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ruto

*트위터에서 푼 썰을 기반으로 쓴 글입니다.

 

*수위가 다소 많이 포함되어 있으니 가능한 만 18세 이하인 분들은 글을 보는 것을 지양하시길 부탁드립니다.

 

 

 

 

 

 

 

 

 

 

 

 

카카나루

 

 

 

writter by. 월화비월

 

 

 

*

 

 

 

선생님? 여긴, 콜록, 어쩐, 일이냐니깐요?

 

 

무더위가 한창인 날이었다. 몸을 가만히 내버려 둬도 더워 땀이 주르륵 나는데,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방금 샤워를 한 것 마냥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됐다. 이것이 복면을 쓴 은발의 사내를 맞이하는 금발의 소년이 개도 안 걸린다는 그 여름 감기에 걸린 원인이었다.

 

 

소년은 최근 밤마다 선풍기를 가장 세게 틀고 잠에 들었다. 이 무더위에 소년이 한 행동은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소년이 얇은 이불이라도 덮고 자긴 커녕, 스스로 이불을 발로 뻥 차 던져버리고는 시원하게 배를 깐 채 잠을 잤다는 거였다.

 

바보는 감기도 안 걸린 다더니.’ 저번 여름 때 감기에 걸렸던 제 친우를 실컷 놀린 소년이 들은 말이었다. 소년은 그 당시 불같이 화를 내며 바보라서가 아니라 건강해서라니깐! 사스케, 네가 몸이 약한 거라구!’ 하고 덤벼들었던 자신이 후회스러웠다. 지금, 그 여름감기를 저가 걸리고 말았으니……. 견디기 힘든 더위에 방심한 결과였다.

 

그놈 생각을 하니 안 그래도 열 때문에 지끈거리는 머리가 더 아파지는 것 같았다. 아마도 그놈은 감기 걸린 저를 보고 입가에 비웃음을 머금고서 한심하다는 듯 그 짜증 나는 표정을 지을 것이다. 순간 그것을 상상한 소년이 끔찍하다는 듯 발버둥을 쳤다.

 

……그나저나, 덥다. 분명 더워 죽겠는데, 또 몸이 달달 떨리면서 추위가 느껴진다. 이게 무슨 경우인가. 다시는 경험하기 싫은 이중성에 소년이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그렇게 소년은 오늘 갔어야 할 임무를 취소하고 이불을 뒤집어쓴 채 모처럼의 휴일을 보내고 있었다. 그래. 이렇게 나름 감기에 걸린 것도 괜찮다 생각하며 평화를 즐기던 중에, 그가 온 거였다.

 

 

몸은 좀 괜찮니, 나루토?

 

 

덥지도 않은지 복면으로 얼굴의 반을 가린 그 사내가. 생각지도 못한 사내의 방문에 소년의 얼굴엔 당혹함이 서렸다. 심지어는 말까지 살짝 더듬은 채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깜박깜박, 감았다 뜨기를 반복했다.

 

 

, 선생님은 지금 호카게 집무실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니깐요?!!

 

그게……. 아무래도 걱정이 돼서 말이야. 잠깐 들렸지.

 

 

소년의 말에 사내가 곤란하다는 듯 뜸을 들이더니, 이내 한 손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아무리 잠깐 들렸다 하더라도, 호카게의 일을 하다가 때려치우고 왔다는 뜻이었다. 마을을 대표하는 사람이 이래도 되나, 순간적으로 어이가 없었지만 저가 걱정이 됐다는 말에 소년의 얼굴이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발갛게 물들었다.

 

 

 

잠깐, 나루토. 너 갑자기 열이 더 오른 것 같은데...

 

, 우아아악―――!!!!! , 괜찮, 괜찮다니깐요! 어서 들어와서 컵라면이라도 먹고 가라니깐!

 

 

 

사내가 순식간에 얼굴 전체가 발갛게 된 소년의 상태에 놀라며 이마에 제 손을 갖다 대었다. 그러지 않아도 쿵쾅대는 심장에 힘든데 사내의 손이 닿자 소년은 화들짝 놀라며 세상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뒷걸음질 쳤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비명은 덤이었다.

 

흐음. 사내가 뭔가 짐작 간다는 듯 신음했다. , 역시 귀엽네. 사내가 남 몰래 살짝 웃음을 터트리고는, 이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소년을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끼이익, 방문이 닫히는 순간에 마지막으로 보인 사내의 뒷모습이 어째선지 들떠 보인다.

 

 

 

 

 

 

 

 

덥다. 덥다. 덥다. 덥다. 덥다. 덥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뜨거웠다. 저를 바라보는 사내의 저 눈빛이. 소년은 쉬지 않고 전력질주를 하는 제 심장을 진정시키려 애썼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계속해서 저에게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는 사내와의 거리에 소년은 그저 손가락과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눈치를 봤다.

 

이제는 아예 제 옆에 철썩 달라붙은 사내였다. 소년은 괴로웠다. 너무 행복한데, 그만큼 심장이 고통 받고 있었으며 머리가 어질어질해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런 소년을 뜨거운 눈빛과 함께 걱정스럽다는 듯 애틋한 눈길로 바라보며 사내가 손을 뻗어 소년의 볼을 쓰다듬었다.

 

사내가 다른 손으로 복면을 내리며 저에게 다가온다. 자칫 조금만 움직여도 입술이 닿을 것만 같은 거리에 시간이 정지된 것처럼 소년의 움직임이 멈췄다. 숨도 함부로 쉴 수 없었다. 사내의 눈을 마주하던 소년은 견딜 수 없다는 듯 눈을 질끈 감으며 침을 꿀꺽 삼켰다.

 

둘은 서로의 향기에 취하고 있었다. 이 무더운 날씨보다 더한 뜨거움을 두 사람은 느꼈다.

 

소년의 이마에서부터 땀 한줄기가 주르륵 흐르더니 곧 소년의 뺨을 만지던 사내의 손에 닿는다. 촉촉한 느낌에 그곳에 잠시 시선을 둔 사내가 다시 소년만을 제 눈에 담았다. 사내는 조심스럽게 소년의 뒷덜미에 손을 가져다 놓더니, 순식간에 소년의 입술을 덮쳤다.

 

깜짝 놀란 소년이 사내의 가슴팍을 두드리며 몸을 뒤로 빼내려 했다. 허나 사내가 소년의 뒷덜미를 감싸 잡은 건 이렇게 소년이 빠져나가려 할 것을 대비한 행동이었기에, 소년은 조금도 사내의 품에서 빠져나가지 못했다. 오히려 발버둥을 칠수록 제 뒷덜미를 감싸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가 사내의 품 속에 더 깊숙이 파고들어져 갈 뿐이었다.

 

사내는 소년의 뒷덜미를 받치지 않은 다른 팔을 이용해 소년을 제 품에 꽉 껴안고서 키스를 이어갔다. 먼저 소년의 치열과 잇몸을 곧게 핥은 사내는 잠시 쉬지도 않고 혀를 빨아들였다. 한참을 그러다 숨을 쉬기 위해 살짝 입술을 떼어내다가도 다시 소년의 입술을 먹은 사내는 입맞춤을 한동안 멈추지 않았다. 꼭 소년이 지금 쥐고 있는 이성의 끈을 끊어버리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곧, 사내는 그것을 이루어냈다. 소년이 저의 목을 감싸 안는다.

 

사내가 만족했다는 듯 씩 웃으며 소년에게서 입술을 떼어냈다. 긴 시간 동안 입을 맞춰왔음을 알려주듯 투명한 실이 곡선을 그리며 두 사람의 입과 입을 연결하다 툭, 떨어진다.

 

하아, ……. 소년이 꽤나 거칠게 호흡하며 사내를 지그시 쳐다본다. 자세히 보니 이미 땀으로 범벅이 된 소년에 사내가 아차, 하며 한숨을 쉬었다. 이대로 땀이 식으면 소년의 감기는 더 심해질 터였다. 하지만 이대로 소년을 씻기도 잠에 들게 하기엔 저의 욕망은 이젠 멈출 수 없는 지경에 다다랐다. 잠시 고민하던 사내는 곧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능글맞게 웃으며 소년의 두 볼을 어루만졌다.

 

 

 

덥지, 나루토.

 

콜록, 하아.

 

물속에 들어가지 않을래?

 

 

 

………물론, 같이. 사내의 낮은 음성이 소년을 유혹하듯 귓가를 간지럽혔다. 이미 정신이 몽롱해져 사태를 파악하기 힘든 소년은 고개를 쉽게 끄덕였다. 소년의 응답에 사내가 다시 입을 깊숙이 맞춰가며 가볍게 소년을 안아들었다.

 

 

 

 

 

 

 

 

 

하읏.

 

 

 

첨벙거리는 물소리와 함께 소년의 가느다란 신음이 터져 나왔다. 미적지근한 물이 담긴 욕조에 실 오가리 하나 걸치지 않고 서로 딱 붙어 앉아있는 것은 두 사람에게 더 큰 욕망을 불러일으킬 자극이 되기에 충분했다.

 

소년을 제게 완전히 기대게 하여 앉힌 사내는 한치의 틈도 주지 않고 계속해서 소년의 몸 이곳저곳을 탐했다. 가장 가까이 닿아있는 소년의 목덜미를 살짝 깨문 채, 한 손으로는 소년의 허벅지를, 다른 한 손으로는 소년의 가슴을 어루만졌다.

 

 

 

, 생님, , 잠깐………!

 

 

 

급기야 사내의 손이 소년의 사타구니 근처로 향하자, 소년이 다급하게 사내의 팔을 잡으며 소리쳤다. 그러나 사내는 소년의 두 팔을 한 손으로 쉽게 제압하고는 소년의 성기 주위를 자극하며 애를 태웠다. 부끄럽지만 차라리 그것을 잡고 흔들어주기를 원한다고, 소년이 얼굴을 잔뜩 붉히며 생각했다.

 

 

 

선생님, 제발, 흐윽, 카카시 선생, ……. .

 

 

 

소년이 애원하며 신음했으나, 사내는 원하는 대로 해 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저 계속 소년을 애태웠다. 잠시 그것을 툭, 건드리다가도 소년의 사타구니를 원 그리듯이 쓰다듬었으며, 소년이 버티지 못하는 것 같아 보일 때쯤이면 키스를 해 다시 정신을 못 차리도록 유도했다.

 

이제는 아예 소년이 눈물을 글썽이며 사내의 몸에 기댄 채 몸을 축 늘어트렸다. 물의 차가움 사이로 뜨거운 무엇인가가 움찔, 움찔, 하고 제 허리에 닿고 있었다. 잠시 입맛을 다신 사내가 입을 열었다.

 

 

 

나루토.

 

선생님, , 기분이 이상하다니깐요……. , 어서, 아흑, 미치겠다구요…….

 

네가, 원한 거야.

 

 

 

내가 원한 게 아니라, 네가. 사내의 말 뜻을 이해하지 못한 소년이 고개를 갸웃할 즈음, 갑작스러운 사내의 행동에 소년은 헉 소리도 내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사내가 소년의 그것을 움켜쥐고는 거세게 위아래로 흔들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연이어 한 손으로 간단히 소년의 허리를 살짝 들어버리고는, 소년의 아래에 나있는 작고 연약한 구멍에 자신의 크게 부푼 그것을 맞췄다.

 

사내는 천천히 소년의 그곳에 제 것을 끼워 맞춰 넣고 있는 와중에도 소년의 그것을 쓰다듬는 것을 잊지 않았다. 역시, 사내가 생각한 대로 소년은 몰아치는 황홀감에 제 아래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눈치채지 못했다. 이내 사내의 것이 소년과 완전히 합쳐진 순간 사내의 손놀림은 빨라졌고, 소년은 크게 신음하며 앞으로 추욱 쓰러졌다.

 

소년이 제 아래에서 느껴지는 이물감을 알아챈 건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참고 참던 제 것이 자유로움을 되찾은 시원함을 느낀 후였다. 곧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소년이 사내의 허벅지를 꽉 움켜지며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사내가 소년의 허리를 딱 붙잡고 있는 탓에 소년이 다시 철퍼덕 주저앉았다. 곧바로 철퍽 하는 물소리와 동시에 제 그곳으로 들어오는 찬물의 느낌에 소년은 저의 정신이 떠나려는 걸 간신히 붙잡았다. 사내의 허벅지를 잡고 있던 소년의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간다.

 

 

 

………? 잠깐, 잠깐만요, 선생님 지금 뭐하는 거라니깐, ! , ……!

 

 

 

기어코 사내가 제 허리를 움직였다. 사내의 허리 운동이 빨라지면 빨라질수록 소년의 신음은 점점 더 커져갈 뿐이었다. 여전히 소년이 제 허벅지를 꽉 움켜쥐고 있는 탓에, 살짝 상처가 난 듯 그곳이 쓰라렸지만 이런 자잘한 것은 사내의 허리를 멈추게 할 수 없었다. 오히려 자극이 돼 욕실 가득 소년의 신음이 울려 퍼지게 됐다.

 

소년의 허리가 활처럼 휜다. 제 몸 안으로 뜨거운 것과 차가운 것이 동시에 느껴져 정신을 제대로 차리기 힘들었다. 어느새 사내와 마주 본 자세로 사내의 목에 제 두 팔을 걸고 사내에게 제 몸을 완전히 맡기는 게, 현재로서 소년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정말로 자신이 이상해지고 있음을 느꼈다. 조금씩 아팠던 게, 이제는 고통이 무엇이었는지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계속 느껴지던 이물감이 더, , . 더 큰 자극으로 다가오기를 소년은 바라고 있었다.

 

사내의 허리가 점점 더 빨라졌고, 소년이 두 눈을 꼭 감은 채 사내의 목덜미에 제 고개를 파묻었다.

 

 

 

, ! 흐윽, . 카카시, , , 하아, 선생님, 흐으!

 

 

 

사내의 허리 움직임과 비례하는 소년의 고조되는 신음은 사내의 커질 대로 커진 욕망을 더욱 자극했고, 사내는 소년의 입에 제 입을 맞추며 마지막 가속도를 가했다. 소년과 사내에게서 무어라 표현하기 힘든 큰 욕망이 알 수 없는 속도로 차올랐고, 그 끝을 달리고 있었다.

 

 

 

―――――.

 

 

 

가장 야릇한 소년의 신음이 욕조뿐만 아니라 집안 전체를 크게 울렸다. 촤아악, 하고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욕조 안 담겨있던 물들 역시 출렁이며 밖으로 쏟아졌고, 두 사람은 크게 숨을 고르며 그대로 서로 껴안은 채 욕조에 몸을 기대 눕혔다.

 

방금까지 욕정에 시달렸던 탓에 얼굴이 발그레하긴 했지만, 그래도 시원한 물속에 한동안 있었었기 때문인지 소년의 체온이 살짝 낮아졌음을 사내가 느끼고는 만족한 듯 씩 웃더니 소년의 볼에 살짝 입을 맞춘다. 이에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던 소년이 정신을 차리고는 방금 전까지의 생생한 기억들에 부끄러워하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정말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사내가 소년을 안아들고는 그대로 욕실을 나선다. 제 머리에서부터 뚝, , 떨어지는 물기를 사내가 닦아주고 있는 와중에도 얼굴을 가리고 있는 소년에, 얼굴이 보고 싶었던 사내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소년의 귓가에 속삭였다.

 

 

나중에 또, 같이 물속에 들어갈까?

 

………선생님!

 

이제야 얼굴 보여주네. 토마토 같은 게 귀엽다니까.

 

진짜, 진짜……! 변태냐니깐요……….

 

 

사내의 말에 소년이 크게 반응하며 소리쳤고, 아파서 발갛게 된 것과는 확연히 다른 시뻘건 얼굴로 저를 쳐다보는 소년에 사내가 미소 지었다. 그대로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자, 소년이 고개를 푹 숙인다. 귀까지 붉어진 모습이 사랑스러웠음에, 사내는 물기를 닦아주다 말고 제 품에 소년을 꽉 껴안았다. 다시 한 번 소년의 귓가에 제 할 말을 간지럽히는 걸 잊지 않고서.

 

 

 

그럼, 지금 다시 같이 들어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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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Q/조각조각

 

 

 

 다를 게 하나 없는 날이었다. 그저 언제나처럼, 놈을 똑같이 대하고 있었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그 날 역시 멍청이 같은 짓을 하는 녀석의 목에 팔을 두른 채 힘을 주었다. 문득, 선선한 봄날임에도 불구하고 ‘덥다.’ 고 생각했다.

 

 속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더위가 온몸을 감싸며 피부를 발갛게 물들인다. 점점 빨라지는 심장 박동 소리가 내 귓전을 둥둥 울렸다. 생소한 느낌이 낯설어 적응하지 못한 몸에 거부반응이 나타났다. 살갗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같지 않다. 이미 평소하고는 무언가 크게 달라져 있었다.

 

 

 아아. 정신이 혼미하다. 녀석이 내게서 빠져나오겠다고 발버둥을 치며 고갯짓을 할 때마다 놈의 머리카락이 내 목을 간질였다. 오이카와와 꽤나 어울리는 청량한 샴푸 향이 코를 자극했다. 동시에 온몸이 탁, 하고 힘이 풀렸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녀석이 내게서 빠져나왔다.

 

 놈이 나를 바라보며 브이자를 그리고 웃고 있다.

 


 벚꽃을 닮은 웃음이었다.
 크게 바람이 불었다. 그것을 견디지 못한 벚꽃잎들이 떨어져 내린다. 한창 벚꽃비가 흩날리던 그때, 내 뺨에 벚꽃이 스쳐 지나가며 연분홍으로 물들어갔다.

 

 내 생에 첫 봄을 스스로 자각한 순간이었다.

 

 

 

 

 

*

 

 

*@89st_design 님 커미션입니다.

 

隻愛_척애

 


Oikawa Tooru X Iwaizumi Hajime

 

written by. 월화비월

 

 

 

*

 

 

 

 

 

 언제나 자기 자신 보다 배구를 우선순위로 생각하는 녀석이었다. 게다가, 목표를 잡은 건 어떻게든 해내려고 하는 그런 독한 끈기를 가지고 있었기 태문에 오버워크를 할 때가 종종 있어서 이런저런 골치가 아니었다. 다치는 건 기본에, 가끔씩은 정말 위험했을지도 모르는 별의 별 일이 일어났다. 당연히 아주 오래전부터 녀석은 내게 ‘망할 바보’ 라고 굳혀질 수밖에.
 
 그래, 망할 바보. 쓸데없는 바보지만 때때로는 믿음직스러운 놈이라고.
 오이카와 토오루는 내게 딱 그 정도의 존재였다. 또한,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져온 인연의 끈을 나누고 있는 녀석이기에. 더욱 녀석을 아무렇지 않게 대하려고 노력했다.

 

 

 오이카와를 보면 저도 모르게 떨리는 가슴을 다독이며 평소처럼 대하기 위해 애를 썼다. 그 노력이 조금은 통한 걸까, 나날이 갈수록 속에서 타오르던 불길은 재가 되어 흩어져갔다. 그러나 남은 잔해들은 가슴을 꽉 막히게 했다. 숨이 막혀와 괴롭다. 괴롭지만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해야만 했다. 아마, 그 잔해들은 친구를 좋아한 내게 내리는 벌 같은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와쨩―.”

 

 

 

 녀석에게 나는 ‘친구’ 그 이상은 될 수 없을 테니까, 어서 포기하라고 하늘이 내게 주의를 주는 벌. 이 인연을 깨어서는 안 된다고 콱 막힌 가슴에서 통증을 내며 속삭여왔다.

 

 

 

 

 

*

 

 

 

 

 

 학교 측 사정으로 오늘은 부 활동을 하지 말고 빨리 집으로 가라는 공지가 내려졌다. 안 그래도 조금 피곤했는데 잘 됐다 싶어 내심 속으로 안도하며 짐을 챙겼다.

 

 지이익. 가방 지퍼를 끝까지 채우고 어깨에 매는 순간이었다. 드르륵. 교실문이 열린다.

 


 온몸이 문을 열고 들어온 이를 반갑게 맞이했다. 저릿하고 느껴지는 전율에 너라는 걸 알았다. 어느새 네게 몸이 먼저 반응하게 되었구나, 라는 사실에 놀랍기도 잠시 불안한 기운이 스멀스멀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처음 맡는 낯선 향수 냄새였다.

 

 네가 나를 발견하고는 활짝 미소를 짓는다. 이와쨩! 내 이름을 부르는 네 목소리에 가슴이 떨렸다.

 

 오이카와는 밝은 미소를 유지한 채 반갑다는 듯이 손을 흔들며 내가 있는 쪽으로 걸어왔다. 문득 오늘 하루종일 같이 있었는데도 날 저리 반겨주는 네가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악. 얼굴이 달아오른다. 숨겨야했다. 재빠르게 녀석이 있는 곳에서 반대쪽으로 고개를 휙 돌리고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너였냐.”

 

 

 

 후. 녀석 몰래 작게 숨을 내쉬며 심장을 진정시켰다. 역시 놈을 안보는 게 정답이었다. 화끈거리다 못해 새빨갛게 색칠됐던 얼굴이 다시 제 색으로 되돌아갔다.

 

 오이카와는 그런 나를 의아하다는 듯 바라보며 제 턱을 쓸어 만지다 까먹을 뻔 했다는 듯 “아.” 하는 작은 탄식과 함께 제 눈을 크게 떴다. 이내 제 두 눈을 반달처럼 곱게 접은 오이카와가 매혹적인 눈웃음을 띠고는 내 두 손에 제 손을 마주잡고 깍지를 껴왔다.

 

 

 한 순간 사고를 내려야하는 뇌가 작동을 정지했다. 온 몸이 굳는다. 주뼛주뼛 놈의 시선을 어떻게든 피하려 고개를 돌렸다.

 

 아, 녀석이 잡은 두 손에 땀이 꽉 차 금방이라도 뚝, 뚝 흘러내릴 것만 같다.

 

 

 

 “이와쨩, 혹시 어디 아파?”

 

 

 

 흐음. 녀석이 작게 신음하며 내게 얼굴을 가까이 들이댔다. 뭐지 이 새끼, 내 인내심을 시험하는 건가.

 

 금방이라도 얼굴이 펑하고 터져버릴 것 같다. 정신이 혼미하다. 녀석의 냄새에 잠식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이성을 유지하고 있는 건 간간히 맡아지는 낯선 향수냄새 때문이겠지.

 

 나는 잡혀있던 손을 빼내어 오이카와의 머리를 쭉 밀어 내게서 떨어지게 했다.
 이제, 환상에서 깰 시간이었다.

 

 

 

 “안 그래도 몸 상태 별로라서 집에서 쉬려고 했는데 네놈이 지금 방해하고 있잖아. 대체 용건이 뭔데, 망할카와.”

 

 “아, 맞다. 순간 또 잊어 버렸네. 들어와!”

 

 

 

 ……누구를 부르는 걸까. 심장이 불안함에 흔들렸다. 드륵, 하고 열리는 문소리가 왜이리 날카롭게만 느껴지는지. 소리가 바늘이 되어 가슴을 콕콕 쑤셨다.

 

 한 조그마한 여자아이가 우물쭈물 거리며 오이카와의 옆에 철썩 달라붙어 섰다. 그녀에게서는 아까 오이카와에게서 느껴지던 낯선 향수냄새가 더 진하게 풍겨오고 있었다.

 

 너구나, 향수의 주인이. 내 시선이 차게 식어갔다.

 


 너의 옆에 다른 이가 서있다. 아니, 너의 옆에 ‘내’가 아닌 ‘다른 이’가 서있다.


 그녀를 사랑스럽다는 듯 바라보는 너를 보니 순간 머리가 어지러워 가까운 책상을 짚어 간신히 몸을 지탱했다. 향수냄새에 구역질이 나올 것만 같았다.

 

 하. 헛웃음이 터져 나온다. 이럴 줄 알았다면 그냥 너를 무시하고 집에 가는 거였는데. 나는 대체 어떤 희망을 품고서 방금 전까지 녀석의 행동 하나하나에 설레어했는가.

 

 여러 가지가 섞인 감정들이 한꺼번에 몰아쳐와 정신을 똑바로 차리기가 힘들었다.

 


 지금 오이카와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들리지가 않아.

 

 놈의 입모양에 집중하고 있으니 서서히 정신이 돌아오는 듯 했다.

 

 

 

 “―그래서, 이와쨩한테 가장 먼저 소개시켜주고 싶었어!”

 

 

 

 이와쨩? 아무 반응이 없자, 무언가 내 상태가 이상함을 감지한 놈이 고개를 갸웃하며 내게 한발자국 앞으로 다가왔다. 이에 나는 한발자국 뒤로 물러나다 그만, 책상다리에 걸리고 말았다.

 

 결국 쿵 소리를 내며 주저앉듯 넘어진 나는 저릿하게 올라오는 고통에 작게 신음했다.

 

 

 갑작스런 상황에 잠시 행동을 멈춘 오이카와가 얼굴색이 급격하게 변하더니 내 이름을 크게 외치며 다가왔다. 나를 일으키려고 놈이 내 쪽으로 손을 뻗는다. 곧이어 가차 없이 놈의 손을 쳐낸 나는 바닥과 책상을 번갈아 짚었고, 일어섰다.

 


 내게 거절당한 게 충격이 큰 듯 오이카와가 글썽이며 바로 뒤에 있던 여자에게 폭삭 안긴다. 아아, 정말로 실소가 터져 나왔다. 속이 뒤틀려서 울렁거리는 게, 정말이지 금방이라도 토가 쏟아져 나올 것 같았다.

 

그렇지만, 참아야지. 숨겨야지. 그래야겠지. 애써 망가져버린 마음을 달래며 억지로라도 웃음을 지어보려 할 때였다.

 

 

 

 “아, 안녕. 그……, 이와이즈미군……. 미안, 토오루가 오늘 꼭 나를 너에게 소개시켜주고 싶다고 해서.”

 

 

 

 계속 내 눈치를 보던 여자가 여전히 안겨있는 놈을 토닥이며 어색하게 눈웃음을 짓고는 말을 건넸다. 그러고 보니 나, 방금…… 처음 보는 애 앞에서 그렇게 모양 빠지게 넘어졌던 건가……. 조금 창피함이 몰려왔다.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아니야.

 

 

 

 “망할카와가 문제였던거지 네가 왜 사과를 하냐.”

 

 “그렇다면 다행이고! 난 토오루의 여자친구 ――라고 해.”

 

 “……그래, 망할카와―, 아니, 오이카와한테 들어서 알고 있겠지만 난 이와이즈미 하지메라고 한다.”

 

 

 

 ………‘여자친구’라. 확인사살을 당하듯 명확하게 들려오는 저 말이 왜 이리 아픈지. 꼭 저 여자애가 자기 애인한테 딴 마음 품지 말라고 경고를 주는 것만 같이 날카롭게 들려왔다.

 

 

아.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어서, 빠져나가지 않으면―.

 

 

 

 “그래! 내 여자친구는 누구보다 가장 친한 이와쨩한테 먼저 소개해주고 싶었단 말이야! 그런 이 오이카와상의 마음도 모르고, 이와쨩은 정말 멍청이라니까.”

 

 

 

 ―버틸 수 없을 것 같아.

 

 

 순간적으로 울컥하는 마음에 입술을 꾹 깨물고 눈물이 나오려는 걸 참았다. 내가 왜 좋아해도 저 녀석을 좋아해서는. 살짝 억울해져서 괜히 오이카와 놈을 째려봤다. 놈과 눈이 마주친다.

 

 나와 눈을 마주친 녀석의 얼굴이 당혹함으로 가득 찼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거의 얼굴이 잿빛이 된 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라, 왜 그러지. ……지금 얼굴 쪽이 축축한 것이, 나 울고 있는 건가.

 

 

 

 “이와쨩. 왜 그래, 진짜 어디 아파?”

 

 “이와이즈미군, 괜찮아?”

 

 

 

 고개를 돌려 팔로 눈을 벅벅 닦았다. 이와쨩, 여기 봐봐. 어느새 내 코앞까지 다가온 오이카와가 계속 내 이름을 부르는 게 들렸지만, 난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괜찮았다. 정말 갑자기, 그냥 순간적으로 여러 감정이 뒤섞여서 조절하지 못한 것뿐이었으니까. 금방 괜찮아질 거였다. 괜찮아지려고 했다. 오이카와가 내 두 팔을 붙잡고서, 억지로 저와 얼굴을 마주하도록 하게하기 전까지는. 아마, 내 얼굴은 엉망진창이었을 게 분명했다. ……이와이즈미 하지메! 놈의 입에서 오랜만에 내 풀네임이 나온 걸 보면.

 

 

 그 후로는 무슨 정신이었는지 모르겠다. 가방 끈을 붙잡고 횡설수설하며 급하게 교실을 빠져나왔다. 계속 깊숙한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역겨움에 몇 번 헛구역질을 하면서.

 

 


 간신히 밖으로 빠져나오니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다. 불그스름하게 물든 하늘을 멍하니 바라봤다. 지고 있는 와중에도 쨍쨍한 해에 온 몸에서 조금씩 땀이 흘러 내렸다. 나는 흘러내리는 땀을 닦기 위해, 주머니에 휴지가 있나 뒤지던 나는 그만 포기하고 손으로 눈을 닦았다. 땀이었다. 한 여름을 알려주는 매미 소리가 내 울음을 덮어씌운다.

 


 봄이 오지 않았으면 했다. 나는 여전히 한 여름이었기 때문에, 너에게 봄이 오지 않았으면 했다. 이제 전부 다 끝났다. 놈을 좋아하는 건 오늘이 마지막이다. 내 계절은 이제 가을이 되고, 차디 찬 겨울이 되겠지.

 

 

 

 “이와쨩!”

 

 

 

 내 이름을 크게 외치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살짝 고개를 돌려 그곳을 쳐다봤다. 오이카와였다. 쏜살같이 도망치듯 빠져나온 나를 쫓기 위해 힘차게 달렸던 건지, 너는 거칠게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무엇을 물으러 온 걸까. 대체 뭣 하러? 나는 네게 대답해줄 수 있는 게 없는데.

 

 시원하게 울고 나니 울렁이던 감정들이 진정돼있었다. 나는 아예 몸을 돌려 녀석을 똑바로 바라봤다. 녀석 역시, 숨을 제대로 고르고는 나를 똑바로 바라본다.

 

 여전히 녀석의 시선에 떨리는 가슴이 원망스럽다. 아, 정말로 나는. 후회하고 있었다. 후회한다.

 


 애초에 녀석에게 봄이 오기 전에, 내게 봄이 오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럼 내 계절은 뜨거운 여름이 되지 않았을 터였다. 이렇게나 뜨겁다가도, 차가운 비가 내리는 여름이 되지 않았을 거였다.

 


 ―봄이 오지 않았다면. 봄이 오지 않기를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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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Q/[오이히나] 너의 이름은 AU

 

 

BGM : 토토의 즐거운 하루 - 시즈코 모리

 

 

 

[오이히나] 너의 이름은 AU_

 

 

 

EP1. 일어나 보니 생판 처음인 곳.

 

 

 

written by. 월화비월

 

 

 

 

*

 

 

 

 


01. 잠자는 새에 납치를 당해버렸다.

 

 

 

 

 시끄러운 노랫소리가 방안을 꽉 채운다. 이에 방금 전까지만 해도 색색 잠을 자고 있던 남자가 몸을 조금씩 움찔거렸다. 평온했던 얼굴에 짜증이 가득하다.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에 반짝이는 오렌지빛깔의 머리카락을 헝클이며 침대에서 부스스 일어난 남자는 먼저 노랫소리를 끄기 위해 손을 움직였다. 머리맡에 있던 핸드폰을 몇 번 만지작대니 귀가 아플 정도로 컸던 소리가 사라졌다. 마음까지 편안해지는 기분이다. 남자는 이 평온함을 잠시 즐기기로 했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했다. 방바닥이 이렇게 푹신푹신 했었나? 설마 나, 지금 ‘침대’ 위에 있는 거야?

 

 사실을 깨달은 남자의 얼굴이 순식간에 낯빛으로 변해버렸다. 갈 곳을 잃은 눈동자가 방 안 곳곳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곳이었다.

 

 분명 어제 오버워크 하는 걸 이와쨩한테 걸려서 바로 집 가서 잠을 잔 게 맞을 텐데……. 자고 일어나니까 자신의 방이 아니라니. 잠자는 새에 납치라도 당한 걸까?

 

 남자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더니, 후우― 하고 내쉬었다. 심호흡을 하니 조금 진정이 되는 것 같았다.

 

 


 ‘그래, 일단 진정을 하자. 만약 납치라면 먼저 이곳의 구조를 파악해야…….’

 

 『띠링♪』

 

 ‘……핸드폰?’

 

 


 남자는 방금 전 맑은 알림소리가 난 곳을 바라보았다. 핸드폰이었다. 화면이 빛나는 걸 보니 문자가 온 것 같았다.

 

 기종을 봐선 분명 내 핸드폰은 아닌데, 자기를 납치한 사람의 핸드폰인 걸까? 남자는 조심스럽게 핸드폰에 손을 가져다대었고, 시간이 지나 깜깜해진 화면에 저의 얼굴이 비춘 걸 보고 깜짝 놀라 핸드폰을 내던지고 말았다.

 

 


 ‘방금, 뭐였지?’

 

 


 이 방과 같이,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평소 스스로도 자화자찬하던 제 잘생긴 얼굴이 아니라, 그냥 귀여운……. 아,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오이카와상이 귀엽지 않다는 건 아니고.

 

 혹시 꿈인 걸까. 이거, 꿈인 거겠지? 하하. 남자는 허탈한 웃음을 날리며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썼다. 그래, 다시 한 번 봐보는 거야. 마침 저기가 욕실인 것 같으니 가볼까? 거울이 있겠지. 그렇게 남자는 계속 입으로 “아닐 거야, 아니야. 잘못 본 걸 거라고.” 중얼거리며 욕실로 향했으나, 곧 이 행동을 후회했다.

 

 


 “어째서―――?!?!?!?!”

 

 


 대체 이 눈앞에 보이는 귀엽게 생긴 사람은 누구란 말인가. 오이카와가 충격을 먹은 얼굴로 제 눈앞에 보이는 거울 속의 남자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히나타!! 대체 언제까지 잘 거―! 아? 일어나있었네? 문자를 확인 안하 길래 아직도 자고 있는지 알았잖아. 뭐해, 빨리 준비 안하고? 이러다 수업 늦겠어!”

 

 “……에? 엣?”

 

 “5분 안에 안 나오면 나 먼저 간다?”

 

 “잠, 잠깐만. 저기?”

 

 


 갑자기 방으로 들어온 남자가 제 할 말만 하고는 쾅, 문을 닫고 나가버리자 오이카와는 혼란스러움을 뛰어넘어 정말로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이 사람을 알고 있는 사람인가? 친구? 그나저나 히나타라면, 이 사람의 이름?

 

 일단 아는 게 없으니 히나타로 추정되는 이 사람을 아는 것 같은 저 남자를 따라 갈 수밖에. 오이카와는 적당히 주위에 보이는 옷을 주워 입었다. 마지막으로 거울 앞에서 제 상태를 점검한 오이카와가 흐음, 신음한다.

 

 아무래도 히나타라는 이 사람, 꽤 작네. 대충 170 정도일까……. 잘 살펴보니 방에 배구에 관련된 게 많아 보이던데 혹시 수비 전문인가?

 

 


 “히나타! 진짜 나 먼저 가버린다!”

 

 “엑, 지금 가!”

 

 

 

 

 

*

 

 

 

 


02. 날 수 있어.

 

 

 

 

 소년은 일어나자마자 기지개를 폈다. 몸 이곳저곳이 쑤시는 것을 느낀 소년이 기지개를 하다말고 고개를 갸웃했다.

 

 


 ‘으음. 오늘따라 몸이 왠지 찌뿌둥한 게, 마치 고등학교 때가 생각이 나는 걸.’

 

 


 뭔가, 가끔씩 재수 없지만 실력은 인정하는 그 놈과 다이치상에게 혼날 정도로 오버워크를 한 다음날 같다고 해야 할까……. 푸스스. 바람 빠진 웃음소리를 내던 소년이 이내 고개를 떨궜다.

 

 


 “……그립네.”

 

 


 조용히 한 마디를 중얼거린 소년은 얼마 안가 이상함을 느꼈다. 지금 제 눈에 보이는 게 현실이 맞나? 혹시 아직 꿈을 꾸고 있는 걸까. 순간적으로 혼란이 찾아온 소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침대 위가 아니었다. 실수로 친구의 방에서 잠이 든 거라 생각해도 기숙사의 모든 방에는 침대가 배치되어 있을 텐데 이 방 어디에도 침대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특히, 기숙사라기보다는 평범한 가정집의 방 같았다.

 

 

 뭐지, 나 대체 어제 뭘 했던 거지? 소년이 제 짙은 갈색 빛을 띠는 머리칼을 헤집으며 혼란스러워 하는 그때였다.

 

 


 “어이 망할카와!! 평소에 잘만 준비하던 녀석이 오늘따라 왜 이렇게 느려? 두고간다 굼벵이 같은 자식.”

 

 “―에?”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어젖혀지면서 누군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들려오는 짜증서린 애정이 깃들여진 목소리는 왜인지 낯설지가 않다, 고 소년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와이즈미상……?”

 

 


 제 기억 속의 이와이즈미 하지메라는 사람은 머리가 더 길긴 했지만, 이 흑발의 눈매가 날카롭게 올라간 사람은 분명 저가 아는 그 이와이즈미 하지메가 맞았다. 소년의 뺨을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그렇다면, 이와이즈미상이 말하는 저 ‘망할카와’ 는…….

 

 


 ‘나, 설마 지금 대왕님인거야?’

 

 


 사실을 깨달은 소년이 충격을 금치 못하고 입을 떡 벌린 채 멍하니 땅바닥만을 바라봤다. 이에 이와이즈미가 의아해하며 소년의 등을 힘껏 내리쳤다.

 으아악! 소년의 짧은 외마디 비명을 질렀고, 아픈 부위에 손이 잘 닿지 않자 끙끙 거리며 앓는 소리를 내었다.

 

 


 “너 오늘 뭔가 이상하다.”

 

 “에, 에? 뭐가요?!”

 

 “……됐고, 빨리 정신 차려라. 학교 개학 첫날부터 지각할거냐, 네놈은?”

 

 


 이와이즈미가 소년을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며 말했다. 이내 이와이즈미가 방문을 닫고 나갔고, 그저 두 눈만 깜박이며 닫힌 문을 바라보던 소년은 밖에서 진짜 두고 가버릴 거라고 소리치는 그에 의해 한껏 흠칫하며 옷걸이에 걸려있는 교복을 찾았다.

 

 실로 오랜만에 보는 아오바죠사이의 교복이었다. 그가 교복을 입고 있다는 것과, 개강이 아닌 개학이라는 이와이즈미의 말을 한참 생각하며 고민하던 소년은 이내 머릿속에서 하나의 답을 내렸다.

 

 


 ‘그러니까, 대왕님하고 이와이즈미상이 고등학생이라는 소리?’

 

 


 이상하다. 내가 아는 대왕님과 이와이즈미상은 지금 대학교 졸업반에 들어가신 걸로 알고 있는데. 과거로, 심지어 대왕님이 된 ‘나’ 라니……. 이건 필시 꿈일 게 분명했다.

 

 얌전히 교복을 갖춰 입기 시작한 소년은 조금 들뜨는 기분에 심장이 설레었다. 전체적으로 길쭉길쭉한 몸이 마음에 든 듯 바지를 입다가도 허공에 발차기를 하며 우쭐해한다. 이런 행동을 반복하던 소년이 무언가를 깨달은 듯 눈을 크게 떠보였다.

 

 


 “……작지 않아.”

 

 


 조용히 속삭이는 목소리와는 다르게 소년의 눈은 그 무엇보다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소년의 두 눈이 희망으로 가득 차있다. 조금씩 가쁘게 뛰어오는 심장 박동을 느끼며 소년이 방문을 나섰다.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린다.

 

 

 더 이상 조급해하지 않아도 돼. 지금이라면 괜찮아. 선천적인 재능의 차이에 눌리지 않아도 되는 거야. 대왕님의 이 몸이라면, 가능해.

 

―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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