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gimon

 

[디지몬 저퀄 합작- 여름날의 저퀄]

 

 

태양

 

w.월화비월

 

 

 

§

 

 

 

오늘 역시 구름에 가려진 태양에 날씨는 흐리다. 익숙하게 소녀가 있을 곳으로 향하는 소년의 발걸음이 왠지 모르게 무거워만 보인다. 어느새 문 앞에 도착한 소년이 문을 열기 위해 손을 뻗는다. 손잡이를 돌리려하는 소년의 손이 미세하게 떨려왔다. 심호흡을 반복하던 소년이 용기를 내 방문을 활짝 열어보였다.

 

침대 언저리에 쭈그려 앉아있는 소녀의 모습에 소년의 표정이 죽어버린다. 창틀 사이로 들어오는 빛 따윈 없었다.

 

싫어, 오지 마. 소녀가 저의 머리를 감싸고는 중얼거렸다. 뭐가 그리 무서운지 공포에 질린 얼굴을 한 채 몸을 덜덜 떨고 있는 소녀의 모습은 너무도 가엾어 보였다. 결국 소년은 더 이상 소녀를 지켜보기가 힘들었는지, 끝내 고개를 돌려 눈을 감아버린다. 소녀에게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음을 느낀 소년이 저의 손을 이마에 얹으며 허탈한 듯 헛웃음을 터트려 보였다. 자신의 무능함에 스스로를 책망하던 소년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어디론가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전송이 완료 되었습니다.

 

전송이 제대로 됐다는 문구를 본 소년은 아무 말 없이 핸드폰을 저의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히카리짱. 소년이 입가에 살짝 미소를 머금은 채, 소녀의 이름을 나지막이 불러보았지만, 소녀는 소년의 목소리에 반응하지 않았다. 여전히 덜덜 떨고 있는 소녀에게 소년이 천천히 다가갔다. 가까이서 보니 소녀의 증세는 아까보다 심했으면 심했지, 약해지지는 않은 상태였다. 소년은 소녀를 자신의 두 눈에 가득 담았다. 소년의 눈앞을 흐릿한 안개꽃이 덮는 듯 했다. 소년은 소녀의 가녀린 어깨에 저도 모르게 그만, 소녀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소년의 갑작스런 행동에, 순간적으로 소녀의 떨림이 멈춘다. 한 동안 아무런 움직임이 없던 소녀는 저의 어깨를 끌어안은 소년의 팔을 잡고는 떼어내려는 행동을 취했다. 허나 소년은 그럴수록 소녀를 더욱 더 끌어안을 뿐이었다.

 

이러지 마.”

뭐를.”

타케루군이 나를 생각해 준다는 건 알아. 하지만 이런다고 변하는 건 없어.”

지금 그게 무슨 소리야?”

 

소녀의 말에 소년이 발끈해서는 표정을 굳히며 물었다.

 

타케루군이 아무리 노력해도 타이치 오빠의 역할을 대신 해줄 수는 없다는 소리야.”

 

어느 하나의 감정도 깃들지 않은 소녀의 목소리에 소년의 얼굴이 금세 석고상처럼 굳어져 버린다. 하지만 소녀는 소년의 반응이 어찌되었든 자기와는 상관없다는 듯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타이치 오빠는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어.”

……….”

날 어둠에서 구해줄 수 있는 사람은 네가 아니야, 타케루군.”

히카리짱.”

아무리 희망의 문장을 가진 너라도, 네가 날 구해줄 수는 없는 일이야.”

왜 그렇게 생각하는.”

 

히카리.”

 

소년은 끝내 소녀의 말에 반박하지 못한 채 말을 끝마칠 수밖에 없었다. 꽤나 가까운 거리에서 들려오는 중저음의 소녀를 찾는 목소리에, 소년은 어쩔 수 없이 저의 말을 삼켰다. 그의 목소리에 소녀가 활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의 팔을 뿌리치고 그에게로 달려가 안기는 소녀의 모습에, 소년은 자신의 꼴이 참 우습다는 생각을 했다. 그에게 다시 어둠이 저를 뒤덮으려고 했다며 꽤나 밝은 목소리로 말하는 소녀를 보며 소년은 쓸쓸한 미소를 지어보인다. 자신은 절대 그를 대신할 수 없다는 소녀의 말뜻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소년은 저의 주머니에 쑤셔 넣었던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문자 내용을 확인한 소년이 작게 실소를 터트렸다.

 

정말 대단하네. 소년이 중얼거렸다. 소년은 그의 이중성에 소름이 끼쳐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그걸 눈치 채지 못하고 있는 소녀가, 소년은 가엾기만 했다.

 

형이 빨리 와야 할 것 같아. 히카리짱의 상태가 이상해. 주변이 써늘해.

또 그러냐? , 곧 갈게.

 

 

 

§

 

 

 

히카리, 지금은 괜찮아?”

! 오빠 보니까 바다소리가 멈췄는걸!”

 

한동안 둘을 가만히 바라보던 타케루는 타이치의 이마에 시선을 집중했다. 눈을 가늘게 뜨면서까지 자세히 보려 애쓰던 타케루는, 곧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인다. 말도 안 돼. 타케루는 목 끝까지 차오르는 말을 침과 함께 삼켰다. 히카리가 저의 동생이라는 걸 아직 인지한 모양인지, 걱정이 되어 뛰어온 듯 그의 이마에는 제법 송골송골 땀이 맺혀있었다. 참 우스웠다. 타케루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함과 동시에 한 편으로는 다행이다.’ 라고 속으로 속삭였다. 그래도, 아직은. 아직은.

 

오빠가 항상 옆에 있어주지 못해서 미안해. 그래서 하는 부탁인데 히카리, 오빠는 히카리가 이제 그만 불안했으면 좋겠어.”

, 오빠! 나도 소리가 들리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래, 그래. 착하지, 히카리. 헤헤, 바보처럼 웃으며 타이치의 손길을 얌전히 받아들이고 있는 히카리의 모습에 타케루는 속에서 무언가가 올라오고 있음을 느꼈다. 잽싸게 저의 입을 틀어막고 헛구역질을 여러 번 해대던 타케루는 혼자 방을 빠져나온다. 문이 닫히기 전까지 보이는 둘의 모습이 참, 시렸다. 이제 그 밝던 태양은 존재하지 않았다.

 

타케루.”

 

이미 닫혀버린, 애꿎은 문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던 타케루의 귓가에 낯익은 음성이 들려왔다. 타케루가 서둘러 뒤를 돌아보니, 제 형인 야마토가 벽에 등을 기댄 채 서있었다. 한동안 깜짝 놀라 두 눈만 동그랗게 떠보이던 타케루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 형이 여긴 웬 일이야?”

그냥, .”

 

자세히 보니 제 형의 이마에도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다. 무언가 이상함을 눈치 챈 타케루가 눈을 가늘게 떠 보였다. , 지금 뭐하다 왔어? 타케루의 물음에 야마토가 말문이 막힌 듯 대답을 망설였다. 급기야 흥분한 타케루가 야마토의 멱살을 잡아버린다. 그러자 야마토는 방금 전까지의 조금의 웃음기가 돌던 표정을 한 순간에 싹 굳힌 채 타케루의 팔을 쳐 내린다. 그 반동에 타케루가 몇 걸음 뒤로 밀려났다. 야마토가 입을 열었다.

 

축구.”

……….”

축구하고 왔다고.”

 

아무렇지 않게 옷매무새를 정리하는 야마토와는 다르게 타케루의 얼굴은 참담했다. 어느새 정리를 다 마친 야마토가 타케루에게 시선을 돌렸다. 타케루를 바라보며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야마토는 갑자기 한 쪽 입 꼬리를 올려 씨익, 웃어 보였다.

 

, 타케루. 야마토의 부름에 타케루가 고개를 들자, 야마토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제 동생의 멱살을 잡고는 주먹으로 뺨을 강하게 내리쳤다.

 

.”

 

타케루의 고통스런 신음이 입 밖으로 빠져나왔다. 입안이 터진 건지 타케루가 퉤, 하며 바닥에 피를 뱉어냈다. 새하얀 바닥과 대조되는 뻘건 피가 바닥에 얼룩진다.

 

어디서 형 멱살을 잡아, 타케루. 너도 갇히고 싶어?”

.”

또 예전 일 들먹일 거면 관둬. 이제 소용없는 짓이야.”

 

디지몬들이 사라진 이 세상에, 옛날 얘기는 우리에게 독이 될 뿐이니까. 야마토의 말에 타케루의 머릿속 한 가득 처음 그들을 만났던 여름날과, 갑자기 그들이 우리에게서 사라진 여름날의 기억이 겹치듯 재빨리 지나간다. 순간에 많은 기억들을 떠올려서 머리가 아파오는지 타케루가 고통스런 표정을 지었다. 타케루를 지그시 바라보던 야마토가 타케루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저의 뺨에 닿은 야마토의 손길에 타케루가 움찔거린다. 그렇게, 천천히 타케루의 뺨을 어루만지던 야마토는 타케루의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였다. 거 봐, 독이랬잖아.

 

 

 

§

 

 

 

타케루는 건물 밖을 빠져나와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목적지도 없이, 그렇게 타케루는 계속 발걸음을 내딛었다. 애꿎은 입술에서 피가 흘러나올 정도로, 타케루는 저의 입술을 꽉 물고 있었다. 싸늘한 바람에 매화꽃이 힘을 잃고 바닥에 떨어졌다. 저의 발 근처에 떨어진 매화꽃에 타케루의 발걸음이 멈춘다. 타케루는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바람을 타고 흩날리는 벚꽃이 쓸쓸해 보인다. 겨울이 아직 다 가시지 않은 듯 찬 봄바람이 저의 몸을 시리게 했다. 말 없이 주위를 둘러보던 타케루는 저의 눈을 비비기 시작했다. 앞이 계속 흐려져 제대로 보이지가 않았다. 눈앞에 있을 큰 하얀 건물조차 흐리게만 보인다.

 

태양은 구름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언제까지 구름에 갇혀 있을 태양이 타케루는 밉기만 하다. 사람들을 밝은 빛으로 인도해 줄, 점점 절망만 해가는 저를 기운 차리게 해 줄 태양이 간절하게 필요했다. 타케루의 흐느낌이 세찬 바람소리와 함께 꽃을 흔들리게 했다. 하나 둘, 힘없이 떨어져나가는 꽃이 가엾다.

 

크디 큰 새하얀 건물 위에, 태양은 떠 있지 않았다. 매화 꽃 하나가 살기 위해 마지막 힘을 쥐어 짜내는 듯, 간신이 줄기에 붙어있다. 계속해서 흔들리는 매화꽃이 마냥 위태롭기만 하다.

 

여전히 태양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하늘에서 새하얀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봄이라는 계절이 막연하게도 소복이 내리는 눈에 소년이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저의 앞에 떠 있는 빛이 나는 물체에 소년이 미소를 지으며 손을 뻗는다. 눈물 섞인 미소가 소년의 손에 쥐어진 물체에 툭, 하고 떨어졌다. 정신을 잃은 소년의 몸은 점점 차게만 식어갔다. 그 주위를 거닐던 사람이 소년을 발견하였고, 크게 놀라하며 잽싸게 다가갔다. 제일 먼저 소년이 숨 쉬는 걸 확인하더니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사람은 소년의 몸을 계속해서 흔들었다. 그러자 소년의 손이 힘없이 펴진다. 소년이 쥐고 있던 물체가 드러났다. 소년의 손에는 하얀 매화꽃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

 

 

꽃이,

 

 

떨어졌다.

 

 

 

*****************************

 

이거 타케히카 맞나. 본격 디지몬 사라진 세상에서 비뚤어진 형들 때문에 고생하는 (짠내나는) 타케루.......

 

 

 

*모든 글의 저작권은 월화비월(@Moon_m0406)에게 있습니다.

*재업(2015.06.02)

*수정(2015.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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