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는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살짝 열린 창문 틈새로 들어오는 바람에 의해 저의 머리가 기분 좋게 간지럽혀지고, 밖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신난 목소리가 제 앞에 적나라하게 행해지는 TV소리―아이들의 목소리와는 전혀 매치가 되지 않았지만―와 섞여 귀를 간지럽혔다. 거기에 내 등을 계속 툭툭 쳐대며 오오, 소리를 남발하고 있는 저의 오랜 친구 타이치까지. 평소 간지럼을 잘 타는 몸 때문인지, 타이치의 손이 닿는 내 모든 신체부위는 타오를 듯 느낌이 이상했다. 왠지 모르게 이런 모든 요소 때문인지 심장이 근질거려 미칠 것만 같았다.
“야, 야마토. 쟤 죽이지 않냐?”
어, 그래………. 떨떠름하게 내뱉는 내 말에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던 타이치는 이내 다시 환호성을 터트리며 TV에 영혼을 팔아먹기라도 하겠다는 듯 시선을 집중했다. 나는 온 몸이 딱딱하게 굳어서는 식은땀만 뻘뻘 흘리며 타이치의 눈치를 살폈다. 평소와 똑같은 일상일 뿐인데, 오늘따라 달랐다.
“야마토 너 오늘따라 이상하다?”
“뭐가.”
“아니 사내새끼가 되가지고 저걸 왜 안 좋아해? 나만 좋아하는 듯.”
이럴 거면 순진한 코시로를 꼬셔서 데려올걸 그랬어. 타이치가 팔짱을 낀 채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저의 고개를 두어 번 끄덕였다. 나는 타이치의 말에 벙 찔 수밖에 없었다. 그래, 맞아.
“…평소와 다른 점.”
“엥? 야마토, 방금 뭐라고 했냐?”
평소와 다른 점은 저 TV속에 펼쳐지는 영상이었다. 남녀의 두 나체가 훤하게 곡선을 이뤄가며 보이는. 타이치의 말대로 남자들이 좋아해서 환장하는 저 영상. ―물론 의외의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난 의외의 경우였나? 아니다. 우리 아버지는 항상 야근을 달고 사셨기에 내가 혼자 집에 있을 때 저 영상과 같은 것들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찾아본 적이 몇 번 있었다. 그 때는 나 역시 타이치와 같은 반응을 보였었는데, 지금은 어째서인지….
“어이, 야마토?”
“……….”
“너 얼굴 토마토 같아. 큭큭…. 아 진짜 웃기다. 사진 찍고 싶어.”
소파에 몸을 부대끼면서 껄껄 제 배를 부여잡으며 세상을 떠날 듯이 웃음을 터트리는 저 타이치가 내 눈에는 섹시하게만 비춰질 뿐이었다. 후, 아 진짜 웃기네. 어느새 타이치가 소파에서 내려와서는 몸을 폴짝폴짝 뛰고 있었다. 더 심하게 웃으면 호흡곤란이 올지 모른다고 스스로 자각 한 것으로 보였다.
폴짝폴짝, 웃음을 진정시키려고 애쓰는 타이치의 얼굴은 터질 듯 새빨갛게 익어있었다. 두근두근. 계속 흘깃흘깃 조금씩 타이치를 훔쳐보던 나는 간질이는 마음을 가까스로 진정시키며 타이치를 대놓고 바라보았다. 그러자 타이치의 볼을 따라, 또 목선을 따라 흐르는 땀이 눈에 띄게 들어왔고, 나는 급히 고개를 돌렸다. 이젠 간지러운 게 아니라, 심장이 터질 것만 같다.
내가 어쩌다 저 바보의 속셈에 넘어와 이 집에서 고생을 하고 있을까.
“어이 야마토―.”
“……….”
“나 배고파.”
저 원수 같은 놈은 지금 답답함이 이미 한참을 뛰어넘은 내 심정을 죽어도 모를 거라고 생각하니 아주 괘씸하다 못해 확 명치를 쥐어박고 싶었다.
“아 가을인데도 덥네. 너무 심하게 웃어서 그런가.”
제발 내 앞에서 네 뽀얀 속살 드러내면서 옷 펄럭이지 말라고, 젠장……….
***
평소대로
―야마타이
written by. 월화비월
***
「야마토. 너 지금 뭐하냐? -타이치」
평화롭던 주말 아침, 나는 핸드폰 알림 소리에 잘 떠지지도 않는 눈을 억지로 떠가며 주섬주섬 핸드폰를 집어 내용을 확인했었다.
‘오늘은 하루 종일 잠만 퍼 자다가 얼마 안 있을 밴드 공연에 대비해서 보컬 연습을 할 생각이었는데….’
대충 자다 일어났다고 답을 보내니, 얼마 안 있어 답장이 연달아 왔다.
「그럼 별 일 없는 거지? 우리 집 와. -타이치」
「오늘 히카리 없거든ㅋㅋ –타이치」
뭐라는 거야, 이 새끼는. 저의 동생이 집에 없는 것과 내가 놀러가는 게 무슨 상관이 있다는 소리지. 나는 타이치의 말의 의도를 도저히 모르겠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 뭐 오늘 딱히 할 일은 없었으니까.
“으….”
찌뿌둥한 몸을 간신히 일으켜 기지개를 폈다. 잠에서 덜 깨 컬컬한 음성을 뱉으며 머리를 긁적이던 나는 그대로 욕실로 향했다.
이때, 이 자식의 의도를 알았다면 내가 지금 고생을 안 하고 있었을 텐데. …아니. 의도를 알았었대도 나는 타이치의 집에 갔을 것이다.
“아직도 드럽게 매운 카레만 해 먹냐, 넌?”
“입 닫고 처먹기나 해.”
의도를 알았어도, 지금 이 두근거렸을 내 마음은 알지 못했을 게 분명하니까.
*
내 특기라고 할 수 있는 카레. 그것도 엄―청 매운. 타이치는 그걸 먹으면서 후하후하, 하고 더운 입김을 뿜어냈다. 야, 억지로 안 먹어도 돼. 이러다가는 정말 큰일이라도 날 것 같아 말리는 나를 타이치는 눈을 가늘게 뜨며 노려봤다. 윽, 그 눈빛에 내가 멈칫하자 타이치가 다시 우걱우걱 입 안 가득 카레를 퍼먹는다.
“이걸 다 못 먹으면 꼭 너한테 지는 것 같단 말이야.”
“허?”
어이가 없어 실소가 터져 나왔다. 고등학생이란 나이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초등학생 때랑 이리 변함이 없을 수가 있는지. 참 신기했다. 여전히 승부욕이 강한 아이였고, 또 여전히 유치한 아이였다, 타이치는.
“타이치.”
“왜?”
“너 그거 다 먹으면, 축구보자.”
저거별로야, 하도 봐서 재미없어. 내 말에 꾸역꾸역 볼이 터질 듯 밥을 삼키던 타이치의 눈이 크게 확장이 돼서는 급하게 컵에 물을 따라 삼키기 시작했다. 밥을 다 삼킨 타이치는 재빠르게 내 손목을 부여잡으며 거실로 끌었다.
“그래! 역시 남자는 축구지!”
여전히, 타이치는 축구 바보였다.
타이치의 손에 억세게 잡힌 손목 부근이 뜨겁다.
*
축구 채널을 찾는 타이치의 두 눈빛이 어느 때보다 더 반짝거렸다. 나는 그런 타이치를 바라보며 혼자 흡족한 웃음을 보였다. 꼭 자리가 정해져 있듯, 언제나 타이치는 소파 위에, 나는 소파에 등을 기댄 채 앉았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좁아터진 소파에서 자리싸움을 하지 않아도 됐다. 또 남자끼리 징그럽게 몸을 부대끼고 앉아있기는 싫다며 타이치나 코시로, 죠처럼 유치한 다툼을 피할 수 있었고. 오늘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까 그 적나라한 영상을 볼 때와 같이 우리는 앉아있었다.
“찾았다!”
어느새 재미있는 축구 영상을 나온 타이치가 신나서는 소리쳤다. 나는 타이치가 내 두 어깨를 흥분해서 두드리며 “야, 야 지금 완전 재밌는 때야!”하고 외칠 때마저도 맘 편히 웃을 수가 없었다. 그저 현재의 내 감정을 숨기기에 바빴다.
반응이 없는 나를 가만히 내려다보던 타이치는 쳇, 하며 내게 말을 거는 것을 포기했다.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기분이 그다지 좋지만은 않았다. 방금도 타이치의 손길에 터져버릴 뻔했던 심장하며, 지금도 쿵쿵쿵 크게 울려서 타이치에게 들리지 않을까 겁나는 내 심장소리와, 핸드폰 화면에 비취는 벌겋게 익은 얼굴까지. 이건, 꼭 마치………. 내가 타이치를 좋아하는 것 같잖아……….
여기까지 생각에 미친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뭐야, 갑자기 왜 저래? 급했나. 라는 등의 타이치의 중얼거림은 내 안중에도 없었다.
화장실 세면대 쪽에 붙어있는 거울을 확인해보니, 헉 소리가 절로 튀어나왔다. 이럴 수가. 평소에 꼭 죽은 시체만큼이나 하얗다 못해 질려있던 내 피부는 완전히 빨갛게 익은 상태였다. 계속해서 더 빠르게 뛰는 이 심장에 숨을 쉬는 것도 어렵다. 모든 게 편치 않았다. 불편하다.
거친 숨소리가 화장실 안을 크게 울렸다. 이대로는 안 되는데, 위험하다.
“어이, 야마토! 곧 골 할 것 같아! 빨리 끊고 나오라고!”
나는 결국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아아. 얼굴을 두 손에 묻은 나는 그대로 한 동안 멈춰있었다.
지금 내 감정을 깨달은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이 상태 그대로 나간다면 억지로라도 저 녀석에게 무슨 짓을 해 버릴 것만 같아 스스로에게 덜컥 겁이 나는 것이 먼저였다.
………….
…………………. 이상하다. 이상하리만큼 밖이 조용했다. 분명 지금쯤이면 “골!!!!”하고 외치고 있어야 할 타이치가 조용했다. 잠이라도 든 건가 싶어서 스스로 자제하자고 생각하며 용기를 낸 내가 조심스럽게 화장실 문을 열었다.
열자마자 보이는 타이치의 무언가에 집중하는 눈빛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눈이 조금은 풀린 것도 같아 보이는 타이치의 표정은 내게 어색하기만 했다. 또, 그 풀린 눈이 이만큼이나 섹시하게 보일 수 있는지 처음 깨닫는 순간이었다. 삐뽀삐뽀. 위험 경보음이 머릿속에서 울렸음에도 나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꿀꺽. 깊게 침을 삼켰는지 타이치의 목젖이 크게 일렁였다. 엄지손가락을 입에 물은 채로 대체 어디에 그렇게 집중하는 건가 싶어 TV가 보일 위치까지 거의 도착한 나는 고개를 살짝 돌렸다.
…대체 저건 뭐지. 축구에 영혼을 팔았다고 말 할 수 있을 정도로 그만큼 축구를 좋아하는 타이치가, 글쎄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그것도 진하게 서로의 입술을 부비고 있는 장면을.
“아, 야마토………. 똥 잘 싸고 왔냐? 하하….”
어색한 공기가 우리 주변을 감돌았다. 나는 그저 눈만 끔벅끔벅 타이치를 가만히 내려다 보다 제 자리에 앉았다. …아까 축구는 끝난 거야? 내 물음에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이던 타이치가 헤벌쭉, 바보 같은 웃음을 지었다. 아니, 그게 말이야, 야마토. 변명을 하려는 타이치의 입이 오밀조밀 멈추지 않고 움직인다.
“아까 그 축구도 드라마 내용 중 일부였나 봐. 골 하려는 순간에 갑자기 이 장면이 나와 가지고….”
“……….”
“절대 내가 다시 그 영상을 튼 게 아니라……….”
아씨 지금 내가 왜 이거가지고 변명을 하고 있는 것 같지. 타이치가 답답함에 머리를 헝클인다. 쿵, 쿵…. 더 이상은 힘들다. 몸이 내 몸 같지가 않다.
“…뭐야. 야마토?”
결코 내 의지가 들어간 행동이 아니었다. 나는 분명히 참고 있었다. 허나 몸이 타이치에게로 끌리듯이 저절로 움직였다. 소파에 등을 기대고 가만히 앉아있던 내 몸을 어느새 뒤를 돌아보고 있었다. 푹신한 소파에 내 두 손을 얹은 채, 고개를 쭉 빼고는 타이치에게로 조금씩, 조금씩, 점점 다가갔다.
‘얘가 갑자기 왜 이러지?’라고 타이치의 얼굴은 그렇게 말해오고 있었다. 평소와는 내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느낀 타이치가 점점 가까워져 오는 나를 제지시키기 위해 내 두 어깨를 부여잡았다. 하지만 부질없는 짓이었다. 당황함에 얼룩진 타이치의 얼굴을 보고도 알 수 있듯이, 타이치는 온전히 제 힘을 다 쓰지 못했다.
“이봐, 야마토….”
“타이치.”
“너무 가깝다고, 어이……….”
내 거친 숨결과 타이치의 당황스러운 숨결이 공중에서 맞닿았다. 두 눈을 이렇게 가까이서 마주본 적이 어릴 때 서로 뒹굴며 싸웠을 때를 제외하고 또 있던가. 나는 계속해서 너와 가까워지는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아까는 내 의지가 깃들지 않았을지 몰라도, 이제는 내 의지였다.
채 1cm도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타이치는 몸을 살짝 떨었다. 너 갑자기 왜 그래. 목소리 역시 떨려왔다. 이 모든 게 내게는 자극적으로만 다가왔다. 아, 이렇게 말하니까 나 꼭 무슨 변태 같잖아.
소파 바닥을 짚고 있던 손은 어느새 벽을 짚어 타이치를 내 품에 가두고 있었고, 타이치는 그곳에서 꼼짝달싹도 못했다. 그야 내가 녀석의 허벅지 위에 앉아 내 무게 때문에 다리도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지만.
“야마―.”
내 이름을 부르려던 놈의 목소리가 끝을 맺기도 전에 먼저 선수를 쳐 마지막 단어일 ‘토’를 내 입안으로 삼켰다. 내 갑작스런 행동에 타이치의 두 눈이 엄청 커다래지다가도 끝없는 행위에 결국 풀려버린다. 아까 드라마를 보면서 집중했을 때 보다 더, 완전히 풀린 눈으로 타이치는 나를 멍하니 바라봤다.
타이치가 숨이 막혀 날 떼어내려고 애를 쓸 때까지도, 나는 입술을 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격하게 맞췄으면 맞추었지, 결코 멈출 생각은 없었다. 잔뜩 흥분한 내게 타이치를 위한 배려는 손톱만큼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내 머릿속은 타이치로 가득했다. 타이치, 타이치―. 너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네게 입을 깊게 맞추고 있음에도 나는 더욱 더 너를 갈망했다.
“다녀왔습니다.”
결국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타이치의 동생인 히카리가 집에 들어 올 때 까지 마저도 내가 멈추지 않자 타이치는 내 혀를 콱 깨물었다. 이에 반사적으로 타이치에게서 멀어지며 나는 입가에 손을 가져갔다. 비릿함이 입 안에 감돈다.
“어? 형이 왜 여기 있어?”
집에 온 게 히카리만이 아니었다. 밖에서 히카리와 우연히 마주친 모양인지, 겸사 겸 내 동생인 타케루가 놀러온 모양이었다. 내가 어색하게 아, 하고 탄식을 내뱉자 타케루와 히카리는 나와 타이치를 서로 번갈아보았다. 무언가 우리 사이에 알 수 없는 공기를 알아챘는지 서로 눈치를 본다.
그야 그럴 것이, 타이치는 입술을 부비며 나를 잔뜩 노려보고 있고, 내 입가에서 뗀 손에는 조금의 혈흔이 묻어 나와 있었으니, 의심하기엔 충분했다.
“혹시 둘이 또 싸운 거야?”
괜히 저의 손을 만지작거리며 조심스레 묻는 히카리에 말에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싸운 건 아니었지만, 상황이 이렇게 된 건 전적으로 내 잘못이 컸으니.
“어, 맞아.”
한동안 집에 무겁게 깔려있던 침묵을 깬 건 의외로 타이치의 목소리였다. 먼저 정적을 깨는 건 타이치일 거라고 예상하지 못 했던 내가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타이치를 빤히 바라다봤다.
“방금 저 망할 야마토가 내가 좋아하는 축구선수 욕을 했어.”
그러자 타이치가 지그시 내 눈을 맞추며 어서 자기의 말에 동조하라는 듯 말해왔다. 이에 멍 때리던 나는 화들짝 몸을 어떻게 제대로 가누지도 못한 채 괜히 오바해가며 외쳤다.
“어, 맞아! 내가 그래가지고 쟤가 내 볼을 주먹 갖다가 쳐서 피가 났어!!”
내 말을 히카리와 타케루는 그다지 신뢰하는 것 같아 보이지 않았지만, 이 상황에서 믿을 건 우리가 싸웠다는 것 밖에 없으니 일단 고개를 끄덕이는 듯 보였다.
“오늘 타이치상 얼굴도 볼 겸 온 거였는데, 상황이 좋지 않네. 그냥 가봐야겠다.”
“그러게. 미안해, 타케루군.”
“아냐, 히카리짱은 아무 잘못도 없는 걸.”
형, 우리 오랜만에 봤는데 같이 가자. 타케루가 미소를 지으며 손짓했고, 나는 “어어, 그래―.”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타케루의 손에 이끌려 나갈 수밖에 없었다. 타이치가 그 뒤로 나와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고, 애꿎은 제 입술을 꾹 물은 채로 입을 다물었으니. 죄 지은 내가 더 이상 이 집에서 나가지 않을 수 있었을 리가 없었다.
그렇게 상황은 흐지부지, 마무리도 짓지 못하고 끝났다.
「오늘 있었던 일 없던 셈 쳐줄 테니까, 이에 대해서 아무런 말도 안 했으면 좋겠어. -타이치」
「야마토 네가 거기에 대해 어떤 말을 한다면, 더 이상 네 얼굴을 볼 자신이 솔직히 없다. -타이치」
더욱이 타이치의 문자로, 나는 이에 대해 그 어떠한 언급조차도 하지 못했다. …비록 내 가슴에 비수가 꽂히는 기분이었지만. 일단은 놈의 얼굴을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더 슬픈 일이었으니까.
*
“아 야마토 망할! 그거 내가 숨겨 놓은 빵이었단 말이야!”
“…그랬나? 미안.”
“뱉어, 뱉으라고! 당장 토해내, 이 멍청아!”
“뭐? 이 바보 같은 게…!”
“아 둘 다 그만 좀 싸우세요! 시끄럽다고요!”
우리는 어느 때처럼 유치하게 싸웠다. 오늘은 학교 컴퓨터실에 있는 서랍에 있는 빵을 내가 주인이 잊고 간 지 알고 아무렇지 않게 먹은 일 때문이었다. 내가 맛있게 빵을 먹고 있는 모습을 보고 타이치가 갑자기 버럭 화를 내는 게 아닌가. 여기에 나도 발끈해서는 서로 버럭 소리를 지르고 있는데, 참다못한 코시로가 작업하던 것을 멈추고 소리쳤다. 그것도 책상을 쾅, 소리 나게 내려치면서.
“야, 코시로. 너 요즘 막나간다?”
“진짜 제가 막나가기 전에 그만 두시죠.”
타이치의 장난기 잔뜩 묻은 목소리에 코시로가 예민하게 받아치자, 타이치가 저의 심장을 부여잡으며 “헐 상처.”하고 중얼거렸다. 진짜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 소라가 어지럽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헹! 그래도 오늘은 저 망할 야마토가 잘못한 일이었다, 뭐!”
“아오 씨, 그깟 빵 내가 다시 사오면 될 거 아니야!”
얄밉게 내민 주둥이를 진짜 주먹으로 퍽 쳐버리고만 싶다. 우리는 그 후로 이랬다. 내가 타이치에게 돌발적인 행동을 한 지 일주일 후, 우리는 평소와 변함없이 지내고 있었다. 자주 싸우던 이유가 유치해졌으면 더 유치해졌지, 어색한 공기 따위는 감돌지 않았다.
솔직히 조금이라도 어색할지 알았는데, 타이치는 그 일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생각하니 뭔가, 다행스러우면서도 씁쓸해졌다.
내 마음이 변했느냐고 묻는다면 전혀 그렇지 않다. 나는 여전히 저 원수, 바보 같은 타이치가 좋았다. 하지만 나는 내 감정에 솔직해지면 안됐다.
“소라, 야마토 좀 때려줘.”
“내가 미쳤니? 제발 너희의 유치한 싸움에 날 끼어들게 하지 마.”
꼭 타이치의 그 문자 때문은 아니었다. 그냥 뭐, …여러 가지 의미로.
아슬아슬하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의 타이치와의 관계는. 그쪽에서는 몰라도, 일단은 내 쪽에서. 다시 한 번 이 감정이 터져서 폭발해버린다면, 내가 다시 타이치에게 억지로 행한다면, 우리의 관계는 더 이상 친구로 남아있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아슬아슬하다.
이 아슬아슬함은, 내가 감정은 언제까지 숨기고 참느냐에 따라 달려있겠지.
내 착잡한 기분과는 다르게 오늘의 날씨는 맑기도 엄청 맑았다. 구름 한 점 안 보이는 푸른 날씨라니.
“아, 소라! 너와 나의 우정이 겨우 이것밖에 안 되는 거야?”
“얘가 오늘따라 왜이래!”
…정말 최악이다.
「Fin.」
*모든 글의 저작권은 월화비월(@Moon_m0406)에게 있습니다.
*재업(2015.11.12)
*수정(2015.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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