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츠나시즈
written by. 월화비월
*
여럿 사람의 목소리가 섞여 시끌벅적한 술 집 지붕 아래,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술잔을 기울였다. 그 중에서도 유독 술이 많은 테이블에 자리 잡은 노랑이라고하기엔 옅은 빛깔의 긴 생머리를 늘어트린 여인 하나가 홀로 술잔을 탁, 탁 내리치며 끊임없이 그것을 들이켰다. 몇 병이나 마신 건지 가늠이 안 될 정도로, 여인의 옆에 쌓여있는 술병들은 조금이라도 툭 치면 와스스 쓰러져 조각조각 깨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드르륵. 언제까지고 술잔을 꽉 쥐어 잡고 있을 것만 같던 여인의 손이 스르륵 풀리며 술잔이 테이블 위에 놓아졌다. 의자를 뒤로 길게 소리 내어 뺀 여인은 자리에서 일어서서는 비틀거리는 저의 몸을 간간히 벽을 짚음으로써 지탱하였다.
“…후.”
간신히 밖으로 빠져나온 여인은 시원한 밤공기를 맞으며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가 내쉬었다. 잔뜩 벌게진 후끈한 저의 볼이 찬 공기와 닿으며 식는 기분이 좋게만 느껴졌다. 으, 이젠 쌀쌀하네. 언제고 가시지 않을 것만 같았던 더운 여름의 습한 공기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직접 몸으로 체감하자, 여인은 조금은 쓸쓸한 그림자를 얼굴에 담았다.
밖 역시 안과 다를 바 없이 여전히 시끌벅적했다. 머리도 식힐 겸 여기서 한 잔이나 더 해볼까―. 주위의 시선은 신경 쓰지도 않은 채, 아무 곳이나 비집고 들어가서는 테이블을 옮겼다고 말하는 여인의 목소리는 참으로 털털했다. 발갛게 달아오른 홍조가 오히려 여인의 넉살스러운 웃음을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게 하는 듯 보였다. 크, 술 맛 좋네. 오늘은 술이 술술 들어간다, 들어가……….
쪼르르. 천천히 술을 따르던 여인은 기울여진 술잔에 투명하게 비추어져 기울어진 달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오늘따라 어찌나 달이 밝은지, 고작 술에 비췬 달임에도 불구하고 시야가 멀어버릴 듯하다. 여인은 잠시 술을 마시던 것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술잔에 동그랗게 비추어 보이던 것과는 상대도 안 될 정도로 밝은 빛을 내뿜고 있는 달과, 여인은 마주했다.
황홀하기 그지없었다. 오늘의 달은. 응, 그래. 밝기도 너무 밝은, 오늘 떠오른 이 달은 계속 보고 있자하면 가슴을 시리게 했다. 가슴이 사무칠 듯 시리고 아프다. 그립던 이들의 얼굴이 형상화 되어 달에 겹겹이 보인다. …이런, 너무 취했나. 그렇게 추억에 잠겨있던 중 한 사람의 그림자가 여인의 시야를 막아섰다. 이 이상 생각하지 말라는 듯, 달은 더 이상 여인의 눈에 보이지 않았다.
츠나데님! 이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저의 앞을 막은 그녀의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이 맺혀있었다. 또한 술을 먹은 것과는 엄연히 다를 붉은 홍조가 그녀의 두 볼을 밝히고 있었고, 급하게 저를 찾아다녔던 것인지, 그녀는 여인과 마주하자 긴장이 풀린 얼굴로 숨을 가빠르게 내쉬었다.
여인은 그녀가 가려버려 더 이상 보지 못하는 아쉬움을 토해내며 잔뜩 풀린 눈으로 위를 올려다보며 느릿하게 입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뭐야……. 시즈네냐?”
“네, 츠나데님. 대체 여기서 뭘 하시는 거예요! 할 일도 다 안 하시고, 말도 없이 이렇게 무작정 술 먹으러 오시면 어떡해요. 무슨 일이라도 생긴 줄 알고 걱정했다고요.”
물론 술을 먹으러 갔을 거란 생각이 더 컸지만…. 한숨을 푹푹 내쉬며 저에게 끊임없이 다다다, 빠른 속도로 말하는 그녀를 보며 여인은 피식하고 옅은 웃음을 내뱉었다. 한동안 안 그러시다가 갑자기 왜 이러신 거예요?
“그냥 뭐………. 오늘 밤 달이 밝아서?”
“…그게 뭐예요.”
아 몰라, 몰라―! 어지러워 죽겠네. 저의 품에 자신의 몸을 푹 기대는 여인의 갑작스런 행동에 깜짝 놀란 그녀의 눈이 동그랗게 커지며 어깨가 달싹였다. 츠, 츠나데님?! 그녀의 어조는 조금만 들어도 당황한 티가 나있었다. 여인은 그녀가 당황을 했던 말건 계속해서 그녀의 품에 파고들었고, 허리를 껴안았다.
“츠나데님―――!”
그녀가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듯 울먹이는 목소리로 여인의 이름을 길게 늘여 부르며 여인을 저의 품에서 떼어내려 애썼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워낙 강한 힘을 가지고 있던 여인에게, 그녀의 힘은 새 발의 피였다. 시즈네. 여인이 축 늘어진 목소리로 그녀를 가만히 불러보았다. 그러자 순간적으로 몸이 경직되어서는, 기운이 없어 보이는 여인을 걱정하며 그녀는 여인의 등을 천천히 토닥였다.
“내 주위에 있는, 내 소중했던 사람들은 말이야….”
“……….”
“다 내 곁에서 하나둘씩 사라져가.”
“……….”
“…전부 나한테서 멀어져가.”
나는 어떡해야 돼? 그녀의 옷깃을 꾹 잡아오며 말하는 여인의 목소리에 그녀는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직접 자신의 내면의 슬픔을 보이지 않던 여인이었기에 그녀는 지금 상황이 충분히 당황스러웠고, 애가 탔다. 그녀는 계속 생각했고, 여전히 생각한다. 자신을 행복하게 해 준 여인이 언제든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자신을 신뢰하여 옆에 두어 준 여인이, 꼭 행복하기를 바란다고………. 허나 현재 여인은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그래서 애가 탔다. 여인에게 언제나 행복한 웃음을 머금게 하고 싶던 그녀는 자신의 한계를 느끼며 저를 한탄했다.
“시즈네, 너는.”
“……….”
“너는, 계속 내 곁에 남아줬으면 좋겠어.”
너마저 사라진다면 나는…. 마지막 말을 끝으로 그녀의 옷깃을 잡고 있던 여인의 손이 힘이 풀린 채로 나가떨어졌다. 잠에 취해 힘이 풀린 몸 역시 그녀의 품에 있기를 거부했던 것인지, 옆으로 쓰려지려 했으나 그녀가 간신히 여인의 몸을 다시 자신의 품에 받아들었다. 으아, 큰 일 날 뻔 했네.
새근새근. 곤히 잠든 여인을 안은 상태에서 몸을 어찌 움직이지도 못하고 석고상처럼 서있던 그녀는 방금 전까지 여인이 바라보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달 때문이라는 말이, 이해가 되네. 한동안 달을 주시하던 그녀는 시선을 다시 여인에게 옮겼다. 저의 품에서 무방비 상태로 잠든 여인이 그녀에게는 귀엽게 보이지 않을 수 없었다. 살짝 자신의 몸을 숙여 여인의 귓가에 저의 입을 가져다 댄 그녀는 나긋한 목소리로, 시끄러운 소음들 속에서 조용히 말을 내뱉었다.
“저는 앞으로도 츠나데님 곁에 있을 거예요.”
당신이 저를 싫다하더라도, 끈질기게.
―달이 구름에 가려졌다. 어두워진 실루엣이 맞물린다.
*모든 글의 저작권은 월화비월(@Moon_m0406)에게 있습니다.
*재업(2015.10.15)
*수정(2015.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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