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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gimon

- 이 글은 트위터의 '서영' 님 께서 [다이켄 / 학교 체육 시간] 을 요청한 글 입니다.

- 따로 txt 파일을 만든 글이니, 소장하고 싶으시다면 이메일 주소를 덧글, 혹은 트위터로 알려주세요.:D
('서영' 님이 아닌 다른 분이 원하시는 거라면 '서영' 님께 꼭 허락을 맡은 뒤 알려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경계선

 

 

─다이켄

 

written by.월화비월

 

 

 

 

§

 

 

 

 

 

 


*모토미야 다이스케 시점 입니다

 


내가 넘어짐과 동시에 호루라기 소리가 운동장 전체에 울려 퍼졌다. 경기가 끝나버렸구나. 멍을 때리다시피 나는 넘어진 그대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지나가던 친구가 내게 괜찮은 거냐고 물으며 부축해 나를 자리에서 일으켰을 때야 정신을 차렸으니, 나는 상당히 충격을 받은 상태라고 할 수 있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심판을 맡고 계시던 선생님을 쳐다보니, 선생님께서 점수판을 보시고는 말씀하셨다.

 


“오늘도 홀수 팀이 승리! 5:4라…. 아깝구나, 짝수 팀. 나중엔 더 분발해서 홀수 팀을 이길 수 있도록 노력해라”

“와아!”

 


홀수 팀의 함성소리가 귀에 소음처럼만 들려왔다. 홀수 팀의 환한 분위기에 비해 짝수 팀은 우울하기만 했다. 아아. 결국엔 오늘도 지고 말았구나, 저 녀석들에게, 저 녀석에게.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떨궜다. 이번엔 이길 자신 있었는데. 넘어지지만 않았었더라면, 이겼을까? 내가 골을 했었더라면.

 


“역시 이치죠우지, 너랑 팀이 돼서 다행이라니까.”

 


시합에서 이긴 건 다 네 덕이라며 켄의 곁에 와글와글 모여서는 시끌벅적하게 떠드는 짝수 팀을 괜히 노려보았다. 내가 넘어진 게 저 녀석들 탓이 아닌 건 알지만, 왜 이렇게 밉기만 한 걸까. 승부에서 지든 이기든 서로 좋은 마음으로 끝내는 게 경기에 임하는 선수의 마음가짐인데, 나는 지금 전혀 그러지를 못했다. 정말, 웃고 있는 모습이 꼴 보기 싫다. 아프다.

 


“다이스케 군, 너 발목 엄청 부었잖아!”

 


우리 팀에 속해있던 타케루가 깜짝 놀라서는 내게 다가와 말했다. 타케루가 말 하고 나서야 나는 발목에서 아릿한 통증이 올라오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가슴에서 찌릿찌릿, 통증이 나는 것 같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라 발목이 아파서였나보다.

 


“보건실까지 부축해 줄까?”

“괜찮다고, 이 정도 쯤은! 하하. 나 혼자 갈 수 있어.”

“그래도….”

“괜찮다니까! 그나저나 타케루 너 대단하던데? 세 골은 네 골이잖아.”

 


나를 걱정해주는 타케루에게 괜히 환한 웃음을 지으며 괜찮다고 답하면서 일부러 다른 화제로 돌렸다. 평소엔 내가 하지도 않던 칭찬을 하니 타케루가 아리송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 진짜 많이 아픈가보다.”

 


타케루가 날 걱정해서 말 한 거라는 걸 아는데 기분이 더러웠다. 망할 놈, 하고 한 소리 하려고 했다가 타케루가 나한테 그런 말을 할 정도로 지금 내 상태가 이상하다는 걸 깨닫고 그냥 한숨만 푹 쉬었다. 하아. 그래, 스스로도 이상하다고 생각하는데 타케루가 보기엔 내가 얼마나 이상하겠냐.

 


“다들 나한테 패스를 잘 해줘서 그렇지, 너희가 아니었으면 골도 못 넣었을 거야.”

 


그런데 어떡해. 저기서 저렇게 웃고 있는 녀석만 보면 열이 머리끝까지 상승하는 것 같은데! 이상한 거 맞잖아, 나. 마음이 심란했다. 나는 다시 저릿하게 아파오는 가슴을 일부러 외면했다. 발목에서 나는 고통을 착각한 거라고 생각하면서 한쪽 다리를 끌다시피 하면서 홀로 보건실로 향했다.

한 쪽 다리를 질질 끌고 가다가도 아직도 뒤에서 들리는 시끄러운 소리가 신경이 쓰여 뒤를 돌아봤다. 솔직히 말하자면 계속 들리는 다른 아이들과 하하 호호 떠드는 네 목소리가 미치도록 신경이 쓰여서 뒤를 돌아봤다고 하는 게 맞는 표현이겠지. 이걸 바라고 너랑 같은 중학교, 같은 반이 된 걸 좋아한 게 아닌데.

 


“……….”

“……….”

 


그렇게 생각하면서 다시 가려고 고개를 돌리려던 순간, 참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네가 우연히 내 쪽을 쳐다봤고, 그 덕에 너를 째리듯 바라보던 내 눈과, 네 눈이 공기 중에서 마주친, 그런 신기한 일이. 눈이 마주친 우리 둘은 아무 말 없이 한참을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네 눈을 계속 빤히 쳐다보고 있으니, 꼭 심장이 두근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살짝 울렁거리면서도, 좋은 느낌에 나는 스스로 깜짝 놀라 표정을 굳혀버렸다. ―마치 히카리를 좋아했을 때 나던 느낌과 똑같다 싶을 정도로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때보다 더한.

 


“모토미―.”

 


그렇게 서로 마주보고만 있던 시선을 끊으려는 듯 너는 내 이름을 반갑게 말하려 하다가도 갑자기 입을 닫았다. 혹시 내 표정이 지금 많이 무섭게 돼 있어서 자기한테 화나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 건가? 하는 생각에 표정을 풀고서 너를 바라보니 네 시선은 내 오른쪽 발목에 향해있었다. 아, 내 발목 보고서 놀란 거구나. 표정 때문이 아니라. 너는 계속 네게 말을 걸어오는 아이들에게 억지미소를 지으며 먼저 가보겠다는 말을 하고서 내게로 냅다 뛰어오기 시작했다. 조금도 안 지나서 내 앞에 도착한 너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내 발목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아까 경기할 때 삐끗한 거야? 넘어졌어?”

“응, 그냥 뭐.”

“아 왜 못 봤지…. 괜찮아? 모토미야 군?”

 


계속해서 내 걱정을 해주는 너를 보니 발목에 대한 통증은 싹 잊히는 듯 했다. 나도 모르게 공기 빠진 웃음소리를 내버렸다. ‘그래, 네가 나를 이렇게 걱정해주는 걸로 된 거야’ 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욕심 안 부리고, 그냥 이렇게.

 


“같이 보건실까지 데려다 줄게, 모토미야 군.”

 


―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욕심 부리고 싶어졌다. 내가 뭘 욕심 부리고 싶어 한다는 것 자체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가장 중요한 건.

 


“그놈에 모토미야 군.”

“응? 무슨 소리야 모토미야 군?”

 


네 녀석의 입에서 ‘모토미야 군’ 이 아니라 ‘다이스케’ 라는 말이 나오게 하고야 말겠다는 것. 뭔가 켄이 부르는 ‘모토미야 군’은 듣기 거북했고, 싫었다. 스스로 켄과 가장 친하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녀석이 그렇게 부르니 꼭 별로 안 친한 것처럼 들렸다고 해야 하나.

 


“모토미야 군이라고 하지 말고, 이제 좀 다이스케라 불러주지 그래? 초등학교 6학년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우리 많은 시간을 알고 지냈잖아.”

“아. 근데 좀 어색한데….”

“아아아. 몰라. 이제 다이스케라고 안 하면 나 네 말 무시 할 거야!”

 


뭔가 더럽고 치사한 방법이지만, 이렇게 안 하면 켄은 절대 나를 다이스케라고 불러줄리 만무했다. 그러니 이런 방법이라도 쓸 수밖에. 켄은 삐진 척 돌아 선 나를 보고는 당황한 듯 우물쭈물하더니 내게 속삭이듯 작게 말했다.

 


“…다이스케.”

“……….”

 


정말, 불렀다. 뒤에 ―군, 하는 호칭도 없이 오로지 내 이름만. 부를 줄은 예상하고 있었는데 실제로 들으니, 그 자리에 굳은 듯 서있는 나였다. 그저 눈만 계속 껌벅이고 있는 내가 얼마나 우스워 보일까. 내 예상이 맞았는지, 켄은 입 꼬리를 올리며 씨익 웃더니 나를 보고선 이번엔 크게 내 이름을 불렀다. 다이스케, 다이스케!

 


“…다이스케? 왜 그래?”

“아니, 아니, 아니! 아무 것도 아니니까 나 쳐다보지 마! 내 이름 부르지도 마!”

 


무슨 소리야?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 하고 있는 켄을 두고 초인적인 힘으로 아픈 다리를 끌며 필사적으로 뛰었다. 발목이 더 악화될 것 같지만, 켄에게 지금 내 얼굴을 들키는 것 보다는 백배, 천배 낮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발목아 미안.

 


“다이스케! 너 그 발목으로 뭐 하는 거야!”

“내 이름 부르지 말라고―! 따라오지 마!”

 


내 말에 따라오려던 켄의 발걸음이 멈췄고, 그걸 확인한 난 천천히 속도를 줄이며 보건실로 향했다. 쾅, 시끄러운 문소리가 다 나도록 보건실에 들어와 문을 세게 닫은 나에 의해 보건 선생님이 깜짝 놀라 커피를 마시던 컵을 내려놓으셨다. 내게 따끔한 일침을 하려는 표정으로 내게 다가오던 선생님은 나를 보시고는 크게 놀라시며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너 문을…. 어머! 얘, 너 괜찮니? 얼굴이 시뻘겋잖아! 머리 안 아팠어?”

 

 

 

 


§

 

 

 

 


체육시간이 마지막이여서 그런지 내가 교실로 가니 이미 교실은 학생 한 명 없이 텅텅 빈 상태였다. 뭐야, 나 빼고 종례한 건가…. 어떻게 단 한 명도 나를 기다리지 않고 갈 수 있지? 괜히 툴툴거리며 가방을 챙겼다. 해 지는 저녁노을이 창을 통해 들어왔고, 그 노을을 보며 멋지다, 라는 생각을 하며 시선을 바닥을 향한 채 가려던 그 순간, 누군가 문 앞에 서 있었던 건지 길게 늘여진 그림자가 보였다. 누구지? 싶어 고개를 드니 보이는 건 꽤나 심통이 난 표정의 켄이었다. 켄이 왜 집에 안 가고 아직 여기에? 하는 생각과 함께 내 발걸음은 멈추고 말았다.

 


“…집에 안 갈 거야? 뭐해.”

“가, 갈 거야. 그러는 너야말로 왜 아직도 안 가고 있냐!”

“너 기다렸는데? 다이스케.”

“…아, 그래.”

 


그렇게 별 의미 없는 대화가 서로 오가면서 학교 복도를 걸었다. 오늘따라 복도가 왜 이리 길어 보이지. 분명 지금은 봄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여름처럼 덥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닌지 켄은 손으로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아 맞아. 켄은 날 왜 기다린 거지?

 


“근데 켄.”

“어?”

“나 왜 기다렸어? 무슨 할 말이라도 있던 거 아냐?”

“…아. 그냥, 뭐, 친구니까.”

 


아아, ‘친구니까’ 인 건가. 씁쓸한 미소가 잠시 내 입 주면에 자리 잡았다. 이렇게 우울하면 다이스케가 아니지! 하는 생각과 함께 나는 정말, 충동적으로, 뒤를 생각 못 한 채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그나저나 켄, 너는 내가 얼마나 좋냐?”

 


헐, 나 지금 무슨 말을 한 거야? 하고 후회를 했을 때는 이미 내가 말을 꺼내버린 뒤였다. 내 질문에 켄은 꽤나 당황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래, 당황스럽겠지. 어떤 미친놈이 자기 친구한테 이런 걸 묻겠어. 아직 내 마음도 제대로 정의하지도 못했는데 이런 말을 꺼낸 내가 매우 창피했다. 지금 당장 어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직까지 아무런 말이 없는 켄을 보며 켄이 그냥 대답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뭔가 내가 상처받을 것 같고…. 응? 내가 상처를? 왜지? 머릿속이 갈수록 복잡해져만 갔다. 아, 오늘 나 왜 이래! 괜히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걷고 있는데, 켄이 뭔가를 중얼거렸다.

응? 뭐라고? 안 들렸어. 내 말에 켄이 얼굴을 화악 붉혔다.

 


“어? 켄, 너 열나?”

 


내 말에 켄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까 켄이 한 말이 궁금해 뭐라 한 거냐고 조심스레 물으니, 켄이 잘만 걷다가 갑자기 우뚝 섰다. 켄이 서니, 나도 설 수 밖에. 나 역시 걸음을 멈추고 켄을 지그시 바라보니, 켄이 아직도 얼굴을 잔뜩 붉힌 채로 작게 대답했다.

 


“많이 좋아한다고.”

“…에?”

“다이스케, 너! 많이 좋아한다고….”

 


난 대답했다! 하고 창피한 듯 뛰어가는 켄이었다. 나 지금, 뭐 들은 거야?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마구잡이로 튀어나왔다. 비록 아픈 발목 때문에 뛰어가서 켄을 쫓아가지는 못했지만, 내 목청만큼은 자신이 있었기에, 나는 이제 막 계단을 내려가려던 켄에게 소리쳤다.

 


“켄!”

“……….”

“나도 너 많이 좋아해!”

 


내 대답에 잠시 멍을 때리던 켄은 다시 한 번 얼굴을 화악 붉히며 계단을 재빠르게 내려갔다. 아, 귀엽다. 저렇게 빨리 가도 결국 밑에서 나를 기다려주고 있을 켄이라는 걸 알기에 나는 걸음을 서두르기 시작했다. 빨리 내려가서 부끄러워하는 켄 얼굴을 보고 싶다.


내가 생각하는 게 맞는 거라면, 우린 서로 아슬아슬한 경계를 지나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켄?
우리가 그 경계를 넘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말이야.

 


.

 

 


.

 

 


.

 

 


fin.

 

*모든 글의 저작권은 월화비월(@Moon_m0406)에게 있습니다.

*재업(2015.04.12)

*수정(2015.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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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그 물체는 칼입니다. 식칼정도?

 

 

 

*모든 글의 저작권은 월화비월(@Moon_m0406)에게 있습니다.

*재업(2015.06.22)

*수정(2015.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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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몬 저퀄 합작- 여름날의 저퀄]

 

 

태양

 

w.월화비월

 

 

 

§

 

 

 

오늘 역시 구름에 가려진 태양에 날씨는 흐리다. 익숙하게 소녀가 있을 곳으로 향하는 소년의 발걸음이 왠지 모르게 무거워만 보인다. 어느새 문 앞에 도착한 소년이 문을 열기 위해 손을 뻗는다. 손잡이를 돌리려하는 소년의 손이 미세하게 떨려왔다. 심호흡을 반복하던 소년이 용기를 내 방문을 활짝 열어보였다.

 

침대 언저리에 쭈그려 앉아있는 소녀의 모습에 소년의 표정이 죽어버린다. 창틀 사이로 들어오는 빛 따윈 없었다.

 

싫어, 오지 마. 소녀가 저의 머리를 감싸고는 중얼거렸다. 뭐가 그리 무서운지 공포에 질린 얼굴을 한 채 몸을 덜덜 떨고 있는 소녀의 모습은 너무도 가엾어 보였다. 결국 소년은 더 이상 소녀를 지켜보기가 힘들었는지, 끝내 고개를 돌려 눈을 감아버린다. 소녀에게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음을 느낀 소년이 저의 손을 이마에 얹으며 허탈한 듯 헛웃음을 터트려 보였다. 자신의 무능함에 스스로를 책망하던 소년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어디론가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전송이 완료 되었습니다.

 

전송이 제대로 됐다는 문구를 본 소년은 아무 말 없이 핸드폰을 저의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히카리짱. 소년이 입가에 살짝 미소를 머금은 채, 소녀의 이름을 나지막이 불러보았지만, 소녀는 소년의 목소리에 반응하지 않았다. 여전히 덜덜 떨고 있는 소녀에게 소년이 천천히 다가갔다. 가까이서 보니 소녀의 증세는 아까보다 심했으면 심했지, 약해지지는 않은 상태였다. 소년은 소녀를 자신의 두 눈에 가득 담았다. 소년의 눈앞을 흐릿한 안개꽃이 덮는 듯 했다. 소년은 소녀의 가녀린 어깨에 저도 모르게 그만, 소녀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소년의 갑작스런 행동에, 순간적으로 소녀의 떨림이 멈춘다. 한 동안 아무런 움직임이 없던 소녀는 저의 어깨를 끌어안은 소년의 팔을 잡고는 떼어내려는 행동을 취했다. 허나 소년은 그럴수록 소녀를 더욱 더 끌어안을 뿐이었다.

 

이러지 마.”

뭐를.”

타케루군이 나를 생각해 준다는 건 알아. 하지만 이런다고 변하는 건 없어.”

지금 그게 무슨 소리야?”

 

소녀의 말에 소년이 발끈해서는 표정을 굳히며 물었다.

 

타케루군이 아무리 노력해도 타이치 오빠의 역할을 대신 해줄 수는 없다는 소리야.”

 

어느 하나의 감정도 깃들지 않은 소녀의 목소리에 소년의 얼굴이 금세 석고상처럼 굳어져 버린다. 하지만 소녀는 소년의 반응이 어찌되었든 자기와는 상관없다는 듯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타이치 오빠는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어.”

……….”

날 어둠에서 구해줄 수 있는 사람은 네가 아니야, 타케루군.”

히카리짱.”

아무리 희망의 문장을 가진 너라도, 네가 날 구해줄 수는 없는 일이야.”

왜 그렇게 생각하는.”

 

히카리.”

 

소년은 끝내 소녀의 말에 반박하지 못한 채 말을 끝마칠 수밖에 없었다. 꽤나 가까운 거리에서 들려오는 중저음의 소녀를 찾는 목소리에, 소년은 어쩔 수 없이 저의 말을 삼켰다. 그의 목소리에 소녀가 활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의 팔을 뿌리치고 그에게로 달려가 안기는 소녀의 모습에, 소년은 자신의 꼴이 참 우습다는 생각을 했다. 그에게 다시 어둠이 저를 뒤덮으려고 했다며 꽤나 밝은 목소리로 말하는 소녀를 보며 소년은 쓸쓸한 미소를 지어보인다. 자신은 절대 그를 대신할 수 없다는 소녀의 말뜻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소년은 저의 주머니에 쑤셔 넣었던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문자 내용을 확인한 소년이 작게 실소를 터트렸다.

 

정말 대단하네. 소년이 중얼거렸다. 소년은 그의 이중성에 소름이 끼쳐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그걸 눈치 채지 못하고 있는 소녀가, 소년은 가엾기만 했다.

 

형이 빨리 와야 할 것 같아. 히카리짱의 상태가 이상해. 주변이 써늘해.

또 그러냐? , 곧 갈게.

 

 

 

§

 

 

 

히카리, 지금은 괜찮아?”

! 오빠 보니까 바다소리가 멈췄는걸!”

 

한동안 둘을 가만히 바라보던 타케루는 타이치의 이마에 시선을 집중했다. 눈을 가늘게 뜨면서까지 자세히 보려 애쓰던 타케루는, 곧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인다. 말도 안 돼. 타케루는 목 끝까지 차오르는 말을 침과 함께 삼켰다. 히카리가 저의 동생이라는 걸 아직 인지한 모양인지, 걱정이 되어 뛰어온 듯 그의 이마에는 제법 송골송골 땀이 맺혀있었다. 참 우스웠다. 타케루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함과 동시에 한 편으로는 다행이다.’ 라고 속으로 속삭였다. 그래도, 아직은. 아직은.

 

오빠가 항상 옆에 있어주지 못해서 미안해. 그래서 하는 부탁인데 히카리, 오빠는 히카리가 이제 그만 불안했으면 좋겠어.”

, 오빠! 나도 소리가 들리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래, 그래. 착하지, 히카리. 헤헤, 바보처럼 웃으며 타이치의 손길을 얌전히 받아들이고 있는 히카리의 모습에 타케루는 속에서 무언가가 올라오고 있음을 느꼈다. 잽싸게 저의 입을 틀어막고 헛구역질을 여러 번 해대던 타케루는 혼자 방을 빠져나온다. 문이 닫히기 전까지 보이는 둘의 모습이 참, 시렸다. 이제 그 밝던 태양은 존재하지 않았다.

 

타케루.”

 

이미 닫혀버린, 애꿎은 문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던 타케루의 귓가에 낯익은 음성이 들려왔다. 타케루가 서둘러 뒤를 돌아보니, 제 형인 야마토가 벽에 등을 기댄 채 서있었다. 한동안 깜짝 놀라 두 눈만 동그랗게 떠보이던 타케루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 형이 여긴 웬 일이야?”

그냥, .”

 

자세히 보니 제 형의 이마에도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다. 무언가 이상함을 눈치 챈 타케루가 눈을 가늘게 떠 보였다. , 지금 뭐하다 왔어? 타케루의 물음에 야마토가 말문이 막힌 듯 대답을 망설였다. 급기야 흥분한 타케루가 야마토의 멱살을 잡아버린다. 그러자 야마토는 방금 전까지의 조금의 웃음기가 돌던 표정을 한 순간에 싹 굳힌 채 타케루의 팔을 쳐 내린다. 그 반동에 타케루가 몇 걸음 뒤로 밀려났다. 야마토가 입을 열었다.

 

축구.”

……….”

축구하고 왔다고.”

 

아무렇지 않게 옷매무새를 정리하는 야마토와는 다르게 타케루의 얼굴은 참담했다. 어느새 정리를 다 마친 야마토가 타케루에게 시선을 돌렸다. 타케루를 바라보며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야마토는 갑자기 한 쪽 입 꼬리를 올려 씨익, 웃어 보였다.

 

, 타케루. 야마토의 부름에 타케루가 고개를 들자, 야마토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제 동생의 멱살을 잡고는 주먹으로 뺨을 강하게 내리쳤다.

 

.”

 

타케루의 고통스런 신음이 입 밖으로 빠져나왔다. 입안이 터진 건지 타케루가 퉤, 하며 바닥에 피를 뱉어냈다. 새하얀 바닥과 대조되는 뻘건 피가 바닥에 얼룩진다.

 

어디서 형 멱살을 잡아, 타케루. 너도 갇히고 싶어?”

.”

또 예전 일 들먹일 거면 관둬. 이제 소용없는 짓이야.”

 

디지몬들이 사라진 이 세상에, 옛날 얘기는 우리에게 독이 될 뿐이니까. 야마토의 말에 타케루의 머릿속 한 가득 처음 그들을 만났던 여름날과, 갑자기 그들이 우리에게서 사라진 여름날의 기억이 겹치듯 재빨리 지나간다. 순간에 많은 기억들을 떠올려서 머리가 아파오는지 타케루가 고통스런 표정을 지었다. 타케루를 지그시 바라보던 야마토가 타케루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저의 뺨에 닿은 야마토의 손길에 타케루가 움찔거린다. 그렇게, 천천히 타케루의 뺨을 어루만지던 야마토는 타케루의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였다. 거 봐, 독이랬잖아.

 

 

 

§

 

 

 

타케루는 건물 밖을 빠져나와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목적지도 없이, 그렇게 타케루는 계속 발걸음을 내딛었다. 애꿎은 입술에서 피가 흘러나올 정도로, 타케루는 저의 입술을 꽉 물고 있었다. 싸늘한 바람에 매화꽃이 힘을 잃고 바닥에 떨어졌다. 저의 발 근처에 떨어진 매화꽃에 타케루의 발걸음이 멈춘다. 타케루는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바람을 타고 흩날리는 벚꽃이 쓸쓸해 보인다. 겨울이 아직 다 가시지 않은 듯 찬 봄바람이 저의 몸을 시리게 했다. 말 없이 주위를 둘러보던 타케루는 저의 눈을 비비기 시작했다. 앞이 계속 흐려져 제대로 보이지가 않았다. 눈앞에 있을 큰 하얀 건물조차 흐리게만 보인다.

 

태양은 구름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언제까지 구름에 갇혀 있을 태양이 타케루는 밉기만 하다. 사람들을 밝은 빛으로 인도해 줄, 점점 절망만 해가는 저를 기운 차리게 해 줄 태양이 간절하게 필요했다. 타케루의 흐느낌이 세찬 바람소리와 함께 꽃을 흔들리게 했다. 하나 둘, 힘없이 떨어져나가는 꽃이 가엾다.

 

크디 큰 새하얀 건물 위에, 태양은 떠 있지 않았다. 매화 꽃 하나가 살기 위해 마지막 힘을 쥐어 짜내는 듯, 간신이 줄기에 붙어있다. 계속해서 흔들리는 매화꽃이 마냥 위태롭기만 하다.

 

여전히 태양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하늘에서 새하얀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봄이라는 계절이 막연하게도 소복이 내리는 눈에 소년이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저의 앞에 떠 있는 빛이 나는 물체에 소년이 미소를 지으며 손을 뻗는다. 눈물 섞인 미소가 소년의 손에 쥐어진 물체에 툭, 하고 떨어졌다. 정신을 잃은 소년의 몸은 점점 차게만 식어갔다. 그 주위를 거닐던 사람이 소년을 발견하였고, 크게 놀라하며 잽싸게 다가갔다. 제일 먼저 소년이 숨 쉬는 걸 확인하더니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사람은 소년의 몸을 계속해서 흔들었다. 그러자 소년의 손이 힘없이 펴진다. 소년이 쥐고 있던 물체가 드러났다. 소년의 손에는 하얀 매화꽃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

 

 

꽃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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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타케히카 맞나. 본격 디지몬 사라진 세상에서 비뚤어진 형들 때문에 고생하는 (짠내나는) 타케루.......

 

 

 

*모든 글의 저작권은 월화비월(@Moon_m0406)에게 있습니다.

*재업(2015.06.02)

*수정(2015.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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