끼고 있자하니, 방금 내가 무슨 짓을 한 걸까 싶어 옅게 조소를 흘렸다. 명색에 세터라는 자리에 있는 놈이 손까지 막 쓰려 하다니. 아무래도 오늘은 여러모로 풀리는 일이 하나도 없구나 싶다.

 

천재. 그랬다. 그는 천재였다. 일개 콘크리트 바닥 세터로 활동하던 내가 이미 정상에 우뚝 서 있을 천재 급에 맞서려고 한 것부터가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나는 아마, 코트에 설 수 없을 거야.’

 

이미 예전부터 깨닫고 있던 사실이었건만, 막상 스스로 인정하니 내 신세가 너무 가엾고 처량하다. 나는 발악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무리 발악을 하고, 난리를 쳐대도 넘어설 수 없는 벽을 앞에 두고.

 

자리에서 몸을 반쯤 일으켜 통증이 있던 무릎을 바라보았다. 붉게 데인 듯, 무릎은 금방이라도 퍼런 멍이 들 것만 같았다. 이러면 내일 연습 때 애들이 걱정할 텐데. 다시 동복 체육복을 입어야 하나. 멍을 보고 걱정할 아이들의 반응을 상상하자, 나도 모르게 피식 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땀을 삐질 흘리면서 두 눈에 커다란 물방울을 단 채 으엑! 선배 무릎 왜 그래요!’ 하고 저가 더 아프단 듯 인상을 찡그릴 그 아이를 생각하니 더욱 더 웃음이 나온다.

 

보고 싶어.”

 

왜 일까, 갑자기 그 아이가 미치도록 보고 싶다. 그 아이가 해맑게 미소를 짓는 걸 보고 있으면 지금의 꿀꿀한 감정이 말끔히 사라지고, 나도 함께 미소를 지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히나타 쇼요, 나와 달리 티 없이 맑은 미소를 짓는 네가 보고 싶다. 그 아이의 진심 어린 미소가 나를 감싸주기를, 지금 나는 간절히 바랐다.

 

?!”

? 우음. 안녕, 형아!”

 

내 머릿속에 든 생각은 딱 하나였다.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나. 갑자기 밝은 빛이 한 데 모여지더니 그 곳에서 작은 몸체의 어린아이가 뿅, 하고 튀어나올 확률이 이 세상에 확률이 과연 몇이나 될까. 방금 내 눈앞에서 일어난 일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니, 상식적으로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이야?

 

형아! 그 곳에서 나온 아이가 나를 보고 꺼낸 말이었다. 나를 언제 봤다고 저리 친근하게 부르는 지 도통 감이 잡히지는 않았지만, 요 녀석의 순진하고도 동글동글한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니 방금 전까지만 해도 싱숭생숭했던 마음에 안정이 찾아오는 것 같았다. 어지럽다. 꼬마에게서 나는 묘한 향기가 내 후각을 자극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이 애의 체취는 마치 내가 잘 아는 그 애와도 같아 나를 혼란스럽게만 했다.

 

형아? 무슨 생각 해?”

 

그저 멀뚱히 꼬마아이를 바라봤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머릿속은 여전히 복잡했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계속해서 내게 말을 걸어왔다. 대답을 계속 재촉하는 아이가 꼭 그 애 같다. 자세히 보니, 외관도 그 애와 비슷했다. 상큼한 오렌지 빛깔의 곱슬머리하며, 둥글면서도 꽤나 위로 올라간 눈매에. 그리고 이건 내 생각이지만, 지금 내가 그 토록이나 바랐던 웃을 때의 분위기까지 닮아있었다. 형아? 내게 불쑥 얼굴을 들이미는 꼬마에 내가 깜짝 놀라 몸을 뒤로 빼니, 아이는 베시시 웃는다. 화악. 순간적으로 얼굴이 달아올랐다. 나는 빨개졌을 얼굴을 숨기기 위해 잽싸게 다리를 모아 무릎에 고개를 묻었다. 언제부터 이런 취향이었냐, . 한참 어린 아이에게 설렌 내가 한심해 속으로 스스로를 타박했다.

 

까르륵. 아이의 자지러지는 웃음소리가 내 귓가를 울린다. 아직 더러운 거라고는 묻지 않은 순수함, 그 자체였다. 세상을 두려울 것 없이 밝게만 바라보는 이 아이도, 언젠가 나처럼 절망의 쓴 맛을 맛보게 될까. 저 아이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짝 고개를 들어 여전히 웃음소리를 내고 있는 아이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어떻게 눈치 챈 건지, 아이는 얼마 되지 않아 나를 바라보며 눈웃음을 지었다. 마주치는 시선에 가슴이 간질거린다.

 

창밖을 보니, 조금이나마 노을 서렸던 하늘은 깜깜해져 있었고, 어둠 그 자체였다. 이제 완전히 밤이 찾아온 시간대와, 밖에서 들리는 수위아저씨의 우렁찬 목소리에 나는 연습을 끝내고 집에 돌아가야 했다. 이 아이를 어쩌지. 집에 데려갈 수도 없을뿐더러, 혼자 두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꼬마야. 아이의 웃음소리 가득했던 공간에 내 목소리가 섞인다.

 

아이는 대답이 없었다. 뭔가 잔뜩 불만은 가진 얼굴을 하고서는 쀼루퉁하게 두 볼을 부풀린다. . 내가 당황한 채로 저를 바라보자, 꼬마는 그 짧은 다리로 총총걸음을 하며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끔벅끔벅. 내 코앞까지 다가온 아이를 그저 바라보는데, 아이가 내게 손을 뻗는다.

 

형아, 웃어!”

 

저의 검지를 내 입가에 갖다 대고 억지로 호선을 그리며 올리는 행동을 취하는 아이의 모습이 여간 웃긴 게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살포시 풋, 하는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아마 꼬마의 불만은 내 기운 빠진 목소리였나 보다. 나보고 웃으라는 꼬마가 기특해 머리를 두어 번 쓰다듬었다. 내가 쓰다듬는 게 좋았던 건지, 이때부터 아이의 재롱이 시작되었다. 나를 어떻게든 웃게 하려고 열심히 하는 모습에 그저 흐뭇하게 아이를 바라봤다. 방금 전까지 절망의 늪에 빠져들기만 했던 몸이 점점 빠져나오는 기분이 들었다.

 

거기, 체육관! 빨리 문단속하고 집 가라니까!”

 

에크.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아이의 재롱을 보고 있으니 어느새 시간이 많이 흘렀나 보다. 수위아저씨의 성난 목소리가 이 체육관 안까지 크게 울렸다. . 이제 이 아이와 헤어져야 한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아쉬움의 탄식을 내었다. 그런 나를 본 아이가 고사리 같은 저의 손으로 내 손을 덥석 잡으며 말하기 시작했다.

 

형아.”

?”

형아는 열심히, 최선을 다했으니까 결과도 좋을 거예요.”

……….”

괜찮아요. 그러니까 울지 말아요. 형은 웃는 게 더 잘생겼어요!”

 

아이가 말을 마치자마자 아까의 환한 빛이 아이의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아이의 말에 힘이 나는 반면,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점점 갈수록 문드러지기만 하는 내 속을 위로해주는 사람은 없었는데, 이렇게 아이에게서 갑작스레 위로를 받으니 속이 한순간에 탁,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 그렇구나. 어느새 떨궈진 고개에 나는 속으로 눈물을 삼켰다. 그리고 미소를 지었다. 아까 꼬마가 직접 그은 호선처럼, 내 입가에 호선을 그린 채 환한 얼굴로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이 역시 나를 따라 환하게 웃어보였다. 아이의 몸이 빛으로 다 감싸지기 전, 나는 말했다.

 

고마워.”

 

고마워, 라고. 진심을 다해 말하자 아이가 더 해맑게, 베시시 웃음을 짓는다. 그렇게 아이는 웃음을 짓다가도 그 커다란 눈을 더 크게 떠 보이며 깜짝 놀라했다. 당황한 듯 아이는 나를 보며 재빨리 입을 열었다.

 

형아!”

……….”

내 이름은!”

 

 

 

 

***

 

 

 

 

, 스가와라 선배! 오늘은 저희랑 같이 가시네요!”

. 오늘은 너희랑 있는 게 좋을 것 같아서.”

 

흐음, 그렇구나. 히나타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나와 이렇게 말하다가도 카게야마가 조금의 틈이라도 보이면 잽싸게 그걸 물고 늘어지는 히나타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눈이 몇 개라도 더 있는 것만 같아. 이젠 말리기도 지친다는 듯 신경조차 쓰지 않고 아사히와 간간히 말하며 길을 걷는 다이치와, 죽이 척척 맞는 타나카와 노야, 조용히 걷고 있는 츠키시마와 그 옆에서 말을 건네는 야마구치까지. 도저히 하나로 모여지는 것 같지는 않은, 이 뒤죽박죽한 곳이 난 좋다.

 

스가와라 선배, 빨리 와요! 카게야마가 아이스크림 쏜대요.”

? 내가 언제! 히나타, 이 멍청이가!”

 

카게야마의 손을 피하며 환히 웃는 히나타의 얼굴이 꼬마의 해맑게 웃는 모습과 겹친다. 노을빛과 어울리는 따스한 웃음에 나도 따라 미소를 지어보이며 소리쳤다.

 

같이 가!”

 

 

내 이름은!’

히나타 쇼요 예요!’

 

그것이 코트에서든, 여기에서든지 상관없이,

나는 여전히, 그리고 언제까지나. 너희와 함께 웃을 수 있기를 바라.

 

 

 

 

 

하이큐 어린이날 합작 : dbal0325.wix.com/hq-free 

 

 

*모든 글의 저작권은 월화비월(@Moon_m0406)에게 있습니다.

*재업(2015.06.02)

*수정(2015.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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