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트위터의 '서영' 님 께서 [다이켄 / 학교 체육 시간] 을 요청한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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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 님이 아닌 다른 분이 원하시는 거라면 '서영' 님께 꼭 허락을 맡은 뒤 알려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경계선
─다이켄
written by.월화비월
§
*모토미야 다이스케 시점 입니다
내가 넘어짐과 동시에 호루라기 소리가 운동장 전체에 울려 퍼졌다. 경기가 끝나버렸구나. 멍을 때리다시피 나는 넘어진 그대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지나가던 친구가 내게 괜찮은 거냐고 물으며 부축해 나를 자리에서 일으켰을 때야 정신을 차렸으니, 나는 상당히 충격을 받은 상태라고 할 수 있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심판을 맡고 계시던 선생님을 쳐다보니, 선생님께서 점수판을 보시고는 말씀하셨다.
“오늘도 홀수 팀이 승리! 5:4라…. 아깝구나, 짝수 팀. 나중엔 더 분발해서 홀수 팀을 이길 수 있도록 노력해라”
“와아!”
홀수 팀의 함성소리가 귀에 소음처럼만 들려왔다. 홀수 팀의 환한 분위기에 비해 짝수 팀은 우울하기만 했다. 아아. 결국엔 오늘도 지고 말았구나, 저 녀석들에게, 저 녀석에게.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떨궜다. 이번엔 이길 자신 있었는데. 넘어지지만 않았었더라면, 이겼을까? 내가 골을 했었더라면.
“역시 이치죠우지, 너랑 팀이 돼서 다행이라니까.”
시합에서 이긴 건 다 네 덕이라며 켄의 곁에 와글와글 모여서는 시끌벅적하게 떠드는 짝수 팀을 괜히 노려보았다. 내가 넘어진 게 저 녀석들 탓이 아닌 건 알지만, 왜 이렇게 밉기만 한 걸까. 승부에서 지든 이기든 서로 좋은 마음으로 끝내는 게 경기에 임하는 선수의 마음가짐인데, 나는 지금 전혀 그러지를 못했다. 정말, 웃고 있는 모습이 꼴 보기 싫다. 아프다.
“다이스케 군, 너 발목 엄청 부었잖아!”
우리 팀에 속해있던 타케루가 깜짝 놀라서는 내게 다가와 말했다. 타케루가 말 하고 나서야 나는 발목에서 아릿한 통증이 올라오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가슴에서 찌릿찌릿, 통증이 나는 것 같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라 발목이 아파서였나보다.
“보건실까지 부축해 줄까?”
“괜찮다고, 이 정도 쯤은! 하하. 나 혼자 갈 수 있어.”
“그래도….”
“괜찮다니까! 그나저나 타케루 너 대단하던데? 세 골은 네 골이잖아.”
나를 걱정해주는 타케루에게 괜히 환한 웃음을 지으며 괜찮다고 답하면서 일부러 다른 화제로 돌렸다. 평소엔 내가 하지도 않던 칭찬을 하니 타케루가 아리송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 진짜 많이 아픈가보다.”
타케루가 날 걱정해서 말 한 거라는 걸 아는데 기분이 더러웠다. 망할 놈, 하고 한 소리 하려고 했다가 타케루가 나한테 그런 말을 할 정도로 지금 내 상태가 이상하다는 걸 깨닫고 그냥 한숨만 푹 쉬었다. 하아. 그래, 스스로도 이상하다고 생각하는데 타케루가 보기엔 내가 얼마나 이상하겠냐.
“다들 나한테 패스를 잘 해줘서 그렇지, 너희가 아니었으면 골도 못 넣었을 거야.”
그런데 어떡해. 저기서 저렇게 웃고 있는 녀석만 보면 열이 머리끝까지 상승하는 것 같은데! 이상한 거 맞잖아, 나. 마음이 심란했다. 나는 다시 저릿하게 아파오는 가슴을 일부러 외면했다. 발목에서 나는 고통을 착각한 거라고 생각하면서 한쪽 다리를 끌다시피 하면서 홀로 보건실로 향했다.
한 쪽 다리를 질질 끌고 가다가도 아직도 뒤에서 들리는 시끄러운 소리가 신경이 쓰여 뒤를 돌아봤다. 솔직히 말하자면 계속 들리는 다른 아이들과 하하 호호 떠드는 네 목소리가 미치도록 신경이 쓰여서 뒤를 돌아봤다고 하는 게 맞는 표현이겠지. 이걸 바라고 너랑 같은 중학교, 같은 반이 된 걸 좋아한 게 아닌데.
“……….”
“……….”
그렇게 생각하면서 다시 가려고 고개를 돌리려던 순간, 참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네가 우연히 내 쪽을 쳐다봤고, 그 덕에 너를 째리듯 바라보던 내 눈과, 네 눈이 공기 중에서 마주친, 그런 신기한 일이. 눈이 마주친 우리 둘은 아무 말 없이 한참을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네 눈을 계속 빤히 쳐다보고 있으니, 꼭 심장이 두근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살짝 울렁거리면서도, 좋은 느낌에 나는 스스로 깜짝 놀라 표정을 굳혀버렸다. ―마치 히카리를 좋아했을 때 나던 느낌과 똑같다 싶을 정도로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때보다 더한.
“모토미―.”
그렇게 서로 마주보고만 있던 시선을 끊으려는 듯 너는 내 이름을 반갑게 말하려 하다가도 갑자기 입을 닫았다. 혹시 내 표정이 지금 많이 무섭게 돼 있어서 자기한테 화나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 건가? 하는 생각에 표정을 풀고서 너를 바라보니 네 시선은 내 오른쪽 발목에 향해있었다. 아, 내 발목 보고서 놀란 거구나. 표정 때문이 아니라. 너는 계속 네게 말을 걸어오는 아이들에게 억지미소를 지으며 먼저 가보겠다는 말을 하고서 내게로 냅다 뛰어오기 시작했다. 조금도 안 지나서 내 앞에 도착한 너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내 발목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아까 경기할 때 삐끗한 거야? 넘어졌어?”
“응, 그냥 뭐.”
“아 왜 못 봤지…. 괜찮아? 모토미야 군?”
계속해서 내 걱정을 해주는 너를 보니 발목에 대한 통증은 싹 잊히는 듯 했다. 나도 모르게 공기 빠진 웃음소리를 내버렸다. ‘그래, 네가 나를 이렇게 걱정해주는 걸로 된 거야’ 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욕심 안 부리고, 그냥 이렇게.
“같이 보건실까지 데려다 줄게, 모토미야 군.”
―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욕심 부리고 싶어졌다. 내가 뭘 욕심 부리고 싶어 한다는 것 자체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가장 중요한 건.
“그놈에 모토미야 군.”
“응? 무슨 소리야 모토미야 군?”
네 녀석의 입에서 ‘모토미야 군’ 이 아니라 ‘다이스케’ 라는 말이 나오게 하고야 말겠다는 것. 뭔가 켄이 부르는 ‘모토미야 군’은 듣기 거북했고, 싫었다. 스스로 켄과 가장 친하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녀석이 그렇게 부르니 꼭 별로 안 친한 것처럼 들렸다고 해야 하나.
“모토미야 군이라고 하지 말고, 이제 좀 다이스케라 불러주지 그래? 초등학교 6학년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우리 많은 시간을 알고 지냈잖아.”
“아. 근데 좀 어색한데….”
“아아아. 몰라. 이제 다이스케라고 안 하면 나 네 말 무시 할 거야!”
뭔가 더럽고 치사한 방법이지만, 이렇게 안 하면 켄은 절대 나를 다이스케라고 불러줄리 만무했다. 그러니 이런 방법이라도 쓸 수밖에. 켄은 삐진 척 돌아 선 나를 보고는 당황한 듯 우물쭈물하더니 내게 속삭이듯 작게 말했다.
“…다이스케.”
“……….”
정말, 불렀다. 뒤에 ―군, 하는 호칭도 없이 오로지 내 이름만. 부를 줄은 예상하고 있었는데 실제로 들으니, 그 자리에 굳은 듯 서있는 나였다. 그저 눈만 계속 껌벅이고 있는 내가 얼마나 우스워 보일까. 내 예상이 맞았는지, 켄은 입 꼬리를 올리며 씨익 웃더니 나를 보고선 이번엔 크게 내 이름을 불렀다. 다이스케, 다이스케!
“…다이스케? 왜 그래?”
“아니, 아니, 아니! 아무 것도 아니니까 나 쳐다보지 마! 내 이름 부르지도 마!”
무슨 소리야?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 하고 있는 켄을 두고 초인적인 힘으로 아픈 다리를 끌며 필사적으로 뛰었다. 발목이 더 악화될 것 같지만, 켄에게 지금 내 얼굴을 들키는 것 보다는 백배, 천배 낮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발목아 미안.
“다이스케! 너 그 발목으로 뭐 하는 거야!”
“내 이름 부르지 말라고―! 따라오지 마!”
내 말에 따라오려던 켄의 발걸음이 멈췄고, 그걸 확인한 난 천천히 속도를 줄이며 보건실로 향했다. 쾅, 시끄러운 문소리가 다 나도록 보건실에 들어와 문을 세게 닫은 나에 의해 보건 선생님이 깜짝 놀라 커피를 마시던 컵을 내려놓으셨다. 내게 따끔한 일침을 하려는 표정으로 내게 다가오던 선생님은 나를 보시고는 크게 놀라시며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너 문을…. 어머! 얘, 너 괜찮니? 얼굴이 시뻘겋잖아! 머리 안 아팠어?”
§
체육시간이 마지막이여서 그런지 내가 교실로 가니 이미 교실은 학생 한 명 없이 텅텅 빈 상태였다. 뭐야, 나 빼고 종례한 건가…. 어떻게 단 한 명도 나를 기다리지 않고 갈 수 있지? 괜히 툴툴거리며 가방을 챙겼다. 해 지는 저녁노을이 창을 통해 들어왔고, 그 노을을 보며 멋지다, 라는 생각을 하며 시선을 바닥을 향한 채 가려던 그 순간, 누군가 문 앞에 서 있었던 건지 길게 늘여진 그림자가 보였다. 누구지? 싶어 고개를 드니 보이는 건 꽤나 심통이 난 표정의 켄이었다. 켄이 왜 집에 안 가고 아직 여기에? 하는 생각과 함께 내 발걸음은 멈추고 말았다.
“…집에 안 갈 거야? 뭐해.”
“가, 갈 거야. 그러는 너야말로 왜 아직도 안 가고 있냐!”
“너 기다렸는데? 다이스케.”
“…아, 그래.”
그렇게 별 의미 없는 대화가 서로 오가면서 학교 복도를 걸었다. 오늘따라 복도가 왜 이리 길어 보이지. 분명 지금은 봄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여름처럼 덥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닌지 켄은 손으로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아 맞아. 켄은 날 왜 기다린 거지?
“근데 켄.”
“어?”
“나 왜 기다렸어? 무슨 할 말이라도 있던 거 아냐?”
“…아. 그냥, 뭐, 친구니까.”
아아, ‘친구니까’ 인 건가. 씁쓸한 미소가 잠시 내 입 주면에 자리 잡았다. 이렇게 우울하면 다이스케가 아니지! 하는 생각과 함께 나는 정말, 충동적으로, 뒤를 생각 못 한 채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그나저나 켄, 너는 내가 얼마나 좋냐?”
헐, 나 지금 무슨 말을 한 거야? 하고 후회를 했을 때는 이미 내가 말을 꺼내버린 뒤였다. 내 질문에 켄은 꽤나 당황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래, 당황스럽겠지. 어떤 미친놈이 자기 친구한테 이런 걸 묻겠어. 아직 내 마음도 제대로 정의하지도 못했는데 이런 말을 꺼낸 내가 매우 창피했다. 지금 당장 어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직까지 아무런 말이 없는 켄을 보며 켄이 그냥 대답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뭔가 내가 상처받을 것 같고…. 응? 내가 상처를? 왜지? 머릿속이 갈수록 복잡해져만 갔다. 아, 오늘 나 왜 이래! 괜히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걷고 있는데, 켄이 뭔가를 중얼거렸다.
응? 뭐라고? 안 들렸어. 내 말에 켄이 얼굴을 화악 붉혔다.
“어? 켄, 너 열나?”
내 말에 켄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까 켄이 한 말이 궁금해 뭐라 한 거냐고 조심스레 물으니, 켄이 잘만 걷다가 갑자기 우뚝 섰다. 켄이 서니, 나도 설 수 밖에. 나 역시 걸음을 멈추고 켄을 지그시 바라보니, 켄이 아직도 얼굴을 잔뜩 붉힌 채로 작게 대답했다.
“많이 좋아한다고.”
“…에?”
“다이스케, 너! 많이 좋아한다고….”
난 대답했다! 하고 창피한 듯 뛰어가는 켄이었다. 나 지금, 뭐 들은 거야?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마구잡이로 튀어나왔다. 비록 아픈 발목 때문에 뛰어가서 켄을 쫓아가지는 못했지만, 내 목청만큼은 자신이 있었기에, 나는 이제 막 계단을 내려가려던 켄에게 소리쳤다.
“켄!”
“……….”
“나도 너 많이 좋아해!”
내 대답에 잠시 멍을 때리던 켄은 다시 한 번 얼굴을 화악 붉히며 계단을 재빠르게 내려갔다. 아, 귀엽다. 저렇게 빨리 가도 결국 밑에서 나를 기다려주고 있을 켄이라는 걸 알기에 나는 걸음을 서두르기 시작했다. 빨리 내려가서 부끄러워하는 켄 얼굴을 보고 싶다.
내가 생각하는 게 맞는 거라면, 우린 서로 아슬아슬한 경계를 지나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켄?
우리가 그 경계를 넘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말이야.
.
.
.
fin.
*모든 글의 저작권은 월화비월(@Moon_m0406)에게 있습니다.
*재업(2015.04.12)
*수정(2015.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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