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트위터의 'sonne' 님 께서 [타케히카 / 하교길] 을 요청한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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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雪_설
─타케히카
written by. 월화비월
§
눈이 내렸었다. 그리고 현재 눈이 내리고 있다. 내 기분과는 상관없이 소복이 쌓여만 가는 눈이 그때나, 지금이나 밉게만 느껴졌다. 너와 내 사이를 가르듯 흩날리는 눈꽃은 뭐 이리 쓸데없이 아름다운건지―. 지금 내 눈 앞에 서 있는 너를 눈물이 가득 고여 있는 그렁그렁한 눈으로 담고 있었기에 그 눈꽃은 내게 방해물과 같은 존재였다. 그랬기에 그 눈꽃은 쓸데없이 아름다웠고, 그만큼 시렸으며, 참혹했다.
너를 마지막으로 본 그 날, 그 날도 오늘처럼 눈이 내리고 있었다. 처음엔 온 세상을 새하얗게 색칠하듯 내리는 그 눈이 참 신비하게도 따스한 느낌이 난다고 생각했었는데 너로 인해 그 눈에 대한 인식은 순식간에 바뀌고야 말았다. 갑작스럽게 내게 이별을 고하던 네 말로 인해 나는 순식간에 그 눈이 미치도록 잔인하다고 생각했으니까. 아름다웠기 때문에. 내 비참한 상황을 위로해주기는커녕 저 혼자 아름답게 흩날리는 눈꽃이었기에 내게는 너무도 잔인했다. …지금 역시 그랬다.
“오랜만이야.”
“……….”
“히카리짱.”
너는 왜 예전이나 지금이나 왜 이렇게 잔인한 걸까. 너는 내게 이별을 고하고 떠난 뒤 나하고도, 내 주변인하고도 연락을 모두 끊고 사라졌었다. 내가 네 곁에 친구로서 남는 것마저 거부하고 지금 내 살갗에 닿은 눈이 온기에 녹아 사라지듯 그때 내 눈 앞에서 갑작스레 사라졌던 네가 갑작스럽게 나타다 내 눈앞에 서있다. 어이가 없을 만큼 잔인한 네가 왜 다시 내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건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히카리, 누가 너 기다린다고 교문 앞에 서 있던데?」 친구의 문자였다. 나는 그저 친구의 문자에 의해 ‘우리 오빠인가?’ 하고 생각해 가방을 챙기고 빨리 나온 거였다. 절대, 결코 너일 거라고는 생각 못했고, 하는 것조차 싫었다. 나는 타케루군, 너를 보려고 급하게 교문까지 뛰어온 게 아니었어. 하지만 참 이상하지. 이토록이나 미운 너를 이 두 눈에 담고 싶어 눈에 힘을 주는 나는, 정말 이상했다. 이제야 점점 너를 잊어가는 것 같아 좋았는데, 너를 잊어갈 즈음이 돼야 나타난 네가 역시 나는 보고 싶었던 걸까….
“잘… 지냈어?”
옛날의 그 다정한 목소리로 안부를 묻는 너의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두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그리고 나는 어깨를 들썩였다. 아니, 들썩일 수밖에 없었다. 내 원망이 가득 담긴 울음을 토해내는 것은 내 어깨를 들썩이게 했으며 지금껏 쌓아왔던 내 모든 것이 무너지게 했다. 내 등 뒤로 천천히 교문을 나서는 학교 학생들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사람들은 친구들과 웃고 떠들다가도 내 근처를 지나갈 땐 조용해졌다. 그렇게 한참을 있었다.
“히카리?”
“이즈미, 그냥 가자….”
“아니 잠깐만, 얘 히카리 아니야? 히카리, 왜 거기서 그러고…. 아, 루키! 알겠어. 갈 테니까, 옷 좀 잡아 당기지마!―”
저 남자앤 또 누구야? 툴툴거리는 이즈미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지는 듯 했다. 평소 성격이 활발했던 이즈미는 내 모습을 보고 걱정을 했을 것이 분명했다. 그랬으니 내 이름을 부르면서 다가왔던 거겠지. 만약 그대로 내게 다가왔으면 곤란했겠지만, 이성적인 판단을 잘하는 루키가 이즈미 옆에 있어서 다행이었다. 나와 타케루군 사이가 심상치 않다는 걸 눈치 챈 루키가 이즈미를 끌고 가듯이 데려가 주어서, 나는 정말 다행이라고. 그리고 지금 내가 눈물을 흘리는 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넌 대체 왜 다시 내 앞에 나타난 걸까, 하고.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옷소매로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들고 너를 바라봤다. 너는 내가 눈을 마주치자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나는 여전히 네가 미운데, 아직도 너의 미소에 두근거리는 심장이 참으로 원망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왜 왔어.”
“…히카리짱.”
“왜, 왜 다시 내 눈 앞에 나타난 거야!”
내 울음 섞인 외침에 대답해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당사자조차도 내 외침에 아무 대답을 하지 않은 채 나를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할 수 있을 만큼의 변명이라도 하면 좋을 텐데, 너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널 용서할 아주 작은 이유조차도 말해주지 않는 네가, 정말 미웠다.
“히카리짱.”
“……….”
“가자, 집. 데려다줄게.”
“싫어. 내가 왜 타케루군 하고….”
“부탁해. 오랜만에 같이 하교하고 싶어서 그래.”
타케루군의 애원 섞인 말에도 나는 끝까지 거부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타케루군은 이제 내 의사는 상관없다는 듯 무작정 내 손목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버티려고 다리에 힘을 주는 건 소용이 없었다. 남자와 여자의 힘의 차이 때문에 잔뜩 성장해버린 타케루군의 힘에 의해 결국 나는 끌려가듯이 걷게 되었다. 타케루군이 힘을 많이 주고 잡고 있어서 그런지 손목이 점점 저려왔고, 나는 타케루군에게 안 도망친다는 약속을 얻어낸 뒤에야 내 손목이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저려옴에 아파 내 손목을 보니 빨간 손자국이 선명하게 나있었다. 이 정도로 꽉 잡았으니 당연히 저리도록 아파왔겠지. 그렇게 손목이 아파서 살살 주무르고 있는데, 타케루군이 내 손목을 보았는지 순간 움찔하더니 내게 미안하다고 말해왔다. 나는 타케루군의 말에 흠칫하며 재빨리 손목을 등 뒤로 숨기고는 괜찮다고 답했다. 왠지 원망스럽기만 한 그가 내 걱정을 하는 건 싫었다.
그렇게 한참을 타케루군의 뒤를 따라가듯 조용히 걷고 있던 와중, 갑자기 걷는 걸 멈춰서는 타케루군에 의해 나 역시 멈춰선 채 타케루군의 뒷모습만 바라봤다. 타케루군은 뒤를 돌아보더니 나와 눈을 마주치기 시작했다. 나는 시선을 피할까 잠시 생각도 했지만 타케루군의 눈을 보고 있자하니 무언가 알 수 없는 슬픔이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아주 잠깐 동안 마주친 건데도 불구하고 타케루군의 시선을 피할 수가 없었다. 그 때 갑작스럽게 떠난 이유가 있는 거야? 그런거야, 타케루군? 침을 한 번 꿀꺽 삼킬 정도로 긴장한 상태로 타케루군의 입 모양에 집중했다. 그러자 타케루군이 천천히 입을 열었고, 내게 말했다.
“제대로 인사하려고 왔어.”
“……….”
“그때, 히카리짱한테 제대로 인사 못 한 것 같아서 계속 마음에 걸렸었거든.”
허. 하고 실소가 터져 나왔다. 내 앞에 다시 나타난 이유가 제대로 이별을 고하기 위해서, 라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네가 나한테 용서라도 구했으면, 나한테서 떠난 것에 이유가 있었다면, 다시 너를 받아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내가 너무도 바보스러워서 눈물이 나왔다. 눈에 꽉 힘을 주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대로 내 뺨을 타고 천천히 흐르는 눈물은 차가운 공기와 만나 금방이라도 얼어붙는 듯 했다. 마치 내 마음처럼. 조금이라도 따스해진 내 마음은 네 말에 다시 얼어붙었다. 두근두근, 하고 좋게 뛰던 심장 고동소리가 다시 평상시로 돌아왔다. 아아. 이제야 너를 똑바로 볼 수 있었다. 너는 그냥 잔인했던 거야, 타케루군. 나는 괜히 아무 잘못 없는 애꿎은 입술만 깨물면서 두 손에 주먹을 쥐어 힘을 주어보였다. 이렇게라도 안 하면 폭력을 써버릴 것 같았기에 나는 몸에 힘을 가능한 많이 써 보이려고 노력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주먹에 힘을 꽉 주어 봐도, 입술을 깨물어도 가만히 있으니 이 분함은 풀릴 리가 없었다. 결국 입술에서 피가 났는지 비릿함이 느껴졌다.
참 우스웠다. 옛날에 그 ‘빛의 문장’을 가졌던 내가 맞는 건지, 지금은 빛이 보이지가 않았다. 언제 어떤 순간에도 빛은 어디에나 있다고, 그렇게 믿었는데 보이지가 않아…. 내가 너무 많이 커버린 탓에 바뀌어버린 걸까. 그래서 타케루군, 너하고도 예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걸까. 내가 너무 바뀌어버려서?
“그래.”
“……….”
“인사, 하면 되겠네. 타케루군.”
“…응.”
눈을 날카롭게 한 채 타케루군을 노려봤다. 쉽게 대답하는 타케루군에게 당장 미친 듯이 소리치면서 분노를 표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렇게까지 한다면 그땐 정말 내가 너무 비참해질 것 같았다. 나는 간신히 화를 억눌렀지만, 그래도 넘쳐 오르는 화는 참을 수 없었는지 목소리에서 표가 났다. 내 목소리는 지금 엄청나게 떨려오고 있었으니까.
“어서 해.”
“……….”
“하라고! 인사 제대로 하러 온 거라며. 나는 타케루군을 보기가 정말 싫어! 끔찍해.”
“…히카리짱.”
“너무 끔찍해서, 꼴 보기가 싫어. 그러니까―”
“……….”
“―빨리 내 앞에서 사라져줘.”
그리고 다시는 나타나지 마. 내 말에 타케루군은 소리 없이 웃음을 터트렸다. 한 쪽 입 꼬리를 간신히 올려 미소를 짓는 타케루군이 왠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아니, 내 착각이겠지. 나는 애써 부정하며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눈을 천천히 감았다. 정신 제대로 차려, 히카리. 타케루군은 잔인한 사람이야. 그렇게 다시 눈을 뜨려는데 아주 가까이에서 다른 이의 호흡이, 온기가 느껴졌다. 깜짝 놀란 내가 눈을 급히 떠 보이니 타케루군의 눈을 감은 얼굴이 떡하니 보였다. 깜짝 놀란 나는 순간 몸이 굳어버렸고, 정신을 차리자마자 몸을 잽싸게 뒤로 빼며 타케루군에게 소리쳤다.
“지금 이게 뭐하는―!”
하지만 그대로 내 뒷말은 나오지 못하고 타케루군의 입에 막히고 말았다. 타케루군은 몸을 뒤로 뺀 나를 잽싸게 끌어당겨 입술을 부딪치듯 맞춰왔다. 너무 갑작스럽게 일어난 상황이라 깜짝 놀라 눈만 크게 떠 깜박거리고 있었다. 나중에 정신을 차렸을 때에 나는 그냥 그대로 타케루군의 입맞춤을 눈을 감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타케루군의 온전한 향기에 취해 홀려버린 게 아니었다. 입술로부터 전해져오는 알 수 없는 슬픔이, 여전히 다를 것 없이 따스한 그 온기에 나는 타케루군을 밀어버릴 수 없었다. 그냥 눈물이 나왔다. 다시 내 볼을 타고 흐르던 눈물은 타케루군과 내 입술이 맞닿은 자리까지 흘러왔다. 눈물의 짭짤함마저 느껴졌다. 한참의 입맞춤을 끝내려는지 타케루군은 천천히 자신의 입술을 떼어내며 천천히 눈을 떴고, 나 역시 천천히 눈을 떠 타케루군을 바라봤다.
“……….”
타케루군의 눈 근처가 촉촉이 젖어있는 듯했다. 그 짭짤함이 내 눈물뿐만이 아닌, 타케루군의 눈물도 섞여있던 걸까. 꽤 긴 시간, 아무 말이 없던 타케루군은 아무 말 없이 내 손을 꼭 잡은 채 길을 걷기 시작했다. 나와 발걸음을 맞추어 천천히 걷는 타케루군을 보니 역시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걸어서 우리 집까지 가는 동안 타케루군과 나는 마치 옛날로 돌아간 듯 했다. 어색한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우리는 옛날처럼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대화를 나눴다. 믿어지지가 않았다. 타케루군은 나와는 달리 아무것도 변한 게 없어 보였다. 이런 타케루군이 다시 이별을 제대로 말하기위해 내 앞에 나타난 거라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타케루군.”
“응? 왜 그래, 히카리짱?”
여전히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 타케루군을 보니 물어보기가 껄끄러워졌지만, 용기를 내서 물어보기로 했다. 절대 먼저 말 할 타케루군이 아니었으니.
“타케루군은 왜 다시 떠난다는 거야?”
“……….”
“제대로 인사만 하려고 온 거였으면 입을 맞출 필요도 없었잖아. 나는 도저히 납득이 안 가, 타케루군. 제대로 이유를 말 해줘.”
내 말에 타케루군은 쓴 웃음을 지었다. 그게 끝이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마른세수를 한 타케루군은 금방 활짝 웃으며 화제를 돌리기에 바빴다. 그래서 그냥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했다. 언젠가, 언젠가는 알려줄 거라고, 그러기 위해 다시 내 앞에 나타날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정신없이 서로 말을 오가며 걸으니 어느새 우리 집 아파트 앞에 도착한 타케루군과 나는 서로 먼저 인사를 하는 걸 꺼려했다. 나는 이제 보지 못 할 타케루군에게 미련이 남아서 그런 거겠지만, 타케루군 역시 나와 헤어지기 싫어서 그러는 걸까? 그렇게 서로 아무 말 없이 우물쭈물 거리고 있었는데, 타케루군이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지그시 바라보기 시작했다. 나 역시 타케루군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으니, 타케루군이 허리를 살짝 숙이고 내게 천천히 다가왔다. 타케루군은 금방이라도 입이 맞닿을 듯 아슬아슬한 거리까지 오고서야 다가오늘 걸 멈추었다. 타케루군은 사뭇 진지한 얼굴을 하고선 나와 제대로 눈을 마주보고 있었다. 이별의 입맞춤, 뭐 그런 게 아니라 내게 하고 싶을 말이 있었던 건가 싶어 나는 속으로 초조하게 타케루군의 말이 나오는 걸 기다렸다. 조금은 긴장감 있는 정적이 흘렀고, 타케루군이 드디어 말을 하려는지 입을 열려는 찰나에 꽤 가까운 거리에서 들려오는 오빠의 목소리에 우리 둘은 잽싸게 떨어졌다. 뭔가 중요한 얘기인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찜찜했지만 나중에 해주겠거니, 하고 타이치 오빠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을 보니 오빠가 누구와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는지 크게 웃으며 이쪽으로 오는 게 보였다. 나를 발견한 오빠가 반가움에 활짝 웃으며 크게 손을 흔들었다. 나 역시 웃음을 짓고 오빠에게 손을 흔들었고, 점점 이쪽으로 다가오던 오빠는 내 옆에 있던 타케루군을 보고서 깜짝 놀라더니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마저 떨어트린 채 멍하니 타케루군을 바라봤다. 타케루군은 타이치 오빠의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살짝 숙였다. 옛날이었다면 둘이 웃으면서 인사했을 텐데, 둘 사이에 흐르는 묘한 기류가 심상치 않았다. 내 예상이 맞았던 건지 타케루를 바라보고 있던 오빠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가기 시작했다. 온갖 인상은 다 찌푸린 채로 이쪽으로 잽싸게 다가온 타이치 오빠는 타케루군의 멱살을 잡고는 소리쳤다.
“네가 왜 여기에 있어, 타케루!”
“오랜만이네, 타이치상.”
“지금 네가 왜 여기에 있는 거냐고!”
나는 정말 화나서 소리치는 오빠를 말릴 수가 없었다. 이렇게 화난 오빠는 처음 봤기 때문에, 나는 그저 눈만 깜박이며 둘을 바라보는 게 다였다. 엄청 화나선 소리치는 오빠와는 달리 타케루군은 그저 부드럽게 웃으며 안부를 물었다. 내가 용기를 내 작은 목소리라도 내어 오빠에게 그만하라 하니, 오빠가 들은 건지 깊은 한숨을 내뱉으며 타케루군의 멱살을 놓았다.
가자, 히카리. 타케루 너는 빨리 돌아가. 딱 봐도 잔뜩 굳은 목소리로 말은 건네던 타이치 오빠는 타케루군 쪽은 보지도 않고 내 손목을 잡은 채 아파트 안으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어, 어… 오빠 잠깐만! 하고 부탁해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타케루군은 마지막까지 웃음을 지으며 내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내 당혹감 가득 서린 표정이 아닌, 나도 웃음을 지으며 인사를 해주고 싶었는데 상황이 그러질 못했다. 그렇게 엘리베이터를 타는 걸로 타케루군은 완전히 내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이게 정말 마지막이라면, 타케루군에게 제대로 인사를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도착한 나는 이제 씻고 자라는 오빠의 말을 애써 못들은 척해가며 조금은 다급하게 말을 꺼냈다.
“…오빠.”
“뭐야, 왜 그러는데?”
“오빠 핸드폰 있잖아.”
“아! 아 맞아, 그렇게 안 가져왔지 참!”
“내가 가져올게!”
…에? 히카리?! 기다려! 뒤에서 나를 붙잡으려고 팔을 뻗는 게 보였지만 내가 더 빨랐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면서 오빠는 나를 잡지 못했다. 빨리, 빨리 내려가라. 생각을 하니 평소보다 내려가는 시간이 더 느린 것 같이 느껴졌다. 곧이어 “1층입니다.” 라는 목소리가 들렸고, 문이 열리자마자 잽싸게 뛰어 나갔지만 타케루군이 있던 자리엔 아무도 없었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개미 한 마리조차 보이지를 않았다.
“…타케루군.”
그저 차디 찬 콘크리트바닥엔, 액정이 다 깨진 핸드폰만이 외로이 남겨져 있을 뿐이었다.
§
“―후아.”
벌써 작년인가, 타케루군을 마지막으로 본 날이. 그 날 이후로 혹시나 싶어 타케루군이 예전에 살던 집으로 찾아가봤지만 타케루군의 어머니이신 나츠코상만이 나를 반겨줄 뿐이었다. 나츠코상께 타케루군이 어디로 간 건지 알려 달라 사정을 했지만 결과는 옛날과 똑같았다. 야마토상에게도 몇 번이나 직접 찾아가 물어도 내게 알려주는 사실은 단 하나도 없었다. 똑같아. 이번에도, 타케루군은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었다. ―나는 제대로 된 인사, 한 번도 한 적 없는데.
복잡한 생각에 숨을 크게 내쉬었다. 내 숨은 뿌연 수증기가 되더니 금세 사라졌다. 오늘도 역시 춥다. 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고 있는 눈을 내리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눈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마치 세상의 어디든 하얀 눈으로 뒤덮어 숨겨버리기라도 할 듯이, 눈은 그렇게 계속 내렸다. 눈은 뭐를 감추고 싶어서 이리도 많이 내리는 걸까.
“어, 오빠!”
딱 현관 앞까지 도착해 들어가려는 찰나, 먼저 문이 열렸고, 온통 검은색으로 되어있는 옷을 입은 타이치 오빠가 나왔다. 옷의 분위기 때문에 그런지 타이치 오빠의 얼굴도 어두워 보이는 듯 했다. …에. 어두워 보이는 듯 한게 아니라 진짜 어두운 건가? “히카리.” 하고 짤막하게 내 이름을 부른 오빠는 뭐가 그리도 말하기 힘든지 자신의 애꿎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정말 무슨 일이 있던 건가…. 뭔가 알 수 없는 불길함이 내 몸을 휘감아 오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느낌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마치 조금만 더 있으면 내 몸이 다시 어둠의 바다를 불러들일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어 조금 두려워졌다. 그랬기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빨리 말하라며 오빠를 재촉해 물었다. 그냥, 지금 당장이라도 집에 들어가 쉬고 싶었다.
“있잖아, 히카리.”
“뭔데 그러는데―. 그나저나 오빠 진짜 어디 가? 꼭 장례식이라도 가는 것처럼 분위기 침침하네.”
내 말에 아무런 대답도 못한 채 그저 고개만 푹 숙이는 오빠의 모습에 난 더 의아할 뿐이었다. 장난 친 건데 정말 무슨 일 있는 거야? 하고 타이치 오빠에게 묻는 내 목소리는 무언가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잔뜩 흔들리고 있었다. 타이치 오빠의 대답을 조금은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으니, 오빠의 뺨을 타고 흐르는 한 줄기 눈물에 내 불안함은 더욱 커져만 갔다. 싫어, 다시 어둠이 다가오는 것 같아. 이런 건 무서워, 오빠. 제발 빨리 대답해줘. 내 속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타이치 오빠는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차라리 몰랐던 것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타케루가.”
“……….”
“―죽었대.”
차라리 몰랐었더라면, 내 모든 게 무너지지는 않았을 텐데.
§
「안녕, 히카리짱?
하하. 그때 제대로 인사를 못 한 것 같아서 너무 아쉽네. 히카리짱은 잘 지내고 있지? 나는 지금 매우 잘 지내고 있어. 여기는 정말 공기가 좋아. 바다도 한 눈에 들어오고, 밤이 되면 별이 반짝반짝, 아주 잘 보여. 정말로 아름다운 곳이라서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히카리짱하고 놀러오고 싶은 장소라고 해야 하나…. 그런 기회는 없을 것 같지만 말이야. 오늘은 아무도 안 놀러 와서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있었어. 정말 심심해서 바깥 구경하려고 했더니 간호사누님들이 절대! 안 된다고 하지 뭐야? 그래서 그냥 누워있는 것뿐이었지, 뭐.
………(생략.)
히카리짱한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정말 많은데 편지지가 벌써 끝에 다다르네. 아쉽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꼭, 다시 편지 쓰고 싶어. 하지만 오늘 이 편지가 마지막일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많이 미련이 남아. 히카리짱, 나는 히카리짱을 정말 많이 좋아했어. 그래서 다시 한 번 히카리짱이 제대로 웃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간 거였는데 옛날처럼 활짝 웃는 얼굴을 못 본 게 가장 아쉬워. 혹시, 나중에 이 편지를 보게 된다면 히카리짱. 앞의 내용은 전부 다 잊어줘. 다시 너한테 찾아가 친절하게 대하던 것도 잊어줬으면 해. 그냥, 내가 너한테 일방적으로 이별을 고했던 나만 기억해줘. 나를 미워해줬으면 좋겠어. 나는 히카리짱이 나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았으면 해. 그러니까, 차라리 나를 증오할 정도로 미워해주길 바라.
그동안 많이 고마웠어, 히카리짱.」
나는 편지를 다 읽자마자 펑펑 눈물을 쏟아낼 수밖에 없었다. 내가 도대체 어떤 정신으로 여까지 왔는지 모를 정도로, 나는 이성을 잃은 듯 소리 내어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몸을 덜덜 떨고 있는 나를 발견한 야마토상이 먼저 내게 다가와 ‘이게 타케루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쓴 편지래, 히카리짱.’ 라고 말하며 내 손에 편지를 쥐어줬을 땐 이미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 상태로 편지를 끝까지 다 읽으니 나는 정말 죽어버릴 것 같았다. 타케루군이 죽었다는 사실이 진짜라는 걸 알려주듯 검은 액자 안에서 활짝 웃고 있는 타케루군의 사진에 나는 정말로 숨이 턱 끝까지 막혀오는 것 같았다. 거짓말이라고 해 줘, 이건 아니잖아. 아니야. 누가 아니라고 좀 해 줘 봐요.
“히카리, 그만 울고 이제 집 가자. 응?”
“…그래서 그런 거였어, 오빠?”
그때 타케루군한테 병원에 안 있고 왜 여기에 있는 거냐는 소리였어, 그 말이? 힘겹게 한 자, 한 자, 간신히 말하는 나를 타이치 오빠가 안쓰럽게 바라보다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아아, 그렇구나. 그래서 그런 거였어. 이제야 모든 게 이해가 가는 것 같았다. 갑작스럽게 이별을 고한 타케루군, 또 갑자기 나타났다 다시 사라진 타케루군, 그리고 오빠의 그 말…. 나만 몰랐던 거였구나.
사실을 다 알게 됐다고 해도 나는 타이치 오빠에게, 또 야마토상에게 따질 수도 없었다. 자신이 무척이나 사랑하던 친동생이 죽었으니 가장 슬퍼할 사람은 분명 야마토상이었고, 아끼던 동생이 죽었으니 야마토상만큼은 아니더라도 무척이나 슬퍼할 타이치 오빠였으니 나는 따질 수 없었다. 둘의 슬픔을 너무나 잘 알기에, 따지기는커녕 얌전히 타이치 오빠를 따라 조용히 집으로 향할 뿐이었다.
타케루군, 너를 미워해주길 바란다고? 하지만 타케루군, 나는 너를 절대 미워할 수 없는 걸. 네가 나한테 갑작스럽게 이별을 고하고 떠났었을 때에도, 나는 진심으로 너를 미워하지 못했었으니까. 다시 나를 보러 온, 네가 이유가 있으면 좋겠다고 계속 망설였던 나인데 내가 너를 어떻게 진심으로 미워 할 수 있겠어.
타케루군을 생각하니 눈물이 다시 흘러나왔다. 내가 우는 걸 눈치 챈 타이치 오빠는 걷다 말고 나를 제 품으로 넣어 내게 따스한 공간이 생기게 해주었다. 나는 그렇게 타이치 오빠의 품 안에서 눈물을 토해냈다. 오빠의 품은 예전과 다를 것 하나 없이 따뜻하고, 따스해서. ―내가 울기엔 너무도 적절한 공간이었다.
§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마치 저금통과 같은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이후로 타이치 오빠가 아닌, 타케루군에게 의지하게 되면서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전혀 아니었다. 나는 계속 나 자신을 감추고 있었던 거였다. 하고 싶었던, 속으로 생각하던 말들, 그리고 행동, 모든 걸 통틀어 나 자신을 생각하지 않고 나는 남에게만 맞춰가며 계속 그것들을 쌓아두고 있었던 거였다. 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으려던 눈처럼, 나 역시 내 자신을 숨기고 있었다. 그리고 타케루군이 죽은 순간, 저금통에 채우듯 꾹꾹 눌러왔던 모든 것들이 우수수 쏟아져 버린 거겠지. 마치 저금통이 깨져서 거기 안에 있던 돈들이 쏟아지듯, 그렇게. 나는 그래서 지금 무너지고 만 거야. 지금껏 살아왔던 내 자신이, 내 자신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천천히 무너지고 있는 거야, 나는.
“춥다.”
지금은 너무 추워, 타케루군. 금방이라도 얼어붙어 죽어버릴 것 같이, 그렇게 추워. 나는 이렇게나 괴로운데 타케루군은 거기서 잘 지내고 있는 거야? 속으로 몇 번을 물어본들 대답해 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타케루군에게 들리지 않을 내 진심이 너무도 처량하게 느껴졌다. 나는 그대로 바닥에 쭈그려 앉아 무릎을 모으고, 팔로 휘감은 뒤 그 사이에 머리를 기대듯 대었다. 한참을 그러고 있으니 몸이 추위에 견디지 못하고 덜덜 떨려왔다. 타케루군, 타케루군. 그저 그렇게 쭈그려 앉은 채 나는 눈물만 흘렸다.
“정말, 좋아해.”
“좋아했어, 타케루군.”
내 울음 섞인 고백은 아무도 들어주는 이 없이, 그저 새하얀 눈에 점점 묻혀만 갔다. 나는 지금 네 곁에 있어, 타케루군. 내게 대답해줘, 너도 나를 좋아한다고.
점점 시야가 흐릿해져 희미하게 보이는 아름다운 눈꽃은, 이번에도 정말 쓸데없이 아름답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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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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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업(2015.04.12)
*수정(2015.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