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장
―카게히나
written by.월화비월
*
와아아! 사람들의 환호소리가 경기장 안을 가득 채웠다. 산만하기 그지없는 이곳에서, 나는 오늘도 어느 때와 다를 것 없이 아랫배부터 살살 아려오는 진통을 느꼈다.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나아지기는커녕, 콕콕― 강도가 세지며 아파오는 배에 나는 두 팔로 배를 꼭 감싸 안은 채 몸을 배배 꼬아야만 했다. 정말로, 계속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영혼이 몸에서 탈출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며 화장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히나타! 간신히 반쯤 왔을 때였을까, 누가 봐도 안쓰러운 자세로 걷고 있을 나를 붙잡는 목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속으로 참을 인을 생각하며 살짝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카게야마였다. 녀석은 뭐가 그리 불만인지―평소에도 화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나를 두 눈을 양 옆으로 쭉 째서는,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또 녀석한테 얼마나 많은 욕을 얻어먹을까 생각하며 그저 멋쩍게 웃으며 자리에 멈춰 서 있으니, 녀석이 나한테 재빠른 속도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순간 당황스러워 뒷걸음질을 몇 번 쳤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어느새 내 등엔 딱딱하고도 서늘한 물체가 닿아 있었다. 더 이상 내가 뒤로 도망칠 수 없도록, 그렇게 벽은 날 가로막았다.
아아. 난 지금 여기서 무얼 하고 있는 것인가. 지금의 상황을 단 한마디의 말로 설명하자면, …흐음. 뭐라고 표현하는 게 가장 좋고, 적합할까. 음, 음. 아 그래. ‘최악’ 이라는 단어가 알맞을 것이다. 그래, 지금 이 상황은 내게 있어서 매우 ‘최악’이다.
……………. 서로의 호흡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 카게야마는 벽에 저의 이마를 댄 채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왠지 모를 긴장감에 나는 침을 꿀꺽 소리가 나도록 삼켰다.
무, 무슨 일인데?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치면서, 거기다 말까지 더듬음으로써 ‘지금 나 긴장하고 있어요.’를 아주 제대로 광고하는 나였다. 이런 내 행동이 웃겼는지, 잠시 두 눈을 깜박이면서 나를 가만히 바라보던 카게야마는, 이내 한 쪽 입 꼬리를 씩 올려보였다. 평소와는 너무도 다를 이상야릇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화를 내기는커녕, 웃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카게야마가? 나도 모르게 얼빠져서는 절로 입을 벌리고 있었는지, 카게야마가 손수 내 입을 닫아주었다. 그리고는 내 두 어깨를 잡으며 나와 이마를 맞대는 행동을 취했다. 더욱 가까워진 거리에 나도 모르게 그만, 숨을 확 멈추었다.
“드디어 이 자리까지 왔는데도 넌 어떻게 항상 배가 아프냐? 멍청이. 너도 참 한결같다.”
“…내가 뭐, 배 아프고 싶어서 아픈가.”
“뭐 그건 내 알 바 아니고.”
알 바 아니면 손을 치우든가, 머리를 떼든가 둘 중 하나라도 하라고. 내 뾰로통한 얼굴에 쓰여 있을 속뜻을 읽은 건지, 카게야마가 팔을 쭉 뻗어 나와 일정거리를 유지하였다. 내 두 어깨를 쥐고 있는 녀석의 손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다. 카게야마는 나를 지그시 바라보며, 사뭇 진지한 어조로 말하기 시작했다.
“3학년 선배들과 같이 코트 안에서의 즐거움을 공유할 수 있는 기회의 끝에 다다랐어.”
“응.”
“뭐, 이번 봄 대회 동안 우리에게 있어서는 모든 경기가 기회의 끝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어쨌거나 우리는 강한 팀들을 이기고, 이겨서 올라왔고. 그랬기에 계속 코트 위에 서 있을 수 있었어. 그리고 지금도 서 있잖아?”
“그렇지.”
“이제, 전국 대회야 히나타.”
그러네. 드디어 전국 대회네. 이곳이 전국 대회의 장소란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으니, 잠시 사라졌던 배의 고통이 찾아오는 느낌이 들었다. 아찔한 함성소리가 정신을 울리는 듯 하다.
“긴장하지 마.”
“…안 하려고 노력하고 있거든!”
“노력 할 필요 없이, 그냥 즐기자 우리.”
“뭐?”
“내가 예전에 했던 말 기억해?”
―내가 있으면 넌 최강이야.
“내가 있으면 넌 최강이야.”
잊었을 리가 없다. 그 말을. 이 말로 하여금 너와 나의 사이가 더 가까워진 것이라고, 내가 당당하게 말 할 수 있는, 그런 말이었으니까. 카게야마는 내게 그 말을 남기고선 내 어깨를 두어 번 두드린 후에, 뒤돌아 코트 안으로 들어갔다. …뭔가. 배의 고통이 사라진 듯 했다. 나 역시 녀석을 따라 코트 안으로 들어섰다. 잠시 후 경기가 시작된다는 안내 음이 들려왔다. 그러자 사람들의 환호 소리는 더욱 커졌고, 우리들은 미소를 지었다. 서로 둥글게 모여, 가운데에 서로의 손을 올리고, 파이팅을 외쳤다.
삐이익―. 경기가, 시작되었다.
*
“말 했잖아.”
“……….”
“내가 있으면, 넌 최강이라고.”
마지막 순간에 녀석의 토스를 치는 것을 망설여 했다. 그 날의 아찔한 기억과 겹쳤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녀석은 이런 나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토스를 내게 줌과 동시에 외쳤다. 자신이 있으면, 나는 최강이라고. 내게 그렇게 말 해주었다. 이 말이 내 정신을 똑바로 차리게 해주었는지, 나는 그날의 기억을 이기고 스파이크에 성공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들리는 경기 종료를 알리는 소리에 나는 손바닥의 짜릿함이 온 몸으로 퍼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녀석은, 경기가 끝나고 한껏 전율을 느끼고 있는 내게 다가와 말했다. 녀석의 말에 나는 말간 웃음을 지어보였다.
“나만 최강이 되는 게 아냐.”
“……….”
“너도 내가 있으면, 더욱 최고가 된다고. 카게야마.”
마주보는 웃음 속, 우리는 서로의 감정을 공유했다. 즐기자. 앞으로도, 이렇게 쭉.
*모든 글의 저작권은 월화비월(@Moon_m0406)에게 있습니다.
*재업(2015.08.07)
*수정(2015.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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