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Q/조각조각

*이 글은 총 공백 포함 3298자, 공백 미포함 2243자 입니다.

 

 

 

 

BGM : Haikyuu!! OST - Accustomed Strength

 

 

 

 

 

그의 말에 소년은 무너져 내렸다.

 

 

 

written by. 월화비월

 

 

 

 

*

 

 

 

 

 소년은 스스로를 자책했다. 그와 함께할 수 있는 마지막 경기였다. 그런 소중한 기회를, 평소와 다르게 다급하게 행동했던 제 실수로 잃고야 말았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토스를 높이 보냈다면 그는 언제나 그랬듯이 좋은 코스로 점수를 얻었을 텐데. 다시 한 번 더 이 코트에 설 수 있었을 거라고, 소년은 그리 생각하며 애꿎은 배구공을 금방이라도 터트릴 듯 세게 쥐었다.

 

 배구할 때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빛나는 그였다. 소년은 그런 그를 사실은 동경하고 있었다. 그가 저의 토스가 가장 좋다는 듯 눈을 반짝이며 힘 있게 배구공을 칠 때면, 승리는 우리의 것이었다. 모든 일에 무감각하던 소년이 그 순간만은 두 주먹을 꽉 쥐고 그와, 동료들과 함께 환호했다.

 

 그가 소년을 믿는 만큼 소년 역시 그를 믿었다. 그리고 동경했다. 승리를 가져다주는 그 강함을, 안정을 느끼게 해주는 환한 그 웃음을, 우리들을 향한 신뢰를 보여주는 듯 절대 뒤를 돌아보지 않던 그 등을.

 

 아무리 참아보려 애를 써도 저도 모르게 나오는 눈물이 자꾸 시야를 가렸다. 눈물로 얼룩져버린 흐린 눈앞에 보이는 것은 그의 널찍한 등. 어느 때와 같은 믿음직스러운 등이었지만, 뭔가 달랐다. 그의 두 어깨는 축 처져있었다. 미세하게 들썩거리는 움직임 또한, 그도 저처럼 울고 있을 게 분명하다고 소년이 생각하며 입술을 꾹 물었다. 이로 짓눌러진 입술에서 방울방울 피가 새나온다. 비릿한 피 맛을 느끼며 소년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다 제 잘못입니다, 죄송합니다 보쿠토상. 울음으로 꽉 막힌 소년이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코트 반대편에서는 승리의 기쁨으로 환호성을 내뱉고 있었다. 그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듯했다. 아마, 제 사과는 들리지 않았을 테지.

 

 스르륵 풀린 손에서 배구공이 처참히 바닥으로 떨어졌다. , 통 몇 번 뛰어오르던 배구공은 데구루루 굴러가다 어느 지점에서 멈춰 선다. 소년은 허망한 눈으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손을 쳐다봤다.

 

 패배의 앞엔, 정말 아무것도 없구나. 쓸쓸한 미소가 걸쳐지던 그때였다.

 

 

 아카아시. 그가 동료들의 울음소리로 가득한 이곳에서 나지막이 소년의 이름을 불렀고, 소년은 반사적으로 떨구고 있던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봤다.

 

 분명히 저보다 큰 눈물을 쏟아내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그는 기분 좋은 스파이크를 때렸을 때처럼 개구진 웃음을 짓고 있었다. 아니, 조금은 더 산뜻한 미소에 소년의 엉망이었던 마음이 한층 누그러트려지는 것 같았달까.

 

 그가 숨을 한껏 들이마셨다. 그리고 이 크고 넓은 경기장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만큼의 목소리로 그가 외쳤다.

 

 

 헤이헤이헤이! 아카아시―――! 그리고 모두들! 지금까지 고마웠다!!!!

 

 

 기지개를 펴듯 주먹을 쥔 채 두 팔을 하늘 높이 쭉 들어 올리는 그의 모습에 경기장이 한순간 조용해졌다. 그러나 그런 침묵도 잠시, 경기를 관람했던 누군가가 자리에 벌떡 일어나서 손뼉을 치기 시작함으로써 순식간에 경기장의 분위기가 바뀌어버렸다.

 

 후쿠로다니, 너희의 싸움은 정말로 대단했다고. 절대로 잊지 못할 경기였다고. 우리를 끝까지 기억할 거라는 응원의 환호성이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심지어 반대편 코트에 있던, 우리의 승리를 앗아간 녀석들 마저 진지한 태도로 우리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어이, 아카아시! 네 마지막 토스 최고였다고!

  

 

 거짓말.

 

 

 이것 참, 나도 모르게 흥분해서 좋은 코스를 노리지 못했다니까.

 

 

 이것도 거짓말.

 

 

 미안하다, 모두들. 그래도 즐거웠지? 자자, 다들 피곤할 테니 어서 들어가 쉬자고!

 

 

 전부 다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이었다. 누구보다 소년을 믿었던 만큼 그는 소년을 원망하고 있어야 했다.

 

마지막 토스가 좋았긴 개뿔, 이미 스스로 잘 느끼고 있던 최악의 실수였는데.

 

 화가 났다. 분노가 치밀어 올라와 이성을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소년의 머릿속에서 차마 생각이 다 정리되기도 전에 몸이 먼저 움직였다.

 

 기어코 소년이 이를 아드득, 갈며 바보 같은 웃음을 유지한 채 박수를 보내는 관중들에게 손 인사를 하고 있던 그의 멱살을 붙잡았다. 경기장이 술렁인다.

 

 

 아카아시! 모두가 놀란 얼굴로 소년을 쳐다봤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감히 그들 쪽으로 함부로 다가가지 못했다.

 

 

 왜, 왜 화를 안 내는 겁니까! 누가 봐도 그건 내 실수였는데!

 

 …….

 

 차라리 화를 내세요. 평소처럼, 울란 말입니다!

 

 

 저를 똑바로 바라보는 소년의 눈을 그는 피하지 않았다. 소년의 눈동자가 애처롭게 떨리고 있었다.

 

 

 저는, 보쿠토상과 함께 하는 마지막 무대를 망쳐버렸다고요.... 구슬픈 음성을 흘리며 소년이 조금씩 흐느꼈다. 이런 모습은 정말이지 처음이었다. 그가 흐음, 신음하며 제 뒷머리를 긁적이다가 소년의 머리 위로 저의 큰손을 가져다 놓았다.

 

 

 그동안 내 기분 맞춰주느라 수고 많았다, 아카아시.

 

 

 그의 진심 어린 말에 소년의 몸이 굳는 게 느껴졌다. 부들부들 떨리는 소년의 몸은 금방이라도 분노를 표출할 것만 같았다. 그가 그것을 눈치채고는 이크, 식은땀을 흘리다가도 씨익 말간 미소를 지으며 이어 말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수고해라!

 

 …?

 

 기다리고 있을게. 아카아시, 너와 함께 하는 배구는 이게 끝이 아닐 테니까!

 

 

 아아, 그런 거였나. 소년이 그의 말을 깨달았다는 듯 픽, 웃어 보이고는 고개를 아래로 떨군 채 중얼거렸다. 이런 건 너무하다고요, 보쿠토상.

 

 그의 기다리고 있겠다.’라는 말의 뜻을 이해한 소년은 처참히 무너져 내렸다. 간신히 감정을 억누르고 있던 행동은 소용없었다는 것 마냥 울음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내렸다.

 

 그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엉엉 우는소리까지 내는 소년을 그는 그저 가만히 그의 두 어깨를 감싸 안을 뿐이었다.

 

 그와 함께 코트에 서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 아니었다. 소년은 다시 한 번 그를 가슴에 담았다. 앞으로도 쭉, 그는 저가 가장 동경하는 사람일 것이랴.

 

 

 그의 다정한 온기로 뭉친 강함은, 소년을 무너트렸다.

 

 

 

 

 

*이 글은 트위터 '솔(@__noah97)' 님의 아카아시 그림의 "...다 제 잘못입니다, 죄송합니다 보쿠토상." 대사를 보고 쓰여졌습니다.

*모든 글의 저작권은 월화비월(@Moon_m0406)에게 있습니다.

*수정_2017.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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