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Q/조각조각

 

 

BGM : 우드캔들(Woodcandle) - Lucerne In The Spring

 

 

 

[카게히나] 봄이었어.

 

 

 

written by. 월화비월

 

 

 

 

*

 

 

 

 

봄이었어.

 

 

어릴 적부터 내가 원하던 이곳에 드디어 왔어. 그날, 아무 이유 없이 자전거를 타고 가다 무심코 멈춘 곳에서는 작은 거인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하늘로 날아오르고 있었지. 그리고 연이어 들려오는 사람들의 환호성. 처음 느껴보는 짜릿한 감정이었어. 그 장면을 가슴속 깊이 새긴 나는, 배구를 하고 싶다는 꿈을 조금씩 키워나갔고, 드디어 여기에 오게 된 거야.

 

여기까지 오는 데만 해도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 심지어 중간에는 재수 없는 녀석까지 만나고. 나중에 적으로 만난다면, 꼭 이겨주겠노라 다짐했어. 동시에 그 녀석은 내 목표가 되기도 했지. 그런데.

 

―――그 녀석이 왜 이곳에 있는 건지. 정말 재수 없는 일이지 않아?

 

 

낯선 체육관의 공기와 그녀석의 눈빛은 나를 얼어붙게 만들었어. 몸은 떨리는데 신기하게도 내 심장은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두근두근 뛰어대기 시작하는 거야.

 

참 이상한 일이지. 나중에 시합이 끝나고 그 녀석이 수고했다는 듯 짓는 웃음에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어.

 

 

이젠 같은 코트 위에 서있는 녀석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해. 녀석의 검은 머리가 부드러운 바람에 살랑, 흔들렸어.

 

 

 

……그건 바로 봄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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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Q/조각조각

*이 글은 총 공백 포함 3298자, 공백 미포함 2243자 입니다.

 

 

 

 

BGM : Haikyuu!! OST - Accustomed Strength

 

 

 

 

 

그의 말에 소년은 무너져 내렸다.

 

 

 

written by. 월화비월

 

 

 

 

*

 

 

 

 

 소년은 스스로를 자책했다. 그와 함께할 수 있는 마지막 경기였다. 그런 소중한 기회를, 평소와 다르게 다급하게 행동했던 제 실수로 잃고야 말았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토스를 높이 보냈다면 그는 언제나 그랬듯이 좋은 코스로 점수를 얻었을 텐데. 다시 한 번 더 이 코트에 설 수 있었을 거라고, 소년은 그리 생각하며 애꿎은 배구공을 금방이라도 터트릴 듯 세게 쥐었다.

 

 배구할 때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빛나는 그였다. 소년은 그런 그를 사실은 동경하고 있었다. 그가 저의 토스가 가장 좋다는 듯 눈을 반짝이며 힘 있게 배구공을 칠 때면, 승리는 우리의 것이었다. 모든 일에 무감각하던 소년이 그 순간만은 두 주먹을 꽉 쥐고 그와, 동료들과 함께 환호했다.

 

 그가 소년을 믿는 만큼 소년 역시 그를 믿었다. 그리고 동경했다. 승리를 가져다주는 그 강함을, 안정을 느끼게 해주는 환한 그 웃음을, 우리들을 향한 신뢰를 보여주는 듯 절대 뒤를 돌아보지 않던 그 등을.

 

 아무리 참아보려 애를 써도 저도 모르게 나오는 눈물이 자꾸 시야를 가렸다. 눈물로 얼룩져버린 흐린 눈앞에 보이는 것은 그의 널찍한 등. 어느 때와 같은 믿음직스러운 등이었지만, 뭔가 달랐다. 그의 두 어깨는 축 처져있었다. 미세하게 들썩거리는 움직임 또한, 그도 저처럼 울고 있을 게 분명하다고 소년이 생각하며 입술을 꾹 물었다. 이로 짓눌러진 입술에서 방울방울 피가 새나온다. 비릿한 피 맛을 느끼며 소년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다 제 잘못입니다, 죄송합니다 보쿠토상. 울음으로 꽉 막힌 소년이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코트 반대편에서는 승리의 기쁨으로 환호성을 내뱉고 있었다. 그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듯했다. 아마, 제 사과는 들리지 않았을 테지.

 

 스르륵 풀린 손에서 배구공이 처참히 바닥으로 떨어졌다. , 통 몇 번 뛰어오르던 배구공은 데구루루 굴러가다 어느 지점에서 멈춰 선다. 소년은 허망한 눈으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손을 쳐다봤다.

 

 패배의 앞엔, 정말 아무것도 없구나. 쓸쓸한 미소가 걸쳐지던 그때였다.

 

 

 아카아시. 그가 동료들의 울음소리로 가득한 이곳에서 나지막이 소년의 이름을 불렀고, 소년은 반사적으로 떨구고 있던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봤다.

 

 분명히 저보다 큰 눈물을 쏟아내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그는 기분 좋은 스파이크를 때렸을 때처럼 개구진 웃음을 짓고 있었다. 아니, 조금은 더 산뜻한 미소에 소년의 엉망이었던 마음이 한층 누그러트려지는 것 같았달까.

 

 그가 숨을 한껏 들이마셨다. 그리고 이 크고 넓은 경기장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만큼의 목소리로 그가 외쳤다.

 

 

 헤이헤이헤이! 아카아시―――! 그리고 모두들! 지금까지 고마웠다!!!!

 

 

 기지개를 펴듯 주먹을 쥔 채 두 팔을 하늘 높이 쭉 들어 올리는 그의 모습에 경기장이 한순간 조용해졌다. 그러나 그런 침묵도 잠시, 경기를 관람했던 누군가가 자리에 벌떡 일어나서 손뼉을 치기 시작함으로써 순식간에 경기장의 분위기가 바뀌어버렸다.

 

 후쿠로다니, 너희의 싸움은 정말로 대단했다고. 절대로 잊지 못할 경기였다고. 우리를 끝까지 기억할 거라는 응원의 환호성이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심지어 반대편 코트에 있던, 우리의 승리를 앗아간 녀석들 마저 진지한 태도로 우리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어이, 아카아시! 네 마지막 토스 최고였다고!

  

 

 거짓말.

 

 

 이것 참, 나도 모르게 흥분해서 좋은 코스를 노리지 못했다니까.

 

 

 이것도 거짓말.

 

 

 미안하다, 모두들. 그래도 즐거웠지? 자자, 다들 피곤할 테니 어서 들어가 쉬자고!

 

 

 전부 다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이었다. 누구보다 소년을 믿었던 만큼 그는 소년을 원망하고 있어야 했다.

 

마지막 토스가 좋았긴 개뿔, 이미 스스로 잘 느끼고 있던 최악의 실수였는데.

 

 화가 났다. 분노가 치밀어 올라와 이성을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소년의 머릿속에서 차마 생각이 다 정리되기도 전에 몸이 먼저 움직였다.

 

 기어코 소년이 이를 아드득, 갈며 바보 같은 웃음을 유지한 채 박수를 보내는 관중들에게 손 인사를 하고 있던 그의 멱살을 붙잡았다. 경기장이 술렁인다.

 

 

 아카아시! 모두가 놀란 얼굴로 소년을 쳐다봤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감히 그들 쪽으로 함부로 다가가지 못했다.

 

 

 왜, 왜 화를 안 내는 겁니까! 누가 봐도 그건 내 실수였는데!

 

 …….

 

 차라리 화를 내세요. 평소처럼, 울란 말입니다!

 

 

 저를 똑바로 바라보는 소년의 눈을 그는 피하지 않았다. 소년의 눈동자가 애처롭게 떨리고 있었다.

 

 

 저는, 보쿠토상과 함께 하는 마지막 무대를 망쳐버렸다고요.... 구슬픈 음성을 흘리며 소년이 조금씩 흐느꼈다. 이런 모습은 정말이지 처음이었다. 그가 흐음, 신음하며 제 뒷머리를 긁적이다가 소년의 머리 위로 저의 큰손을 가져다 놓았다.

 

 

 그동안 내 기분 맞춰주느라 수고 많았다, 아카아시.

 

 

 그의 진심 어린 말에 소년의 몸이 굳는 게 느껴졌다. 부들부들 떨리는 소년의 몸은 금방이라도 분노를 표출할 것만 같았다. 그가 그것을 눈치채고는 이크, 식은땀을 흘리다가도 씨익 말간 미소를 지으며 이어 말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수고해라!

 

 …?

 

 기다리고 있을게. 아카아시, 너와 함께 하는 배구는 이게 끝이 아닐 테니까!

 

 

 아아, 그런 거였나. 소년이 그의 말을 깨달았다는 듯 픽, 웃어 보이고는 고개를 아래로 떨군 채 중얼거렸다. 이런 건 너무하다고요, 보쿠토상.

 

 그의 기다리고 있겠다.’라는 말의 뜻을 이해한 소년은 처참히 무너져 내렸다. 간신히 감정을 억누르고 있던 행동은 소용없었다는 것 마냥 울음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내렸다.

 

 그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엉엉 우는소리까지 내는 소년을 그는 그저 가만히 그의 두 어깨를 감싸 안을 뿐이었다.

 

 그와 함께 코트에 서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 아니었다. 소년은 다시 한 번 그를 가슴에 담았다. 앞으로도 쭉, 그는 저가 가장 동경하는 사람일 것이랴.

 

 

 그의 다정한 온기로 뭉친 강함은, 소년을 무너트렸다.

 

 

 

 

 

*이 글은 트위터 '솔(@__noah97)' 님의 아카아시 그림의 "...다 제 잘못입니다, 죄송합니다 보쿠토상." 대사를 보고 쓰여졌습니다.

*모든 글의 저작권은 월화비월(@Moon_m0406)에게 있습니다.

*수정_2017.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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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gimon

*알티 추첨하여 받은 디지몬 장르 한정 2000자 내외 글 리퀘이며, 커플링은 코시미미 입니다.

*공백포함 3845자, 공백제외 2750자 입니다.

 

 

 

BGM : Ouran High School Host Club_Sakura Kiss for Piano

 

 

 

 

 

 

 

눈부시다

 

 

 

코시미미

 

  written by. 월화비월

 

 

 

 

 

***

 

 

 

 

 

나는 중요한 작업을 할 때엔 어둡고 조용한 곳에서 하는 걸 선호하는 편이었다. 빛이 잘 들어오지 않도록 커튼으로 창을 잘 가린 컴퓨터실은 어느 잡음 하나 없었다. 오로지 내가 타닥타닥, 두드리는 키보드 자판 소리뿐이었기에 내가 작업에 집중하는 것을 도왔다.

 

그러나 이토록이나 깜깜한 곳에서 밝은 화면을 바라보는 데에는 그만한 대가가 있었다. 아무래도 어두운 곳에서 오랜 시간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는 것은 눈에 무리가 가지 않을 수가 없다.

 

작업에 집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한 이때쯤이면 누군가가 눈을 콕콕 찌르는 것만 같은 좋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이 통증은 몇 번을 겪어도 통 적응이 되지를 않는다. 나는 작업을 하던 것을 잠시 멈추고 두 손을 눈에 가져다 대었다. 손의 찬 느낌이 눈을 진정을 돕는다.

 

그렇게 내가 작업을 멈추고 조금의 휴식을 취할 때면, 그래. 언제나 같은 패턴이었다.

 

 

 

코시로군! 나 왔어!!”

 

 

 

그녀가 빛이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컴퓨터실 문을 활짝 열고 들어오는 것은. 그러면 그녀는 때마침 지는 석양을 등에 업고서 내 이름을 다시 불렀다. 코시로군, 하고.

 

그럴 때면 나는 갑작스레 들어오는 빛에 눈을 찡그렸지만, 그게 또 싫은 건 아니어서 어떻게든 눈을 부릅뜨고 그녀를 바라봤다. 석양 탓인지, 원래 그녀 자체가 빛나는 건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내 눈은 어둠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녀는 언제나 빛을 가지고 들어왔다.

 

 

눈이 부시다.

 

 

 

 

 

*

 

 

 

 

 

있지, 오늘은 말이야.

 

자연스럽게 내 옆에 자리를 잡고 앉은 그녀는 오늘 하루 동안에 있었던 일을 얘기하곤 했다. 그건 오늘도 마찬가지여서, 나는 가만히 그녀의 말을 듣고 있었다. 오물오물거리는 입이 귀엽다.

 

예쁘다. 약간 분홍빛을 담은 저 입술은 갓 핀 벚꽃이 생각이 났다.

 

 

 

. 코시로군 괜찮아? 갑자기 얼굴이.”

 

, 괜찮아요. 그러니까 손대지 말아주세요.”

 

……. ……그래……….”

 

 

 

순간적으로 화악 달아오른 얼굴이 창피해 한 손으로 가리곤 그녀의 손길을 거절했다. 왜인지 상처받은 얼굴.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녀를 상처 입게 만들어 버렸어.

 

내 행동 때문인지 순식간에 풀이 죽어선 말이 사라진 그녀에 정적이 찾아왔다. 내 눈치를 보며 어쩔지를 모르는 그녀가 마치 새끼 강아지 같다고 생각했다. 꼭 주인이 혼내서 풀이 죽어있는 강아지 같아. 이래서 애완견을 키우는 사람들은 개들이 잘못을 해도 혼을 내지 못하는 걸까. 너무 귀여워서. 그들의 마음을 알 것 같다.

 

물론, 지금 그녀가 잘못한 건 없다. 혼을 낸 것도 아니고. 그저 단순히 순간적으로 든 내 불순한 마음 때문이었으니. 나는 낯선 침묵이 어색해 괜히 귀를 만지작거렸다.

 

 

그래. 항상 먼저 다가와 준 건 그녀였으니, 이번엔 내가 말을 걸어보자.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너무해, 코시로군!”

 

?”

 

난 코시로군이 아픈 건 아닌지 걱정이 돼서 그런 건데, 왜 이리 냉정해?”

 

잠깐만요, 미미상.”

 

 

 

그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내게 소리쳤다. 내게 불만을 토로하던 그녀가 이내 조용히 고개를 숙인다. 그리고 바닥으로 차갑게 떨어지는 눈물.

 

쿠웅. 마치 심장이 딱딱한 콘크리트 바닥에 곤두박질치는 기분이었다.

 

 

 

알아, 코시로군이 나 안 좋아하는 거. 귀찮아하는 것도 알아.”

 

 

 

눈물을 뚝뚝 흘리는 그녀의 목소리는 낮게 잠겨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입에서 내뱉어지는 말들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생전 처음 듣는 소리였다.

 

난 그녀를 귀찮아한 적이 맹세코 단 한 번도 없다. 좋아하지 않은 적도, 없는데.

 

그녀의 반짝이는 두 눈과 마주할 때마다 간질이는 심장을 눈치챘을 땐, 이미 난 내게 빛을 가져다준 그녀를 좋아한 지 오래였는데.

 

 

 

하지만 그래도 어떡해! 난 그런 코시로군도 좋아한단 말이야!”

 

 

 

무심하게 저를 챙겨주는 나한테, 내 겉모습뿐만 아니라 내면을 바라봐 주는 나에게 반해버렸다고.

 

그녀가 고개를 들고 나를 똑바로 바라본 채 외친 말이었다. 뒤통수를 거세게 얻어맞는 느낌이 들었다. 정신이 확 깨어버리는 기분이다.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벙 쪄버린 나를 한참을 노려보던 그녀는 씩씩 거리는 채로 뒤돌았다.

 

기다려요, 미미상! 일단은 그녀를 잡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던 것 같다.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쫓았다. 그녀의 가녀린 손목을 잡았다. 그녀의 걸음이 멈춘다.

 

너무 급해서 꽤 세게 잡고 말았는데, 아픈 건 아니겠지…….

 

 

 

.”

 

 

 

그녀가 퉁명스러운 어투로 말했다. 그러고 보니 무작정 붙잡긴 했는데, 그 뒤에 어떻게 행동할지를 정하지 않았다. . 어떡하지.

 

여전히 나를 돌아보지 않는 그녀가 화가 나 있는 건 아닐까 걱정이 들었다.

 

 

 

……. 그게, 그러니까 말이죠.”

 

뭐야, 할 말도 없으면서 붙잡은 거야?”

 

 

 

조금은 기대했는데……. 쓸쓸하게 중얼거리는 그녀의 목소리에 다시 한 번 심장이 가라앉음을 느꼈다. 그래서인지 나도 모르게, 단지 정말 충동적으로 그녀의 등을 끌어안았다.

 

그녀의 손목만큼이나 가녀린 어깨는 내 품 안으로 쏙 들어왔다. 코에 닿는 그녀의 머리카락이 간지러웠다.

 

당황한 그녀의 몸이 뻣뻣하게 굳는 게 느껴진다. 뭔가 이게 너무 재미있어서, 나는 그녀의 뒷덜미에 고개를 묻었다.

 

 

 

, 잠깐만. 코시로군? ? 이거, 뭐하는 행동?”

 

……….”

 

저기, 코시로군? 나 이러면 진짜 기대하게 되는데?”

 

기대해도 돼요.”

 

 

 

잔뜩 떨리는 목소리로 저를 끌어안은 내 팔에 손을 가져다 대는 그녀에 머리가 새하얘지는 것 같았다. 그녀의 손길이 닿은 곳이 불타오른다. 이렇게나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에 설레는 나인데.

 

나는 결국 기대하게 되어버린다.’라는 그녀의 말에 울컥해서는 기대해도 좋다는 말을 뱉어버렸다.

 

 

 

미미상.”

 

 

 

나지막이 그녀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그녀가 움찔한다.

 

사실은 많이 놀랐었다. 그녀가 나를 좋아하고 있다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단지 어릴 적 함께 험난한 모험을 했던 동료. 딱 그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을 줄 알았다. 그래서 보통 혼자 있는 편이 많은 내가 안쓰러워서, 친구로서 신경을 써주고 있는 것뿐이라고.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심지어 매일같이 나보다 훨씬 키도 크고 잘생긴 애들에게 고백을 받는 그녀였기에 나는 조금도 눈에 차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었으니까, 이 마음을 꼭꼭 숨겨놓고 있었는데.

 

그녀가 날 좋아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으니 이제 더는 숨길 것도, 망설일 것도 없었다.

 

 

 

좋아해요.”

 

……….”

 

이미 오래전부터, 난 미미상을 좋아하고 있었습니다.”

 

 

 

내 진심을 담아 고백했다. 그녀가 뒤를 돌아서고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 얼굴은 무지 빨갛게 타올라서, 우스꽝스러울 게 분명하다.

 

. 그녀가 제 어깨를 감싸 안고 있던 내 두 팔을 풀고 내게서 떨어졌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느껴졌던 그녀의 체온이 사라지자 공허함이 들었다. 그녀가 천천히 나를 돌아본다.

 

나와 마주한 그녀는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내가 한 고백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까, 순간적으로 덜컥 겁이 들어 주춤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그녀는 내가 더 이상 뒤로 도망치지 못하도록 내 두 손을 꼭 맞잡아왔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그리고 꽃이 만개하듯 활짝 웃어 보이고 있었다.

 

비가 개고 난 새벽의 꽃 같다. 밤새 잔뜩 이슬을 머금은 꽃에 새벽의 햇살이 비치며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오로지 나만을 바라보며 행복하게 미소 짓고 있는 그녀는 그 어떤 순간보다 아름다웠다.

 

 

눈부시다. 그녀가 다시 한 번 내게 빛을 가지고 왔다.

 

 

 

 

 

 

*모든 글의 저작권은 월화비월(@Moon_m0406)에게 있습니다.

*수정_2017.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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